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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설화류]단군신화 (檀君神話) - 작자 미상 -

by 휴리스틱31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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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 (檀君神話)                    - 작자 미상 -

 

본 문

 

고기(古記)에 이렇게 전한다.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帝釋)을 이름 -의 서자(庶者) 환웅(桓雄)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하였다. 아버지는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危太伯)을 내려다 보매, 인간 세계를 널리 이롭게 할 만한지라(홍익인간의 이념),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어, 내려가서 세상을 다스리게 하였다.

환웅은 무리 삼천 명을 거느리고, 태백의 산꼭대기에 있는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와 이를 신시(神市)라 일렀다. 이 분이 환웅천황이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식, 수명, 질병, 형벌, 선악 등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삼백예순 가지나 되는 일을 맡아 인간 세계를 다스리고 교화시켰다.

 

때마침, 곰 한 마리와 범 한 마리가 같은 굴에서 살았는데, 늘 신웅(神雄)에게 사람 되기를 빌었다. 이 때, 신(神)이 신령한 쑥 한 심지(쌈)와 마늘 스무 개(사람이 되기 위해 치러야 할 통과의례)를 주면서 말하였다.

"너희들이 이것을 먹고 백 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는다면 곧 사람의 모습을 얻게 될 것이다. "

곰과 범은 이것을 얻어서 먹었다. 삼칠일(三七日) 동안 몸을 삼가자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다. 그러나 범은 능히 몸을 삼가지 못했으므로 사람의 몸을 얻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자기와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항상 단수(檀樹) 밑에서 아이 배기를 빌었다. 환웅은 이에 임시로 변하여 그와 결혼해 주었더니, 웅녀는 임신하여 아들을 낳아 이름을 단군이라 하였다.(곰과 환웅의 결합은 천신을 믿는 환웅족과 곰 토템사상을 지닌 웅족의 결합을 의미함.)

 

단군 왕검은 요(堯)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 요임금의 즉위 원년이 무진이면, 50년은 정사이지 경인은 아니다. 경인이라 한 것은 사실이 아닌 것 같다. ― 에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비로소 조선(조선)이라 일컬었다. 또 다시 도읍을 백악산(白岳山) 아사달(阿斯達)로 옮겼다. 그 곳을 또는 궁(弓) ― 혹은 방(方) ― 홀산(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이라 한다. 그는 일천오백 년 동안 여기에서 나라를 다스렸다.

주(周)의 무왕(武王)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己卯年)에 기자(箕子)를 조선에 봉하매, 단군은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후에 아사달에 돌아와 숨어 산신(山神)이 되었는데, 그 때 나이가 일천구백여덟이었다.

 

 

 

작품 정리

 

◆  개관

신화는 고대인의 원초적 세계관이 반영된 것으로, 신성한 이야기라는 믿음을 전제로 한다. <단군 신화>는 우리 민족의 개국 신화인 동시에 국조신앙(國祖信仰)을 곁들이고 있어서 민족사의 시발로서 매우 중요하게 취급되어 왔다. 이 신화는 우리 민족의 긍지로서 천제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라는 성소(聖所)에 강림하여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이념을 바탕으로 개국의 터전을 닦고, 그의 아들 단군 왕검이 조선을 세웠다는 웅장한 규모의 건국신화이다. 천신(天神)께서 택하신 땅에서 천신의 후예를 모시고 세운 나라라는 강한 긍지와 자부심, 그리고 우리 민족의 웅혼한 기상을 느낄 수 있다.

고조선은 청동기 시대에 성립된 고대 국가로, 단군 신화는 그 시대의 역사적 사실과 그 당시 고대인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 한웅과 웅녀의 혼인은 천신을 믿는 환웅족이 이주해 와서 선주민이자 곰 토템 사상을 지닌 웅족과 결합하였음을 뜻한다. 환웅의 뜻에 따라 곰이 굴 속에서 시련을 겪고 나서야 사람이 되었다는 것에서 이주족의 우월의식이 드러난다. 그러나 고조선이 홍익인간의 이념을 표방한 것은 특정 종족의 배타적 우월 의식에서 벗어나 국가 전체의 민족적 자긍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요점 정리

(1) 성격 : 건국 신화

 

(2) 주제

① 민족의 시조인 단군의 탄생 및 고조선의 건국

② 홍익인간의 이념과 단일 민족의 역사성

 

(3) 표현 : 간결, 소박함 .역어체

 

(4) 사상 : 광명 사상, 숭천(崇天) 사상, 토템 사상, 산악 숭배 사상

 

(5) 의의  

① 천손의 혈통이라는 민족적 긍지와 민족문학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

② 개국의 이념과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단일성을 말해 준다.

③ 한국 신화의 원형으로 존재한다.

④ 농경사회의 제의적 성격을 반영한다.

⑤ '환인 - 환웅 - 단군'의 삼대기로서 민족 영웅 서사시의 원류가 됨.

