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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줄거리/해설] 사람의 아들(1979)-이문열-

by 휴리스틱31 2021. 1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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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1979)

-이문열-

 

● 줄거리

 

D경찰서에 재직중인 남 경사는 기도원 근처에서 발생한 민요섭의 피살 사건을 수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민요섭이 외국인 선교사의 양자로 자랐으며 뛰어난 성적의 신학도였다가 이단적 행동으로 학교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민요섭을 명문 고교 우등생이던 조동팔의 집에 기거하며 그와 접촉하게 되는데, 조동팔은 민요섭의 종교 사상에 매료되어 그의 신념을 실천하는 극단적인 행동주의자가 된다. 한편, 그러한 내용을 탐문해 가던 남 경사는 민요섭이 쓴 소설 형식의 일기를 통하여 민요섭과 조동팔이 추구하던 기독교 부정의 신념을 어느 정도 이해한다.

 

민요섭의 글에서 아하스 페르츠는 예수와 동시대의 인물로서 부모에 의해 훌륭한 랍비(율법사)가 되도록 양육된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여러 가지 갈등과 회의 끝에 기독교적 신념을 포기하고 긴 순례의 길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신(神)을 찾지 못하고 돌아온다. 그 후 단식을 통해 '위대한 영'과의 접촉을 이루고 예수와 논쟁한다. 그리고 유다를 부추켜 예수를 고발하게 하고 예수의 최후를 지켜보다가 시공을 초월한 방랑의 길을 떠난다.

 

 

남 경사는 끈질긴 수사 끝에 조동팔의 거처를 알아내고, 민요섭을 죽이게 된 배경과 경위를 듣는다. 조동팔은, 기독교 신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신성(神聖)'을 발견한 민요섭의 사상을 극단적으로 실천하다 민요섭의 기독교 회귀로 자신의 실천력이 희석되는 것을 두려워 했노라고 말한다. 결국, 자신의 행동적 신념 유지를 위해 민요섭을 죽이게 되었다고 자백하며 음독 자살한다.

 

● 인물의 성격

 

◆ 민요섭 → 기독교 부정의 이념을 지니다가 다시 기독교로 돌아가는 인물. 조동팔의 극단적 행동에 신념 체계를 주입한 인물임.

◆ 조동팔 → 명문 고교 우등생이었다가 민요섭을 만나 그의 사상을 믿고, 종교 부정의 극단적 행동을 함

◆ 남 경사 → 민요섭 피살 사건의 수사관으로 고시 공부와 소설 쓰기 경력의 소유자. 이 작품의 진행자 역할을 하는 인물임.

◆ 아하스 페르츠 → 내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예수를 부정하고, 유다로 하여금 예수를 고발하게 하는 인물임.

 

● 구성 단계

 

◆ 발단 : 기도원 근처에서 발생한 민요섭 피살 사건을 남경사가 수사하게 됨

◆ 전개 : 남경사는 소설 형식의 민요섭 일기에 쓰인, 신에 대한 부정과 종교적 갈등의 내용에 관심을 가짐.

◆ 위기 : 일기 속의 내용(내부이야기)으로서, 아하스 페르츠가 새로운 신을 갈망하며 고행하는 방황의 기록임.

◆ 절정 : 조동팔의 극단적 행동을 반대하며 민요섭은 기독교에 회귀함.

◆ 결말 : 자신의 행동적 신념 유지를 위해 조동팔은 민요섭을 살해했다고 고백하며 남 경사 앞에서 음독 자살함.

