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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해설]호질(虎叱) - 박지원 -

by 휴리스틱31 2022.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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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질(虎叱)                            - 박지원 -

 

줄거리   

깊은 산중에 황혼이 짙어갈 무렵 산중 왕(王)인 대호(大虎)가 부하들을 모아놓고 저녁거리에 대한 의논을 하고 있었다. 사람을 잡아 먹으려 하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 의원을 잡아 먹으려 하니 의심이 많은 자이고, 무당의 고기는 속이는 자라서 불결하게 느껴지고, 그래서 청렴한 선비의 고기를 먹기로 결정을 했다. 이에 큰 범은 부하들을 남겨 놓고 골짜기를 내려온다.

이때에 정(鄭)이라는 고을에 벼슬을 탐하지 않는 선비가 있었으니, 그를 북곽선생이라고 불렀다. 나이 마흔에 손수 교서한 책이 일만 권이어서 지방 제후들도 그를 존경했다.

그런데 그 북곽선생이라는 선비가 이웃 동리에 사는 동리자(東里子)라고 하는 청상 과부의 집에 가서 그 과부와 밀회를 하고 있었다. 그 과부에게는 성(姓)이 다른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들이 모친의 방에서 남자의 음성을 듣고 엿보니, 그 남자는 도학으로 유명한 북곽선생이 아닌가. 그들은 북곽선생이 밤중에 찾아 올 리가 만무요, 아마 뒷산 여우가 모친의 아름다움을 탐내고 둔갑하여 북곽선생으로 변해가지고 와서 모친을 흘리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여우를 잡으려고 몽둥이를 가지고 모친의 방을 습격하였다. 그러자 북곽선생은 허겁지겁 도망쳐 달아나다가 그만 들판의 똥구렁에 빠져 버렸다. 머리만 내놓고 발버둥치다가 겨우 기어나오니 더러운 것이 몸에 가득했다.

바로 그때, 호랑이가 '으흥'하고 앞에 다가와 선비를 꾸짖는다. 유학자의 위선과 아첨, 이중인격 등에 대하여 신랄하게 비판하며 더러운 선비라고 욕을 하였다. 북곽선생은 정신없이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만 살려 주기를 빌었다. 황공한 태도로 손을 부비며 고개를 들어보니 범은 간 데 없고, 어느새 날이 훤히 새고 있고 농부들이  북곽선생을 둘러싸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이에 그는 농부들에게, 자신의 행동은 하늘을 공경하고 땅을 조심하는 것이라고 변명을 한다. 농부들이 사라지자 일어나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감상 및 해설  

<호질>은, 호랑이를 의인화한 우화적 소설로서 <양반전>과 더불어 당시 양반들이 지니고 있던 위선적인 모습을 희화적으로 풍자하고 있는 작품이다. 당대에서 학식으로 소문난 선비인 북곽선생이 과부 동리자와 정을 통하고, 과부의 아들에게 들켜 똥구덩이에 빠지고, 범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을 통해 연암은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호질>은 제목 그대로 '호랑이의 꾸짖음'이 되는 바, 그 형식은 순수하지 못하다는 비판도 받지만, 아무튼 호랑이의 입을 통하여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있다. 연암은 이 작품을 통해, 당시 양반들, 삼강오륜의 덕목만을 설파하면서도 호색적인 생활을 일삼는 양반들의 생활을 폭로했다. 특히 동물을 의인화하여 호랑이가 위선자의 비행을 나무라도록 한 것은 기발한 착상이 아닐 수 없다.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는 도학자와 열녀 표창까지 받은 과부의 탈선을 소재로, 유학 대가의 위선과 정절부인의 가식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연암 박지원의 개혁사상을 여실히 발견할 수 있다.

연암의 기록에 의하면, 이 작품은 옥전현에 있는 심유봉의 가게에 가서 한 기이한 작품을 보고 그 글을 주인의 승낙을 받고 옮겨 써 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이 국내 많은 유학자들을 풍자한 것으로, 그들의 노여움을 폭발시킬까 해서 다른 사람의 작품이라고 말했다는 것으로 말하기도 한다.

