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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해설]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치환 -

휴리스틱31 2022. 1. 7.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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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유 치 환 -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겨울의 숲으로 오니

그렇게 요조(窈窕)ㅎ던 빛깔도

설레이던 몸짓들도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奇術師)의 모자.

앙상한 공허만이

먼 한천(寒天) 끝까지 잇닿아 있어

차라리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에

나의 뜨거운 노래는

여기 언 땅에 깊이 묻으리.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마침 비굴한 목숨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에

무쇠 연자를 돌릴지라도

나의 노래는

비도(非道)를 치레하기에 앗기지는 않으리라.

 

들어 보라.

이 거짓의 거리에서 숨결쳐 오는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여기 진실은 고독히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

 

                 - <동아일보(1960)>-

 

 

해                설

 

[ 개관 정리 ]

 성격 : 저항적, 의지적, 현실 참여적

 표현 : 결연한 남성적 목소리

              의지적 태도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고독은 욕되지 않으다. → 부정과 타협하지 않아서 고독한 것이기에 결코 부끄럽지 않다.

*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 → 부정에 항거하는 고독을 견디는 이는 영광스럽다.(신념을 지키는 이의 긍지)

* 겨울 → 희망을 잃고 얼어붙은 시대(자유당 말기)

* 요조ㅎ던 → 화려하던

* 설레이던 몸짓들도 → 마음을 설레게 하고 기대하게 했던 모든 감격적인 일들도

* 깡그리 거두어 간 기술사의 모자

      → 아름답고 활기차고 감동적인 것들이 마술사의 모자에서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 앙상한 공허 → 절망

 

 

* 뜨거운 노래 → 시상이 응결된 핵심적인 시구

                         부정부패로 가득찬 사회에 대한 시인의 분노

* 언 땅에 깊이 묻으리. → 절망의 땅에서 미래를 기약하며 저항해 나갈 것이다.

*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 언 땅에 깊이 묻으리.

      → 정말로 진실과 정의가 죽거나 숨어야 하는 이 시대에는 뜨거운 정의의 노래는 여기 절망의 땅에 깊이 묻으리라.

* 아아,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 /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

      → 생명보다 귀하고 높은 나의 이름과 나의 노래(시)

* 마침내 비굴한 목숨은 ~ 앗기지는 않으리

      → 비록 눈을 도려내고 감옥에서 무쇠로 된 연자방아를 돌릴지라도 나의 진실한 노래는 도리에 어긋난 일을 치장하는데 빼앗기지 않으리라.

* 거짓의 거리 →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찬 거리

* 뭇 구호와 빈 찬양의 헛한 울림을

     → 허위에 가득찬 아부와 찬양의 헛소리를

* 모두가 영혼을 팔아 예복을 입고 / 소리 맞춰 목청 뽑을지라도

      → 신념을 팔아 벼슬을 하고 권세에 아첨하는 소리를 높일지라도

* 땅에 묻는다.

      →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화자의 궁극적 태도가 결정됨.

           자칫 현실에 대한 도피와 포기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으나, 지금은 겨울이요, 진실과 정의가 죽는 계절이라 했기에 화자는 지금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기약하고 있고, 바로 그런 의미가 담긴 행동으로 볼 수 있다.

 

 제재 : 부정한 사회 현실

 주제 사회 정의의 고취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지조와 신념을 지키는 이의 긍지

◆ 2연 : 부정한 사회의 모습

◆ 3연 : 뜨거운 의지

◆ 4연 : 지조와 정의에 대한 결의

◆ 5연 : 현실의 고발

◆ 6연 : 땅에 묻는 뜨거운 노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1960년 3 · 15 부정선거를 통해 영구 집권을 획책하던 이승만 독재 정권 말기에 씌어진 작품으로, 청마의 투철한 현실 인식과 함께 시인에게 부여된 대역사적 · 대사회적 책무를 제시하고 있다.  3 · 15 부정 선거란 당시의 집권당이었던 자유당이 집권 연장을 위하여 경찰과 공무원, 심지어는 조직 폭력배까지 동원하여 이승만과 이기붕을 각각 대통령 · 부통령으로 당선시켰으나, 결국 4 · 19 혁명을 유발했던 우리 선거사상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부정이 자행된 선거였다. 이와 같은 자유당 말기의 어지러운 세태 속에서 청마의 시는 그간의 사유와 관념을 버리고 현실 문제와 직접적으로 부딪히기 시작하였다. 그러한 현실 인식이 바로 이 작품의 저항적 색채와 자기 다짐의 강건한 어조를 통해 나타난 것이다.