 

 

● 이해와 감상

 

 <사람의 아들>은 예수 시대에 기독교를 부정했던 아하스 페르츠의 이야기를 현대 사회에서 반기독교적 이념과 행동을 보이는 민요섭과 조동팔의 이야기로 에워 산 액자 구조의 소설이다. 민요섭이 일기 형식으로 쓴 아하스 페르츠의 이야기는, 모순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벗어나기 위하여 신의 은총보다는 현재의 자유와 정의의 실현이 더욱 가치있는 것이며, 신은 더 이상 인간에게 간섭하거나 믿음을 강요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아하스 페르츠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고 외경(外經)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인물로서, 작가는 이 전설상의 인물을 소설 속에서 재창조한다. 기독교 전설에 의하면 그는 이스라엘의 구두장이었는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는 도중에 그의 집 문 앞에서 쓰러졌을 때, 잠깐 쉬게 해 달라는 예수의 청을 거절했기 때문에 그 저주로 예수 재림 때까지 죽지 못하고 방황한다는 악마적 인물이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 속에서, 세계의 모순에 괴로워하며, 그것에 눈감고 있는 신의 침묵을 고발하는, 반신적(反神的)이며 이성을 존중하는 인간형을 살려낸 것이다.

 

 아하스 페르츠는 '거짓 인자(人子)'인 예수에 대하여 온전하고 참된 '사람의 아들'로서 대립한다. 예수와의 대화에서 그는 "육신을 가진 인간의 비참함을 없애기 위해서, 인간들에게 죄지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도록 고통스러운 자유를 회수하라."고 말하며, "인간은 주어진 모든 것을 누려야 하므로 그 무슨 이유로도 그들의 향유를 빼앗거나 금지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결국, 예수와 아하스 페르츠의 대립은 사랑으로 하느님의 뜻을 이루려는 예수와 이성으로 사람을 하느님의 위치로 끌어들이려는 아하스 페르츠 사이의 대립이다. 예수의 하느님은 인간을 영원히 죄의식 속에 살게 하는 하느님이지만, 아하스 페르츠의 하느님은 인간을 신뢰하는 하느님이다.

 

 민요섭과 조동팔의 이야기 - 민요섭의 신은 아하스 페르츠의 신이다. 인간의 이성과 지혜를 신뢰하는 신을 섬기는 새로운 종교를 꿈구며, 충실한 제자인 조동팔을 통해, 또는 그와 함게 그의 종교를 세워 나가려 한다. 그러나 가치 판단이나 선악의 관념에서 유리된 신은 공허하다는 것을 깨닫고, 민요섭은 예수의 신에게 귀의한다. 그것이 조동팔이나 배신감을 불러일으켰고, 결국 민요섭은 그에게 살해당한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장편소설, 액자소설

◆ 배경 : 현대, 종교적 이념과 모순된 사회 현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실존적이고 종교적인 색채가 강함.

* 의문을 풀어 나가는 추리적 구성

◆ 주제  종교(기독교)적 이념과 배치된 사회 현실의 극복과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 추구

◆ 출전 : <세계의 문학>(1979)에서 중편으로 출간했다가 1987년 장편으로 개작. 1993년 부분 손질하여 다시금 출간함.

 

● 생각해 볼 문제

 

1. 민요섭의 행적은 조동팔의 진술에 의해서만 드러나 있다. 이를 바탕으로 하여, 민요섭의 종교적 갈등이 무엇이며, 왜 살해되었는지를 말해 보라.

→ 민요섭은 기존의 기독교적 신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의 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새로운 신에게 회의를 느끼고 다시 십자가 앞에서 참회의 눈물을 흘린다. 이것이 그를 따르던 조동팔의 분노를 사게 되어 그에게 살해된다.

 

 

2. 조동팔이 추구한 '새로운 신'에 대해서 말해 보자.

→ 인간에게 복종과 경배를 원하고 전지전능한 권위로 인간을 속박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의 지혜와 이성을 신뢰하며 인간의 죄를 용서하고 시인하는 새로운 신성(神性)

 

3. 조동팔의 마지막 발언 속에서, 민요섭이 기성의 기독교 세계로 회귀한 이유가 나타나 있는데, 무엇인지 써 보시오.

