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 치 -윤오영-
이해와 감상
이 작품 역시 윤오영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로서, 서두에서는 자신이 까치소리를 좋아하는 이유를 쓰고, 다음에 까치집을 좋아하는 이유도 쓴다. 까치와 까치집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참으로 섬세하고 깊기까지 하다. 이처럼 자연의 사물에 대한 섬세한 관찰을 통해 인생을 거울에 비추어 보는 전형적인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인간과 자연이 서로 조화되어야 한다는 교훈을 드러내 주고 있다. 자연과의 친화를 보여주는 민화 하나를 글의 후반부에 내놓은 것도 멋이 있다. 낮잠 자는 노인의 배 위에서 놀고 있는 까치 한 마리 - 인간 자신이 바로 그 자연속의 일부라는 건강한 기쁨이 물씬 흐르는 묘사이다. 그 그림이 기발한 상상이 아니라 실경이라는 이야기도 설득력있게 덧붙여 두고 있다.
요점 정리
◆ 성격 : 경수필, 교훈적 수필 → 동양적, 교훈적, 전통적, 사색적, 관조적
◆ 표현 : 생략과 비약이 많은 문체
예스러운 고사와 인용을 적절히 동원함으로써 이 작품의 저변에 관류하는 동양적 정신 세계에
대한 지향을 잘 이끌어 나가고 있다.
간결하고 부드러운 문체
◆ 주제 : 소쇄하고 담박하며 자유로운 삶의 모습 희구
◆ 출전 : [방망이 깎던 노인](1977)
생각해 보기
< '까치'라는 대상에 대한 작자의 관조적 접근 >
소재(까치)에 대한 작자의 관조적 접근은, 까치와 우리의 전통적 정서와 사유에 깊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는 데서 시작하고 있다. 아울러 까치와 관련된 우리의 풍속, 의식 등 작자 특유의 동양적 정신 세계속에서 조명하면서 자연과 교감(交感)하던 우리 선인들의 지혜와 넉넉함의 정신을 새롭게 음미하고 있다.
(1) 까치 소리에 대한 통찰 : 까치 소리의 음정(音程)에 대한 반가움의 감정과 작자의 주관적 정서를 고백하고 까치에 얽힌 전통적 길조(吉兆) 의식을 소개하였다.
(2) 까치집에서 느끼는 의미 : 소쇄하고 담박한 느낌의 까치집은 별다른 장식이 없고, 자연 그 자체의 일부로서 작자의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주거관(住居觀)과 일치됨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인의 집에 대한 관념이나 정서와 상통하고 있음을 관조하고 있다.
(3) 정밀한 새벽 산길에서 까치를 만나는 정감의 의미 : 새벽 정릉 숲 속에서 만났던 까치에 대한 기억을 환기시킴으로써 그 귀엽고 다정한 까치의 모습과 함께, 인간과 자연이 꾸밈없이, 거리감 없이 교유(交遊)할 수 잇는 경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4) 민화(民畵)속에서 보았던 까치의 모습 : 우리 민화에 나타나 있는 까치의 모습을 통해 속화(俗化)되지 아니한, 극히 자연스러운 자연과 인간의 합일의 경지를 생각하고, 그것이 과장된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실경(實景)으로 존재할 수 잇음을 밝히면서, 선인들의 의식 세계가 그러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었음을 스스로 깨닫고 있다.
< '까치'의 주제 의식 >
(1) 까치에 관련된 덕스러운 고사(古事)들을 배경으로 까치의 생태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솔직함, 담박스러움, 자연의 본성에 충실할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각박하고 허영에 넘치는 현대인들에게 교훈적으로, 그러나 암시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잇다.
(2) 낮잠 자는 노옹(老翁)의 허연 배 위에 우뚝 서 있는 까치를 그린 민화 한 폭의 이야기를 결말 부분에 삽입, 제시함으로써 그것이 단순한 상상화가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합일된 경지를 꿈꾸고 실천했던 선인들의 모습이 실경(實景)으로 나타난 것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진술 과정을 통해 작자는 삶의 이상적 경지로서 인간이 자연속에 합일(合一)되어 조화를 이루는 상태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작품 읽기
까치 소리는 반갑다. 아름답게 굴린다거나 구슬프게 노래한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고 기교 없이 가볍고 솔직하게 짖는 단 두 음절 '깍 깍'. 첫 '깍'은 높고, 둘째 '깍'은 얕게 계속되는 단순하고 간단한 그 음정(音程)이 그저 반갑다. 나는 어려서부터 까치 소리를 좋아했다. 지금도 아침에 문을 나설 때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 날은 기분 좋다.
반포지은(反哺之恩)을 안다고 해서 효조(孝鳥)라 일러 왔지만 나는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좋다. 사랑 앞마당 밤나무 위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그것이 길조(吉兆)라서 그 해에 안변 부사(安邊府使)로 영전(榮轉)이 되었다던가, 서재(書齋) 남창 앞 높은 나뭇가지에 까치가 와서 집을 짓더니 글 재주가 크게 늘어서 문명(文名)을 날렸다던가 하는 옛 이야기도 있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까치 소리는 반갑고 기쁘다.
