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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시가/가사]북찬가(北竄歌) - 이광명-

by 휴리스틱31 2022.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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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찬가(北竄歌)                                 - 이광명-

 

앉은 곳에 해가 지고 누운 자리 밤을 새워

잠든 밧긔 한숨이오 한숨 끝에 눈물일세

밤밤마다 꿈에 뵈니 꿈을 둘너 상시(常時)과저

학발자안(鶴髮慈顔) 못 뵈거든 안족서신(雁足書信) 잦아짐에

기다린들 기별 올까 오노라면 달이 넘네

못 본 제는 기다리나 보게 되면 시원할까

노친(老親) 소식 나 모를 제 내 소식 노친 알까

산과 강물 막힌 길에 일반고사(一般苦思) 뉘 헤올고

묻노라 밝은 달아 두 곳에 비추는가

따르고저 뜨는 구름 남천(南天)으로 닫는구나

흐르는 내가 되어 집 앞에 두르고저

나는 듯 새나 되어 창가에 가 노닐고저

내 마음 헤아리려 하니 노친 정사(情思) 일러 무삼

여의(如意) 잃은 용이오 키 없는 배 아닌가

 

 

추풍의 낙엽같이 어드메 가 지박(止泊)할고

제택(第宅)도 파산하고 친속(親屬)은 분찬(分竄)하니

도로에 방황한들 할 곳이 전혀 업네.

어느 때에 주무시며 무스 것을 잡숫는고

일점의리(一點衣履) 살피더니 어느 자손 대신할고

나 아니면 뉘 뫼시며 자모(慈母) 밧긔 날 뉘 괼고

남의 업슨 모자정리(母子情理) 수유상리(須臾相離) 못하더니

조물(造物)을 뮈이건가 이대도록 떼쳐 온고.

 

해가 지면 아무 곳에나 앉고 그 자리에 누워서 밤을 지새우니

잠자는 시간 외에는 한숨만 나오고, 한숨 끝에는 눈물이 흐른다.

밤마다 꿈 속에서는 (그리움의 대상이) 보이므로 꿈을 평상시처럼 여기고 싶구나.

어머니를 뵙지는 못하고 편지만이라도 자주 보내니

소식을 기다려 보지만 날짜만 지나가는구나.

어머니를 뵙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지만, 막상 보게 되면 시원할까.

어머니의 소식을 내가 모르는데, 내 소식을 어머니가 알 리가 있을까.

산과 물로 막힌 길 때문에 생긴 숱한 괴로움을 누가 헤아릴 것인가.

밝은 달에게 묻노라, 따뜻함을 두 곳에 비추고 있는가.

 

 

떠 가는 구름을 따르고 싶구나. 남쪽 하늘로 달려가는구나.

흐르는 시냇물이 되어 집 앞을 둘러 흐르고 싶구나.

날아가는 새가 되어 (어머님 계신) 창 앞에 가서 노닐고 싶구나.

내 마음을 헤아려보니. 어머님이 품으신 생각과 정은 말하여 무엇하리.

여의주를 잃은 용이요, 키가 없는 배가 아닌가.

가을 바람에 떨어지는 낙엽처럼 어디에 가서 머무를까

여러 집안들도 망해 버리고 친척은 흩어져 숨으니

길거리에서 서성거려 보아도 갈 곳이 전혀 없네.

(어머니는) 언제 주무시며 무엇을 드시는가?

한 벌 옷과 한 켤레 신발로 지내시더니, 어느 자식이 나를 대신할까.(자신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모실 자식이 없다는 뜻)

내가 아니면 누가 어머니를 모시며, 어머니 외에 누가 나를 사랑할까.

다른 사람들에게 없는 모자간의 인정과 의리 때문에 잠시도 서로 떨어져 지내지 못하더니

(누가) 조물주를 움직였는가, (어머니와 나를) 이토록 떨어뜨려 놓았는가?

 

 

[주요 어구 풀이]

 

  • 막힌 길 → 화자가 처한 상황을 나타낸 시어
  • 밝은 달, 뜨는 구름 → 화자가 하소연하는 대상
  • 흐르는 내, 새 → 화자가 자신을 동일시하고자 하는 대상
  • 여의 잃은 용, 치 없는 배 → 화자가 자신을 비유한 대상

 [감상 및 해설]

 

이광명은 이진유의 막내 동생인 이진위의 아들이다. 이광명은 독자로서 10세 때 아버지를 여의었는데, 영조 즉위 후 노론과 소론 사이의 당쟁의 와중에서 이진유가 의금부에서 죽게 되고 집안 어른들과 종형제들의 벼슬 자리가 모두 끊겼다. 당쟁에 패해 집안이 한번 쓴 맛을 보았기 때문에 이광명은 서울을 버리고 강화도에 내려와 살았다. 그러나 을해사옥의 여파로 백부인 이진유에게 역률이 추가로 시행되어 이광명과 사촌 형제들이 모두 유배를 가게 되었는데, 이광명은 함경도 갑산으로 유배를 갔으며 이때 이 작품을 지었다.

'북찬가'에는 유배지에서 겪는 어려움을 드러내는 것뿐만 아니라 홀로 계신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염려하는 내용도 담겨 있다. 작가의 의식 기저에는 아버지의 부재로 말미암은 고독감과 편모 봉양의 책임감이 무겁게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본인이 형제가 없는 독자라는 점, 게다가 친자식도 없다는 점이 더욱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고, 그 고독감은 스스로에게 어머니에 대한 책임을 끊임없이 상기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

화자는 '구름, 내, 새'가 되어서라도 어머니 곁에 가고 싶어 하고, 의지할 곳 없이 홀로 지내는 어머니의 생활을 걱정한다. 유배 가사에 일반적으로 드러나 있는 임금에 대한 충의사상이나 유배당한 현실에 대한 언급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비유적 표현을 통해 상황을 표현하고, 자연물을 통해 그리움의 정서를 드러낸다는 점, 4음보의 반복과 대구법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 등이 특징이다.

 

 

[핵심 정리]

 

◆ 갈래 및 형식 : 기행가사, 유배가사

◆ 특성

* 설의법, 영탄법, 도치법, 비유법, 대구법 등 다양한 수사법을 사용하여 상황과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냄.

* 상투적 표현(천산만수 막힌 길, 추풍의 낙엽 등)의 사용

* 일반적인 유배 가사에 나타나는 유배당한 현실과 정적에 대한 발분적 정서가 없고, 임금을 그리워하며 임금의 은혜에 감읍하는 내용도 없다. 오직 신세 고단함을 한탄하며 노모를 그리워하는 정서가 있을 뿐이다. 수기치인이라는 사대부적 이상을 꿈도 못 꾸고 그저 노모를 모시고 소박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소박한 소망만이 담겨 있을 뿐임.

* 제목 '북찬가'는 '북쪽으로 숨은(유배된) 노래'라는 뜻임.

◆ 주제 : 유배지에서 보내는 애절한 사모곡,  어머니를 봉양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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