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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줄거리/해설]금수회의록(1908)-안국선-

by 휴리스틱31 2021.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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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회의록(1908)

-안국선- 

 

● 줄거리

 

인간사에 대해 개탄하다가 흰 구름 아래의 더없이 부드러운 바람결에 잠깐 잠이 들어, 짚신을 신고 대지팡이를 흔들며 유유히 봄길을 나서는데, 발길이 가 닿은 곳은 '금수 회의장'이라는 곳의 현판 앞이다. 그곳에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무슨 물건이든지 의견이 있으면 누구든 서슴지 말고 말하고, 듣고 싶으면 회의 내용도 각자 자유롭게 방청하라'라는 알림판을 보고  있는데 길짐승, 날짐승, 벌레, 물고기, 풀, 나무, 돌 등의 행렬에 의해 엉겁결에 밀려들어가 그 회의를 모두 보게 된다.

 

이들은 저마다 인간 사회의 갖은 부도덕과 비합리, 모순들을 낱낱이 드러내어 비판하고 인간을 동물의 밑으로 깎아 내린다. 개회사에서 회장은,

 

첫째, 사람된 자의 책임을 의논하여 분명히 할 일.

둘째, 사람의 행위를 들어서 옳고 그름을 의논할 일.

셋째, 요즘 세상 사람들 중에서 인간의 자격이 있는 자와 없는 자를 조사할 일.

이라는 세 가지 문제를 토의하여 자신들과 사람과의 관계를 분명히 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악한 행위를 일삼으며 반성하지 않으면 '사람'이라는 이름을 빼앗고, '이등 마귀'라는 이름을 갖게 할 것을 하늘에 아뢰겠다고 강조한다. 이어 금수들이 하나씩 등장하여 제각기 인간을 비판하고 조소하는 연설을 한다.

 

 

1) 연미복을 입은 까마귀는 연단으로 맨 먼저 나와, 얼마만큼 자란 까마귀는 제 어미에게 먹이를 갖다준다는 '반포지효'를 강조하면서 동서양에서 미덕으로 강조하는 효도의 정신을 잃고 부모의 뜻을 어기고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인간의 불효함을 풍자하고, 까마귀가 곡식이 있는 논밭에 날아드는 것에 대해서는 해충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 까마귀를 흉조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좋지 못한 일어나기 전에 미리 알려주기 위한 것이지 까마귀가 흉하고 꺼릴 만한 새가 아니라고 역설한다.

 

2) 여우는 남의 권세를 빌어 위세를 부리는 여우를 '호가호위'라는 말로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지 않기 위해 꾀를 부린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면서 여우의 꾀에 속아 넘어간 호랑이가 오히려 어리석은 존재일 뿐이라고 한다. 반면에 인간은 하나님의 위엄을 빌어야 할 터인데 그러지는 않고 강대국의 세력에 빌붙어 제 나라를 망하게 하고 동포를 괴롭히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인간이 여우를 두고 요망하고 간사한 동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말하며, 오히려 상서로운 동물이며 인간이 오히려 요망하고 더러운 존재라고 반박한다.

 

3) 개구리는 견문이 좁고 세상 형편에 어두운 소견 좁은 인간을 풍자한 '정와어해'를 강조한다. 외국의 형편도 모르고 천하대세도 살피지 못하면서 공연히 아는 체하며 떠들어 대는 인간을 풍자하면서, 개구리 자신은 소견이 좁을지언정 모르는 것을 아는 체하지는 않는다고 열변한다. 그런데 인간들은 아는 것도 없으면서 아는 체하기 일쑤요, 조금이라도 알면 악용하기 일쑤요 제 욕심 채우는 일에 급급하다고 말하며 주로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경계한다. 그리고 개구리의 자손은 개구리를 닮는데 인간의 후손은 인간을 닮지 않고 마귀의 자식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4) 은 인간이 원래 하나님의 모습과 마음을 닮았으나 타락하여 흉칙하고 악독한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겉으로는 친절한 척하나 속으로는 남을 해친다는 인간의 양면성을 비판하는 '구밀복검'에 대해 강조한다. 벌에게 꿀은 양식이요 침은 자기방어를 위해 있는 것이지만, 사람들의 입속에 있는 말은 참으로 변화무쌍하여 사람을 살리기도 죽이기도 하는 악독한 것이라고 하며, 또한 참으로 입에 담지 못할 흉악한 소리하기가 다반사라며 정직함을 강조한다.

