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문자전(廣文者傳) - 박지원 -
줄거리
원래 광문은 종로 네거리를 다니며 구걸하는 걸인이었는데, 여러 걸인들이 그를 추대하여 두목으로 삼아 소굴을 지키게 하였다. 어느 겨울밤 걸인 하나가 병이 들어 앓다가 갑자기 죽게 되자, 이를 광문이 죽인 것으로 의심하여 쫓아낸다.
그는 마을에 들어가 숨으려 하지만 주인에게 발각되어 도둑으로 몰렸는데, 그의 말이 너무나 순박하여 풀려난다. 그는 주인에게 거적 한 닢을 얻어 수표교 걸인의 시체를 가지고 있던 거적으로 잘 싸서 서문 밖에 장사지내 준다. 그런데 전에 숨으러 들어갔던 집주인이 계속 그를 미행하고 있었는데, 광문으로부터 그 동안의 내력을 듣고는 가상히 여겨 그를 어떤 약방에 추천하여 일자리를 마련해준다.
어느 날 약방에서 돈이 없어져 광문이 또 다시 의심받게 되나, 며칠 뒤 약방 주인의 처 조카가 가져간 사실이 드러나 광문의 무고함이 밝혀진다.
주인은 광문이 의심을 받고도 별로 변명함이 없음을 가상히 여겨 크게 사과한 뒤, 자기 친구들에게 널리 광문의 사람됨을 퍼뜨려 장안 사람 모두가 광문과 그 주인을 칭송하게 된다.
나이가 차서 결혼할 때가 되었으나 자신의 추한 몰골을 생각하고 아예 결혼할 생각을 하지 않는 광문은, 어느 날 장안에서도 가장 이름난 운심이란 기생을 만나게 된다. 광문이 자신의 남루한 복장과 추한 얼굴을 숨기지 않고 많은 귀인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니, 이에 콧대 높은 운심이도 그의 소탈하고 순수한 모습에 감동하여 흔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위해 춤을 춘다.
감상 및 해설
작자는 주인공 광문을 인정 있고 정직하며 소탈한 근대적 인간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못생긴 거지이지만 착하고 신의가 있으며 남의 어려움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다. 해학과 기지로써 사람 사이의 분쟁을 무마시키기도 하고 하지만, 재물에 대한 욕심은 없다. 특히, 남녀가 평등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근대적 인간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의 성격에서도 그렇지만, 그 구성에 있어서도 근대적 성격을 갖추고 있다. 고귀하거나 비범한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대부분의 고전소설과 달리 최하층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점이 그렇고, 하층민이면서도 성실한 마음과 신의 있는 행동으로 장안의 명사가 되었다는 점이 그렇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여항인(閭巷人)의 기이한 일을 끌어 와서 풍속을 교화하는 데에 쓰려고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인정 있고 정직하고 소탈한 새로운 인간상을 부각시키려고 하였는데,, 작가가 살고 있던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사실주의적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허균의 <장생전>과 어느 면에서 상통하며, 판소리계 소설인 <무숙이 타령(왈짜 타령)>과도 통하는 바가 있다. 한편 이유원의 『춘명일사』에 나오는 <장도령전>과도 통하여 당시에 이런 유형의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점정리
◆ 갈래 : 한문소설, 단편소설, 풍자소설
◆ 성격 : 풍자적, 비판적, 사실주의적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주제
* 참다운 인간성을 잃고 권모술수가 판을 치던 당시의 세태(양반사회)에 대한 풍자
* 신의 있고 정직한 삶의 태도를 칭송함.
◆ 특성
○ 하층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회상을 풍자하고 있다.
○ 조선후기의 시정의 모습을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 새로운 인간형을 제시하여 근대 정신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 출전 : <연암집>의 '방경각외전'
◆ 작가가 말하는 작품의 창작 동기
"광문은 걸인으로서 그 명성이 실상보다 훨씬 더 컸다. 그의 외모는 더럽고 추하여 보잘것 없었지만, 성품과 행적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세상의 명성을 탐하지 않았는데도 형벌을 면하지 못하였다. 하물며 도둑질로 명성을 훔치고, 돈으로 산 가짜 명성을 가지고 다툴 일인가."
◆ 새로운 인간상의 형상화 → 이 작품에서 작가는 서민의 기이한 일을 끌어와서 풍속을 교화하는 데 쓰려고 하였으며, 이를 통하여 인정 있고 정직하며 소탈한 새로운 인간상을 부각하려 하였다. 당대 소설의 전형인 재자가인형의 인물을 취하지 않고 주목받지 못하던 거지 두목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근대적 성격을 보여 주고 있다.
★ 광문(의로움, 무욕, 자유로움, 유머러스함, 남녀평등의식) <-----------> 양반의 허위의식
◆ 인물
○ 광문 → 순박하고 의로우며 신의가 있음. 남녀평등의식을 갖고 있고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됨. 자신의 분수를 지킬 줄 알며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음.
