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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 Seeing

[현대시 해설]빈집 -기형도-

by 휴리스틱31 2021.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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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사-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낭만적, 비극적, 애상적

 특성

① 비극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목소리로 사랑의 상실을 노래함.

② 반복적 표현('잘 있거라')을 통해 상실감과 절망감을 강조함.

③ 각운(~네, ~아)을 통해 운율을 형성함.

④ 대상의 열거를 통해 화자의 상실감을 강조함.

⑤ 상징적 소재를 통해 화자의 정서를 표현함.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1연 → 화자가 처한 상황을 제시함, 실연으로 인한 아픔

* 2연에 열거된 6가지 객관적 상관물 → 사랑을 할 때 접했던 것들(과거적 소재, 암시적 시어)

* 짧았던 밤 → 화자의 사랑이 가능했던 시간으로, 심리적 거리감의 표현을 씀.(아쉽고 애틋한 사랑)

* 겨울 안개 → 불투명한 미래로 인한 불안과 방황으로 그대와의 사랑이 불확실한 상황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 → 사랑으로 인한 화자의 가슴앓이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황

 

 

*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

     → 사랑하는 마음만 가득할 뿐 정작 그대에게 사랑의 고백은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날들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 → 사랑을 표현하지 못해 눈물로 얼룩졌던 날들

*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 → 사랑을 포기하고자 하는 마음(이루지 못한 사랑)

*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 이별의 충격 때문에 사랑과의 소통을 단절함.

*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사랑의 실패 후에 상실감으로 가득찬 화자의 내면 세계

 

 화자 : 사랑을 더 이상 할 수 없는 처지(죽음)에 놓인 사람

 제재 : 빈 집 → 공허하고 쓸쓸한 이미지. 사랑에 실패하고 모든 것을 상실한 화자의 공허한 내면세계의 상징.  절망의 공간.  폐쇄적인 공간.

 주제 사랑을 잃은 후의 상실감과 절망감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사랑을 잃어 버림.(시적 상황 제시)

◆ 2연 : 사랑을 잃은 후에 과거에게 단절을 고함.(화자의 태도)

◆ 3연 : 사랑을 잃고 세상과의 소통을 단절함.(화자의 태도)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첫 번째 행에서  상황이 집약적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그 안에서 그는 '흐느꼈네'라는 탄식을 오래도록 어루만진 다음 어찌할 수 없는 결별을 떠올린다. 그는 밤이 으슥토록 '내 사랑'을 생각하던, 하여 어느새 부윰하게 동이 터오던 숱한 짧은 밤과도, 그리움을 잔뜩 부추키던 그 새벽 어름의 아련한 안개들과도, 책상 한 귀퉁이에서 묵묵히 자신의 짧았던 밤들을 함께 지새우던 촛불들과도 결별한다. 앞뒤로 다감하게 읊조리는 '잘 있거라'를 거느린 채. 무엇인가를 전하고픈 갈망과 그 어떤 언어로도 감당할 수 없었던 곡진한 감정으로 언제까지나 여백으로만 눈을 아프게 하던 흰종이들과도, 정작 어떤 말도 건네지 못한 채 그저 홀로 남겨진 빈 공간에서 눈자위를 적셔오던 눅눅함들과도, 차례로 결별한다. 이들 연상으로 이어지는 대상이 넓은 곳에서 점차 내밀하고 주관적인 것으로 좁혀지다가 마침내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는 총칭으로 뭉뚱거려짐으로써 객관적인 세계와 주관적인 심정이 통합된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상투적인 사랑의 종결이 아닌, 아주 낯설고 새로운 풍경에 우리는 마주치고 만다. 쓰다만 편지를, 멀리 풍경 속에 묻혀 화안히 웃고 있는 사진을 버리는 대신, 시의 화자는 이 모든 사랑에 얽힌 소도구들을 버리는 대신, 그 모든 것은 고스란히 남겨둔 채 스스로가 떠나는 것으로 뒤바뀌어 제시된다. 그리고는 '더듬거리며', 그 애틋함을 어루만지며, '문을 잠그'는 것이다. 결국 사랑을 잃어 버린 자신이 아니라, '가엾은 내 사랑'이 빈 집에 갇혀 버리고 마는 것이다. 결국 그 빈 집은 누구도 틈입할 수 없는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으로 전화되고, 비록 자신조차 들어설 수 없는 공간이 되어 버렸음에도, 훼손되지 않는 궁극적인 그리움의 공간으로 안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이 상처를 그리움으로 뒤바꾸어 내는 그의 놀라운 시인됨의 자질일 것이다.

