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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 Seeing

[현대수필 해설]파초(1941) -이태준-

by 휴리스틱31 2022.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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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  초(1941)                         -이태준-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 실려 있다. 무서록(無序錄)이란 순서 없이 기록한 글이라는 뜻으로 수필의 특성을 암시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무서록>에는 161편의 짧은 수필들이 실려 있는데, 비슷한 주제로 묶어보면 크게 개인사에 대한 회상, 글쓰기에 대한 고찰, 고전과 동양미에 대한 관심으로 나눌 수 있으며, 세부적으로는 일상과 자연을 주제로 한 가벼운 잡문, 유년 시절과 가족에 대한 회상, 소설과 문학(글쓰기)에 대한 사유, 고전과 전통 · 동양적 미의식에 대한 관심 · 고완미, 만주 기행을 비롯한 여행기와 기행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작품은 파초를 기르는 체험을 바탕으로 대상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듯이 편안하게 서술하고 있다. 파초가 크게 성장하여 마당 앞에 만들어 준 남국의 풍정(風情, 정서와 회포를 자아내는 풍치나 경치)을 감상하는 데에서 작가는 정서적 · 심미적 경험을 하고 있다. 거기서 얻은 가치를 돈과 바꿀 수 없다고 여기는 태도에 사물의 가치를 남다르게 인식하고 발견하는 작가의 정신 활동이 나타나 있다.

'무서록'은 이태준의 수필집이다. 파초와 난을 키우고, 오래된 성벽을 바라보며 양치질을 하고, 책을 아끼고, 고완품(古翫品)의 그윽한 아름다움에 마음을 빼앗긴 이태준의 청담고박한 생활과 서권향(書卷香) 그윽한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산문들이 실려 있다. 이태준의 성정은 다감하고 온화한 탓에 두루 깨끗한 고요함을 바라고, 고상한 덕과 남에게 폐가 되지 않는 청결한 취미를 아꼈다. 책과 난과 서화(書畵)와 도자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불가피한 성정 탓이다. 허나 생활은 촌음의 여유도 없이 바특하기만 했던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여러 해 별러 초가 한 칸을 지어놓고 공부할 서책과 눈을 쉬일 서화 몇 폭을 걸어놓고 상심루(賞心樓)란 현판을 얻어 걸어놓은 지 이미 7, 8년.

이태준은 파초를 사랑했다. 소 선지가 파초에 좋은 거름이란 소리를 듣고 소 선지와 생선 씻은 물, 깻묵물을 틈틈이 주며 정성스럽게 키운다. 마침내 파초는 성북동에서 제일 큰 파초로 우뚝 자란다. 늠름하게 잘 자란 파초에 대한 그의 자랑스러움과 뿌듯함은 파초를 팔아 집 수리비에라도 보태라는 이웃의 채근에도 꿈쩍 않는 데서 드러난다.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다문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 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에까지 비를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

장대하게 키운 파초가 폭염 속에 드리우는 그 싱그러운 그늘에 눈길을 주고, 비 내리는 날 넓은 파초 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그것을 청복으로 삼는 이의 여유가 손에 잡힐 듯하다.

 

 

요점 정리

 

 성격 : 경수필, 서정적, 사색적 수필

 특성

* '나'의 삶의 태도를 '앞집 사람'의 현실적 사고와 대조하여 보여줌.

* 대화체를 통해 일화를 전달하여 주제를 드러내고 있음.

 주제 : 파초에 대한 감회와 기쁨(파초를 좋아하는 작가의 풍류)

 출전 : <문학>(1933)

 

생각해 보기

 

1. 이 작품의 중심 소재를 조사해 보고, 그 느낌을 말해 보자.

(1)  파초라는 식물에 대해 조사해 보자.

학명 Musa basjoo SIEB
분포 한국(제주도 등의 남부지방), 중국 등지
크기 높이는 약 2m, 지름 20cm
꽃말 신선한 모습, 기다림

 

(2) (1)에서 조사한 파초와 이 작품에 표현된 파초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말해 보자.

