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개(1936)
-이 상-
● 줄거리
<프롤로그>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인 '나'는 독백을 통해 자신의 의식의 상태를 보여주며 여성의 전부가 미망인이 아닌 사람이 없는 일상에 대한 자신의 논리를 펼친다.
유곽이라는 느낌이 없지 않은 33번지의 18가구에는 밤에 무엇을 하는지 침침한 방에서 낮잠을 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나는 누구와도 인사하지 않고 지내며, 18가구 중 제일 작고 아름다운 내 아내만을 소중히 생각한다. 우리 방은 대문간에서 일곱 번째 칸에 있다. 장지로 두 칸으로 나누어 볕이 드는 아랫방은 아내가 쓰고 볕이 안드는 윗방은 내가 쓰고 있다.
아내가 외출하면 나는 얼른 아랫방으로 내려가서 동쪽 창문을 열고는 찬란히 빛나는 아내의 화장병과 돋보기를 가지고 논다. 아내의 방은 화려한 옷들이 많다. 그러나 내방은 코르덴 양복 한벌이 전부이다. 아내는 열한 시에 첫 번째 세수를 하고 저녁 일곱 시에 두 번째 세수를 한다.
나는 아내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나 아내가 외출을 즐기는 것으로 보아서 직업이 있는 듯하다. 아내에게 내객이 있는 날은 나는 온종일 이불을 쓰고 누워 있어야 한다. 나는 아내가 주는 것을 넙죽넙죽 받아 먹기는 하나 영양부족으로 야위어 간다. 내객이 가거나 외출에서 돌아오면 아내는 내 방에 들러 은화를 놓고 간다. 어느날 돈이 전혀 필요없다고 생각한 나는 아내에게서 받은 은화를 넣은 벙어리를 변소에 갖다가 버린다.
나는 아내의 밤 외출을 틈타서 외출을 한다. 다리가 아파서 견디지 못한 나는 내객이 있는 아내의 방을 건너 내 방으로 들어온다. 두 번째 외출을 한 나는 경성역의 시계가 자정을 지난 것을 본 뒤 집으로 돌아와서 아내에게 이원을 주고 잠을 잔다. 경성역 대합실 곁 다방에서 열한 시까지 있다가 비를 맞고 자정을 기다린다. 오한을 견디지 못한 나는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방에서 못 볼 것을 본다. 나는 여러 날을 앓아 눕는다. 나는 아내가 주는 약을 받아 먹고 잠에 취하며 거울을 보러 아내의 방에 갔다가 아스피린처럼 생긴 최면약 아달린을 발견한다.
아달린을 주머니에 넣고 외출을 한 나는 아내가 나를 밤낮으로 재워놓고 무엇을 하려 했는가를 생각한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남은 돈을 문지방에 놓고 도망쳐 나온다. 나는 미쓰꼬시 옥상에 올라가 지나간 스물 여섯 해를 회고하면서 자문자답을 하다 불현듯이 겨드랑이가 가려움을 느끼고, '날개야 돋아라 날자'를 외쳐대고 싶어진다.
● 인물의 성격
◆ 나 → 화자이면서 주인공. 자의식에 사로잡힌 좌절한 지식인의 모습이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로 표현된 자폐적 성격의 소유자이고, '두 개의 태양'으로 상징되는 이중 성격 내지 자아분열의 징후를 보이는 비일상성의 인물
◆ 아내 → 물질과 사회적 타협의 표상으로 타락한 현실 속에서 그럭저럭 살아가는 존재이다.
● 구성 단계
◆ '나'가 집에서 보고 느낀 의식, 무의식의 상태와 외출해서 느낀 점 등을 순차적으로 나타낸 단순구성
● 이해와 감상
이상의 문학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심리주의 소설로서, 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자기 소모적이고 해체적인 삶을 통해 사회 현실의 문제를 심리적 의식, 즉 내면으로 투영시킨 작품이다. '아내'는 '나'를 제압, 구속하고 압박하는 당위의 거대함을 보여주고, '나'는 동물처럼 그에 길들여진 존재의 왜소함을 나타내고 있다. 이 당위와 존재라고 하는 상반된 입장이 서로 대립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게으름과 삶의 권태에 찌든 주인공(존재)이 아내(당위)에게 승복하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존재와 당위의 불화없는 공존관계가 성립되지만, 이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나'는 돈으로 인해 외출에의 계기를 갖게 되고, 나의 외출로 인해 아내는 나의 존재를 구속하지 못한다. 다섯 차례에 걸친 '외출'이 의미하는 것은, 일상적이고 비본질적인 자아에 눌려 마비되었던 본질적 자아를 자각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본질적 자아를 되찾는, 의지적인 인간회복에의 과정이다.
