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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수필 해설]나무의 위의(威儀) -이양하-

휴리스틱31 2022. 4. 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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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위의(威儀)                        -이양하-

 

이해와 감상

 

생활 속에서 흔히 대할 수 있는 ‘나무’라는 평범한 소재를 통해 자신의 삶의 태도를 밝힌 수필이다. 수필의 제재는 나무이지만, 궁극적으로 작자의 강조하고자 하는 주제는 나무의 미덕을 인간이 배워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의 주제는 지극히 인생론적인 설교에 가깝다.

개쭝나무에서 군자의 풍모를 엿보고, 히말라야 으르나무에서 겸허하게 인내하며 사는 삶의 모습을 발견하고, 심신의 조용함과 평화로움을 주는 교정의 마로니에, 모든 것을 수용해 줄 듯한 성균관의 은행나무, 이 모든 나무에서 작자는 너그럽고 거룩한 품성을 지닌 나무의 위의를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러한 나무를 벗삼아 남은 삶을 살고 싶은 작자의 소박한 소망을 말한다.

제재에 대한 작자의 깊은 주관적 사색적 통찰을 알 수 있다. 작자는 자연 친화적인 탈속적 삶을 소망하며 고결하게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그 소재가 생활의 경험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삶의 과정에서 깊은 사색을 통해 얻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더 주관적인 판단에 의거하고 있다. ‘나무’라는 평범한 소재가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나무’에서 느껴지는 대인 군자와도 같은 위의가 강조된다. 소박하고 인자한 나무의 미덕을 따르고자 하는 작자의 생각이 작품의 결말에 집약되고 있는 것이다.

이 수필은 작자의 오랜 인생체험과 사물을 보는 관조의 눈을 통해 우러나온 깊은 사색이 바탕이 되어 있다. 문학이 쾌락보다는 독자에게 어떤 교훈을 주려는 의도로 창작된다는 공리주의(功利主義)는 아니지만, 이 수필은 수필이 주는 감동과 함께 교훈성을 내포하고 있다. 나무의 덕성을 찬양하면서 우리 인간도 그것을 배울 것을 은근히 권하고 있는 교훈적 수필의 한 예이다.

 

 

요점 정리

 

 성격 : 경수필. 교훈적, 사색적, 자연친화적, 예찬적, 낭만적 수필

 표현 : 부드러우면서도 길이가 비교적 긴 문장 구사

 주제 : 나무의 위의(威儀)

 출전 : <나무>(1964)

 

작품 읽기

 

첫여름은 무엇보다 볕이 아름답다. 이웃집 뜰에 핀 장미가 곱고, 길 가다 문득 마주치는 담 너머 늘어진 들장미들이 소담하고 아름답다. 볕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고, 장미의 계절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첫여름은 무엇보다도 나무의 계절이라 하겠다. 신록(新綠)이 이미 갔으나 싱싱한 가지가지에 충실한 잎새를 갖추고 한여름의 영화(榮華)를 누릴 모든 준비가 완전히 되어 있기 때문이다.

* 나무의 계절

나무가 주는 기쁨과 위안이란 결코 낮춰 생각할 것이 아니다. 살구, 복숭아, 매화, 진달래, 개나리, 장미, 모란, 모두 아롱다롱 울긋불긋 곱고 다채로워 사람의 눈을 끌고 마음을 빼내는 데가 있으나, 초록 일색의 나무가 갖는 은근하고 흐뭇하고 건전한 풍취(風趣)에 비하면 어딘지 얇고 엷고 야한 데가 있다. 상나무, 사철나무, , 도토리, 버들, 솔, 잣, , 느티, …… 우리 동리에서 볼 수 있는 나무로서 앞서 말한 꽃에 비하여 손색 있을 것이 없다. 또, 모든 나무는 각기 고유한 모습과 풍취를 가진 것이어서 그 우열(優劣)을 가리고 청탁(淸濁)을 말할 바가 되지 못한다.