 

5) 는 인간들이 게를 무장공자라고 하며 창자(지조와 절개)도 없는 존재라며 지조도 절개도 없는 동물이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 게는 아예 창자가 없지만 사람들의 창자는 제대로 된 것이 하나도 없이 온통 썩어 더럽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온통 더럽고 추악하고 비열하고 악독한 것으로만 가득차 있어 구린내가 물큰물큰하다고 비판한다. 반면에 창자가 없는 게는 옛날부터 많은 선행을 했을 뿐 아니라 '제 구멍'이 아니면 들어가지도 않는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런데 인간은 참으로 발을 들여놓을 데가 아닌 곳에 분변치 못하고 들어가서는 화를 자초한다고 그 어리석음을 비판한다.

 

 

6) 파리는 조강지처도 버리고 유지나 지사를 고발하여 감옥에 넣는, 이른바 목적을 위하여 수단을 가리지 않는 소인배들을 비난하는 '영영지극(세력이나 이익을 얻으려고 골똘하는 모습의 극치)'을 강조한다. 사람들이 파리를 보고 소인의 성품과 태도를 말하지만, 사람들이 오히려 간사하고 쓸개에 가 붙었다가 간에 가서 붙었다가 하는 존재라고 비난한다. 그리고 파리들은 먹을 것을 보면 절대 혼자만 먹지 않는데 비해, 인간들은 서로 골육상쟁하기를 예사로 한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파리를 쫓아도 날아가지 않는다고 미워하는데, 사람들은 쫓을 것은 안 쫓고 안 쫓을 것만 쫓는다고 역공을 편다. 사람들이 정작 쫓을 것은 마귀, 더러운 생각, 욕심, 간신배 등이라고 말한다.

 

7) 호랑이는 옛말에 '호랑이를 기르면 후환이 있다'는 얘기가 있지만, 사실 인간의 가혹한 정치와 권력의 남용이 산속의 호랑이보다 더 포악하고 무섭다는 말로 '가정맹어호'를 주장한다. 사람들은 호랑이를 두고 포악하다고 해서 무서워하지만, 호랑이는 하나님이 정해주신 이치대로 살 뿐이며, 오히려 인간의 포악성은 비교할 바가 아니라고 한다. 학문과 지식을 악용하여 전쟁을 일으키고 무기를 개발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는 잔혹한 짓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리고 호랑이는 포학무쌍하다고 하지만 천품은 은혜를 알고 의리를 갚을 줄 아는 동물이라고 고사를 인용하여 반박한다.

 

8) 원앙새는 어디를 가거나 오거나 할 때에 항상 같이 다닌다는 '쌍거쌍래'를 통해 화목한 부부의 의를 강조하며, 인간의 추하고 음란하고 복잡한 남녀관계와 가정의 화목함을 경시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회의가 끝나 모두 나간 뒤에 '나'는, 모든 금수에게 이렇게 비판과 비난을 받는 처참한 사람을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는가를 생각한다. 그러다가 하늘은 아직도 사람을 사랑한다 하니 구원의 길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인간을 구제할 가느다란 지평을 보여준다.

 

● 인물의 성격

 

◆ 나 : 인간, 이 글의 서술자로 꿈속에서 금수회의에 참석한 여러 동물들이 인간의 탐욕과 악행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방청하고 인간의 각성을 촉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됨.

