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수필 해설]맑은 기쁨 -법정-
맑은 기쁨 -법정-
이해와 감상
이 글에서 글쓴이는 산골 암자에서 자연과 이웃하며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고 있다. 이런 소박한 생활을 통해 느끼는 행복과 기쁨을 아름다운 우리말을 통해 서술하고 있으며, 고전 시가 '정읍사'와 동요 '옹달샘'을 인용하여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이 글의 처음과 끝 부분에는 달을 보며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을 완상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글쓴이는 이런 구성을 통해 글을 통일성 있게 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다양한 표현을 통해 드러난 글쓴이의 아름답고 맑은 감성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성찰하도록 하고 있다.
요점 정리
◆ 갈래 및 성격 : 경수필, -서정적-
◆ 특성
* 고전 시가와 동요를 인용하여 감정을 집약적으로 표현함.
* 아름다운 우리말로 서정적인 분위기를 조성함.
◆ 주제 :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면서 느끼는 행복
◆ 출전 : <산방한담>(1983)
생각해 보기
◆ 법정에게 있어 '출가'의 의미
법정은 '출가'를 문명에서 나와서 자연으로 다가가는 일로 규정하기도 했다.
"출가는 문명의 도구들을 뒤로하고 자연으로 다가갑니다. 인위적인 문명의 감옥에서 나와, 인간이 기댈 유일한 품인 자연 속으로 들어갑니다. 부처님은 숲 속에서 수행했고 숲 속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며 숲 속에서 가르침을 폈습니다. 파괴되지 않고 오염되지 않은 자연 안에서만 인간은 본래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 법정의 실존적 동기와 사회 참여
법정은 1970년대 군사 독재 시절 반독재 민주 회복 투쟁의 선봉에 섰던 월간지 "씨알의 소리"의 편집 위원이 된 적도 있었고, 당시의 대표적 반정부 인사였던 함석헌과 장준하를 가까이하면서 민주수호국민협의회의 유신 철폐 개헌 서명 운동에 참여했지만,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을 받은 후 산으로 귀향했다.
내심의 소리와 세상 소리 사이에서 갈등하면서 결국 전자를 선택하게 된 경위는 그가 귀향한 직후 쓴 글 '숲에서 배운다'에 잘 나타나 있다. <중략> 법정에게 시정이나 광장은 소음의 장소이고 때가 묻는 곳이지만 숲이나 뜰은 그 때를 씻어 주는 곳, 질서와 휴식이 그리고 고요와 화평이 있는 곳이고, 생명의 숨통이 트이는 곳이며, 저 밑바닥의 소리들이 들려오는 곳이다. 곧 본래적 자아의 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자연의 소리와 본래적 자아의 소리가 세상의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않을 때, 법정은 일단 전자를 선택했다.
작품 읽기
오랜만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니 그저 고맙고 기쁘다. 뒤 숲에서 소쩍새가 운다. 산은 한층 이슥해진다.(서정적인 분위기) 이런 때 나는 홀로 있음에 맑은 기쁨을 누린다.(작은 일에도 기뻐하는 글쓴이의 심성)
억지소리 같지만, 홀로이기 때문에 많은 이웃들과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여기서 '이웃들'이란 자연의 많은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사람들 사이에 있을 때는 잘 몰랐던 자연의 여러 요소를 혼자 있을 때 잘 느낄 수 있다는 역설적인 의미이다.) 어디 사람만이 이웃이랴. 청청한 나무들과 선한 새와 짐승들, 그리고 어디에도 집착함이 없는 맑은 바람과 저 아래 골짝에서 울려오는 시냇물 소리가 정다운 내 이웃일 수 있다. 나는 이런 이웃들로 인해 살아가는 기쁨과 고마움을 누릴 때가 많다.(자연의 여러 요소에게도 열린 마음을 가진 자연 친화의 정신)
*기쁨과 고마움을 누리는 자연 속의 삶
물론 사람에 따라 살아가는 기쁨도 여러 가지일 것이다. 몇 억 불의 수익으로 삶의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이삼백 장의 연탄을 들여놓고도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있다.(행복은 상대적인 감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행복은 경제적 풍요나 사회적 지위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자신에 대한 만족감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골 우체국 집배원으로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한 나라의 통치 권력을 한 손에 쥐고 흔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우리처럼 산골에 묻혀서 사는 덜된 사람들(속세를 떠난 승려들을 낮춰 부르는 말)은 둘레의 지극히 사소한 일들 속에서 삶의 잔잔한 기쁨을 찾는 수가 있다. 이를 테면, 고무줄로 된 허리띠가 탄력을 잃고 느슨해져서 자꾸만 바지가 흘러내리는 바람에 성가셔 하다가, 어느 날 새 허리띠로 갈아 낀 다음의 그 든든함. 이것도 홀가분한 기쁨일 수 있다.(사소한 일상에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음.)
*사소한 것에도 만족을 느끼는 산속의 삶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군불을 지피러 부엌에 들어가려다가 새 새끼가 한 마리 땅에 떨어져 오들오들 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솜털이 보얀 박새 새끼였다. 새집에서 굴러 떨어졌거나 아니면 너무 서둘러 나는 연습을 하다가 떨어졌는지도 모른다. 안쓰러워 손으로 만지려고 하니 입을 벌려 짹짹거리면서 비실비실 피했다. 그 소리를 듣고 어느새 두 마리 어미 새가 가까이 날아와 짹짹거리면서 나를 경계했다.
군불을 지피고 나서도 어린 새의 일에 마음이 쓰여 한쪽에 돌아서서 유심히 살펴보았다. 어미새가 이따금씩 날벌레를 물어와 새끼에게 먹이는데, 바로 먹이지 않고 몇 차례씩 입에 넣었다 빼었다 하면서 조금씩 나는 연습을 시켰다. 두 마리 새가 번갈아 가면서 꼬박 이틀을 이렇게 하더니 마침내 비상, 새끼 새가 제힘으로 날아가게 되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나도 어깨를 활짝 펴고 숨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새들의 지극한 모성애에 소리 없는 박수를 보내 주었다.(동물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글쓴이의 모습)
* 아기 새의 비상과 어미 새의 모성애에 대한 감탄
요즘에는 토끼가 대숲과 모란 밭 사이를 자주 뛰어다닌다. 토끼를 보면 '옹달샘' 노래가 내 귓전에 아직도 들린다. 재작년 어느 여름날 아침, 큰 절에서 수련 중인 순천 여상 학생들이 올라와 아침 이슬 같은 영롱한 목소리로 합창을 하고 간 노래가 이 '옹달샘'이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 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 비비고 일어나 /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 먹고 가지요.
그렇다. 이 노래처럼 샘으로 물 마시러 오는 토끼를 볼 때가 더러 있다. 세수도 하는지 물만 먹고 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무심한 짐승들과 같은 산속에서 산다는 것은 조촐한 복이 아닐 수 없다.(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는 동물들을 보면서 자여과 하나 되어 사는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글쓴이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산속 동물들과 어우러져서 살아가는 기쁨
지금 밖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처마 끝에 외등처럼 걸려 있다 잠든 숲에 시냇물 소리만 깨어 있다. 그것은 쉬지 않고 흐르는 세월의 소리이다.(자연의 영원함 속에서 세월의 흐름을 상기함.)
달하 노피곰 도다샤 /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정읍사'의 첫 부분을 인용하여 여운을 남기고 있다. 글쓴이의 감성이 서정적인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 집약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을 비추는 달 관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