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소설 줄거리/해설]장난감 도시(1979)-이동하-
장난감 도시(1979)
-이동하-
● 줄거리
우리 가족은 전쟁이 멈춘 한두 해 전인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시골 마을을 떠나 도시로 이사를 갔다. 내가 이 무렵의 일을 비교적 잘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학예회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우리 가족이 마을을 떠날 때 정작 동구 밖에 나와 손을 흔들어 주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어느 날 밤 면 소재지 지서에 근무하는 순경이 난폭한 사내들을 몰고 와 삼촌을 찾다가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은 다음 빈손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어머니가 우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아버지는 비교적 덤덤한 태도로 마을 어른들과 하직 인사를 나눴다.
마을을 출발한 지 두세 시간만에 우리는 도시에 닿아 세간를 대충 들여 놓은 다음, 도시에서의 첫 저녁을 먹었는데 나는 그 밥을 먹고 배탈이 나 밤중에 세 차례나 공동변소를 들락거렸다.
이사온 지 사흘 뒤에 전학 수속을 마쳤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덩치 큰 녀석들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두들겨 맞았다.
이사를 오고 나서 한 달이 지나도록 아버지는 먹고사는 힘든 문제를 풀지 못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정직한 만큼 무능했다. 새로운 생업이 시작된 첫날 우리 가족은 풀빵과 냉차로 목을 축여 가면서 만찬을 가졌다.
판자촌 주민들의 고단한 잠을 앗아가는 이웃들엔 똘과부와 딸, 사위 이외에도 괴상한 술버릇을 가지고 있는 모주꾼 주씨도 있었다.
여름밤은 지겨웠다. 누나와 내가 한길로 나가 잠을 잤는데 누군가가 우리가 자고 있는 사이 덮고 있던 모포를 훔쳐 가 새벽 추위에 떨어야 했다.
장마가 시작되었고 아버지의 벌이 역시 시원칠 못했다. 비에 젖으면서 학교에 가는 일처럼 짜증스러운 일은 다시는 없었고 악다귀 같은 깡패 녀석들에게 신과 발을 검사 맡고 들어가야 했다. 그들은 풀빵 몇 개에 나에게 관대하게 대했다. 그 후 군인극장에서도 입장권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장마가 걷혀 가던 무렵 아이들과 낙과를 주우러 갔다.
여름이 거의 끝날 무렵 빵들은 엿장수가 실어갔고 남은 딸딸이 하나를 팔아 아버지는 그 돈으로 고물 자전거를 한 대 사들였다. 아침나절에 그것을 타고 나가면 밤늦게 귀가하는 아버지를 달빛이 환하게 젖어들 때까지 우리는 잠들지 못하고 기다렸다.
악다귀 같던 친구들이 잘못을 해서 한꺼번에 교무실로 불려간 이후로 그들은 두 번 다시 교실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마지막 헤어질 때 그들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학교를 포기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할 무렵 고물상 하는 곽씨의 소개로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밤늦게 나는 집으로 돌아 왔다.
여러 날째 아버지가 되돌아오시지 않았다. 가족들이 다 잠든 시간에 어머니는 병고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을비가 차갑게 뿌리다 만 날 아침나절에 골목의 최 반장이 아버지의 소식을 가져왔다. 아버지는 무슨 물건을 자전거로 실어 나르는 일을 했는데, 그 일은 법에 저촉되는 행위였고 당연히 징역살이를 하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 인물의 성격
◆ 나(주인공) → 시골에서는 면장감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지만, 도시로 이주한 이후에는 비참한 현실을 살게 됨.
◆ 아버지 → 선량한 성품의 이장 출신 인물. 가족들의 굶주림을 보다못해 장물을 나르는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감.
◆ 어머니 → 자존심이 강하고 조용한 성격의 인물. 판자촌의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앓아 누움.
◆ 누나 → 늘 굶주리는 가족들을 걱정하는 내성적인 소녀
● 이해와 감상
◆ 이 소설은 원래 <장난감 도시>, <굶주린 혼>, <유다의 시간>이라는 서로 다른 제목으로 발표된 세 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이다. 세 편 각각은 제목은 다르지만 줄거리나 등장 인물, 사건이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은 어른이 된 소년이 자기의 과거를 추억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기억에 의존해 과거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재구성은 단편적이고 비연속적이다. 과거의 삶이 여러 개의 짧은 삽화로 분절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 체험을 기술하고 있는 '나'의 현재 상태에 대해서는 그 정보가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 <장난감 도시>는 작가 자신이 겪은 비참했던 어린 시절을 옴니버스 형식을 빌어 쓴 작품이다.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전쟁, 실향, 굶주림, 헤어짐, 그리고 무엇보다 내 어머니의 죽음 같은 것 때문에 자신의 체험을 소설화하려고 하였다,"라고 하였다.