 회장,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새 : 회의장에 나오는 금수

 

 

● 이해와 감상

 

 <금수회의록>은 연설 회의 형식과 우화적인 기법을 통하여 개화기의 시대적 상황과 함께, 타락한 인간을 고발하고 국권수호와 자주의식을 고취하는 신소설이다. 비리에 젖어 간교하게 목적을 달성하는 권력의 그늘 아래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사를 조소하고 비판한 작품이다. 인간은 사회적 자아이면서도 개인적 욕구에 불타는 존재이다. 더구나 격변기의 혼탁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속에는 탐욕과 간교함, 메마른 욕구의 달성, 쓸개없는 듯한 행위들이 그대로 배어날 뿐 아니라 권력 지향적인 비호 속에서 저마다 자신의 욕구를 달성하려고 한다. 소설의 서사 구조가 느슨하면서도 풍자적, 우화적인 기법에 의해 소설 자체의 문학성을 획득하고 있다.

 

 <금수회의록>은 꿈의 장치에 의해 서사화되고 있다. 이 작품의 서두와 종말은 1인칭 관찰자인 '나'의 꿈 이야기로 그려지고 있으며 금수회의의 내용은 꿈 속에서 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나의 꿈 - 금수 회의 - 꿈에서 깨어남'의 구조로 엮어져 있어, 주인공인 '내'가 본 또 하나의 세계를 그려내고 있는 액자소설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이다. 꿈의 장치는 조선 소설의 몽유록계 소설을 이어받고 있는데, 꿈이라는 허구적인 성질을 통해서 현실적인 의미를 전달하려는 독특한 문학 양식이다. 대개가 현실적 비판과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칠해진다. 이러한 몽유류계 소설은 개화기 신채호의 <꿈의 하늘>로 이어지고 이광수의 설화를 서사화한 <꿈>에 계승되어 있어서, 꿈의 모티브는 한국 소설의 중요한 한 형태로 자리매김 되어 있다.

 

 <금수회의록>의 바탕에는 기독교 사상이 흐르고 있어 인간 구제의 한 가능성을 그 속에서 나타내고 있다. 현재의 사회는 복잡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 금력에 의해 혼탁해지는 사회이다. 다윈의 진화론적인 인간관과 적자 생존에 의한 투쟁으로 인간의 욕구는 끝없이 펼쳐져 간다. 인간악의 모든 근원이 이 권력과 금력의 횡포와 그 추종에 있는 것이다. 금수회의를 보고 나서 인간이 동물의 밑에 깔려 있는 것을 통탄하는 화자는 '하늘은 아직도 인간을 사랑한다고 하니 사람들은 악한 일을 많이 했을지라도 진심을 다해 반성하고 뉘우치면 다시금 희망의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여, 성찰과 회개에 의한 인간의 구원의 가능성을 진실한 참회와 사랑에서 찾고 있다. 이러한 문제 해결 방식은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구두선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작가의 현실인식의 한계와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결국, <금수회의록>은 한말(韓末)의 혼란된 시대상황 속에서 국권수호와 자주의식을 고취하며, 무너져 버린 인간 윤리의 회복을 강조하기 위해 동물에 가탁하여 인간세계를 비판한 정치 풍자 소설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은 이 소설은 동물들의 연설을 통하여 개화기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정치적 자립, 민권사상 및 도덕의 정화와 정치적 개조를 주장하고 있다. 이 작품이 우화적 구성과 몽유록 형식을 취한 것도 비판과 풍자의 정도가 강렬함을 다소나마 위장하려는 작가의 의도일 수도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신소설, 우화소설, 정치소설, 풍자소설, 액자소설

◆ 시점 : 외부이야기 - 1인칭 주인공 시점,      내부이야기 - 1인칭 관찰자 시점

◆ 배경 사상 : 재래적 윤리관과 기독교 사상

◆ 문체 산문체, 연설문체

◆ 표현 및 특성 : 몽유록계 작품, 환몽구조(액자식 구성), 연설 회의 형식

◆ 전체 구성

* 서언

* 개회 취지

* 제1석, 반포지효(反哺之孝) → 부모에 대한 효도 강조

* 제2석, 호가호위(狐假虎威) → 인간의 간사한 행동 경계

* 제3석, 정와어해(井蛙語海) → 분수를 지킬 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의 행동 경계

* 제4석, 구밀복검(口蜜腹劍) → 벌의 부지런함과 성실성을 내세워 정직함을 강조함.