                                                                                                                                                     * 나무가 주는 기쁨과 위안

 

 

그러나 나는 내 가까운 신변에, 이 때가 되면 오래 보지 못한 친구들 찾듯이 돌아다니며 그 아름다운 모습을 특히 찾아보고 즐기는 몇 그루의 나무를 가졌다. 가장 가까이 있는 친구는 내 집의 한 포기 모란이 활짝 피었다 지는 무렵, 온 남산을 가리고 하늘 한 귀퉁이를 차지하게 되는 앞집 개쭝나무다. 참말로 잘 생긴 나무다. 훤칠하니 높다란 키에 부채살 모양으로 죽죽 뻗은 미끈한 가지가지에 체통치고는 좀 자잘한 잎새를 수없이 달았다. 보아서 조금도 구김새가 없고 거칠매가 없다. 어느 모로 보나 대인군자(大人君子) 풍모다. 바람 자면 고요히 깊은 명상에 잠기고, 잔바람 일면 명상에서 깨어 잎새 나붓거리며 끊임없이 미소짓고, 바람이 조금 세차면 가지가지를 너울거리며 온 나무가 춤이 된다.

아침 산보(散步) 오고가는 길에 매양 볼 수 있는 친구는 길가 두 집에 이웃하여 나란히 섰는 두 그루의 히말라야 으르나무다. 허구한 세월 히말라야 높은 준령의 거센 바람에 인종(忍從)해 온 먼 조상의 유전인지, 가지가 위로 뻗지 않고 아래로 숙였다. 검고 줄기찬 줄기와 가지에는 어울리지 않게 보드랍고 가느다란 잎새가 소복소복 떨기를 지어 달렸다. 어떻게 보면 가지마다 고양이가 한두 마리씩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 같고, 가지 끝마다 싹터 나오는 새 잎새는 고양이 발톱 같다. 심지어 몇 해나 되는 나무인지 아직 두서너 길밖에 되지 못하나 활짝 늘어져 퍼진 가지들의 너그러운 품이 이미 정정한 교목(喬木) 풍도(風度)를 갖추고 있다.

다음으로 내가 일상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친구는, 우리 교정(校庭) 한가운데 섰는 한 그루의 마로니에다. 가까운 주위의 자자부레한 나무들에 가리워 있어 그 전모를 한눈에 볼 수 없는 것이 유감이나, 나무로서는 역시 잘 된 나무다. 잎새는 밤나무보다 줄기 밑중에서부터 시작하여 총총히 뻗은 데다 나무 잎새가 또 그 가지가지 밑에서부터 끝까지 다닥다닥 붙어 있어, 이 나무의 속으론 햇빛도 좀체 뚫지 못하고 바람도 웬만해서는 흔들지 못하는 깊고 짙고 고요한 그늘을 가졌다. 꿈의 나무라고도 할까. 아침, 저녁, 대낮, 한밤, 꿈 안 꾸는 순간이 없다. 무슨 꿈을 꿀까. 무척 다채로운 꿈일 것으로 생각되나, 그 깊은 꿈은 얼른 사람의 마음으로는 헤아릴 길이 없다. 아무튼, 피와 살과 냄새로 된 사람의 어지러운 꿈이 아닐 것은 분명하고, 그 가운데 평화(平和)와 정일(靜逸)과 기쁨이 깃들였을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걸엇길 한 오 분, 십 분 걷는 수고를 아끼지 않으면 성균관(成均館) 안에 온 뜰을 차지하고 구름같이 솟아 퍼진 커다란 은행나무를 볼 수 있다. 한말(韓末)의 우리 겨레의 설움을 보았을 뿐 아니라 임진왜란(壬辰倭亂)도 겪고 좀더 젊어서는 국태 민안(國泰民安)한 시절, 나라의 준총(俊聰)이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명륜당(明倫堂)에 모여 글 읽던 것을 본 기억도 가진 나무다. 이젠 하도 늙어 몇 아름 되는 줄기 한 구석에도 동혈(洞穴)이 생겨 볼상 없이 시멘트로 메워져 있지만, 원기는 여전히 왕성하여 묵은 잎새 거센 가지에 웬만한 바람이 불어서는 끄떡도 하지 않는 품이, 쓴맛 단맛 다 보고, 청탁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거룩한 성자의 모습이다.

