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 도종환 -
견우 직녀도 이 날만은 만나게 하는 칠석날
나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
안개꽃 몇 송이 땅에 묻고 돌아오네.
살아 평생 당신께 옷 한 벌 못 해 주고
당신 죽어 처음으로 베옷 한 벌 해 입혔네.
당신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이웃에 나눠주고
옥수수밭 옆에 당신을 묻고 돌아오네.
은하 건너 구름 건너 한 해 한 번 만나게 하는 이 밤.
은핫물 동쪽 서쪽 그 멀고 먼 거리가
하늘과 땅의 거리인 걸 알게 하네.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한 해 한 번 당신 만나는 길임을 알게 하네.
-시집 <접시꽃 당신>(1986)-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애상적, 산문적, 회고적
◆ 표현
* 시각적 심상
* 담담한 독백체의 어조로 감정을 절제하여 표현함.
* 만남과 이별, 하늘과 땅 등의 대립적인 이미지를 사용함.
* 동일한 종결 어미 '-네'를 사용하여 각운의 효과를 얻음.
* 역설적 상황 설정(칠석날 : 이별이자 만남)을 통해 재회에 대한 믿음을 강조함.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칠석날
→ 표면적 의미는 '아내가 땅에 묻힌 날', 함축적 의미는 '견우 직녀처럼 다시 만날 날'
역설적 상황
* 안개꽃 → 이별과 죽음을 상징함.
* 4, 5행 → 가난했던 생활 형편을 짐작할 수 있으며, 회한의 정서가 형상화됨.
* 베옷 → '수의'
* 손수 베틀로 짠 옷가지 몇 벌 → 소박하고 성실했던 아내의 성격을 암시하는 소재
* 하늘과 땅의 거리 → 삶과 죽음, 이승과 저승의 거리, 나와 당신의 거리
* 당신 나중 흙이 되고 내가 훗날 바람 되어 / 다시 만나지는 길임을 알게 하네.
→ 죽어서도 이 땅의 흙과 바람으로 만나려는 그리움이 나타남.
흙과 바람은 영원히 공존할 수 있는 소재임.
* 내 남아 밭 갈고 씨 뿌리고 땀 흘리며 살아야
→ 임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상반되게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구체화되어 나타남.
◆ 제재 : 임과의 사별
◆ 주제 : 사별(死別)한 아내로 인한 슬픔과 그 극복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행 ∼ 7행 :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옴.(사별의 슬픔)
◆ 8행 ∼ 14행 : 돌아오면서 느낀 회한(재회에 대한 믿음과 슬픔의 극복)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연의 구분은 없지만, 내용 전개상 전반부 7행과 후반부 7행 두 부분으로 나누어 이해할 수 있다. 전반부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네'로 요약될 수 있는 내용이고, 후반부는 당신을 땅에 묻고 돌아오면서 새삼스레 알게 된 것들을 그 내용으로 한다. 이 시의 상황 설정이 반어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임을 땅에 묻은 날이 공교롭게도 견우와 직녀가 오랜 이별 끝에 서로 만나는 칠석날이라는 데 있다. 화자가 현재 처해 있는 정황과 상반된 의미를 지니는 이 칠석날은, 그러나 끝까지 상반된 의미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계기로 귀착된다. 즉, '칠석날'은 임이 죽어 땅에 묻힌 날이라는 표면적인 의미 외에도 언젠가 당신이 '흙'이 되고 내가 '바람'이 되어 견우와 직녀처럼 다시 만날 것이라는 함축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날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기에 이 시의 화자는 섣불리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임의 죽음 앞에서 자칫 감상에 젖기 쉬우나, 그 슬픔을 새로운 희망으로 전환시켜 내는 힘이 느껴지는 시로, 한용운의 시에서 느낄 수 있는 그 어떤 면모를 떠오르게 한다.
* 출처:꿈이 있는 책, 문원각
◆ 이 시에 나타나는 대립적인 소재
이 시는 몇 가지 대립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시적 화자의 슬픔을 강조하고 있다. 먼저 '아내가 살았을 때 사 주지 못한 옷'과 '베옷'을 들 수 있다. 아내가 살아 있을 때 좋은 옷 한 벌 해 주지 못한 화자가 죽은 아내가 입을 베옷, 즉 수의를 한 벌 해 주었다는 것은 죽은 아내에 대한 회한을 극명하게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수평적 공간의 극과 극인 '은핫물 동쪽 서쪽'을 대비시키고 있고, 수직적 공간의 극과 극인 '하늘과 땅의 거리'를 대비시키고 있다. 이러한 대비를 통해 죽은 아내와 자신과의 '생사의 거리'가 너무도 멀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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