* 제5석, 무장공자(無腸公子) → 창자가 없는 게를 등장시켜 지조 없는 인간을 비판

* 제6석, 영영지극(營營之極) → 파리가 등장하여 인간의 무리한 욕심을 풍자함.

* 제7석,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 → 호랑이보다 더 포악한 인간의 정치 행태를 고발함.

* 제8석, 쌍거쌍래(雙去雙來) → 남녀의 부도덕한 가정 생활을 고발함.

* 폐회 → 회의가 끝나고 다시 '나'가 등장하여 동물보다 못한 인간 세상의 타락을 한탄하면서 기독교를 통해 구원받고자 하는 뜻을 말한다.

 주제  인간세계의 모순과 비리, 타락상 풍자, 각성 촉구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의 기법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작품은 우화 형식을 빌려 작자의 의도를 표현하고 있다. 이솝 우화를 예로 들어 우화가 무엇인지, 우화 기법을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친구들과 의견을 나누어 보자.

⇒ 우화란, 인간 이외의 동물이나 식물에 인간의 생활 감정을 부여하여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빚는 유머 속에 교훈을 나타내려고 하는 이야기를 말한다. 우화가 의도하는 바는 이야기를 빌려 인간의 약점을 풍자하고 처세의 길을 암시하려는 데에 있다. 우화의 주인공은 한 마리의 쥐일 수도 있고 까마귀일 수도 있으나, 일단은 일상적으로 친숙한 동물 혹은 식물이어야 한다. 이들 주인공들은 인간의 모든 기능을 구비한 인격으로서 자유스럽게 지껄이며 행동하는 것이 상례이다. 그 자유스러움이 인간의 일상적 상식을 뛰어넘는 데서 도덕적인 깨달음을 주는 효과가 강해진다. 이것이 우화의 기교상 특징이다.

우화는 이처럼 동물이나 식물 등의 행태를 통해 인간의 심리가 운동하는 전형적인 양상을 보여 주는 데 효과적이다. 그만큼 상징적이고, 상징적인 만큼 인간의 행태에 비유될 수 있는 폭이 넓기 때문에 이러한 기법을 많이 사용하는 것이다.

 

(2) 이 작품에서 우화 기법을 사용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당대의 정치적 상황, 작자의 의도와 관련하여 설명해 보자.

⇒ 당시에는 사회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제약이 심하여 검열과 판매금지 처분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이 작품도 강한 주제의식 때문에 발표 당시에 금서 조처가 취해져 회수당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생각하면 작자가 인간의 비리를 고발하되 동물의 소리를 비릴 수밖에 없는 입장을 짐작할 수 있다. 우화적 형식은 작가가 내용의 강렬함을 의식하고, 첨예한 반응을 다소나마 둔화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취한 것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미물에 불과한 금수가 인간 사회를 비판하게 하는 것이 인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강한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점도 우화 형식을 취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2. 작품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작품에는 전통적인 윤리관과 외래적인 가치관이 함께 나타나 있다.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자.

⇒ 교과서에 실린 부분(제1석)은 혼란한 개화기에 인륜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까마귀의 입을 빌어 개탄하고 있다. 근대 국가의 국민으로서 필요한 윤리의식을 역설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근대적 가치를 지니지만, 이 작품에서 여성에 대해서 '학식이라고 조금 있으면 주제넘은 마음이 생겨'라고 하며, 여성 교육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통적인 윤리관을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이 작품은 동물의 입을 빌려 인간을 풍자하고 있다. 인간의 어떤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말해 보자.

⇒ 이 작품은 인간이 부모에 대한 효마저도 행하지 않고 인륜을 저버리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3) 우화 소설은 대체로 추상적인 시 · 공간을 작품의 배경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개화기 조선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비판하고 있는 당시의 사회상에 대해 말해 보자.

