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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고전가사 해설]성산별곡(星山別曲) - 정 철 -

by 휴리스틱31 2021.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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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별곡(星山別曲)                              - 정 철 -

 

 

 

 

 [ 감상 및 해설 ]

 

정철이 25세 되던 해, 그의 처 외재당숙인 김성원(金成遠)이 서하당과 식영정을 지었을 때, 사계절에 따른 그 곳의 풍물과 김성원에 대한 흠모의 정을 노래한 작품이다. 정철은 을축사화로 말미암아 귀양다니던 아버지를 따라 16세 때 낙향하여, 등과한 27세까지 전남 창평 지곡리에서 지냈던 것이다. 이 작품은 서하당의 주인인 김성원의 멋과 풍류를 노래하고 있지만, 사실은 정철 자신의 풍류를 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자어의 사용이 빈번하고 일개인의 칭송에 치우친 감이 있으나, 체험에서 우러난 전원 생활의 흥취와 지은이의 개성이 잘 드러난 작품이라 하겠다.

 

이 작품은 당시 성산동 식영정에 모인 사선, 즉 김성원, 정철, 임억령, 고경명이 같은 제목과 압운으로 지은 한시 '식영정잡영' 20수를 부연, 설명하고 탈태시켜 만든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서 정철 자신의 순수한 창의라고는 할 수 없다. 다른 작품에 비하여 한어구와 전고가 많아 한시적인 분위기가 짙고, 한 개인과 지역에 대한 칭송이기 때문에 보편성이 희박한 점이 아쉽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정철 자신의 순수한 생활면에서 빚어진 작품이고, 그의 얼과 개성이 비교적 풍부하게 반영되어 있어 그의 또 다른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성산별곡>에서의 자연도 사대부들의 임시 터전으로서 잠시 쉬었다 훌쩍 떠날 휴식처에 머물고 있다. 자연은 도의와 심성을 기르는 군자의 벗일 뿐이지 완전히 응합된 삶을 이루어야 할 대상은 아니었다, 이렇게 보면 (성산별곡)은 귀거래를 명분으로 삼고 때를 기다리며 쉬어 가는 안식처로 자연을 인식하였던 16세기 조선조 사대부들의 전형적인 자연관이 여실히 드러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사는 '디날 손'이 '성산(星山)'에서 생활하는 이유를 '식영정 주인'에게 묻는 것부터 시작된다. 그러면서 '천변(天邊)의 떳난 구름'을 '주인'의 모습에 견주면서 '정자' 주변의 운치있는 자연 환경과, 무한히 반복되며 '쳔쳔이 절노 나'는 사철의 자연 경관을 선경에다 비유하고 있다.

 

춘사(春詞)에서는 '청문고사(靑門古事)'를 인용하면서 봄날 '선옹(仙翁)의 해욜 일' 즉 산중 생활을 노래하고, '방초주(芳草洲)'를 무릉도원에 비기면서 봄날 한가로운 마음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즐기는 삶의 여유를 노래한다.

하사(夏詞)에서는 성산의 한가로운 여름 경치 속에서 ‘괴꼬리’ 노랫소리에 '픗잠'을 깨어 '공중(空中) 저즌 난간(欄干)'에서 '고기'를 보며 즐기는 내용이다. '홍백련(紅白蓮)'의 향기 속에 인간 만사를 모두 잊고 '태극(太極)을 뭇잡는 듯’, ‘옥자(玉字)를 헤혓는 듯'하며 진리를 탐구하고 신선이나 된 듯 느끼면서 대자연의 품속에서 안온한 삶을 누리는 내용이 전개된다.

 

추사(秋詞)에서는 '은하(銀河)를 띄워 건너 광한전(廣寒殿)의 올랏는 듯'한 기분으로 오동나무에 환한 달이 걸린 풍경을 읊고, '조대(釣臺)' 아래 배를 띄워 배 가는 대로 맡겨 '용(龍)의 소'에 이르는 뱃놀이의 풍류가 목동들의 '단적(短笛)' 소리에 한층 운치를 더함을 노래하고 있다.

