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해설]폭포 - 김수영 -
폭 포
- 김수영 -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楕)와 안정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평화에의 증언>(1957)-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주지적, 관념적, 역동적, 상징적, 참여적
◆ 표현 : 서술적인 산문의 리듬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 → 폭포가 수직으로 낙하하는 정경을 묘사.
낙하에서 오는 강렬하고 역동적인 힘이 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고 있음.
*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 폭포의 구속되지 않은 강렬한 힘을 묘사함.
무엇을 향하거나 무엇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 자체가 폭포가 갖는 무한한 자유의 상징으로 암시
* 고매한 정신 → 폭포가 추구하는 정신으로, '저항과 부정 정신'을 의미함.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는 지속성,
밤이 되면 곧은 소리를 내고 그것이 또 곧은 소리를 부르는 선구자적 정신,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는 깨어있는 정신,
나타와 안정을 거부하는 긴장되고 깨어있는 정신
* 금잔화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 → 시대적인 제약의 상징(어둡고 괴로운 현실상황)
고독하고 적막한 한 개인의 실존적 상황 암시
폭포가 지향하는 고매한 정신과 곧은 소리가 필요한 시대적 상황
* 4연 → 곧은 소리의 확산 혹은 소리의 연속성.
곧은 소리(부정과 저항정신)의 생명력과 확산력.
곧은 소리는 또 다른 곧은 소리를 부르는 선구자적 정신.
*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 → 순간적인 힘의 분출이 주는 강렬함
* 나타와 안정 → 삶의 무목적성과 안일한 태도
현실 안주와 같은 소시민적 삶의 태도
* 높이도 폭도 없이 → '규정할 수 없는 물결'과 동일한 의미를 지님.
◆ 제재 : 폭포(시대 현실에 맞선 지성과 양심의 운동 상징. 인간 정신이 지향해야 할 절대의 상태 상징)
◆ 주제 : 부정한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의지적 삶의 추구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물이 떨어지는 모습(무서운 기색없이 떨어짐)
◆ 2연 : 물이 떨어지는 모습(쉴사이 없이 떨어짐)
◆ 3연 : 물이 떨어지는 소리(곧은 소리)
◆ 4연 : 물이 떨어지는 소리(곧은 소리)
◆ 5연 : 물이 떨어지는 모습(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김수영은 4 · 19 이후 본격적으로 '현실 참여적'인 경향의 시를 쓰게 되는데, 이 시는 그러한 성향의 많은 부분을 이미 1957년에도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자기 반성과 비판의 소시민적 삶의 단계를 극복하고 폭포와 같은 정신으로 세상을 살아가겠다는 새로운 삶의 각오를 다지게 된다.
시인은 자연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추구해야 할 정신의 자세를 배운다. 자연이 관조나 감동의 대상으로 국한되는 것에서 나아가, 인간 정신을 연마하고 수련하게 하는 한 계기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이 시에 나타난 폭포는 '물이 떨어지는 모습(힘찬 모습)'과 '물이 떨어지는 소리(큰소리)'의 두 가지 측면이 제시되고 있다. '폭포'가 거부하는 것으로는 '무서운 기색(두려움)', '쉴사이(나태함)', '나타와 안정(현실 안주)', '높이와 폭(얽매임)'이며, 폭포가 지향하는 것으로는 '고매한 정신'과 '곧은 소리'로 나타나고 있다. 폭포가 지향하는 고매한 정신이란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는 지속성', '밤이 되면 곧은 소리를 내고 그것이 또 곧은 소리를 부르는 선구자적 정신',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는 깨어있는 정신', '나타와 안정을 거부하는 긴장되고 깨어있는 정신'이다.
이 시는 폭포의 상징성과 이것을 인간의 정신 현상으로 이해할 때 유추되는 것들에 대한 답변을 제시한다. '폭포'의 이미지가 주는 곧음, 강렬함, 끊임없이 분출하는 힘을 통해 시인의 대사회적 대응력을 문제삼는다. 수직으로 낙하하는 폭포의 모습에서 시인은 고매한 정신과 곧은 소리, 강렬한 열정 등을 본다.
이 시는 자연수 '폭포'에 대한 노래가 아니다. 폭포를 통해 '나태와 안정을 뒤집어 놓'는 '고매한 정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고매하고 고결한 정신은 그 무엇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규정할 수 없는 자유로운 정신이고, 목적이 아닌 삶의 자세일 뿐이며, 어떤 게으름도 용납하지 않는다. '밤'이 상징하는 어두운 시대에는 더욱 '곧은 소리'를 내고, 또 다른 곧은 소리를 부르며 어둠을 물리칩니다. '번개'처럼 뜨거우며 폭발적인 에너지를 갖는다.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두지 않'는 견고하고 온전한 정신, 그것이 고매한 정신입니다. 1950년대 후반의 암울한 시대를 밤으로 여기고, 절벽처럼 절박한 상황으로 여긴 시인은 폭포처럼 거세고 올곧은 정신을 꿈꾼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