⇒ 개화기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번혁기로서 많은 사람들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으면서 전통적인 인륜을 저버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현실은 우리 민족이 근대 국민으로서 윤리의식을 갖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4) 이 작품에서 비판하고 있는 사회상을 현대 사회의 모습과 비교해 보고, 현대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하나만 골라, 이 소설의 문체와 우화 형식을 사용하여 짧은 글을 지어 발표해 보자.

< 토사구팽 - 개 >
나는 개올시다. 듣자 하니 세상에 간사하고 간악한 것이 인간인 듯하오. 내 그래서 인간들한테 할 말이 있어 이렇게 나왔소. 사실 우리처럼 족속들이 많은 동물도 없을 것이오. 살구가 맛이 없으면 개살구요, 나리꽃에도 못 끼면 개나리요, 망신도 큰 망신이면 개망신이요, 망나니도 큰 망나니면 개망나니요, 지랄도 큰 지랄이면 개지랄이요, 뻔뻔한 얼굴은 개가죽이요, 번지르르한 기름은 개기름이요, 보잘 것 없으면 개떡이라, 개씨 집안은 말 그대로 문전성시오 도리만당(桃李滿堂)이라. 도대체 우리 개들이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렇게 천대를 당하고 산단 말이오. 필요할 때엔 언제나 가까이 두고 이용해 먹는 가축이 바로 우리들이라 더욱 기막힌 일이라오. 돼지가 도둑을 지켜줄 수 없고, 소가 주인을 반기는 법이 없고, 염소가 주인을 도와 사냥을 할 수 없고, 닭이 식구와 같이 놀아주지 않는데, 왜 우리 개들은 인간들이 분풀이할 때마다 단골로 회자되는지 모를 일이오.
따지고 보면 우리처럼 충직하고 의리 있는 동물은 없을 것이오. 그 옛날 전라도 오수라는 동네에서는 우리 조상 한 분은 불에 타 죽을 주인을 살리려고 냇가에 가서 물을 묻혀 잔디를 흥건히 적시고는 장렬하게 순사하신 적이 있소. 또 어떤 동포는 물에 빠진 어린애를 구해내기도 했다오.
인간이야말로 의리를 모르는 족속들이라오. 돈 때문에 아들 손가락을 자르는 애비도 있고, 유산을 받으려고 부모를 불에 태워 죽이는 자식놈도 있고, 노부모 모시기 싫다고 양로원에 갖다 버리는 놈도 많지요. 출세를 하려고 친구를 배반하고 모함하는 놈, 권력을 얻으려고 어제는 한솥밥 먹던 동료를 오늘은 정적으로 나서서 깔아뭉개는 정치 모리배, 어려운 살림살이에 같이 고생하다가 돈을 좀 모으니까 조강지처 버리는 놈, 모두 모두 의리를 모르는 인간들이오. 필요할 때는 친구하다가 쓸모 없어지니까 매정하게 돌아서는 게 인간이라는 족속이라오.
모든 인간은 결국 세 가지 부류 중의 하나일 것이오. 개보다 더한 놈이거나 개보다 못한 놈이거나 개 같은 놈 중의 하나일 것이오.
→ 사냥개가 토끼를 잡고 나니까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뜻의 토사구팽이라는 고사성어를 통해 인간사회의 불의를 고발하고자 하였다. 원전의 문체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였으나 다소 현대적인 문체로 변화시켜 가독성을 높였다. 장황한 열거와 구어체적인 문장을 통해 연설 분위기를 살리고자 하였다.

 

 

● 더 읽을거리

 

 우화소설 · 정치소설

우화소설은 주로 동물에 가탁하여 인간 행위의 우매함과 타락함을 풍자,비판하고 이를 계도하려는 목적으로 쓰여진 특이한 기법의 서사문학이다. 이런 양식의 소설은 부조리한 현실과 사회에 대한 작가의 의도된 저항 정신의 발로이자 건강한 도덕심을 제창하기 위한 목적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정치소설은 정치 사상이 지배적 역할을 맡고 있거나 정치적 환경이 지배적인 배경으로 되어 있는 소설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국민의 정치적 계몽과 개인적 정견 발전 내지 사회 개량의 수단으로 나타나거나, 국권신장 의식을 반영하고 부패 관료의 학정을 폭로하는 풍자적 무기로 이용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소설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우화적 정치소설의 특징을 고루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 때문에 까마귀, 여우 등의 동물을 내세워 우화 형식을 빌렸지만, 자신의 정치·사회 의식을 직접적이고도 강렬한 어조로 표현하여 국민의식의 계몽을 추구했던 것이다.

