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시가/한시 해설]안악성을 지나다 ~ (過安樂見) - 김병연-
안악성을 지나다 ~ (過安樂見) - 김병연-
[ 이해와 감상 ]
안악성에서 안락하지 않게 밤을 지냈음을 풍자했다. 관서 지방에 대해 작자가 유독 비판적인 것은 홍경래의 난으로 가문이 몰락한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의 후반부에는 가난한 삶 속에서도 선비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려는 작자의 풍모가 엿보인다.
이 작품은 본래 세도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난 작자가 홍경래의 난으로 인해 가문의 몰락을 겪게 된 비운의 삶과, 그로 인해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사상적 배경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양반들의 허위의식에 대한 비판이나 계급 차별적인 봉건 사회 질서에 대한 반항 의식을 통해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표출하고 있다. 또한 야박한 인심과 세태에 대한 풍자적 고발의 목소리가 은근하면서도 날카롭게 표출되어 있다.
[ 정리 ]
◆ 형식 : 한시(7언 율시)
◆ 성격 : 풍자적, 비판적, 해학적
◆ 제목 : 제목의 '안악(안락)'이라는 말은, 시의 내용으로 보아 전혀 '안락'하지 않은 화자의 상황, 즉 야박한 현실을 반어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표현으로 볼 수 있음.
◆ 구성
* 수련 → 관서 지방 양반들의 허세 풍자
* 함련 → 마을의 야박한 인심과 풍속 풍자
* 경련 → 배고픔과 추위로 인한 고통
* 미련 → 비참한 처지를 해학적으로 수용
◆ 주제 : 양반들의 허세와 관서 지방의 야박한 인심 풍자
[ 교과서 학습 활동 ]
1. 작자의 생애를 알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안악성을 지나다 눈에 거슬린 것을 보고'에서 화자가 관서 지방의 인심과 세태를 비판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발표해 보자.
→ 김병연은 본래 세도가 집안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나, 다섯 살 때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에 선천방어사로 있던 조부 김익순이 반군에 투항함으로써 그의 운명은 바뀌게 된다. 홍경래의 난은 조선 순조 11년(1811) 신미년에 서북인을 관직에 등용하지 않는 조정의 정책과 탐관오리들의 행악에 반발하여 홍경래가 중심이 되어 평안도 용강에서 일으킨 반란을 말한다. 이때 김익순은 선천 방어사였는데,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김익순은 사형을 당하였고, 그의 가문은 폐족의 벌을 받았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고 자란 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년(순조 32), 백일장 대회에서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이라는 시제로 글을 써서 장원을 하였다. 나중에 어머니에게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김병연은, 천륜을 어기고 조부를 두 번 죽인 죄인이라고 스스로를 단죄하면서,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할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삿갓을 쓰고 방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이와 같은 그의 생애를 볼 때, 그가 관서지방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기는 어려웠으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단하고 배고픈 나그네의 어려움은 언제 어디서나 비슷하겠지만, 이러한 사정이 그로 하여금 관서 지방 인심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게 하였다고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를 이처럼 개인적인 가족사로 인한 감정의 반영으로만 볼 수는 없다. 그의 불평과 반항은 처음에는 계급적 몰락과 관련한 개인적인 입장에서 시작되었으나, 폭넓은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관과 사회관에 변화가 일어나 나중에는 봉건 질서와 제도를 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였으며, 빈부의 차가 심한 사회적 불합리를 저주하고 양반 귀족들의 죄악과 불의, 거만, 허식을 비판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