○ 집주인 → 사람됨됨이를 알아 봄.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울 줄 앎.
○ 약국의 부자 → 사려 깊고 신중함.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할 줄 앎.
○ 운심 → 자존심이 강함. 사람됨을 알아볼 줄 아는 안목을 지님.
더 읽을 거리
● 광문의 인물됨
광문은 최하층 비렁뱅이임에도 불구하고 의리를 지켰다. 즉 광문은 동료 거지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거지 소굴에서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수표교 아래 버려진 거지 시체를 서교 공동묘지에 묻어 주었으며, 점원으로 있던 약방에서 도둑의 누명을 쓰고서도 구차하게 변명 한마디 하지 않고 점잖게 처신하였다. 그는 명성을 얻은 후에는 자신의 신용으로 남을 위해 보증을 서 주었다. 또한 광문은 분수를 아는 인물이었으며, 세속적인 욕망을 초탈한 인물이었다. 그는 마흔이 넘도록 총각으로 지냈는데 사람들이 그에게 장가들기를 권하면, 그는 "이른바 미색이란 누구나 좋아한다. 그런데 남자만 그런 것이 아니고 여자 또한 그렇다. 그런고로 나는 누추하게 생겼기 때문에 장가를 들 수가 없다."하였으며, 집을 갖기를 권하자, "나는 부모, 형제와 처자도 없는데 집은 해서 무엇하겠는가. 또한 나는 아침이면 노래 부르며 시내로 들어가고 저녁이면 부귀한 집 문간 아래에서 잠자면 그만이다. 서울의 호수가 팔만이니 내가 날마다 자는 집을 바꿔도 죽을 때까지 다 못 다닐 것이다."라고 하면서 거절했다. 이렇게 광문은 자신의 분수를 알았을 뿐 아니라 물질에 대한 욕망이 없음을 말하고 있다. 그는 또한 서울의 뒷골목 유흥가를 배경으로 살아가면서 그들을 뒷바라지해 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시 서울 장안의 호기 있는 한량들인 우림아 각 전의 별감, 부마도위의 겸인들조차 움직이지 못한 명기 운심의 마음을 움직여 춤을 추게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량들과 어울려 놀 수 있었고 친구를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중략> 우리는 이 '광문자전'에서 주인공 광문을 통해 명예에 초연하고 신의 있는 자세, 자신의 분수를 알고 헛된 욕망을 부리지 않는 건실한 삶의 태도 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신분 계층과 남녀 차별을 초탈하고자 한 선구적 가치를 살필 수 있다.
-박기석, '광문자전 연구', "한국어교육학회지" 제96호 한국어교육학회, 1998
● '광문자전'의 창작 배경과 작가 의식
'서광문 전후(書廣文傳後)' 서두에서 연암이 기술한 바와 같이 연암이 살았던 18세기 후반에 광문이라는 인물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또 그에 관한 여러 가지 일화가 민간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근거는 '광문자전'의 주인공 광문의 또 다른 이름인 달문에 관한 서로하가 이옥(李鈺)의 '장복생(張福生)'과 조수(趙秀)의 "추제기이(秋齊記異)"에 '달문'이라는 단편적인 이야기로 전하고 있음에서도 알 수 있다. 이 설화의 내용은 연암의 '광문자전' 중 약방 주인의 '돈 분실 사건' 일화와 유사하다. <중략>
광문의 또 다른 이름이 달문이었으며 달문이라는 이름이 더 보편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 광문은 점잖고 정직하고 의리가 있는 인물로서 부자 상인들, 종실 빈객, 공경 문하 측근 등의 화제에 올랐던 인물이었지만, 어린애들에게 광문은 단지 거리를 떠돌아다니는 비렁뱅이 광대에 불과한 인물로 비춰졌던 것 같다. 연암은 이와 같은 광문에 대한 이러저러한 일화를 수집하여 한 편의 문장으로 완성한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흥밋거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연암은 나름대로의 저술 의도를 지니고 광문의 일화 중에서 작품의 소재가 될 만한 것을 수집하고 보완하여 한 편이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이 과정에 작가 의식이 개입하였음은 물론이다. "방경각외전"에서 연암은 이 작품은 당대 사회의 부도덕한 풍조를 비판하기 위한 것임을 분명히 밝혀 놓고 있다. "과정록"에서 연암의 아들 박종채는 "아, 만약 작품을 지은 의미를 궁구하지 않고 다만 배우의 해학과 같은 글로 읽어 버린다면 이 어찌 선군(연암)을 안다고 하겠는가."라고 하며 아버지의 글이 제대로 읽히지 못함을 안타까워했는데, 이 또한 연암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기석, "광문자전 연구", 1998
교과서 활동 다지기
1. 이 소설에서는 여러 일화를 통해 광문의 인물됨을 알 수 있다. 일화를 바탕으로 광문의 인물됨을 정리해 보자.