그의 작품 <우울한 귀향> 속에 그려진 시간의 축, 즉 과거는 '나'의 출생에서 고향을 뜰 때까지이고 현재의 시간대는 대학 시절이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 대학생이 되기까지의 비어 있는 시간대가 바로 '장난감 도시'인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이 작품에서 도시적 삶의 내면을 파헤쳐 보려는 데에 끈질긴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처음으로 도시에서 돈벌이를 하러 나간 아버지가 풀빵을 거의 다 남겨 가지고 돌아와서 밤늦게 벌이는 만찬(?)과 아버지의 말 등에서는 아버지의 낙천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기보다 도시의 냉엄한 질서에 적응하기 어려운 이들의 인간적인 일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의 소설은 웃음을 주면서도 뒤가 홀가분한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웃음으로 재미를 주면서 주제를 풀어놓는다는 식이다. 결국 <장난감 도시>는 삶에 대한 아무런 확신도 주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오늘날의 삶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는 데에 이 작품의 미학이 있다. 또한 정확하고 간결한 문장으로 작품의 미학을 배가시키고 있다.
◆ 이 소설은 1955년경 한 지방 도시의 삶을 그렸다기보다는 그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한 한 어린아이의 내적 공간을 그리고 있다. <장난감 도시> 이후의 연작에서 그려지는 소년의 상황은 더 비참하다. 장물을 나르며 감옥을 들락거리는 아버지, 임신한 채 전신 쇠약으로 죽는 어머니, 전쟁에서 다리를 잃은 친구 오빠의 신부감으로 가는 누이 그리고 구두닦이로 거리를 헤매는 소년 등, 이 소년의 외적 체험은 가족의 변화로 대변된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중편소설, 연작소설(3부작)
◆ 배경 : 6 · 25 직후의 도시(대구의 판자촌)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중심 사건 : 시골 학교에서의 학예회, 도시의 판자촌으로 이주, 가난하고 힘겨운 도시 생활, 잡화상 점원 노릇과 아버지의 구속 등.
◆ 표현상 특징
* 여러 개의 삽화를 통한 구성 : 장난감 도시(19개)→굶주린 혼(17개)→유다의 시간(16개)
* 어린 소년의 의식의 성장 과정을 그림.
* 시골(평화롭고 만족스러운 공간) ⇒ 도시(극도의 굶주림, 자존감의 상실, 가족해체의 위기)
* 3부작으로 구성됨 : 1부(장난감 도시) → 2부(굶주린 혼) → 3부(유다의 시간)
◆ 주제 ⇒ 암울한 삶의 체험을 통한 소년의 의식 성장
● 생각해 볼 문제
1. '나'가 현실의 괴로움을 피해 친구들과 드나드는 곳은 어디인가? ( 군인 극장 )
2. '나'가 다니는 학교의 환경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사물은 무엇인가? ( 도마책상 )
3. '나'가 학교를 그만두고 가게 된 곳은 어디인가? ( 잡화상 점원 )
4. '나'의 아버지가 무엇 때문에 경찰에 잡혀 가는가? ( 장물 혹은 밀수품을 운반했기 때문에 )
5. '나'가 시골 생활의 추억 중 가장 그리워 하는 것은 무엇인가? ( 학예회 )
6. 이 소설의 시간적 · 공간적 배경을 통해 알 수 있는 당시의 시대상은 어떠한가?
→ 이 작품의 배경은 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모여든 도시 대구이다. 당시 사회는 극도의 궁핍한 상태였는데, 그 중에서도 이 작품에 묘사된 판자촌의 모습은 당시의 그러한 사회상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공간이다.
7.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의 성격과, '나'가 도시에서 느끼는 바는 무엇인가?
→ 시골 학교에서 '면장감'이라는 칭찬을 받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아 '나'는 자존심이 세고 자의식이 강한 아이이다. 그런데 도시로 나온 이후 '나'는 더 이상 똑똑한 아이로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지독한 가난 속에서 굶주리는 빈민에 불과하게 된 것이다. '나'는 여기에 댛여 심한 좌절감을 느낀다.
8. <보기>를 토대로 '나'에게 '학예회'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지 쓰시오.
<보기> 내가 다니던 학교와 그 아이들을 나는 기억해 냈고, 내가 그곳에서 마지막 가졌던 학예회를 생각해 냈다. 그랬다. 우리는 '뻐꾸기 왈츠'를 합창했고, 동극 '팔려 가는 당나귀'를 공연했었다. 나는 또 '금고기' 이야기로 갈채를 받았고 미래의 면장감으로도 인정을 받았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아버지마저 잃어 버린 아이가 되어 있었다. 울음이 목울대까지 차올랐지만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다. 나는 아직 우는 법을 익히지 못한 벙어리였기 때문이다. |
→ 시골 마을에서 평이한 생활을 누리며 학교와 마을에서 똑똑한 아이로 인정받던 '나'는 도시로 이사를 오고 나서 이전의 생활과는 완전히 다른 현실에 맞닥뜨린다. 도시에서 소년이 마주치게 되는 열악한 주거 환경과 극도의 굶주림에 시달리는 생활은 '나'에게 충격을 넘어 자의식을 파괴하고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이와 대비되는 기억으로 '나'는 시골에서의 생활과 학예회를 추억하는데, 그 중에서도 학예회는 '나'가 동극과 이야기 구연 등의 공연을 펼치고 마을 사람들에게 '면장감'이라는 극찬을 들으며 이에 아버지가 자랑스러워하는 등 지금까지의 삶에 있어서 절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학예회'는 곧 '나'가 돌아가기를 희망하는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아버지마저 구치소에 들어간 상황에서 극도의 불안과 좌절감 그리고 생존에 대한 위기마저 느끼면서 이와 극한으로 대조되는 시골에서의 '학예회'를 떠올림으로써 자존심이 충족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음을 강렬하게 소망하는 것이다.