 

 

(6) 작자(편자) : 일연(一然:1206-1289)

 

(7) 출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1

 

(8) 구성 : 기승전결의 4 구성, 설화적 구성

① 기(起) → 환웅의 하강

                 ‘천상→지상, 신→인간’의 경로를 보여줌과 동시에 이 땅이 하늘이 선택한 곳임을 뜻함.

                 천부인으로 신의 영험한 힘을 표상했고, 풍백과 우사 등으로 보아 농경생활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다.

② 승(承) → 웅녀와의 혼인 및 단군의 탄생

                  곰과 범은 토템의 대상이며 쑥과 마늘은 주술적 효력을 가진 식물이다. 곰이 인간이 되기를 희구한 것은 이 신화의 인본주의적 성격을 다시 확인시켜 주는 것이다. 환웅과 웅녀의 결혼은 신과 인간의 결합이자 이주족(移住族)과 선주족(先住族)의 결합을 뜻한다.

③ 전(轉) → 고조선의 건국

                 건국신화로서의 면모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건국을 위한 투쟁 과정이 없는 것이 특징적이다. 도읍의 이동은 당시 역사의 반영으로 보이며 통치 기간은 신화적 시간관에서 나온 것이다.

④ 결(結) → 단군의 산신화

                제정일치(祭政一致) 시대의 군장(君長)이 신격화되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생각해 보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기(檀紀)는 어떻게 계산한 것인가?

『삼국유사』에는 단군 개국이 중국의 요(堯) 임금 즉위 50년인 경인년(庚寅年)에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러나 일연 자신이 주석을 달아놓은 바와 같이, 요 임금 즉위 원년은 무진년(戊辰年)이므로 즉위 50년은 정사년(丁巳年)이지 경인년이 아니다.  반면 이승휴의 『제왕운기』, 권람의 『응제시주』, 『동국통감(東國通鑑)』에는 '무진년(戊辰年)으로 되어 있다.  모두 단군이 요 임금과 같은 해에 즉위하였으며, 그해는 '무진년'이라는 것이다.  이 요 임금 즉위 연도인 '무진년'을 연대로 환산해 보면 B.C. 2333년이 된다.  오늘날 단기(檀紀), 즉 '단군 기원(檀君紀元) 몇 년'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

 

 소재의 상징성

이 신화에서 등장하는 소재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곰이다.  시베리아의 원시 민족의 가장 큰 제의가 바로 곰제[熊祭]였는데, 곰을 신격시한 데서 비롯된다. 이것이 「단군신화」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편, 일본의 아이누족도 곰제를 지낸다.

 

이 신화에서 곰은 이상적이고 내적인 힘의 상징이다.  어려움을 참고 내적인 투쟁에 더 많은 가치를 부여한 우리 민족의 사고를 말해 준다.  이 곰이 신화에서 토템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곰의 생활 주기가 대지(자연)와 같다는 것(겨울잠)이 '웅녀'로 전환되어 생산력을 나타내는 지모신(地母神)의 상징을 갖는다고 할 수도 있다.  재생의 이미지를 갖는 것이다.  이런 곰이 외적인 힘을 상징하고 현실적인 호랑이와 대비되어 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이 결국은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에게 승리했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쑥의 상징성도 매우 크다.  일반적으로 쑥을 단옷날 사람의 형상이나 호랑이의 형상으로 만들어 걸어 나쁜 기운을 쫓는 데 썼고, 이사를 하면 그 집의 나쁜 기운을 없애기 위해 쑥을 태우기도 하였다.  또 동물적인 존재에 영성(靈性)을 부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다.

 

그 외에 <단군신화>에 반영되어 있는 민족의 원초적 삶이나 사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환웅이 인간 세상을 탐내어 구하였고, 널리 인간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뜻을 펼쳤다는 내용

   → 인간 중심적 사고 경향의 반영

▷ 환웅이 태백산 신단수 아래로 하강했다는 내용

   → 산신을 숭배하고 큰 나무를 신성시하는 산악 숭배 사상의 반영

▷ 환웅이 비, 바람, 구름의 신(우사, 풍백, 운사)을 거느리고 세상을 다스렸다는 것

   → 농경 사회를 배경으로 형성된 신화라는 점을 암시

 

▷ 곰이 웅녀가 되어 환웅과 혼인한 것

   → 동물 숭배 사상(토테미즘)을 반영한 것. 곰은 긴 겨울잠을 거쳐 되살아는 재생력을 상징하는 토템의 대상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에 비하여 호랑이는 오늘날까지도 민속에서 산신과 함께 하는 수호신으로 여기고 있을 만큼 경외의 대상이었으므로 생명을 잉태하는 친근한 모성으로 곰이 선택되었을 것으로 본다.

