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의 야구 방망이 -정진권-
이해와 감상
글쓴이가 겪은 일을 소재로 한 경수필이다. 막내아들이 야구 연습으로 늦게 들어오는 이유가, 반 대항 야구대회에서 우승함으로써 담임선생님의 부재로 인해 해체된 같은 반 아이들의 기를 살리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아이들의 단결하는 모습과 스스로의 판단과 결정으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세에서 감동을 받았다는 내용이다. 자신이 속한 단체에 대한 애정과 단결, 협동, 노력 등의 미덕을 배우며 성장하는 아이들을 통해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과 잔잔한 감동을 느끼게 하는 글이다.
요점정리
◆ 성격 : 체험적, 서사적 경수필
◆ 제재 : 막내의 야구 시합
◆ 주제 : 야구 시합을 통해 단결심을 배운 아이들
◆ 특성 : 경험한 일을 시간 순서대로 그리고 있다.
짜임새 있는 구성, 개성 있는 문체로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작품 읽기
어느 날 퇴근을 해 보니, 초등학교 5학년의 개구쟁이 칠팔 명이 마루에 둘러앉아 있었다. 묻지 않아도 막내의 동무애들이었다.
그날 저녁에 막내는 야구 방망이 하나만 사 달라고 졸랐다. 조르는 대로 다 사 줄 수는 없는 일이지만 너무도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나는 사 주마고 약속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퇴근을 할 때 방망이 하나를 사다 주었다.
그 다음날부터 막내는 늦게 돌아왔다. 어떤 때는 하늘에 별이 떠야, 방망이에 글러브를 꿰어 메고 새카만 거지 아이가 되어 돌아오는 것이다. 그리고는 한 삼 년 굶은 놈처럼 밥을 퍼 먹었다.
"왜 이렇게 늦었니?"
"야구 연습 좀 하느라고요."
"이 캄캄한 밤에 공이 보이니?"
"……."
"또 이렇게 늦으면 혼날 줄 알아."
"……."
그러나 그 다음날도 여전히 늦었다. 나는 좀 걱정이 되었다. 초등학교 5학년짜리들이 야구를 한다면 그건 취미 활동쯤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에 쏠려서 별이 떠야 돌아오는 것일까?(막내의 지나친 야구 연습에 대한 글쓴이의 우려와 궁금증)
"왜 이렇게 늦었니?"
"……."
"말 못하겠니?"
"내일 모레가 시합이에요."
"무슨 시합?"
"5학년 각 반 대항 시합인데 우리가 꼭 이겨야 해요."
<중략>
그런데 시합 날이라던 그날, 막내는 우승을 못한 모양이었다. 밥도 먹는 둥 마는 둥, 그냥 잠자리에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쓰는 것이다. 나는 지나치게 승부에 민감한 것이 좋지 않을 듯해서,
"다음에 또 기회가 있지 않니? 갑자기 서두르면 못써. 느긋하게 연습을 해야지." 하고는 이불을 벗겨 주었다. 그러나 막내는 무슨 대단한 한이라도 맺힌 듯 누운 채로 면벽을 하고 있었다.(패배에 대한 실망감이 매우 큼.)
그런데 막내는 이튿날도 여전히 늦었다. 나는 아무래도 이 아이가 자기 생활의 질서를 잃은 듯해서
"왜 또 늦었니? 시합 끝나면 일찍 오겠다고 하지 않았니?" 하고 좀 심하게 나무랐다. 그제야 막내는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막내의 담임 선생님은 마흔 남짓한 남자분이신데, 무슨 깊은 병환으로 두어 달 쉬시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에서는 막내의 반 아이들을 이 반 저 반으로 나누어 붙였다. 그러니까 막내의 반은 하루 아침에 해체되고 아이들은 뿔뿔이 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배치해주는 대로 가 보니 그 반 아이들의 괄시가 말이 아니었다. 괄시를 받을 때마다 옛날의 자기 반이 그리웠다. 선생님을 졸졸 따라 소풍을 가던 일, 운동회에서 다른 반 아이들과 당당하게 겨루던 일, 그런 저런 자기 반의 아름다운 역사가 안타깝게 명멸하는 것이었다. 때로는 편찮으신 선생님이 너무 보고 싶어서 길도 잘 모르는 병원에도 찾아갔다.
그러는 동안에 아이들은, 선생님이 다 나으셔서 오실 때까지 우리 기죽지 말자 하고 서로서로 격려하게 되었고 이러한 기운이 팽배해지자 이른 바 간부였던 아이들은 자기네의 사명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몇 아이들이 우리 집에 모였던 것이고, 그 기죽지 않을 방법으로 채택된 것이 야구 대회를 주최하여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었다.
연습은 참으로 피나는 것이었다. 뱃속에서 쪼르락거리는 소리가 나도 누구 하나 배고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연습이 끝나면 또 작전 계획을 세우고 검토했다. 그러노라면 어느 새 하늘에 별이 떠 있기 일쑤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결승에 진출했다. 이 반 저 반으로 헤어진 동무애들은 예선부터 한 사람 빠짐 없이 응원에 나섰다. 그 응원의 소리는 차라리 처절한 것이었다. 그러나 열광의 도가니처럼 들끓던 결승에서 그만 패하고 만 것이다.
"……."
"아빠, 우린 해야 돼. 선생님이 다 나으실 때까지 우린 한 사람도 기죽을 수 없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망국민의 독립 운동사라도 읽은 것 같았다. 치기(稚氣)인지 모르지만 감동 비슷한 것도 가슴에 꽉 차 오는 것 같았다. 학교라는 데는 단순히 국어 · 산수만 가르치는 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튿날 밤, 나는 늦게 들어오는 막내의 방망이를 미더운 마음으로 소중하게 받아 주었다. 그때도 막내와 그 애의 동무애들의 초롱초롱한 눈 같은 맑고 푸른 별이 두어 개 하늘에 떠 있었다. 나는 그때처럼 맑고 푸른 별(꿋꿋하게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한 믿음과 희망의 상징)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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