 

이제 마악 서른이 된 젊은, 어쩌면 어린, 하여 고통조차 그리움으로 치환할 수 있었던 기형도는 우리를, 그를 아끼는 지인들과 그의 시를 아끼는 독자들을, 그가 거느리던 생애의 수많은 아름다운 편린들 모두를 빈 집에 가두고는 서둘러 문을 걸어 잠궈 버린 것이다.

 

 

◆ 더 읽을거리

화자는 이별을 겪은 이후 편지를 쓰고 있다. 그 편지의 수신인은 과거의, 이별하기 전의 자신의 모습들이다. 그 과거의 모습은 '짧았던 밤', '창 밖을 떠돌던 겨울안개', '촛불', '종이들', '눈물들'과 같은 시어들로 암시적으로 표현된다. 이 시어들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장면들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촛불이 켜져 있는 밤이다. 그때 창 밖에는 겨울 안개가 떠돌고 있다. 화자는 촛불이 켜진 방에서 흰 종이를 펼쳐 놓고 무언가를 쓴다. 그러나 그는 흰종이를 보며 공포를 느낀다. '사랑한다'는 고백을 쓰고 싶지만 용기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내내 망설인다. 망설이는 자신이 안타깝고 답답해서 급기야는 서글픈 마음이 들어 눈물을 흘린다. 그러다 문득 밤은 다 지나가고 날이 밝아온다. 화자는 이런 자기 자신의 모습들에 하나하나 인사를 한다.

3연에서는 안녕을 고한 과거의 자신에게서 떠나면서 그들이 머무르고 있는 공간을 폐쇄시킨다. 그 '폐쇄'작업은 그것들이 있는 공간 바깥에서 '장님처럼 더듬거리며' 문을 잠근다는 설정으로 표현된다. 나의 그 모든 '열망'(가엾는 내사랑)들은 빈집에 갇히고, 나는 그 빈집을 떠나가는 것이다.

 

[교과서 활동 다지기]

1. 이 시의 첫 연을 읽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시의 화자가 굳이 무엇인가를 '쓰는' 까닭에 대해 생각해 보자.

→ 화자는 사랑을 잃고 난 뒤에 굳이 무엇인가를 쓰고 있다. 화자에게 '쓰는 행위'는 자신이 잃은 것을 확인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사랑하는 이와의 헤어짐을 견디기 위한 하나의 방식이다.

 

(2) 이 시의 화자가 말한 방식과 유사하게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건을 하나 떠올려 보고, 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써 보자.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사랑을 잃고 나는 우네.
그대를 만나고 나는 노래를 부르네.

 

 

2. 이 시의 2연이 화자가 다음과 같이 종이에 쓴 내용을 고쳐 쓴 것이라 가정하고, 다음 (  ) 안을 채워 시의 내용을 구체화해 보자.

잘 있거라, (그대에게 편지를 쓰기에도)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 어두운 ) 겨울 안개들아
( 나의 짝사랑에 대해 )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나의 절망을 예감하고)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 그대에게 고백하지 못하는 나의 )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 이제는 나를 떠나가 버려 )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3. 다음 시구를 감상하고, 물음에 답해 보자.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 화자는 왜 자신을 '장님'에 빗댔는지 생각해 보자.

→ 사랑의 열망을 잃어 버려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2) '빈집'에 갇힌 대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이야기해 보자.

→ '빈집'은 사랑을 잃은 화자의 공허한 내면을 상징하는 것이므로, '빈집'에 갇힌 것은 '지나간 사랑의 추억과 열망'이라고 볼 수 있다.

 

4. 이 시의 표현상 특징을 정리해 보자.

* '밤', '겨울 안개', '촛불', '종이', '눈물'과 같이 화자의 눈에 비치거나 떠오르는 대상들을 나열하고 있다.

* 대상을 의인화하여 대상에게 이별의 인사를 건네고 있다.

* '장님'과 '빈집'처럼 비유적, 상징적인 시어를 통해 화자의 정서를 전달하고 있다.

 

5. 1980년대 이후 발표된 시 가운데 좋아하는 작품을 한 편 골라 친구들 앞에서 낭송해 보자.

<예시> : 정호승의 '기다리는 편지'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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