▷ 쑥과 마늘을 먹고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은 것

   → 수성(동물로서의 성격)의 제거를 위한 통과 의례를 상징하며,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기 위한 시련의 시간을 의미한다.

 

 단군 신화의 역사적 · 민속적 의미

역사적으로 볼 때, 단군 신화는 웅녀로 대표되는 신석기 시대 빗살무늬 토기 문화와 환웅으로 대표되는 청동기시대 민무늬 토기 문화의 결합을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주몽 신화가 철기 문화를 기반으로 형성된 것과 비교가 된다. 또 '단군 왕검'은 제정일치 시대의 군장을 의미하는 말이다. '단군'은 제사장을, '왕검'은 임금을 뜻한다. 따라서 단군 조선은 일종의 신정 국가로 볼 수 있다. 단군이 죽어 산신이 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한편, 신권의 상징인 천부인, 토템으로 보이는 곰과 호랑이의 존재, 쑥과 마늘의 주술적 효력, 삼칠일의 금기 등은 민속적으로 의미 있는 요소들이다. 우선 천부인 세 개를 칼 · 거울 · 방울로 볼 때, 이는 단군을 무당으로 볼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쑥과 마늘을 통해 동물성이 제거되고 인간이 되었다는 것은 쑥과 마늘의 독성 제거 효력에 근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또 삼칠일은 출산과 관련된 민속적 금기의 기간이다.

 

 건국신화의 원형

'환인-환웅-단군'의 삼대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신화는 국조(國祖) 단군의 신성미와 개국의 사실을 상징화한 이야기이다. 그 서사적 구조는 [신이한 탄생 → 신성한 결혼 → 등극 → 사후의 이적]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런 구조는 주몽, 혁거세, 수로 등 우리 나라 건국 시조 신화의 원형이다. 단군 신화에서 신이한 탄생의 화소는 천손강림으로 나타난다.

 

 단군 신화의 현재적 의의

우리 주변에서 종종 들을 수 있는 '한핏줄, 한겨레, 몇 천 만 동포, 단군의 자손'이라는 구호에 응축되어 있는 의미의 하나는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가 민족의 이름 앞에서 대등한 자격으로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만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시민사회의 논리와 결합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나갈 수도 있다.

 

그런데 위의 구호가 내포하고 있는 또 하나의 측면은 민족의 집단성을, 핏줄로 결합된 숙명적 운명 공동체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외세의 억압에 대한 저항과 민족적 통일과 단결을 촉구하는 의식을 담았으며, 나아가 민족의 공동체성을 실제적인 사회적 균등화를 통해 구현해야 한다는 의식으로 진전될 수도 있는 요소를 지녔다. 그러나 이는 개인을 도외시한 채 지배 권력에 의한 전제적 억압의 논리로 치달을 가능성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위의 구호에 나타난, 동포의식과 결합된 단군의식은 중세기의 단군 인식에 비해 분명 한 단계 질적 전환을 이룩한 근대적 민족의식의 상징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일단 근대적인 단군 인식이 대두한 이후 이 인식에 내포되어 있는 집단성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즉 그것이 시민사회의 논리와 결합한 민주적 민족공동체 의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아니면 전체주의 논리와 결속하여 파시즘의 국가지상주의를 지향하는 의식으로 전개될 것인지, 혹은 사회주의와 결합한 제3의 형태로 진전될 것인지는 일단 형식논리상 다 가능하다. 그러나 실제 그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나타났던가가 문제이다. 이 면에선 일단 남한의 경우, 이승만 정권 하에서 횡행하였던 일민주의와 1980년대 군부 정권 하에서 '웅대한 고조선'을 강조하던 논리 등이 어떤 성격과 의미를 지녔던가를 되새겨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

 

단군은 오랜 기간 동안 민족적 상징으로 한국인의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자리잡아 왔고 역사의 진전과 함께 단군에 대한 인식도 질적인 전환을 해 왔다. 앞으로 단군에 대한 인식의 바람직한 방향은 단군을 민주적 민족공동체의 상징으로 여기는 것이다. 이 점은 남한이나 북한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며, 그럴 때 단군은 엄청난 역사의 무게를 지닌 우리 민족의 소중한 유산으로 되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 노태돈, '남북한 역사 인식 비교'

 

 비교하기

<제왕운기>의 전조선기(前朝鮮紀)에서는 상제인 환인이 그 아들 환웅에게 인간 세계로 내려갈 것을 권유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스스로 내려가는 것과 권유에 의해 내려가는 것의 차이는 신적인 질서의 강조 여부를 말해 준다.

     구 분 삼국유사 제왕운기
단군 표기 壇君 檀君
단군의
탄생 과정 
환인의 서자 환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낳음 환인의 아들 환웅이 손녀에게 약을 먹여 사람의 몸을 이룬 뒤 혼인하여 낳음
조선의 판역 기록이 없음 신라, 고구려, 남북 옥저, 동북 부여, 예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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