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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해설]농무 - 신경림 -

by 휴리스틱31 2021. 1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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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무
                                                         - 신경림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 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나리를 불거나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

 

           -<창작과 비평>(1971)-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사실적, 묘사적, 현실 비판적, 참여적

 표현

* 직설적 감정 토로

* 민요적 가락이 두드러지고 역설적 기법이 드러남.

* 스토리적 요소의 재미와 사실적 수법의 배합

 

 중요 시어 및 시구

   * 막이 내렸다

       → 농민들의 축제 그 자체를 소재로 삼지 않고 행사가 끝난 뒤의 무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농무의 흥겨움보다는 농민들의 슬픔과 한을 예고해 주는 표현이다.

   * 꺽정이 → 조선 명종 연간 구월산을 무대로 활동한 백정 출신의 의적인 임꺽정을 가리키는 것

                                    (민중적 영웅의 상징)

   * 서림이 → 임꺽정의 모사였으나 결국 권력에 붙어 임꺽정을 배신한 인물

   *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 시의 발상 동기, 현실에 대한 농민들의 인식

   * 쇠전 → 우시장

   * 도수장 → 도살장(屠殺場). 삶의 울분 토로의 분위기 연출

   *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 울분의 역설적 표출 . 농민의 분노가 내재화됨.

   *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고

       → 흥겨워서라기보다는 절망과 한의 몸짓이라 할 수 있음.

 

 

 주제 ⇒ 농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한과 고뇌의 삶 (소외된 이들의 울분과 분노)

 농무 → 흥겨움과 생명력 대신 농민들의 울분과 한을 떨쳐 버리려는 몸짓.

                 세상을 향한 비판과 저항을 발산하려는 행위

 

 <농무>에서 '임꺽정 이야기'를 삽입한 효과

꺽정이와 서림이의 등장은 60년대 농촌의 현실과 조선 명종 때 현실을 비유적으로 결합시키게 한다. 임꺽정과 서림이는 60년대 농촌 현실에 갑자기 나타난 이질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 시의 문맥 속으로 임꺽정 이야기를 끌어들임으로써 60년대의 현실과 조선 시대 현실 사이에 대화 관계를 설정하게 한다.

임꺽정은 조선 명종 때 의적의 우두머리이며 서림이는 임꺽정의 모사이다. 조선시대 봉건제의 엄격한 신분 사회에서 남다른 힘과 재주를 지녔지만 신분적 한계 때문에 그 힘과 재주를 적절히 쓸 수 없었던 그들의 울분과 한은 그들로 하여금 도둑이 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이러한 임꺽정의 이야기는 이 시를 단순한 농무에 대한 묘사로 만들지 않고 농무로 하여금 60년대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과 소외된 농촌, 농민들의 울분을 표현하는 춤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시상의 전개(짜임)]

● 1∼6행 : 공연 후 답답하고 공허한 마음을 술로 달램.

● 7∼10행 : 농악패에 대한 예전과는 다른 냉담한 반응

● 11∼16행 : 피폐한 농촌 현실에 대한 울분

● 17∼20행 : 신명난 농무를 추며 삶의 고뇌와 울분 토로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인의 첫시집 <농무>(1973)의 표제가 된 작품으로, 1970년대 초반 산업화로 인해 파괴되어 가는 농촌 공동체의 모습을 그들의 놀이인 농무의 신명에서 찾고 있는 시로, 이미 신명나지 않는 농촌 생활과 이를 안타깝게 지키려는 농민들의 몸짓을 사실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시에서 보여주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서러움에서 흥겨움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데도 흥겹지만은 않은 것은, 농민들의 신명난 춤판은 신명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서러움을 이기기 위해 신명을 내 보는 것이기에 더 절절한 서러움만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70년대 농민시의 대표적 작품으로, 피폐한 농촌의 현실과 농민의 울분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텅 빈 운동장, 철없는 쪼무래기들만 따라나서는 장거리에서의 농무, 채산성이 없는 농사 등은 농민의 소외감과 울분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시적 상황 설정이다. 그런데 마지막에서 그 자조와 한탄이 '신명'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흥겨움의 표현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의 분노의 감정이다. 뿌리 깊은 좌절감과 울분을 농무의 신명이라는 역설적 상황을 통해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실의 불우한 조건을 넘어선 흥겨운 축제를 표방하고 있는 이 시의 표면적 주제는, 뒷면에 숨겨진 당대의 사회·정치적 현실을 다분히 문학적인 방식으로 고발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감상을 위한 읽을거리 ] : <양승준, 양승국 공저 [한국현대시 400선-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산업화의 거센 물결로 인해 급속도로 와해되어 가던 1970년대 초반의 농촌을 배경으로 농민들의 한과 고뇌를 노래하고 있는 작품이다. 농촌의 절망과 농민의 울분을 고발, 토로하고 있으면서도, 그 울분이 선동적이거나 전투적인 느낌으로 발전되지 않는다. 그것은 '날라리를 불'고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끝나는 작품 구조에 의해서 교묘한 역설과 시적 운치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시는 울분과 절망을 정반대의 '신명'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농민들의 처절한 몸짓을 통해 그들의 아픔이 역설적으로 고양되는 효과를 얻게 된다.

