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건대는 우리에게∼
-김소월-
나는 꿈꾸었노라, 동무들과 내가 가즈런히
벌가의 하루 일을 다 마치고
석양에 마을로 돌아오는 꿈을,
즐거이, 꿈 가운데.
그러나 집 잃은 내 몸이여,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대일 땅이 있었더면!
이처럼 떠돌으랴, 아침에 저물손에
새라새롭은 탄식을 얻으면서.
동이랴, 남북이랴,
내 몸은 떠나가니, 볼지어다,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물결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다리에.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날로 나날이 내 앞에는
자칫 가늘은 길이 이어가라. 나는 나아가리라.
한 걸음, 또 한 걸음. 보이는 산비탈엔
온 새벽 동무들 저 저 혼자…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 <진달래꽃>(1924)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남성적, 의지적, 낭만적, 저항적, 비판적
◆ 표현 : 투철하고 예리한 현실 인식이 바탕을 이룸.
고통을 이겨내고자 하는 의지가 영탄법과 도치법을 통해 표현됨.
2연의 가정법과 설의법의 문장은 시의 의미를 역동화시킴.
◆ 중요시어 및 시구
* 벌가 → 벌판의 가장자리
* 꿈 → 꿈이라고 말하기조차 초라한 일상적인 삶의 한 형태이지만, 이것조차도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만
현실을 떠올려볼 수 있음.
* 보습 → 땅을 갈아 흙덩이를 일으키는 쟁기의 날(농기구)
* 새라 새로운 → 새롭고 새로운(?)
* 희망의 반짝임은, 별빛의 아득임은 / 물결 뿐 떠올라라, 가슴에 팔 다리에
→ 세상 사방으로 떠돌아 다니는 몸이니, 희망과 이상은 아득하게 멀어져 허망하게만 보임.
* 그러나 어쩌면 황송한 이 심정을
→ 시상이 전환되는 부분.
절망적인 상황속에서도 '자칫 가느른 길'만이라도 있기에 황송한 심정이 되는 게 아닐까.
* 가느른 길 → 열악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탈출구
* 온 새벽 동무들 → 미래를 개척해 나갈 동무들
* 산경(山耕)을 김매이는
→ 산경은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기에 이 곳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힘든 발걸음이지만
유일한 희망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임.
◆ 주제 ⇒ 토지(국토)를 잃은 자의 탄식과 현실을 극복하려는 의지
[시상의 흐름]
◆ 1연 : 잃어 버린 행복한 삶의 모습(과거)
◆ 2연 : 집과 땅을 잃은 자의 슬픈 탄식(현재)
◆ 3연 : 빼앗긴 자의 희망 없는 방랑의 삶(현재)
◆ 4연 : 열악한 현실에 대한 극복 의지와 이상(미래 지향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김소월의 일반적 시경향이라고 하면 비애와 한의 정서를 노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것과는 특성이 다른 작품으로 보인다. 당대의 현실 인식이 잘 드러난 시로 집 잃은 자, 땅을 빼앗긴 자의 울분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향상의 의지를 표현한 시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꿈과 현실의 대립구조를 통해 현실의 암담함과 어둠을 드러내고 그 극복의 의지를 제시하고 있다. 제 1연에서 3연까지는 서정적 자아가 처한 열악한 현실에 대해 냉철한 인식이 주조를 이루고 있으며, 4연에서는 열악한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서정적 자아의 현실 대응 의지와 이상이 표출되어 있다.
1연에서는 꿈을 통해 잃어버리고 없는 행복한 삶을 상상하고 있다. 즉, 이웃과 함께 들판의 일을 마치고 저녁 노을을 받으면서 돌아오는 풍경은 농촌의 평화로운 정경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2연에서는 자신의 땅을 잃고 실제 겪고 있는 슬픈 역사를 묘사하고 있다. 집과 땅을 잃고 탄식을 하면서 먼 곳을 떠도는 유랑자의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한 개인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의 차원으로 확대되며 우리는 이 시에서 일제의 가혹한 수탈로 집과 땅을 잃고 이리저리 떠돌던 우리 민족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3연에서는 희망은 없고 가슴과 팔다리에 있는 것은 고통과 절망의 물결 뿐임을 묘사하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4연에서는 '나'에게는 희망이 있고 그 길로 꾸준히 나아가겠다는 작자의 미래 지향적인 희망이 제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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