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포도
- 이육사 -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靑袍)를 입고 찾아 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 <문장>(1939) -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낭만적, 서정적, 상징적, 감각적(시각적),
◆ 표현
* 청,백의 선명한 색채의 대조(3연)
* 전통적 소재를 이용하여 정감어린 고향의 분위기를 표현함.
◆ 중요 시어 및 시구풀이
* 내 고장 → 민족에 대한 향수적 표현
어두운 시대의 억압을 벗어나 회복되어야 할 생명의 공간
* 청포도 → 풍요롭고 아름다운 삶
2연의 내용으로 보아, 역사적 사회적 운명을 같이 한 공동체의 원초적 연대의식의 결정체
* 마을 전설 → 조상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는 평화로운 삶의 이야기이자 민족이 염원하는 희망
단순히 옛날 이야기만을 의미하지 않고, 미래에 일어날 어떤 사건(손님이 찾아오는 것)을 예언하는 대상이기도 함.
* 주저리주저리, 알알이 → 염원의 정도를 나타낸 말
* 먼 데 하늘 → 그리움과 동경이 가득한 곳
*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막혔던 나라의 운수가 탁 트여, 새로운 민족의 시야가 열리고
* 흰 돛단배 → 간절히 기다리던 대상
* 고달픈 몸으로 오는 손님
→ 화자의 그리움의 대상이자, 조국의 해방을 의미
조국을 찾기 위해 투쟁했던 지사들의 모습
화해로운 삶의 자리와 분리되어 유랑하는 고달픈 자의 모습
주인이어야할 그가 시대적 현실속에서 나그네로 전락되었다가 돌아오는 모습
* 포도를 따먹으면 /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만
→ 오래 기다린 손님과 더불어 가질 수 있는 기쁨의 향연.
* 아이야 → 우리의 전통시가에 상투적으로 쓰이던 뜻없는 시구
* 은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
→ 순수하고 고결한 이미지(백색의 이미지)
'그 날'을 기다리는 시인의 마음가짐(향연과 정권에의 준비)
언젠가는 와야 할 그를 향하는 시적 자아의 순일한 정신 세계를 구체화함
미래를 향한 순결한 소망, 티없이 맑고 깨끗하고 정성스런 기다림의 모습
◆ 주제 ⇒ 풍요롭고 평화로운 현실에의 갈망
오랜 희망의 실현(조국 광복)에의 기다림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청포도로 연상되는 고향의 모습(서곡)
◆ 2연 : 아름다운 공간으로 나타나는 고향
◆ 3연 : 아름다운 공간으로 나타나는 고향
◆ 4연 : 전설의 내용 - 희망이나 광복의 도래
◆ 5연 : 화자가 소망하는 세계(민족의 향연)
◆ 6연 : 미래에 대한 순결한 소망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기다리는 자의 경건한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시인 자신의 현실적인 소망으로서라기 보다, 어떤 상징적이며 우의적인 기다림의 대상을 제시하여 고달프고 무망(無望)한 민족에게, 정서적이면서도 막연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했고, 그렇게 해서 삭막한 갈증을 충족시키게 하려고 했던 작품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 시는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는 조국 광복의 그 날, 잃어버린 고향과, 그 같은 평화롭고 화해로운 인간적 삶을 다시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육사의 아름다운 소망과 굳은 의지를 '청포도'라는 사물을 통하여 밝고 건강한 분위기와 서정성이 충만한 표현 방법으로써 보여 주고 있다.
[참고]
이 <청포도> 시의 배경은 경북 영일군 동해면 도구리로서, 영일만과 동해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당시 여기에는 일본인 미쓰아가 경영하는 대규모 포도밭과 동양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포도주 생산 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육사는 1940년 여름 항일 운동과 구금 생활에 상한 고달픈 몸으로 이곳을 찾아 왔다. 이곳의 애국 청년 김영호(당시 35세 작고), 정의호(당시 37세.작고), 이석진(당시 40세.작고)씨 등과 만나기 위함이었다. 장년의 육사는 우국 청년들과 함게 탐스런 포도송이들이 주렁주렁 달린 포도 숲 속에서 어쩌면 밀담을 나누기보다는 먼저 시상에 젖어 들었는지도 모른다. 포도송이처럼 짓푸른 영일만, 졸고 있는 듯 떠가는 돛단배, 우국 청년의 가슴을 메우는 기다림, 시인의 마음에는 잔잔한 시의 물살이 살랑대고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육사는 몰래 포항에 잠입해 청년들을 만난 뒤 역시 몰래 떠난 1년 뒤 삼륜 포도원과 영일만이 청포도를 탄생시켰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그 편지를 분실한 후 최근까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뒤늦게 알려졌다
[생각해 볼 문제]
1. 이 시는 스토리를 지니고 있는 이야기시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시에 나타난 스토리를 이루고 있는 두 가지 요소를 쓰시오.
→ 청포도가 익어 간다는 사실과 손님이 찾아온다는 사건
2. 이 시에 나오는 '고달픈 손님'의 모습이, 시인의 또 다른 작품인 <광야>와 <절정>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지 찾아 보시오.
→ <광야>에서는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리던 모습'과 유사하고, <절정>에서는 '서릿발 칼날진 그 위에 쫓기던 모습'과 유사함.
3.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에서 드러나는 시각적 이미지와 연관지어 이 구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말해 보자.
→ 여기에서 '은쟁반', '하이얀 모시 수건' 등은 밝음의 세계를 나타내는 시각적 이미지이며, 이러한 밝음의 세계를 나타내는 이미지에서 드러나는 낙관적이고 희망적인 기다림이 '마련해 둠'이라는 실천적이고 당위적인 행위와 결합되어, 시인이 희구하는 기다림의 대상이 반드시 실현되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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