연 구분이 없는 20행 단연시 구조의 이 시는 내용상 4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단락은 1∼6행으로 농무가 끝난 뒤 농민들이 '소줏집'에서 답답하고 고달픈 심정을 술로 달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로 시작되는 1행은, 농무가 두렛일의 흥겨움보다는 농민들의 자조적인 한탄과 원한의 몸짓임을 나타내기 위한 예고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농무가 끝난 뒤의 '텅 빈 운동장'이 주는 공허감은 이젠 더 이상 농무에 신명을 느낄 수 없는 농민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자, 이런 현실에 대한 공연자의 안타까움과 공허함을 표한한 것이다. 그러므로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한' 그들은 텅 빈 마음과 고달픈 삶을 그저 술로 달랠 뿐이다.

 

 

2단락은 7∼10행으로 농악패에 대한 농민들의 냉담한 반응을 통해 예전과 달라진 농촌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들이 옛날의 풍습대로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 보아도, 신명나게 놀아 주던 어른들 대신, '조무래기들'만 악을 쓰며 따라붙거나 '기름집 담벽에 붙어 서서 / 철없이 킬킬대는' 처녀애들뿐이다.

 

11∼16행의 3단락은 '비료 값도 안 나오는 농사'를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나온 그들이 자신의 울분을 춤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춤을 추는 그들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거나 '서림이처럼 해해대'며 즐거워하지만, 결국은 '산 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하며 자신들의 삶을 자학하거나 체념하고 만다. 임꺽정과 서림은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이들을 구체적으로 거명한 까닭은 농민들의 한과 슬픔이 다만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민중의 삶과 함께 해 온 역사적인 것임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 배려로 볼 수 있다.

 

4단락은 17∼20행으로 자신의 한과 고뇌를 신명난 춤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이다.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이르렀을 때, 농민들의 현실에 대한 분노는 '살의'가 느껴질 정도로 극에 달하지만, 오히려 '날라리를 불고' 덩실덩실 '어깨를 흔드'는 신명으로 바뀜으로써 그들의 비애가 그만큼 심화되어 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농민들이 추는 춤은 그들이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현실에 대한 불만과 저항의 강한 몸짓이며, 자신들의 고뇌와 한의 뜨거운 발산임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생활 터전을 지키려는 농민들의 안타까운 몸부림을 농촌의 일상 언어를 통하여 사실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농민들의 정취와 정감을 물씬 느끼게 해 주는 한편, 농민들의 격한 감정을 직접적인 서술로 표출하면서도 농무의 동작이나 농악기의 소리로 적절히 제어함으로써 탄탄한 서정성을 아울러 갖추고 있다. 가난과 절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농민과 소외된 농촌을 상기시켜 주는 뛰어난 문학성으로 말미암아 이 시는 제1회 만해 문학상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생각하기]

1. 이 시에서 농촌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부분을 찾아보자.

  →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라는 구절을 통해 당시 농촌의 상황을 단적으로 볼 수 있다.

2. 이 작품이 감동을 주는 요인이 있다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해 보자.

  → 이 시는 70년대 농민의 삶을 시의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 시의 시적 화자는 현재 '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으나, 시를 읽으면 70년대 농촌을 살아가는 농민의 답답한 심정과 울분, 비애가 그대로 전해온다. 이는 직접 내게 말을 건네는 듯한 1인칭 화자의 독백체로 이 시가 쓰여졌기 때문인 것 같다.

3. 다음 구절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작자의 의도와 관련하여 설명해 보자.

*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 '올랐다'가 아니라 '내렸다'로 시작하고 있다. 이는 농민의 자조적인 한탄과 원한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예고라고 볼 수 있다.

*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 도수장은 도살장을 말한다. 이 곳의 살의(殺意)는 농민들의 분노가 섬뜩할 정도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농민들은 그러한 분노를 농무의 신명나는 몸짓을 통해 풀어내고 있다. 이는 자신의 한과 슬픔을 역설적으로 고양시키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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