* (1)에서 조사한 파초에 대한 내용은 사전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로, 다른 식물들과 객관적으로 비교해 볼 수 있는 사실적인 대상임.

* 이 작품을 통해 알게 되는 파초에 대한 느낌은, 단순한 식물로서가 아니라 정신적으로 위안과 기쁨을 줄 수 있는 대상이며, 심미적이고 정서적인 교감의 대상이 되고 있음.

 

 

2. 이 작품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각 부분의 중심 내용을 요약해 보자.

* 앞부분 : 이웃에서 사온 파초가 크게 자라 글쓴이에게 주는 기쁨(남국의 정조를 느끼게 해 주고, 비올 때 파초 잎에 빗방울 퉁기는 소리를 듣는 기쁨)

* 뒷부분 : 수명이 다해 가는 파초를 팔아 버리라고 하는 앞집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내년에 죽을 파초라 하더라도 죽는 순간까지 곁에 두면서 마음을 나누고 싶다고 함.

 

3. 파초에 대한 '나'와 '그'에 대한 생각을 파악하여 두 사람의 인생관을 비교해 보자.

  파초에 대한 생각 인생관
'나'
(작가)
사랑(애정)의 대상,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정서적이고 심미적 가치의 대상으로 여김. 삶에 있어 물질적이고 금전적인 가치보다는 정과 사랑을 나누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함.
'그'
(앞집 사람)
단순한 식물로 생각하면서, 물질적인 가치나 효용성을 따짐. 삶에 있어서 이해타산적이고 실용주의적 사고를 지니며, 실질적인 필요성이나 물질적 가치를 더 우선으로 생각함.

 

4. 이 작품의 서술상 특징을 찾아보고, 거기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생각해 보자.

파초를 키운 과정을 자세히 서술하고, 대화를 중심으로 내용을 서술해 간다. 독자에게 사실감과 현장감을 느끼게 하려고
     
일상에서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을 소재로 삼았다. 독자에게 흥미와 친근감을 주면서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5.  다른 사람에게 별것 아닌 것이 자신에게는 소중했던 일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왜 그렇게 생각하였는지 <보기>와 같이 정리해 보고, 자신의 인생관과 연결지어 글을 써 보자.

<보기>

* 제재 : 10원짜리 동전

* 다른 사람들의 생각 : 싼 것, 가치 없는 것

* 나의 생각 : 경제적 기회 비용만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작품 읽기

 

작년 봄에 이웃에서 파초 한 그루를 사 왔다. 얻어온 것도 두어 뿌리 있었지만 모두 어미 뿌리에서 새로 찢어낸 것들로 앉아서나 들여다볼 만한 키들이요 '요게 언제 자라서 키 큰 내가 들어선 만치 그늘이 지나!'(파초가 만들어 주는 그늘을 기대하며 파초를 키움) 생각할 때는 저윽('적이'의 방언, 어지간한 정도로) 한심하였다. 그래 지나다닐 때마다 눈을 빼앗기던 이웃집 큰 파초를 그예 사 오고야 만 것이었다.

워낙 크기도 했지만 파초는 소 선지가 제일 좋은 거름이란 말을 듣고 선지는 물론이요, 생선 씻는 물, 깻묵 물 같은 것을 틈틈이 주었더니 작년 당년으로 성북동에선 제일 큰 파초가 되었고 올봄에는 새끼를 다섯이나 뜯어내었다. 그런 것이 올 여름에도 그냥 그 기운으로 장차게(곧고도 길게) 자라 지금은 아마 제일 높은 가지는 열두 자도 훨씬 더 넘을 만치 지붕과 함께 솟아서 퍼런 공중에 드리웠다.

