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산문/고전설화 해설]거타지 설화 - 삼국유사 권2.-
거타지 설화 - 삼국유사 권2.-
내 용
아찬(신라 골품 제도에서의 여섯째 등급) 양패(良貝)는 진성여왕의 막내아들이었다. 당나라에 사신으로 갈 때 후백제의 해적들이 진도(津島)에서 길을 막는다는 말을 듣고 활쏘는 사람 50명을 선발하여 따르게 했다. 배가 곡도(지금의 백령도)에 이르자 풍랑이 크게 일어 10여 일 동안 묵게 되었다. 양패공은 이를 근심하여 사람을 시켜서 점을 치게 하니 "섬에 신지(神池)가 있으니, 거기에 제사를 지내면 좋겠습니다." 했다.
이에 못 위에 제물을 차려 놓으니 못물이 한 길이나 넘게 치솟았다. 그날 밤 꿈에 노인이 나타나서 공에게 말하기를 "활 잘 쏘는 사람 하나를 이 섬 안에 남겨 두면 순풍을 얻을 것이오." 했다. 양패공이 잠을 깨어 그 일을 좌우에게 묻기를 "누구를 남겨 두는 것이 좋겠소"하니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나무 조각 50개에 저희들의 이름을 각각 써서 물에 가라앉게 해서 제비를 뽑으시면 될 것입니다." 했다. 공은 이 말을 따랐다.
군사 거타지의 이름을 쓴 나무 조각이 물에 잠기었으므로 그 사람을 남겨 두자 갑자기 순풍이 불어 배는 지체없이 나아갔다. 거타지가 수심에 쌓여 섬 위에 서 있는데 갑자기 한 노인이 못 속에서 나오더니 말하기를, "나는 서해약(西海若)(서쪽 바다의 신)이오. 중 하나가 해가 뜰 때면 매양 하늘로부터 내려와 다라니(산스크리트어를 번역하지 않고 소리 그대로 외는 것으로, 그 자체에 무한한 뜻이 있어서 이것을 외는 사람은 한없는 기억력을 얻고, 모든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함.)의 주문을 외면서 이 못을 세 번 돈다오. 그러면 우리 부부와 자손들이 모두 물 위로 떠오르게 되는데, 그 때 중은 우리들의 간을 빼먹는다오. 결국 자손들이 거의 다 죽어 버리고, 이젠 우리 부부와 딸 하나만 남게 되었소. 내일 아침에도 또 반드시 올 것이니, 그 때 그대가 그 중을 활로 쏘아 죽여 주시오" 했다.
거타가 말하기를 "활 쏘는 것은 나의 장기이니 명령대로 하겠습니다." 했다. 노인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물 속으로 사라지고 거타지는 숨어서 기다렸다. 이튿날 동쪽에서 해가 뜨자 과연 중이 와서 전처럼 주문을 외면서 늙은 용의 간을 빼먹으려 했다. 이때 거타지가 활을 쏘아 중을 맞히니 중은 바로 늙은 여우로 변하여 땅에 쓰러져 죽었다. 이에 노인이 나와서 치사하기를 "공의 은덕으로 내 생명을 보전하게 되었으니 내 딸을 아내로 삼기 바라오." 하니, 거타가 말하기를 "따님을 나에게 주시고 저버리지 않는다면 참으로 원하던 바입니다." 했다.
노인은 그 딸을 한 가지 꽃으로 변하게 하여 거타의 품 속에 넣어 주고 두 용에게 명하여 거타를 모시고 사신의 배를 따라 그 배를 호위하여 당나라에 들어가도록 했다. 당나라 사람은 신라의 배를 용 두 마리가 호위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사실을 황제에게 말했다. 이에 황제가 말하기를 "신라의 사신은 반드시 비상한 사람일 것이다."했다. 이에 잔치를 베풀어 신라 사신을 당나라 여러 신하들의 윗자리에 앉히고 금과 비단을 후하게 주었다. 본국으로 돌아오자 거타는 꽃가지를 꺼내어 여자로 변하게 하여 함께 살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의 진성여왕(眞聖女王) 거타지조(居陀知條) -
작품 해설
이 설화는 용의 구출을 모티프로 한다는 점에서, <고려사> 세계(世系)에 보이는 작제건(作帝建)설화와 같은 계통이다. 작제건 설화에서 용 구출의 모티프는 항해 도중 풍랑이 사나와져서 점을 치니 고려사람이 배에서 내려야 한다고 하여, 작제건이 섬에 내린다. 섬에 내린 작제건에게 서해 용왕이라는 노인이 나타나 부처의 모습을 한 자를 퇴치해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노인을 해하려는 부처를 활로 쏘아 죽이니 그는 늙은 여우로 변하였다. 그뒤 용왕의 딸과 작제건이 결혼하여 함께 잘 살았다는 내용으로 거타지 설화와 매우 비슷하다.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설화 유형 분류에 의거하면 이 설화는 영웅에 의한 '악마(혹은 괴물)퇴치 설화'에 속하며, 이 계통으로 서구에서 대표적인 설화로 꼽히는 페르세우스(Perseus)설화와 비교가 가능하다. 한편 거타지가 요괴의 제물이 될 용녀를 구출하여 결혼한다는 점은 인신공희(人身供犧)설화 계통과도 관계가 있다. 용녀가 꽃으로 화하여 거타지의 소매 속에 들어있다가 어여쁜 처녀로 변하는 점은 인신공희와 아울러 고전소설 <심청전>에 심청이 인당수 물 속으로 뛰어 들어 희생되는 연꽃 속에서 나와 황후로 환생하는 형태로 전승되는 이야기이다.
이 설화와 비슷한 것으로는 [용비어천가]에도 있고, 제주도 서사 무가 [군웅본풀이]도 같은 유형이다. 또 이 설화는 인신공희(人身供犧)가 주 내용인데, 이것이 훗날 [심청전]의 근원설화(根源說話)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 설화는 거타지라는 초인적인 영웅의 이야기요, 심청전은 운명에 다소곳이 순종하는 여인이라는 점은 다르다.
정리하기
◆ 성격 : 설화(영웅적, 전기적)
◆ 제재 : 거타지의 요괴 퇴치
◆ 주제 : 명궁 거타지의 요괴 퇴치와 혼인 성취
◆ 의의 : 인신 공희와 악마 퇴치 모티프를 차용하여 후대 설화와 소설에 영향을 준 작품임.
◆ 출전 : <삼국유사> 권2
◆ 참고 : '작제건 설화' → 작제건은 왕건의 할아버지다. 왕건 설화에는 작제건을 비롯하여 왕건의 바로 윗대 조상들에 대한 신비한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이것을 '육조 신화'라고도 한다. 왕건의 혈통에 신성성을 부여하고 고려 창업은 하늘의 뜻임을 설득하는 것이다. '작제건 설화'는 작제건의 탄생에 관련된 매몽(買夢) 관계와 용녀(龍女)를 취하여 아내로 맞이한 결연 설화로 구분된다. 이 설화는 고대설화를 이용하여 계통이 약한 고려 왕계의 우수성을 내보이려고 신성화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매몽 관계나 용신 관계 설화가 우리 민족의식 속에 깊이 뿌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제건 설화'의 내용은 작제건이 아버지를 찾아 당나라 상선을 탔는데, 풍랑을 만나 점을 치니 고려인을 섬에 내려 놓으라 해서 작제건이 섬에 남아 서해 용왕의 부탁으로 여우를 활로 쏘아 죽이고 공을 세워 용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