 

◆ 구성 형식상의 특성

이 작품은 동물들이 인간의 제반 악증을 성토하는 우화적 형식으로 되어 있다. 동물들의 연설은 각각 소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고사성어 및 전래 속담에서 차용하고 있어 전근대적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당시의 잘못된 개화 사상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작가적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근대성이 뚜렷하다. 표현에 있어서도 우화적 수법과 연설문 형식을 결합시켜 비판과 풍자의 효과를 두드러지게 하고 있다. <금수회의록>의 또다른 구성상의 특징으로, 일인칭 관찰자인 화자 '나'가 꿈속에서 인간 사회의 부도덕과 비리를 성토하는 동물들의 연설을 듣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는 액자 소설의 형태인 동시에, 전대의 '몽유록계 소설'과의 연속적 관계를 말해 주는 것이다.

 

◆ 근대적 성격과 그 한계

<금수회의록>은 다른 신소설들이 지니고 있는 소재, 주제의 한계를 탈피했다는 데에 그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즉, 권선징악의 주제나 이야기의 서술에 치우친 형식을 벗어나, 현실을 비판한 주제의식과 일인칭 관찰자 시점에 의한 우화적 표현이라는 점에서 한발 더 근대화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의 현실 비판은 너무 원론적 차원에 머물고 있어, 민족의 현실을 타개하는 실질적 문제 해결에 접근하지 못한 한계를 보이고 있다. 또 이 작품은 기독교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어 배경 사상 면에서도 전대의 소설과 전혀 다르다. 그것은 "예수의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라는 결말부의 진술에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재래의 유교적 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면도 있다. 제1석과 제8석은 전시대 윤리관의 계승이라 할 수 있다.

 

 

◆ '금수회의록'에 나타난 작가의 태도

이 작품은 당시 사회와 국민들에 대한 강렬한 풍자와 비판 정신이 주조를 이루고 있지만, 작품의 결말 부분에서 이제까지 제기된 모든 문제를 기독교에 의존해 해결하려는 안이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예수씨의 말씀을 들으니 하느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을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 자매는 깊이 깊이 생각하시오.'로 끝나는 대목은 제국주의 세력이 한국을 침탈하고 내정의 부패가 극심하던 시기에 전혀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구두선(口頭禪)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의 발전에 대한 이해와 현실의 문제점을 통찰하는 예지가 만족할 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안국선으로서는 당연한 논리적 한계로 보이며, 이 점은 그가 친일 인사로 변절하여 <공진회>를 쓴 사실에 견주어 볼 때 충분히 검증될 수 있는 사실이다.

 

◆ 개화기 문학 중 시사토론체 소설에 대한 이해

애국계몽기 문학계에는 토론체 형식으로 된 독특한 서사문학이 출현하였다. 이 시기에 시사토론체 소설이 성행한 것은 무엇보다 그 형식의 간편함과 단순함이 작자의 사상을 전달하거나 문제의 시비를 가리는 데 손쉬웠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립협회 이래로 각지에서 정치연설회 · 토론회 등이 개최되었는데, 안자산에 따르면 '연설하고 토론하는 기풍이 도처에서 일어나니 열 살짜리 어린아이라도 능히 만인 가운데 우뚝 서서 열변을 토할' 정도였다고 한다. 시사토론체 소설의 형성에는 이러한 당시의 시세도 일정한 몫을 했을 것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문학 본래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시사토론체 소설은 진정한 소설로서는 매우 불충분한 것이었다. 작품에 따라 다소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인물과 환경이 작자의 의도에 따라 편의적으로 결정되었으니 결국 정치계몽을 위해 문학의 외피를 빌린 것이었다. 이와 같은 창작 동기의 측면에서는 역사전기문학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시사토론체 소설은 <대한매일신보>에 연재된 '소경과 안즘방이 문답(1905)'과 '거부오해(1906)', 이해조의 '자유종(1908)'처럼 두 사람 이상이 참여하는 직접적인 대화, 토론의 형식을 취하거나, 우화의 형식을 빈 안국선의 '금수회의록(1908)', 김필수의 '경세종(1908)', 몽유록의 형식을 차용한 유원표의 '몽견제갈량(1908)', 박은식의 '몽배금태조(1911)' 등이 있다.

