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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민요 해설]강강술래 - 미상(거제민요) -

by 휴리스틱31 2021.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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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 미상(거제민요) -

 

 

 

 

[이해와 감상]

 

중요 무형 문화재 제8호로, 해마다 음력 8월 한가윗날 밤에, 곱게 단장한 부녀자들이 수십 명씩 일정한 장소에 모여 손에 손을 잡고 원형으로 늘어서서, '강강술래'라는 후렴이 붙은 노래를 하며 빙글빙글 돌면서 뛰노는 놀이이다. 강강술래를 할 때는 목청이 좋은 여자 한 사람이 가운데 서서 앞소리, 선창(先唱)을 하면, 놀이를 하는 일동은 뒷소리, 합창(合唱)으로 후렴을 부르며 춤을 춘다.

 

유래는 임진왜란 때, 당시 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이 수병을 거느리고 왜군과 대치하고 있을 때, 적의 군사에게 해안을 경비하는 우리 군사의 수가 많게 보이려고 또 왜군이 우리 해안에 상륙하는 것을 감시하기 위하여, 특히 전쟁 지역 부근의 부녀자들로 하여금 수십 명씩 떼를 지어, 해안 지대 산에 올라, 곳곳에 모닥불을 피워 놓고 돌면서 '강강술래'라는 노래를 부르게 했다고 한다.

 

이후 더욱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며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강강술래'라는 말은 한자의 '强羌水越來(강한 적이 물을 건너온다.)'에서 온 것이 아니고, 우리말에서 유래한다. '강강'의 '강'은 주위 또는 원(圓)이라는 뜻의 전라도 방언이고, '술래'는 한자어 '순라(巡邏)'에서 온 말로서 '경계하라'는 뜻이니, 이는 '주위를 경계하라'는 당시의 구호인 것으로 생각된다. 싸움이 끝난 뒤 그곳 해안 부근의 부녀자들이 당시를 기념하기 위하여, 연례 행사로서 '강강술래' 노래를 부르며 놀던 것이 여성 민속 놀이가 되었다.

 

 

우리 인생은 유한하므로 즐겁게 노닐면서 살자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는데, 현세적이고 낙천적인 우리 민족의 세계관이 짧은 작품에 녹아져 표현되고 있다. 매우 현실적인 목적(왜군을 방어하기 위한 구호의 성격)에서 불려졌던 이 노래는 현실적 목적이 사라지고 문학적 형상화(사설의 가감으로 유희적 목적으로 의미가 변함)가 중심이 되면서 내용상의 세련미를 획득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동일하거나 유사한 구절이 두 번 반복된 후 다른 구절이 한 번 나오고, 다시 처음에 반복된 구절이 한 번 더 나오는 aaba형식의 운율이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운율은 우리 문학 작품에서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형식으로, 이러한 운율이 사용된 작품으로는 '청산별곡', '가시리' 등의 고전 시가와 '진달래꽃', '해' 등의 현대시가 있다.

 

[요점정리]

 

 작자 및 연대 : 미상

 성격 및 갈래 : 구비문학, 민요(거제), 선후창요, 유희요, 집단적, 낙천적, 현세적, 유흥적

 

 표현

* 반복과 변조를 통해 운율을 형성하고, 직설적인 표현으로 주제를 강조함.

* 전통적인 운율 형식인 aaba 구조와 4 · 4조 4음보의 율격을 취함.

* 선후창의 연창 형식(집단 놀이를 할 때 통일성과 놀이의 정연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함.)

 

 주제 : 인생의 덧없음, 유한한 인생을 즐기고 살기를 소망함.