                                                                                                                                                            * 내가 가까이 하는 나무들

그렇다. 이러한 나무들에게는 한때의 요염(妖艶)을 자랑하는 꽃이 바랄 수 없는 높고 깊은 품위가 있고, 우리 사람에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점잖고 너그럽고 거룩하기까지 한, 범할 수 없는 위의(威儀)가 있다. 하찮은 명리(名利)가 가슴을 죄고 세상 훼예 포폄(毁譽褒貶)에 마음 흔들리는 우리 사람은 이러한 나무 옆에 서면 참말 비소(卑小)하고 보잘것 없는 존재이다. 이제 장미의 계절도 가고 연순(年順)의 노령(老齡)도 머지 않았으니, 많지 않은 여년을 한 뜰에 이러한 나무를 모아 놓고 벗삼아 지낼 수 있다면, 거기서 더 큰 정복(淨福)은 없을 것 같다.

                                                                                                                                                                               * 나무의 위의

 

#위의(威儀) : 위엄이 있는 모습, 거동

# 풍취(風趣) : 멋스럽고 훌륭한 모습

# 섶 : 잎나무. 풋나무, 싸리 등의 잡목

# 홰 : 콩과에 속하는 낙엽 교목

# 청탁(淸濁) : 맑고 흐림. 여기서는 좋고 싫음

# 모든 나무는 - 바가 되지 못한다. : 나무마다 각자 가지고 있는 멋은 그 고유의 모습, 특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므로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나눌 수 없으며 좋고 싫고를 말할 수 없다.

# 이 때가 되면 - 나무를 가졌다. : 오래 보지 못한 나무의 풍모에서 기쁨과 위안을 맛본다는 뜻이다.

# 체통(體統) : 지체나 신분에 알맞은 면모, 체면

# 대인 군자(大人君子) : 말과 행동이 옳고 점잖은 사람. 덕이 높은 사람

# 풍모(風貌) : 풍채와 모습. 기풍과 모습

# 명상(瞑想) : 고요히 눈을 감고 생각함

# 바람 자면 - 춤이 된다.: 나무의 모습을 의인법, 열거법, 점층법을 사용하여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며 사는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 나붓거리며 : 얇고 가벼운 것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 인종(忍從) : 참고 복종하여 따르는 일

# 교목(喬木) : 전나무, 소나무처럼 줄기가 곧고 굵으며, 높이 자라고 비교적 위쪽에서 가지가 퍼지는 나무

# 풍도(風度) : 빛나고 드러나 보이는 사람의 겉모양과 태도

# 정정한 교목(喬木)의 풍도(風度) : 곧게 우뚝 솟아 있는 나무의 모습을 통해 작자는 옛날 선비의 삶의 자세와 태도를 연상한다.

# 정일 : 조용하고 심신이 평안함.

# 국태민안 :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들의 삶이 평안함.

# 청운(靑雲) : '푸른 빛을 띤 구름'이라는 뜻이지만, '높은 명예나 벼슬, 입신출세'를 비유하는 말로 쓰임.

# 동혈 : 깊고 넓은 굴의 구멍

# 쓴맛 단맛 다 보고, 청탁을 가리지 않고 : 나무의 고매하고 의연한 모습을 의인화하여 표현한 구절이다.

# 명리 : 명예와 이익.

# 훼예 포폄 : 헐뜯고 칭찬하고 나무라는 말.

# 비소(卑小) : 보잘 것 없이 작음.

# 하찮은 명리가~보잘 것 없는 존재다 : 나무의 위의와 인간의 모습을 대조해, 인간의 왜소하고 비루하고 추악한 측면을 나무의 위대성과 대비시켜 놓고 있다.

# 연순 : 나이들면서 자연스럽게 생김.

# 정복(淨福) : 썩 조촐한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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