→ 민요섭은 악을 징벌하거나 선에 보상을 주지도 않는 새로운 신에 대하여 공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4. 아하스 페르츠는 '사랑과 은혜의 하느님'과 '예수'를 부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서술하시오.

→ 하느님과 그 아들의 뜻에도 불구하고 지상의 고통과 비참함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5. 민요섭은 예수를 '거짓 사람의 아들'로, 아하스 페르츠를 '진정한 사람의 아들'로 만들고 있다. 아하스 페르츠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말해 보자.

→ 하느님의 말씀에 구속당하지 않는, 인간적 고통과 시련을 통해 더욱 고귀해진 지상의 자유

 

● 더 읽을거리

 

이 소설은 민요섭이란 인물의 살인 사건을 담당한 남 경사의 사건의 추적 속에 아하스 페르츠를 주인공으로 하는 민요섭의 소설이 또 하나의 이야기로 담겨 있는 액자소설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민요섭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에서 기독교의 원리와 질서 체계에 회의하고 부정하는 반 기독교적인 모습을 아하스 페르츠를 통해 나타내고 있다.

 

태초에 야훼께서 천지를 창조하고 인간에게 낙원을 내려주셨을 때 선악과의 유혹을 거절할 수 있는 힘과 지혜도 주지 않고 원죄로 단죄하여 훗날 이브의 후손에까지 고통의 나날로써 대가를 치르게 하셨을까. 인간에게 악이 있다면 그것은 천지를 창조한 야훼의 책임이며 야훼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악이라면 전지전능의 신은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 우리의 신은 인간의 고통에 무감각하며 방관한 채로 언제일지 모르는 훗날의 막연한 구원만을 기다리라 하는 것인가. 또한 헐벗고 굶주린 인간으로서 지키기 어려운 구원의 조건 ― 하늘에 재물을 쌓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인격을 갖춘 사람만이 구원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야훼의 말씀은 또 무엇인가. 민요섭은 후세 기독교인에 의해 사탄의 아들로 알려진 아하스 페르츠를 인간의 정의와 지혜로 신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인간 세상을 구하려는 진정한 '사람의 아들'로서 그려내고 있으며, 이에 맞서 야훼의 아들인 예수를 독선의 상징으로 하여 거짓 '사람의 아들'로 부정한다. 이는 죄많은 인간을 말씀으로써 고통으로부터 구원하고 말씀으로서만 죄업으로부터 회개시키기 위한 예수를 일곱 번 만나 공박하는 부분에서 잘 나타나고 있고, 주인공 민요섭은 기존의 종교계에서 모순을 느끼고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 · 절대적 신의 존재를 찾아 헤맨다. 그가 꿈꾸는 완전무결한 '신'을 찾아 헤매는 과정들이 독자로 하여금 '신'과 '종교'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보도록 한다.

 

 

<사람의 아들>을 단순히 종교를 주제로 한 소설로만 보지는 않는다. 책이 쓰여진 1970년대의 시대상을 반영하여 사회적인 입장에서 본 기독교의 원리에 대한 부정은 사회에 편재해 있는 온갖 부정과 불평등에 대한 특권층의 합리화를 부정하기 위함이다. 이를 비판하고 새로운 해결책을 찾으려 한 민요섭과 조동팔의 시도가 끝내 실패한 까닭도 사회의 모순에 있다고 한다. 사회의 잘못에 무감각한 인간들과 어쩔 수 없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의 인식 속에서 민요섭은 지치게 되고 조동팔의 의지도 꺾이고 만 것이다. 이들이 세운 신은 인간들 스스로의 자체적인 구원을 희망한다. 신의 힘으로 인간 세계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논리와 인간의 정의를 통한 용서와 구원, 지극히 인간적인 문제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작가의 의도는 기독교의 모순을 통해 사회를 성찰하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두 젊은이의 시도를 실패하게 만든 원인으로 사회의 모순과 무감각을 들고 있고, 신은 우리의 영원한 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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