일화 | 광문의 인물됨 | |
아픈 거지 아이를 위해 먹을 것을 빌어 오고, 누명을 쓰고 쫓겨난 후에도 버려진 거지 | ⇒ | 따뜻한 인간애와 인정을 지니고 있으며, 의리를 지킴. |
약방 부자에게 돈을 훔쳤다는 의심을 받으나 자신의 일을 다하는 데에 힘씀. | ⇒ | 의심을 받아도 의연하게 대처하며, 성실함. |
돈놀이를 하는 자들이 광문을 믿고 담보를 따지지 않음. | ⇒ | 물질보다 사람에 대한 신의를 중시함. |
사내가 잘생긴 얼굴을 좋아하는 것처럼 여자도 그럴 것이라고 말함. | ⇒ | 남녀가 대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함. |
집을 가지라고 권하면 필요 없다며 사양함. | ⇒ | 물질에 대한 욕심이 없으며,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함. |
2. 다음은 이 소설이 실려 있는 책의 서문에 관한 설명이다. 이를 바탕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박지원은 '광문자전'이 실려 있는 "방경각외전" 서문에서 도둑질로 명성을 훔치고, 돈으로 산 가짜 명성을 가지고 다투는 당대 사람들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바탕으로 작품을 창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
(1) '도둑질로 명성을 훔치고, 돈으로 산 가짜 명성을 가지고 다투는 당대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일지 말해 보자.
→ 실상은 추하고 보잘것없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헛된 명성에 집착하는 탐욕스럽고 부패한 양반 계층을 말한다.
(2) 작가가 광문을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말해 보자.
→ 비록 미천한 신분이지만, 성실하고 신의가 있으며 인정이 많은 광문과 같은 인물이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인간형임을 말하고자 하였다.
3. 다음은 한국 문학의 영역에 관한 견해이다. 이 소설의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 견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 보자.
한문 문학은 한국 문학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한문 문학은 한국 작가가 한국 독자를 상대로 당시 동아시아의 공동 문어인 한문을 사용해 한국인의 삶과 정신 세계를 담은 것이다. 또한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를 적극 받아들여 한국의 역사와 풍속을 그렸으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작품화해 한국 특유의 문학으로 발전했다. |
→ '광문자전'은 비록 중국의 문자인 한문으로 창작되었으나, 당시 항간에 떠돌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엮어 보여 주면서 조선 후기의 실상을 사실적으로 그린 소설이다. 특히 거지 '광문'을 주인공으로 삼아 신분이나 지위보다는 개인의 인품을 중시하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담아내면서 기존의 양반 사회를 풍자하는 조선 후기 한국 문학의 양상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4. 다음은 민속극인 '봉산 탈춤'의 일부이다. 갈래의 특징에 유의해 '광문자전'과 '봉산 탈춤'의 일부이다. 갈래의 특징에 유의해 '광문자전'과 '봉산 탈춤'에서 주제 의식을 드러내는 방법을 비교해 보자.
말뚝이 : (가운데쯤에 나와서) 쉬이. (음악과 춤 멈춘다.) 양반 나오신다아! 양반이라고 하니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를 다 지낸 퇴로 재상으로 계신 양반인 줄 아지 마시오. 개잘량이라는 '양'자에 개다리 소반이라는 '반'자 쓰는 양반이 나오신단 말이오. 양반들 : 야아, 이놈, 뭐야아! 말뚝이 : 아, 이 양반들, 어찌 듣는지 모르갔소. 노론, 소론, 호조, 병조, 옥당을 다 지내고 삼정승, 육판서 다 지내고 퇴로 재상으로 계신 이 생원네 삼 형제 분이 나오신다고 그리 하였소. 양반들 : (합창) 이 생원이라네. (굿거리장단으로 모두 춤을 춘다. 도령은 때때로 형들의 면상을 치며 논다. 끝까지 그런 행동을 한다.) -작자 미상, '봉산 탈춤' 중에서 |
'광문자전'(소설) | '봉산탈춤'(극문학) |
이 작품은 고전소설로서 서사 갈래에 속한다. 주인공 '광문'의 인물됨을 드러내는 여러 일화를 제시함으로써, 당시 사회의 부도덕한 풍조에 대한 비판과 바람직한 인간형의 제시라는 주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 '봉산탈춤'은 탈춤, 즉 극갈래로서 말뚝이와 양반들이 주고받는 대사를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하고 말뚝이가 언어유희를 활용하여 양반들을 조롱하고 비판하면서 주제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
'Reading n See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전소설 해설]두껍전 - 작자 미상 - (0) | 2022.04.17 |
---|---|
[고전소설 해설]다모전 (茶母傳) -송지양- (0) | 2022.04.17 |
[현대수필 해설]황포탄의 추석 -피천득- (0) | 2022.04.12 |
[현대수필 해설]행복한 책 읽기 -김 현- (0) | 2022.04.12 |
[현대수필 해설]행복의 메타포 -안병욱- (0) | 2022.04.1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