 출전 : <한국민요집>

 

 

[참고사항]

 

◆ '강강술래'의 유래

'강강술래'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원시 시대의 부족이 달밤에 축제를 벌여 노래하고 춤추던 유습에서 비롯된 민속 놀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대 농경 시대의 파종과 수확 때의 공동 축제에서 시작된 놀이 형태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면서 점차 발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 놀이를 의병술로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친 후 더욱 세상에 널리 알려져, 당시의 격전지였던 전라도 남해안 일대에서 성행되어 온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 때의 충무공과 관련되어 전해오는 '강강술래'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명량 바다에서 왜적을 무찌를 때 충무공이 거느린 전선(戰船)은 불과 12척밖에 없었고, 이에 비해 왜선은 3백 50여 척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과부적으로 왜적과 맞서기 어렵게 되자 충무공은 아낙네들을 모아 군복을 입히고 수십 명씩 무리를 지어 산봉우리를 돌게하여, 멀리 떨어져 있는 왜적에게 마치 수만의 대군이 산봉우리를 내려오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의병술을 이용하여 왜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이때, 아낙네들이 산봉우리를 돌면서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었던 것이 바로 '강강술래'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 이야기는 위와 같지만 산봉우리를 돌지 않고 갯마을에서 아낙네들이 노래 부르며 춤을 추면서 왜적의 눈을 속였다고 한다. 그 후 현지 주민들은 충무공의 승전을 기리기 위해서, 이때 의병술로 쓰였던 춤을 놀이화하여 '강강술래'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 옥동 앞바다에서 싸움을 할 때 병력이 적은 충무공은 왜적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진도 둔절리 뒷산을 곡창(穀創)으로 의장(擬裝)하여 군량이 많음을 과시하는 한편, 아낙네들을 동원하여 각기 색색옷을 입혀 산 둘레를 돌게 하였다. 이를 끝없는 군사의 행렬로 착각한 왜적은 크게 놀라 달아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의장된 군사 행렬이 '강강술래'의 기원이라는 설이다.

 

* 임진왜란 때 남자는 모두 전쟁에 동원되어 전쟁터에 나갔고 마을에는 아낙네들만이 남았다. 충무공은 아낙네들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좌수영 동쪽에 있는 옥매산에 올려 보내 강강술래를  시켰다고 한다. 이 같은 의병술에 속아 왜적이 물러났다고 한다.

 

[교과서 학습활동]

 

1. 'aaba' 형식의 운율이 사용된 구절을 찾아 보자.

→ 달 떠온다 달 떠온다 우리 마을에 달 떠온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2. 이 작품처럼 aaba 운율을 사용한 고전 시가와 현대시 작품을 한 편씩 찾아  발표해 보자.

→ 고전 시가 작품 중에는 고려 속요인 '청산별곡'이 대표적이다. 특히 이 작품은 작은 aaba 형식이 다시 큰 aaba형식에 포함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살어리(a) 살어리랏다(a)  청산애(b)살어리랏다(a).  멀위랑 다래랑 먹고  청산애 살어리랏다.]

                                                          A                                       A                                    B                              A

그 외에도 '가시리' [가시리(a) / 가시리잇고(a) / 바리고(b) / 가시리잇고(a) // 날러는 / 엇디 살라 하고 / 바리고 / 가시리잇고]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일부 사설시조에서도 나타난다 ['창 내고쟈 창을 내고쟈, 이 내 가슴에 창 내고쟈',  '귀또리 져 귀또리 어여쁘다 져 귀또리' 등].

현대시 작품 중에는 홍사용의  '나는 왕이로소이다'[나는 왕이로소이다 / 나는 왕이로소이다 /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 나는 왕이로소이다],  박두진의 '해' [해야 솟아라 / 해야 솟아라 / 말갛게 씻은 얼굴 / 고운 해야 솟아라.] 등에서 발견된다. 그런가 하면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에서는 연 단위의 aaba 형식을 엿볼  수 있다. 즉 1, 2, 4연은 각 연의 종겨어미에서 보듯이 유사한 의미상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3연만이 이들 연과 다른 의미와 통사 구조를 지니고 있다.

 

3. 이 노래의 내용을 보면 달라지는 부분과 반복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노래 방식의 특징과 장점에 대해 말해 보자.

→ '강강술래'는 한 사람이 선창을 하면 모인 무리들이 '강강술래'라는 후렴구를 제창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노래부르기 방식은 집단적인 놀이를 할 때 통일성과 놀이의 정연성을 유지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또한 이러한 노래부르기 방식은 사설을 덧보태 내용을 늘여 표현하는 데에 유리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강강술래'란 부분은 후렴구로 계속 반복하면 되므로, 선창에 해당하는 부분은 계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식의 민요로는 '옹헤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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