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살
- 고 은 -
우리 모두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
박혀서
박힌 아픔과 함께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몇 십 년 동안 가진 것,
몇 십 년 동안 누린 것,
몇 십 년 동안 쌓은 것,
행복이라든가
뭣이라든가
그런 것 다 넝마로 버리고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자.
허공이 소리친다.
허공 뚫고
온몸으로 가자.
저 캄캄한 대낮 과녁이 달려온다.
이윽고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
단 한 번
우리 모두 화살로 피를 흘리자.
돌아오지 말자!
돌아오지 말자!
오 화살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 <새벽길>(1978) -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자기 희생적, 의지적, 참여적, 상징적
◆ 표현 : 결의에 찬 어조
단순하고 명료한 비유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화살 → '투쟁의 전위'를 상징함.
* 썩어서 돌아오지 말자. → '촛불이나 밀알'처럼 자신을 희생하자는 다짐이 담긴 말
* 우리 모두 숨 끊고 활시위를 떠나자 → 죽을 각오로 투쟁의 전위에 나서자는 외침
* 몇 십년 동안 가진 것 ~ 그런 것 다 → 소시민적 안일함과 불의에 침묵하면서 지킬 수 있었던 기득권들.
부와 명예, 행복 등.
* 넝마로 버리고 → 기득권의 포기
* 허공이 소리친다. → 화살이 날아갈 때 나는 소리를 나타낸 말
허무와 체념과 안일함에 빠진 사회를 일깨우고자 하는
* 캄캄한 대낮 → 암울한 시대상황(모순 진술=역설)
* 과녁 → 파괴의 대상으로, 군부 독재 세력의 핵심부
* 과녁이 피 뿜으며 쓰러질 때까지 → 불의와 독재 권력의 타도
* 돌아오지 말자 → 비장한 다짐
반복을 통해 의지를 강조하면서 리듬감을 획득함.
* 정의의 병사여 영령이여 → 화살의 진정한 의미
◆ 제재 : 화살 → 한 번 시위를 떠나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목표물을 맞추면 그것을 깨뜨리는 무기이다. 이러한 속성을 가진 '화살'을 통해 현실 세계를 살아가는 이들이 뒤돌아보지 말고 목표(불의한 세상)를 향해 돌진하여, 그것을 굴복시키는 의지를 가질 것을 강조하고 있다.
◆ 주제 : 불의한 사회에 대한 저항의지, 죽음을 초월한 불의에 대한 저항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투쟁 의지를 다짐
◆ 2연 : 희생의 의지 촉구
◆ 3연 : 불의한 세상에 대한 대결 의지
◆ 4연 : 후회하지 않겠다는 다짐
◆ 5연 : 정의 실현에 대한 열망과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1970년대 유신 정권의 독재에 온몸으로 맞서 싸웠던 시인의 민주화에 대한 결여난 의지를 보여 주는 작품이다. 그러므로 '화살'은 민주화 운동에 헌신적으로 앞장서 투쟁했던 사람, 즉 민주화 투쟁의 전위를 상징한다.
시인은 이 땅의 자유와 민주를 위해서 '가진 것', '누린 것', '쌓은 것'이라는 부와 명예뿐 아니라 '행복'도 넝마처럼 버리자고 한다. 나아가 날아가 돌아오지 않는 화살처럼 '가서는 돌아오지 말자'고 반복해서 외침으로써 목숨까지 바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출한다. 또한, '박힌 아픔과 함께 썩겠다.', '피를 흘리겠다'는 다짐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민주화를 앞당기겠다는 순국의 의지로 하나의 밀알이 썩어야만 만인을 먹이는 빵을 얻을 수 있다는 논리와 상통한다. '캄캄한 대낮'으로 표상되는 폭압의 현실 속으로 '화살이 되어 온몸으로 가겠다'는 시인의 대 사회적 선언은 마침내 그를 허무의 깊은 늪에서 벗어나 멀고도 험한 민중 · 민족 · 통일 문학의 금자탑으로 우뚝 서게 한 것이다.
◆ 더 읽을거리 : 「시의 길을 여는 새벽별 하나」-김상욱 저-
얼마나 당당하며 또 전투적인 선언인가? 화살이 되어 과녁을 향해 온 몸으로, 모든 것 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오직 단 한번 꼿꼿한 거부의 몸짓으로 가자는 것이다. 거듭 '온몸으로 가자'는 재촉과 권유, 그리고 '돌아오지 말자'는 다짐이 하나로 얽혀 말할 수 없는 비장함으로 우리를 성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저만치 앞선 마디에서 제시한 「조국의 별」이후 비슷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그의 시는 우리 시에서 보기 드문 강한 남성적 이미지를 청유형의 어미 속에 둔중한 무게와 깊이를 지닌 채 길어 올리고 있다. 더욱이 이 둔중한 무게에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격파해 나가는 치열함이 도처에 널려 있음으로 하여 감동 이전에 숙연함을 느끼게 한다. 이는 이 시의 장점일 수 있으나 실은 단점이기도 하다.
때때로 사람이란 해야 할 일에 떠밀리다 보면, 어느새 자신의 모습은 감추고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일에 조급하게 매달리기 마련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따뜻하게 그를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그는 이제 막 오랜 고행의 산사에서 나와 세상에서 세상을 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몸을, 그리고 시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한 개인의 결단으로 변화되고, 하나의 촛불로 캄캄한 밤이 휘황한 대낮으로 바뀌지 않는다. 역사는 일상에 붙박힌 견고한 삶 속에서의 실천을 요구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꾸려내는 자잘한 삶의 의미들이 뭉칠 때, 그때서야 비로소 꿈틀거리며 솟아오르는 것이다. 특히 신석기 시대의 타제석기를 보는 듯한 불규칙하게 튀어오른 날선 첨단은 상대방을 상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자기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한다. 그 상처가 아물 때, 그때 비로소 그의 시는 더욱 넓은 공감 속에서 읽히고 불리워질 것이며, 읽는 이를 주눅들게 하는 높은 곳에 존재하는 감동이 아니라 언제라도 어깨를 부여안을 수 있는 높낮이 없는 가운데 따사로운 감동으로 전해질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그의 시는 오래지 않아 이러한 변모를 보여주었다. 물론 자신에 대한 치열한 부정과 무너뜨림이 더욱 앞당겨 이러한 모습을 획득하게 만들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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