 

동사(冬詞)에서는 온 산 가득 눈으로 뒤덮인 새로운 겨울 성산의 풍경을 그렸다. 성산의 겨울 경치에 매료되어 '늘근 중'에게조차 '남다려 헌사 마오'라고 당부하며 자연 속의 삶을 지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자연을 즐기는 마음의 부귀를 혼자서만 누리려 함은 아니었을 것이다. 속세의 유혹으로부터 행여나 마음 잃어 흔들릴까 저어하는 몸짓이 아닐까 한다,

 

결사(結詞)에서는 험하디 험한 세상의 모든 시름 접어 두고 '술'과 '거문고'로 '손'과 '주인'도 잊을 정도로 도도한 흥취에 젖은 산 속 풍류를 노래하고 있다. 어찌 보면 아무래도 잊기 어려운 현실에 대한 강한 미련을 드러낸 것으로도 보인다. ‘마음’에 맺친 시름'이 다름 아닌 현실에의 갈등으로 생각되며, 때를 기다리며 자연 속에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성산의 자연 속에 묻혀 지내는 '주인'을 '손'이 '장공(長空)의 떳는 학(鶴)'에 비겨 '진선(眞仙)'이라 칭송하면서 작품을 매듭짓고 있다.

 

 

[ 핵심 정리 ]

 

■ 갈래 : 조선전기 가사, 서정가사, 양반가사

■ 연대 : 조선 명종 때

■ 성격 : 전원적, 풍류적

 

■ 주제

* 성산의 사계의 변화에 따른 풍물과 식영정 주인 김성원의 풍류

* 절경 속에서의 풍류 예찬

 

■ 표현

① 본사에서 계절에 따른 자연 경관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묘사함.

② 서사에서 주인에게 물어본 말의 대답을 결사에 등장시켜 서로 호응하는 구조를 드러냄.

③ 한문투와 중국 고사 관련 표현들을 주로 활용함.

 

 

■ 구성

1.서사 : 김성원의 풍류와 식영정 주변의 모습(선경)

2. 본사 : 식영정 주변의 사계와 아름다운 경관

본사① : 성산의 봄 풍경(春景) - 봄 경치를 즐기는 산옹의 생활

본사② : 성산의 여름 풍경(夏景) - 시원하고 한적한 여름을 즐기는 은자의 모습

본사③ : 성산의 가을 풍경(秋景) - 선경과 같은 가을 달밤의 풍류

본사④ : 성산의 겨울 풍경(冬景) - 눈 덮인 겨울 경치

3. 결사 : 전원 생활의 멋과 풍류 (무아경에 빠진 신선의 풍모)

■ 영향관계 : 상춘곡 → 면앙정가 → 성산별곡

 

[ 현대어 풀이 ]

 

 창작 배경  

을사사화의 여파로 낙향하는 아버지를 따라 전남 창평(지금 담양 별뫼)에서 27세까지 지내게 되었으며, 성산(星山)은 창평 지곡리에 있는 산이다. 송강은 16세 때까지 이러한 집안의 화로 인해 학문을 하지 못했는데, 성산에 내려가서 김윤후에게 수학하게 되었고, 이때 김윤후의 조카되는 김성원과 같이 학문을 배우게 되었다. 김성원은 임억령이 을사사화를 예상하고 퇴관 은퇴를 위해 성산에 ‘식영정’이라는 정자를 지은 것에 이어, 자기의 당택(堂宅)으로 ‘서하당’을 구축하여 당호로 정하였다. 송강은 여기에서 김인후, 기대승에게 수학하였고, 시를 임억령에게서 배움으로써 문학적 소양을 닦았다.

이 작품은 이와 같은 내력을 가진 ‘서하당’과 ‘식영정’이 중심 배경을 이루고 있다. 성산의 사선(四仙)으로 자칭한 임억령, 김성원, 고제봉, 정철 등이 아침 밤낮으로 구도하며 자연을 즐기던 생활을 하던 중, 특히 정철이 김성원을 경모하여 지었는데, 이 작품이 만들어진 때는 송강이 25세(1560)되던 해였다. <성산별곡>은 조선조 사대부들의 전형적인 삶의 한 단면을 보여 준 작품이다. 작품에 관련된 인물들의 생애와 견주어서 좀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16세기 조선조 사대부들의 삶의 한 방식을 드러내 준 작품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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