 

안국선의 '금수회의록'은 우화 형식으로 된 시사토론체 소설의 대표작이다. 세상에 사는 여러 동물들이 회의를 열고 인류의 부패와 타락을 논박한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애국계몽기를 전후한 사회의 비판, 풍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임화는 이 작품에 대해 '노골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고취하지 않고 유머와 풍자로 시세를 폭로하고 새로운 정신을 취입하여 흥미와 실익과 다분의 예술미를 겸비한 작품'이라 높이 평가했다.

 

처음에 등장한 까마귀는 세간에 효도의 양속이 점점 없어짐을 반포지효(反哺之孝)의 고사를 들어 비판하고, 여우는 외국의 세력을 빌어 벼슬을 얻고 제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와 무기를 앞세워 남의 나라를 약탈하는 제국주의를 싸잡아 호가호위(狐假虎威)라 꾸짖는다. 개구리는 천하의 대세는 알지 못하면서 무엇인가 아는 체하며 나라를 망하게 하고 백성의 고혈을 빠는 데만 전심하는 지배세력과 발전된 문명을 이용하여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강대국의 행태를 비판하고, 벌은 조그마한 이익에도 교언영색으로 아첨하다가도 약간의 손해만 끼칠 듯하면 사납게 표변하는 인심의 부동함과 제 본분에 열심이기보다 놀고 먹는 데 전념하는 인간의 게으름을 성토한다. 게는 사람들이 자신을 창자 없는 동물이라 업신여기나 사람들이야말로 온갖 압제를 받아도 자유를 찾을 생각이 도무지 없으니 창자 있는 사람이 자랑할 것이 없다고 야유한다.

 

파리는 더럽다는 핑계로 자신을 쫓아내기보다는 인간들 마음에 있는 물욕과 조정의 간신배들과 세상의 소인배를 쫓아내라 충고하며, 호랑이는 관리의 가렴주구와 온갖 무기로 인류를 죽이는 인간의 잔인함을 개탄한다. 마지막으로 등단한 원앙은 축첩 제도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한편 절개를 잃은 여자들의 부도덕한 행위도 잘못된 것이라 비판한다.

이 소설은 동물들의 입을 빌려 봉건지배층의 타락상이나 제국주의 세력의 부당성, 그리고 일반 시정의 흐트러진 세태 등 다양한 측면에서 현실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그러나 문제제기에 대한 해결의 방도를 치밀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회개로 그것을 대신하였으니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시기에 정치 · 사회 문제에 대한 담화나 토론체로 된 독특한 소설 양식이 등장한 것은 무엇보다도 망국을 목전에 둔 급박한 상황에서 민중을 계몽 · 각성시키려는 의식의 소산이다. 따라서 당시에 발표된 어느 서사양식보다도 직접적이며 구체적인 형태로 현실의 모순을 풍자 · 비판 · 고발하였다. 그러나 시사토론체 소설은 인물과 사건의 형상을 통해 현실을 반영하는 소설 본래의 모습과는 부합되지 못한 일종의 과도기적 소설 양식이었다. 한일합방 이후 그 양식 자체가 소멸된 것은 일제의 탄압에 의해 금서처분된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지만 거시적으로 볼 때 작자가 자신의 현실관을 근대소설의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나병철, <서사문학의 양상과 성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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