지나는 사람마다

"이렇게 큰 파초는 처음 봤군!" / 하고 우러러보는 것이다. 나는 그 밑에 의자를 놓고 가끔 남국의 정조(情調, 대상에 대해 느끼는 감정)를 명상한다.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 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 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다문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珠簾, 구슬 따위를 꿰어 만든 발. 발은 가늘게 쪼갠 대나무나 갈대 등을 엮어 무엇을 가리는 데 쓰는 물건) 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 위에까지 비는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빗방울이 파초 잎 위에 퉁기는 소리를 들을 때, 나는 마치 가슴에 비가 뿌려지는 것 같은 서늘함을 느낀다는 의미임. 그런데 실제로 비를 맞는 것이 아니므로 옷이 비에 젖지 않는다고 표현한 것임),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

* 전반부 → 이웃에서 사온 파초가 크게 자라 글쓴이에게 주는 기쁨(싱그럽고 서늘함)

 

 

오늘 앞집 사람('나'와 대조적인 가치관을 지닌 인물)이 일찍 찾아와 보자 하였다. 나가니,

"거 저 파초 파십시오." / 한다.

"팔다니요?"

"저거 이전 팔아 버리셔야 합니다. 저렇게 꽃이 나온 건 다 큰 표구요, 내년엔 영락없이 죽습니다. 그건 제가 많이 당해 본 걸입쇼." / 한다.

"죽을 때 죽더라도 보는 날까진 봐야지 않소?"

"그까짓 인제 둬 달 더 보자구 그냥 두세요? 지금 팔면 파초가 세가 나 저렇게 큰 건 오 원도 더 받습니다 ……. 누가 마침 큰 걸 하나 구한다니, 그까짓 슬쩍 팔아 버리시죠."

생각하면 고마운 말이다. 이왕 죽을 것을 가지고 돈이라도 한 오 원 만들어 쓰라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얼른 쏠리지 않는다.(글쓴이는 파초를 통해 자신의 취향과 멋을 드러내 왔다. 그리고 파초가 죽게 되어 쓸모가 없어진 상황에서도 버리지 않고 있다. 이는 자신이 아끼는 사물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를 통해 금전적 · 물질적 가치만을 중시하는 현대적 가치관에 대한 비판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까짓 거 팔아 뭘 허우."

"아, 오 원쯤 받으셔서 미닫이에 비 뿌리지 않게 챙(차양)이나 해 다시죠."

그는 내가 서재를 짓고 챙을 해 달지 않는다고 자기 일처럼 성화하던(몹시 귀찮게 굴던) 사람이다.

나는, 챙을 하면 파초에 비 맞는 소리가 안 들린다고 몇 번 설명하였으나 그는 종시 객쩍은(행동이나 말, 생각이 쓸데없고 싱거운) 소리로밖에 안 듣는 모양이었다.

그는 오늘 오후에도 다시 한 번 와서

"거 지금 좋은 작자가 있는뎁쇼 ……." / 하고 입맛을 다시었다.

정말 파초가 꽃이 피면 열대 지방과 달라 한 번 말랐다가는 다시 소생하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마당에서, 아니 내 방 미닫이 앞에서 나와 두 여름을 났고 이제 그 발육이 절정에 올라 꽃이 핀 것이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파초가 기세 좋게 푸르름을 펼치고 있는 모습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음.) 그가 한 번 꽃을 피웠으니 죽은들 어떠리! 하물며 한마당 수북하게 새순이 솟아오름에랴!

소를 길러 일을 시키고 늙으면 팔고 사간 사람이 잡으면 그 고기를 사다 먹고 하는 우리의 습관이라 이제 죽을 운명의 파초니 오 원이라도 받고 팔아 준다는 사람이 그 혼자 드러나게 모진 사람은 아니다.(보통 사람들의 이해타산적인 행동을 이해하는 작가) 그러나 무심코 바람에 너울거리는 파초를 보고 그 눈으로 그 사람의 눈을 볼 때 나는 내 눈이 뜨거웠다.(이해타산적인 삶의 태도에 대한 안타까움과 파초에 대한 미안함)

"어서 가슈. 그리고 올가을엔 움이나 작년보다 더 깊숙하게 파 주슈."

"참 딱하십니다."

그는 입맛을 다시며 돌아갔다.

* 후반부 → 수명이 다한 파초를 두고 앞집 사람은 팔아 버리라고 나에게 조언해 줌.

-수필집 <무서록(無序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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