● 더 읽을거리
이 작품은 장편소설이 보여주는 삶의 총체성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지만, 중편소설이 보여주는 삶의 단면보다는 훨씬 큰 시간과 공간의 복합체를 이루고 있다. 즉, 일종의 준 장편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소설이다. 지난 50년대 후반, 전후의 피폐한 도시를 무대로 어느 이향(離鄕) 가족의 쓰라린 삶을 한 소년의 시선을 통해 회상의 형태로 기술하고 있다.
국민학교 4학년 때 고향을 떠난 한 소년이 약 1시간에 걸쳐서 겪는 체험을 그의 시선에 의지하여 기술하고 있다. 그 서술은 어른이 된 그가 자기의 과거를 '허기가 몰아오는 가벼운 현기증과 명징한 의식'으로 추억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그의 기억에 모든 것을 의존하고 있다. 기억에 의지하여 과거의 삶을 재구성하고 있기 때문에, 그 재구성은 단편적이고 비연속적이다. 더구나 그 체험을 기술하고 있는 나의 현재 상태란 단지 그가 굉장히 감수성이 강한 사람이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 외에는 하나도 밝혀 있지 않기 때문에, 그 기억은 서술태에 의해 주어진 그대로 수용될 수밖에 없다. 기억은 눈앞에 있지 아니한 것을 있는 것처럼 만들 수는 있지만 상상력처럼 그것을 마음대로 변형시켜 발전시켜 나갈 수는 없다.
기억의 단편성과 불연속성은 여기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즉 기억에 의존하기 때문에 과거의 연속적이고 총체적인 삶은 짧은 삽화들의 모임으로 단순화된다. 이 작품은 각각 19개, 17개, 16개의 짧은 삽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짧은 삽화들 속의 인물들은 물론 나의 기억에 의해 존재하는 인물들이기 때문에 자신의 의식 공간을 갖지 못하며, 자신의 행위에 대한 변명조차 보여주지 못한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행위자인 아버지, 어머니, 누이는 내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인물이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공간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를 기억하는 나의 공간 속에 잡혀 있다.
이 작품의 첫머리를 보면 배경이 되는 것은 1955년 경의 한 중소 도시에서의 판자촌의 삶이다. 그 중소 도시는 본토박이, 피난민, 떠돌이의 세 부류의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그리려 하는 것은 단순하면서도 수락하기 힘든 삶의 지혜를 체득해 가는 초등학교 4학년생의 의식 성장 과정이다. 1955년 경의 한 중소 도시의 삶을 그리기보다는 그 어두운 시대를 살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한 한 어린이의 내적 공간을 그리려고 하였기 때문에 작가는 단편소설적 구성을 택한 것이다.
이 작품의 52개의 삽화들은 한 어린 아이가 삶을 인정하게 되는 과정 속에서 얼마나 괴로워했는가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양소설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 삽화들을 기억하고 있는 화자가 현재 어떤 상태에 처해 있는가를 밝혀 주지 않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다. 그가 과연 그러한 고통을 통해 현실과 적절하게 타협하며 살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그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그것을 짐작할 수 없다.
'나'의 삶은 이른바 가난의 현장에 있는 삶이다. 주거 공간의 부족, 사생활 보장의 불가능성, 흔한 알코올 중독, 잦은 폭력 사태, 어린애들에 대한 잦은 매질, 모계 중심의 경향, 가족 단합에 대한 강조, 찰나주의 등등 그의 삶은 모든 가난의 문화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삶은 어두운 시대의, 치유될 수 없는 삶이다. 그 삶 속에 밝게 채색되어 있는 것은 지난날의 아름다웠던 과거뿐이다. 그의 과거는 너무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어서, 그의 명징한 의식으로도 기억이 잘 안 될 정도이다. 그것은 신비하고 행복했던 순간이며, 그것을 빼면 그의 삶에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을 정도이다. 그 불행한 삶에서 그가 깨달은 것이란, 울고 싶을 때 울고 웃고 싶을 때 웃는다면 도시에서는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없다는 쓰디쓴 현실 인식이다. 모든 것을 잃어 버린 그에게는 그의 삶만이 그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