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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해설]성호부근(星湖附近) - 김광균 -

by 휴리스틱31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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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부근(星湖附近)
                                                                              - 김광균 -

 

             

 

양철로 만든 달이 하나 수면(水面) 위에 떨어지고

부서지는 얼음 소래가

날카로운 호적(呼笛)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해맑은 밤바람이 이마에 나리는

여울가 모래밭에 홀로 거닐면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같이

 

호수는 한 포기 화려한 꽃밭이 되고

여윈 추억(追憶)의 가지가지엔

조각난 빙설(氷雪)이 눈부신 빛을 발하다.

 

 

낡은 고향의 허리띠같이

강물은 길―게 얼어붙고

 

차창(車窓)에 서리는 황혼 저 머얼리

노을은

나어린 향수(鄕愁)처럼 희미한 날개를 펴고 있다.

 

 

                               

 

앙상한 잡목림(雜木林) 사이로

한낮이 겨운 하늘이 투명한 기폭(旗幅)을 떨어뜨리고

 

푸른 옷을 입은 송아지가 한 마리

조그만 그림자를 바람에 나부끼며

서글픈 얼굴을 하고 논둑 위에 서 있다.

 

           -<조선일보>(1937)-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감각적, 회화적(시각적), 모더니즘적

 표현 : 공간의 이동에 의한 시상 전개 방식

              시각적 심상(양철, 은모래, 꽃밭, 빙설, 빛, 허리띠, 노을)과

                              청각적 심상(부서지는 얼음 소리, 호적 소리)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양철로 만든 달 → 날카로운 금속성의 이미지로, 차가운 겨울의 분위기를 나타내기 위한 것.

                                 달까지도 얼어붙어 차갑고 날카롭고 메마른 느낌을 주기 위한 것.

    * 날카로운 호적 → 호적은 원래 태평소(胡笛)를 뜻하나, 여기서는 '휘파람 소리'를 의미함.

                                 겨울 호수의 분위기를 차갑고 날카롭고 음산한 쪽으로 몰고 감.

    * 부서지는 얼음소리가 / 날카로운 호적같이 옷소매에 스며든다. → 청각의 촉각화

    * 2연 ~ 3연 → 추억에 젖는 화자의 내면적 정서가 호수의 차갑고 날카로운 모습을 따뜻하고

                                                화려한 이미지로 바꾸어 놓고 있음.

    * 노을에 빛나는 은모래 같은  한 포기 화려한  꽃밭

        →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호수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영상

    * 여윈 추억의 가지가지엔 → 의식(추억)을 시각적으로 표현(의인법)

                                              과거의 아련하고도 조금의 아픈 추억을 말하고자 함.

    * 조각난 빙설이 눈부신 빛을 발하다 → 지난 시절의 추억이 파편처럼 흩어진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

    * 4연 → 얼어붙은 강물을 보면서 고향을 떠올림.

    * 낡은 고향 → 고향을 떠난 지 오래인 듯함, 먼 기억 속의 고향

    * 5연 → 황혼 무렵 차창 밖의 노을을 보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떠올림.

    * 길 ― 게, 저멀 ― 리 → 줄표는 아득함이나 소멸의 이미지를 시각적이고 음성적으로 표출한 것임.

    * 나어린 향수 → '어린 시절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말함.

    * 희미한 날개를 펴고

        → 고향과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안타까움으로 바뀜으로써 화자를 슬프게 함.(활유법)

 

 

◆ 제재 : 호수

◆ 주제 달빛 비친 겨울 호수 부근의 서경과 서정

 

[시상의 흐름(짜임)]

         Ⅰ. 달빛이 비친 겨울 호수의 모습과 추억

◆ 1연 : 달빛이 비치는 겨울 호수의 차가운 모습

◆ 2연 : 호숫가를 거니는 화자의 고독한 모습

◆ 3연 : 환상 속에 떠오르는 추억의 영상

 

         Ⅱ. 황혼 무렵의 차창 밖 풍경과 향수

◆ 4연 : 차창 밖 황혼녘 풍경에서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

◆ 5연 : 차창 밖 황혼녘 논둑의 풍경

 

          Ⅲ. 논둑의 풍경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달빛이 비치는 겨울 호수의 차갑고 쓸쓸한 풍경을 시각적(회화적) 영상으로 잘 형상화해 놓은 작품이다. 시인 특유의 기법과 시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시로, 감각적인 비유의 구사가 돋보인다.

1장 1연에는 메마른 이미지가 드러난다. 강물에 비친 달을 양철로 만들었다고 하는 데서 달의 차가운 이미지를 구현하고 비정한 느낌이 들게 한다. 얼음장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리도 메마른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 소리는 호적같이 옷소매에 스며드는 것으로 감각화된다. 차갑고 날카로운 겨울의 이미지는 황량함과 고독감을 준다.

 

2연과 3연에서는 이 메마른 이미지가 부드러운 이미지로 변해 간다. 밤바람을 맞으며 물가를 거닐고 있는데, 달빛이 호수에 반사되어 은모래같이, 화려한 꽃밭처럼 화려하고 빛나는 광경으로 변한다. 차가움의 이미지 속에서 화려함의 이미지를 발견하게 된 것은 아마도 화자의 심적 상태 때문인 듯하다. 추억을 '여윈' 것으로 보고 있는 것에서 그가 아픈 추억에 잠겨 고독감에 빠져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차가운 호수의 얼음 조각이 달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듯이, 아픈 추억이었지만 아름다웠던 기억들이 눈부시게 떠오르기도 하는 것이다.  조각난 빙설이기에 더 화려한 빛을 발하듯이, 아픈 추억이기에 그것이 더 아름다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2장에서는 그러한 광경을 두고 떠나고자 한다. '낡은 고향'은 떠나온 고향으로 삶의 쓸쓸함에서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먼 기억 속의 고향이다. 강물과 고향의 이미지가 교차하면서, 허리띠처럼 가느다란 강물은 여위고 쓸쓸한 느낌을 주면서 고향의 낡은 이미지와 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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