이 작품은 소위 '의식의 흐름' 수법을 시도하고 주관적 내면 의식을 객관화시켜 드러내는 등, 현대문학적인 기법을 선보임으로써 발표 당시부터 문단에 상당한 파문을 던졌고, 비평계에서는 리얼리즘에 입각한 논란을 일으켰다. 현실도피적이고 자폐적인 내성 소설로 보는 부정적 견해와 주관적 의식세계를 객관화하여 사실주의를 심화시켰다는 긍정적 견해가 그것이다.
이 소설은 이기적이고 억압적인 외부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과 동떨어져서 살아가는 자폐증을 지닌 인간이 차츰 현실을 인식하고 자폐증에서 탈출을 시도하는 심리적 갈등을 내적 독백의 형태를 빌어 그리고 있다. 아내는 살기 위해 몸을 파는 생활적 자아이고, 생활력이 없는 나는 본래적 자아일 수도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심리주의 소설, 초현실주의
◆ 배경
* 공간적 - 해가 들지 않는 서울의 33번지 구석방, 거리, 역대합실, 산, 옥상
* 시간적 - 1930년대 어느 날
* 사상적 - 다다이즘, 모더니즘
◆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 자기의 주관적인 의식 세계를 다루면서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 특이한데, 이것은 일상적 자아가 본질적 자아를 대상화하여 관찰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나'가 제시하는 여러 상황에 독자를 참여하게 하여 자신의 의식 세계를 더욱 사실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효과가 생김.
◆ 표현상 특징 : 독백체에 의한 직접적 서술, 의식의 흐름
◆ 갈등구조 : 주인공 내부에서의 일상적 자아와 본래적 자아간의 갈등. 이 두 개의 분열된 자아를 통합하여 완전한 인간으로 통합해가는 것이 이 작품의 결말이다.
◆ 주제
* 분열된 자아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의식의 심화와 그 초극을 위한 몸부림
* 식민지 치하 지식인의 분열된 자의식과 극복 의지
● 생각해 볼 문제
1. '나'와 '아내'는 대조적인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이것이 드러나는 부분을 찾아 비교해 보라.
⇒ 아내의 방은 화려하고 햇볕이 들지만, '나'의 방은 빈대가 들끓고 어두침침하다. 아내는 화려한 옷에 하루 두 차례 세수를 하고 '돈'을 벌지만, '나'는 검은색 단벌에 세수도 하지 않고 아내가 주는 돈을 그저 받기만 한다. 즉, '나'는 남편임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사회적, 성적으로 아내보다 열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
2. 나에게 있어 '방'과 '거리'는 각각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
⇒ '방'은 사회성과 일상성이 결여되어 유폐된 공간을, '거리'는 자아 회복의 공간을 의미한다.
3. 이 작품에서 '외출'이 상징하는 바는 ?
⇒ 아내에게 종속된 관계와 전도된 질서 및 폐쇄된 방 등으로부터 탈출하여, 본래적 자아를 회복하고 분열된 자아를 통일하며 퇴행적인 자폐적 생활의 굴레로부터 해방됨을 상징한다.
4. 결말 부분의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는 외침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
⇒ 자아를, 자신의 욕망과 꿈과 이상을 되찾고 거기 따라 살고 싶다는 절박한 소망이 암시된 말.
5. '나'와 '아내'의 관계를 간단히 묘사하고, 근대도시사회에서의 인간관계가 거기서 어떻게 상징되고 있는지 써라.
⇒ 부부라는 관계를 이루고 있음에도 가족적인 유대를 갖고 있지 못한 이들은,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 사이의 연대감이 상실된 근대사회에서의 고립되고 소외된 인간관계를 보여준다.
6. '의식의 흐름'이라는 수법이 드러난 구절을 찾아보자.
⇒ 아스피린, 아달린, 아스피린, 아달린, 맑스, 말사스, 마도로스, 아스피린, 아달린
7. 프롤로그에 드러난 '나'의 모습을 정리해 보고, 이후의 이야기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말해 보자.
⇒ 프롤로그에서의 화자는 자신을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반 쪽만의 자아를 가진 자신에 대한 냉소적 비판임과 동시에 그런 지성에 몰입해 있는 자신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이기도 하다. 이런 자아의 모습은 속이야기에서 그대로 구현되며, 상실된 자아를 회복하여 건강한 사회적 자아로 다시 태어나려는 몸짓으로 나타난다.
● 더 읽을거리
◆ 이 소설에서의 주요 공간인 '방'과 '거리'의 상징성, 외출이 지닌 상징성에 대해서
'방'은 유폐된 공간으로 자폐적 삶을 사는 나의 폐쇄적이고 종속적인 성격을 드러낸다.