 

 

먼저 이 시의 핵심적 이미지인 '뜨거운 노래'는 1 · 3연에서 제시된 것처럼 '욕되지 않은 고독을 / 견디는 이의 값진 영광'이며,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으로, 그것은 다름 아닌 부정한 사회에 대한 시인의 분노라 할 수 있다. 그것이 다시 '나의 이름은 나의 노래'라는 명제와 결합됨으로써 화자는 지조와 정의에 대한 뜨거운 결의를 불태우는 한편, 자신의 이름에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시인이 되겠다는 굳은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뜨거운 노래는 땅에 묻는다>라는 시제(詩題)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시인의 다짐일 뿐 아니라,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정의와 진실의 시로써 '겨울'로 상징된 암울한 현실의 '땅'을 녹여 버리겠다는 결의로 볼 수 있다.

 

1연에서 화자는 지조를 지키고 사는 자신의 긍지를 표현하고 있다. 부정과 불의에 협력하지 않음으로써 권력과 부귀, 영예로부터 멀어진 이의 고독은 욕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값진 영광이라고 인식하는 화자에게서 우리는 지조 높은 선비의 곧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2연에서는 부정한 현실을 제시하고 있다. '요조턴 빛깔'과 '설레이던 몸짓'은 일체의 희망을 뜻하며, 그것들이 사라져 버린 '겨울의 숲'은 자유당 정권하의 암담한 현실 상황을 상징한다. 일제의 강점과 좌우 이념의 대립으로 인한 혼란, 동족 상잔의 비극과 남북 분단 등 노도와 같이 밀려온 엄청난 시련의 역사를 겪으면서도 우리 민족은 잠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왔음을 상기하는 화자는 '먼 한천 끝까지 잇닿아 있'는, 이 '앙상한 공허'의 현실 상황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응시하기에 이른다. 그리고는 불의와 부정이 횡행하는 사회일수록 지조를 지키는 것이 더욱 영광스럽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화자는 그 깨달음을 '마음 고독한 자의 거닐기에 좋아라.'라는 구절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3연은 주제연으로서 현실 상황을 '진실로 참되고 옳음이 / 죽어지고 숨어야 하는 이 계절'이라는 구체적 표현을 통해 제시하는 한편, 그 같은 현실에 '뜨거운 노래'를 하나의 밀알처럼 묻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4연은 3연의 부연으로서, '뜨거운 노래'의 의미를 '목숨보다 귀하고 높은 것'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5연에서는 어떠한 고문에도 꺾이지 않을 '뜨거운 노래'를 통해 자신의 지조와 정의에 대한 결의를 다시금 다짐하고 있다. 정신보다 약한 육신은 '눈을 에이고, 땅바닥 옥엔 / 무쇠 연자를 돌리'는 고통에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지라도, 올곧은 정신에서 탄생하는 자신의 진실된 시는 일체의 비도덕적인 것을 장식하는 데에는 빼앗기지 않을 것임을 말함으로써 정직하지 못한 권력에 야합하거나 그것의 시녀로 추락하지는 않겠다는 맵찬 각오를 보여주고 있다.

 

6연에서는 '거짓의 거리'라는 현실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온갖 비리를 고발하고 있다. 그것은 자유당을 지지하는 관제 데모대의 '뭇 구호'이며, 지조를 버리고 권력에 매수된 자들이 아첨하는 '빈 찬양'으로, 화자는 이것을 영혼을 팔아치운 자들의 '헛한 울림'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7연은 3연의 주제행을 반복한 것으로, 언 땅을 녹여 만물을 소생시키는 빗물처럼 화자의 노래도 동토(凍土)의 현실 속으로 스며들어 소망스런 세상을 이루겠다는 결의를 불태우고 있다. 이것은 청마 혼자만의 다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역사를 위한 시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많은 문학인들에게 장엄한 목소리로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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