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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 Seeing

[현대시 해설]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김종한-

by 휴리스틱31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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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김종한-

 

능수버들이 지키고 섰는 낡은 우물가

우물 속에는 푸른 하늘 조각이 떨어져 있는 윤사월

 

― 아주머님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는 작년에 울던 그놈일까요?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만 길어 올리시네.

두레박을 넘쳐 흐르는 푸른 전설(傳說)만 길어 올리시네.

 

언덕을 넘어 황소의 울음소리는 흘러오는데

― 물동이에서도 아주머님 푸른 하늘이 넘쳐 흐르는 구료.

 

                    -<조광>(1938)-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서정적, 낭만적, 감각적, 전원적

 특성

① 평화로운 시골 우물가의 풍경을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함.

②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해 물을 긷는 반복적인 동작을 형상화함(3연).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낡은 우물가 → 오랜 세월의 그윽한 분위기를 풍기는 전통적 소재, 전통적인 삶의 터전, 공간적 배경

* 윤사월 → 봄, 시간적 배경

* 1연 →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한 느낌(평화롭고 토속적인 분위기)

* 2연 → 부분적인 대화체 형식을 보여줌.

* 아주머님 → 시적 청자

* 지금 울고 있는 저 뻐꾸기 → 시골 마을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강조

 

 

* 조용하신 당신은 박꽃처럼 웃으시면서 → 미소로 대답하는 아주머님의 모습을 '박꽃'에 비유함.

* 3연 → 동일한 통사구조의 반복을 통해 물 긷는 동작의 반복을 연상시킴.

* 푸른 하늘 → 우물물에 비친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

* 푸른 전설 → 대대로 우물물을 길어 올리며 살아왔던 추억, 관념적 대상의 시각화

* 황소의 울음소리 → 시골 마을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 강조

* 울음소리는 흘러오는데 → 공감각적 심상(청각의 시각화)

* 물동이에서도 아주머님 푸른 하늘이 넘쳐 흐르는구료 → 그윽하고 아름다운 정경(자연과 인간의 조화)

 

 제재 : 낡은 우물

 시적 상황 : 낡은 우물가의 정취를 느끼며 물 긷는 아주머님에게 말을 건넴.

 주제 평화로움과 그윽함이 느껴지는 시골 우물가의 풍경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윤사월의 낡은 우물가

◆ 2연 : 뻐꾸기 울음소리와 박꽃처럼 웃는 아주머님

◆ 3연 : 푸른 하늘과 전설을 길어 올리는 아주머님

◆ 4연 : 물동이에 넘쳐 흐르는 푸른 하늘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오래된 우물가의 그윽한 정취와 아늑한 분위기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뻐꾸기와 황소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낡은 우물가에서 박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물을 길어 올리는 아주머님의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시에 쓰인 '낡은 우물가, 능수버들, 푸른하늘, 윤사월, 뻐꾸기' 등과 같은 소재는 봄이라기보다 초여름에 가까운 계절적 배경과 어울려 평화로운 감상을 자아내는 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각 연은 2행으로 구성되어 있어 절제되고 단아한 느낌을 주며, 제3연의 통사구조의 반복을 통해 물 긷는 동작이 느릿하면서도 규칙적인 리듬감을 자아내고 있다.

이 시는 김종한의 데뷔작이다. 그는 이념적 · 사회적 경향의 시를 배격하면서 섬세한 언어 감각과 지적인 재치가 번득이는 작품을 즐겨 썼다. 이 시에서도 우리 고유어를 적절히 살려 전통적인 전원의 한가한 풍경을 재현시켜 놓았다.

 

같은 사물을 대하면서도 사람들이 읽어내는 의미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가령 한가로운 농촌의 모습에서 어떤 사람은 억센 노동 뒤의 휴식을 찾아내고, 어떤 사람은 한없는 단조로움과 권태를 읽을지 모른다. 이 작품은 '능수버들이 지키고 서 있는 낡은 우물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능수버들과 낡은 우물이라는 사물들은 매우 온화하고도 안정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때는 봄도 거의 지나가는 윤사월, 우물 속에는 한조각 푸른 하늘이 비치고 있다. 여기에서 물을 긷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화자는 묻는다. 지금 우는 뻐꾸기가 작년에 우는 새일까라고. 여기서 뻐꾸기는 작품세계의 평화로움과 고요함을 더욱 돋보이게 해준다. 어떤 상황의 고요함은 아무 소리가 없을 때보다 그 속에 어떤 평화로운 소리가 간간이 끼어 들어올 때 더 잘 나타나는 법이다. 아주머니는 그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박꽃처럼' 웃기만 한다. 그 웃음 속에는 이 한가로운 세계에서 있는 대로의 삶을 즐길 뿐, 굳이 그 이유를 묻지 않는 소박하고도 담담한 태도가 깃들어 있다. 그 말없는 웃음이 이 시가 그리는 평화로움을 더욱 부드러운 것이 되게 한다.

 

그러면서 아주머니는 물을 길어 올린다. 이 부분은 문장의 구조가 똑같은데, 그것은 물 긷는 동작의 느릿하면서도 규칙적인 움직임을 연상하게 한다. 그리고 두 행에 같이 들어 있는 '넘쳐 흐르는'이라는 구절에서는 어떤 풍성함이 느껴진다. 그렇게 해서 아주머니가 길어 올리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푸른 하늘이기도 하고 푸른 전설이기도 하다. 이 중에서 푸른 하늘을 길어 올린다는 것은 두레박에 담긴 물에 푸른 하늘이 비친다는 것인데, 푸른 전설을 길어 올린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이 물음을 푸는 열쇠는 앞에서 본 '낡은 우물'에 있다. 아마도 그 아주머니는 아주 오래 전부터 여기에서 살았을 것이다. 어쩌면 여러 대에 걸쳐서 이 마을에서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다고 할 때 이 우물은 그들이 대대로 물을 길어 올렸던, 그리하여 이 평화로운 세계의 삶을 영위했던 생활의 근원이다. 그 물은 그래서 푸른 전설처럼 그윽하고 예스러우며 아름답다.

 

이러한 시상의 흐름에 평화로운 분위기를 더하는 요소가 마지막 연에 나오는 '황소의 울음 소리'이다. 나지막하고 게으른 듯한 황소의 울음 소리. 그 속에서 물동이를 이고 일어서는 아주머니. 물동이에 출렁거리는 맑은 물과 거기에 비친 하늘 ……. 이러한 모습으로 그윽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넘치는 세계의 모습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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