'거리'는 열린공간으로 자아의 해방과 회복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소설의 구성은 '방'에서 '거리'로 나오는 과정과 일치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마지막 대목에서 '날자꾸나'의 자기 독백은 과거의 폐쇄적 삶과의 결별선언이다. 이 자유의 선언에 이르기까지 몇 차례의 외출을 거치는데, 물론 그것은 점층적 성격을 지닌다. 그 과정을 보면,
① 첫 번째 외출 : 아내의 사생활 인지
② 두 번째 외출 : 아내와의 관계에 변화가 옴
③ 세 번째 외출 : 폐쇄적인 환경에서 벗어남
④ 네 번째 외출 : 일상성에서 벗어난 삶으로의 이행
⑤ 다섯 번째 외출 : 자발적인 일탈 행동
이같은 변화의 과정 속에서 '나'는 음울한 자폐 상태에서 자아의 회복으로 점점 전이되어 간다. 따라서 주제가 '자아의 통합 지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감상을 위한 읽을거리
<날개>는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의 이야기다. 타락한 아내의 집 한 구석 방 안에서 기거하는 '나'는 아내가 없을 때 아내의 방에서 돋보기, 화장품 등을 가지고 노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아내가 어떻게 번 돈으로 자신에게 밥을 주는지, 왜 밤에는 잠만 자게 하는지 자세히는 모르고 , 알고 싶지도 않다. 내와의 갈등은 '나'의 분열된 자의식으로 나타난다. '나'의 자아는 분열되어 지극히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이런 불안한 자의식을 작가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활용하여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란, 특별한 줄거리 없이 등장인물의 생각을 따라가며 사건을 전개하는 기법을 말한다.
겉으로는 돈 한 푼 못 버는 무능한 모습이지만,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본질적 자아를 가진 '나'는 어느 순간 밖으로 나가게 된다.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었던 '방'을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방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쓸모없다고 버렸던 벙어리저금통의 돈이 필요하다. 그 돈이 있다면 숙명적으로 발이 맞지 않는 아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다. 즉, 자아 회복을 위한 장치로 '돈'이 작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작가 이상은 뛰어난 지식인이었다. 그는 1926년 경성고등공업학교의 건축과에 입학한 합격자 12명 가운데 유일한 조선인 학생으로 수석을 다퉜으며 일본인처럼 일본어를 구사할 줄 알았다고 한다. 건축뿐 아니라 시와 소설 등 문학 활동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으며, 친구의 소설책에 그림을 그려 줄 만큼 미술 실력도 뛰어났다. 하지만 이상은 생업에 종사하지는 않았다. 기생 금홍과 관계를 맺던 이상은 그녀가 벌어다 준 돈으로 삶을 유지했고, 금홍과 헤어진 후에도 동림이라는 여자의 힘으로 먹고 살았다. <날개>에는 이러한 이상의 의식이 반영되어 있다. 자신의 힘으로는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는 무능력한 식민지 지식인. 정오의 사이렌 소리를 듣고 "날아 보자."를 외치는 '나'는 종속된 삶에서 벗어나려는 작가 자신이 아니었을까?
◆「날개」의 소설적 특징
소설 「날개」는 1936년 9월 『조광』에 발표되었으며, 이상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손꼽힌다. 이 작품은 비교적 명료하게 이야기의 줄거리가 드러나고 있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나'라는 지식인이다. '나'는 도시의 병리를 대표하는 매춘부인 아내와 기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런 희망도 비판적 자각도 없는 무기력한 주인공이, 좁은 방으로 표상되는 비정상적인 삶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망이 이 소설의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삶은 외적 현실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다. 오직 아내에게 기생하여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아내가 수상한 외출을 하거나 아내 방에 외간 남자를 불러들여도 분노할 줄 모르며, 오히려 착한 어린이나 순한 동물처럼 '아무 소리 없이 잘 논다.' 이 같은 비정상적인 현실에 대한 적응은 자신의 존재를 비하시키고 자아에 대한 모독과 부정을 일삼는 병리적 쾌락으로 전화되어 나타난다. 주인공은 자기 자신을 동물적 존재로 비하하거나 아내가 아스피린이라고 속이며 건네주는 수면제를 먹고 무자각의 상태에 빠짐으로써 무의미한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의 후반부에서는 주인공이 이러한 무의미한 삶과 자의식의 세계로부터 탈출하려는 강렬한 의지를 표출해내고 있다. 서두에서 주인공의 무기력한 삶이 '박제'로 상징되었다면, 결말 부분에서 표출되는 탈출에의 의지는 '날개'로 상징된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는 절규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 탈출에의 의지는 미래로의 적극적인 투기라기보다는 결코 행동화될 수 없는, 자의식 속에서만 메아리치는 간절한 내적 원망의 표백에 더 가까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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