아침 까치가 짖으면 반가운 편지가 온다고 한다. 이 말이 가장 그럴싸하게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반가운 소식의 예고같이 희망적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 까치 소리가 반가운 이유
나는 까치뿐이 아니라 까치집을 또 좋아한다. 높은 나무 위에 마른 나뭇가지를 모아다가 엉성하게 얽어 논 것이, 나무에 그대로 어울려서 덧붙여 논 것 같지가 않고 나무 삭정이가 그대로 떨어져서 쌓인 것 같다. 그러면서도 소쇄(瀟灑)한 맛이 난다. 엉성하게 얽어 논 그 어리가 용하게도 비가 아니 샌다. 오직 달빛과 바람을 받을 뿐이다.
나는 항상 이담에 내 사랑채를 짓는다면 꼭 저 까치집같이 소쇄한 맛이 나도록 짓고 싶었다. 내가 완자창이나 아자창을 취하지 않고 간소한 용자창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런 정서에서이다. 제비집같이 아늑한 집이 아니면 까치집같이 소쇄한 집이라야 한다. 제비집은 얌전하고 단아한 가정 부인이 매만져 나가는 살림집이요, 까치집은 쇄락하고 풍류스러운 시인이 거처하는 집이다.
비둘기장은 아무리 색스럽게 꾸며도 장이지 집이 아니다. 다른 새집은 새 보금자리, 새 둥지, 이런 말을 쓰면서 오직 제비집 까치집만이 집이라 하는 것을 보면, 한국 사람의 집에 대한 관념이나 정서를 알 수가 있다. 한국 건축의 정서를 알려는 건축가들은 한번 생각해 봄 직한 문제인 듯하다. 요새 고층 건물, 특히 아파트 같은 건물들을 보면 아무리 고급으로 지었다 해도 그것은 '사람장'이지 '집'은 아니다.
* 까치집을 좋아하는 이유
지금은 아침 여덟 시, 나는 정릉 안 숲 속에 자리잡고 앉아 있다. 오래간만에 까치 소리를 들었다. 나뭇잎들은 아침 햇빛을 받아 유난히 곱게 푸르다. 나뭇잎 사이로 파란 하늘이 차갑게 맑다. 그간 비가 많이 왔던 관계로 물소리도 제법 크게 들려 온다. 나는 어느 날 이른 새벽에 여길 와 본 적이 있었다. 보건 운동을 하러 온 사람, 약물을 먹으러 온 사람들로 붐비어 다시 오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와 보니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그윽한 숲 속이 한없이 고요하다. 지금이 제일 고요한 시간이다. 까치들이 내 앞에 와서 깡충깡충 뛰어다닌다. 이른바 까치걸음이다. 귀엽다. 손으로 만져도 가만히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사람이 옆에 앉아 있다는 데는 아무 관심이나 의구심도 없이 내옆에서 깡충깡충 뛰놀고 있다.
* 오래간만에 들어 보는 까치소리
나는 일찍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민화(民畵) 하나를 생각한다. 한 노옹(老翁)이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낮잠을 자는데, 그 배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나는 신기한 그 상상화에 기쁨을 느꼈다. 민화란 어린아이와 자유화(自由畵)같이 천진하고 기발한 데가 있어서 저런 재미있는 그림도 그려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저 까치들을 보고 그것은 기발(奇拔)한 상상이 아니요, 사실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전에 이지봉(李芝峯)이 정호음(鄭湖陰)의 "산과 물이 바람에 소릴 치며, 강물은 거세게 울먹이는데, 달은 외로이 비쳐 있다."는 시를 보고 '강물이 거세게 이는데 달이 외롭게'란 실경(實景)에 맞지 않는다고 폄(貶)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달이 고요히 밝은 밤중에는 물결이 잔잔한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김백곡(金栢谷)이 황강역(黃江驛)에서 자다가 여울 소리가 하도 거세기에 문을 열고 보니 달이 외롭게 걸려 있었다. 그래서 비로소 그 구가 실경을 그린 명구(名句)인 것을 알았다는 시화(詩畵)가 있다. 나도 그 민화가 실경인 것은 모르고 기상(寄想)으로만 여겼던 것이다.
그 태고연(太古然)한 풍경의 민화 한 폭이 다시금 눈앞에 뚜렷이 떠오른다. 나무 밑에서 허연 배를 내놓고 누워서 잠자는 노옹(老翁), 그 배 위에 서 있는 까치 한 마리.
* 까치와 관련된 민화
*소쇄(瀟灑) : 상쾌함. 깨끗하고 산뜻함.
*완자창(卍字窓) : 卍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창.
*아자창(亞字窓) : 아자 모양의 무늬가 있는 창
*용자창(用字窓) : 가로살 두 개와 세로줄 한 개로 用 자 모양으로 창살을 성기게 대어 짠 창.
*단아(端雅) : 단정하면서도 우아함.
*쇄락(灑落) : 기분이나 몸이 개운하고 깨끗함.
*이지봉(李芝峯) : 조선 선조 때의 실학자 이수광을 일컫는다. 우리 나라 에서 최초로 서학을 도입했으며,
〈지봉유설(芝峯類說)〉이란 책을 지어 어원(語源)에 관한 기록과 천주교 지식을 소개했다.
*정호음(鄭湖陰) : 조선 성종∼선조 때의 문신 정사룡(鄭士龍)을 일컫음. 시문(時文), 음률(音律)과 글시에
뛰어났음.
*김백곡(金栢谷) : 조선 선조∼숙종 때의 시인 김득신(金得臣)을 일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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