 

 

요점정리  

 성격 : 한문 단편 소설, 풍자 소설, 의인 소설, 우화 소설

 창작 연대 : 18세기 말(정조 때)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 조선 시대 양반의 도덕적 허위 의식 풍자

⇒ 북곽선생으로 대표되는 유학자들의 위선 풍자

    동리자로 대표되는 정절 부인의 가식 폭로

 출전 : <열하일기> 중 '관내정사'

 

 등장인물

♠ 북곽선생 → 이름 높은 위선자로서 벼슬을 싫어하는 체하는 선비이다. 그러나 남몰래 젊은 과부와 사랑을 속삭이다 동리자의 성이 다른 다섯 아들에게 발견되어 봉변을 당하고 도망치다 똥통에 빠지고 또 범을 만나 갖은 아첨을 다하고 농부를 만나서는 변명을 하는 위선자이다.

♠ 동리자 → 정의 고을에 살고 있는 과부로서 국가에서 열녀문까지 받은 열부였으나 아버지가 다른 다섯 아들을 두고 있다. 더구나 이름 높은 학자 북곽 선생과 정을 통하다 아들들에게 발각된다.

♠ 다섯 아들 → 동리자의 아버지가 다른 아들들이다 자기 어머니와 사랑을 속삭이는 북곽 선생을 여우의 변신으로 알고 습격한다.

♠ 농부 → 정이라는 고을에 사는 농부로서, 새벽 일찍 북곽 선생이 똥통에서 나와 범에게 빌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유를 묻는다.

♠ 의원 · 무당 → 정의 고을에 살면서 혹세무민하는 사람들이다.

♠ 범 → 호랑이는 비록 인간은 아니지만 의인소설로 볼 때 주인공 아닌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호랑이는 북곽 선생으로 대표되는 봉건 사회의 위선적 유학자들을 꾸짖는 역할을 한다.

 

 

생각해 보기  

■ '범의 성격

이 작품의 범은 단순히 의인화된 동물이 아니라, 인격화되고 성화(聖化)된 존재이다. 범은 선비로 대표되는 인간을 비판하고 풍자하는 주동적 인물이며, 한국인들의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영적 동물로서 연암을 대변하는 주인공이다. 뿐만 아니라, 제3부에 등장하여 인간을 직접 질타함으로써 작품의 유기적 구성에도 이바지하고 있다.

 

■ 실학파 문학

성리학을 지도 이념으로 하던 조선은 전란을 거치면서 전통에 대한 반성과 극복의 길을 모색하게 된다. 이에 일부 학자들은 성리학만 고집하는 문화의 한계성을 깨닫고, 정신 문화와 물질 문화를 균형 있게 발전시켜 부국강병과 민생 안정을 달성해 안으로는 분열된 사회를 다시 통합하고 밖으로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대처할 수 있도록 국가 역량을 강화하려는 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이러한 문화 운동인 실학은 학술과 종교, 문학, 예술 등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 특히 박지원, 정약용, 홍대용, 이덕무 등의 실학파 문인들은 중국의 고문(古文)에 반대하면서 신선한 구상과 사실적인 기법으로 평이한 시와 산문을 집필하였으며, 중국의 전형을 탈피하는 독자적인 한문체를 확립했다.

 

■ 제목의 의미

제목 '호질(虎叱)'은 '범이 꾸짖는다'는 뜻이다. 이로 보건대, 이 작품의 주인공은 범이며 그는 매우 비판적 관점을 취하고 있음을 추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주로 비판 대상이 되는 것은 북곽 선생으로 형상화되어 있는 위선적인 선비 계층이다. 제목에 나타난 '꾸짖음', 즉 질타의 대상은 겉과 속이 다른 선비인 것이다. 즉, 이 작품의 제목은 '범이 위선적 선비를 꾸짖는다.'는 작품 내용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질타의 대상

이 작품에서 범이 꾸짖는 대상은 우선 표리부동한 인간이다. 인간의 어떤 점이 어떻게 질책되고 있는지 작품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자.

제1부에서는 인간의 가치를 범의 먹거리로서 평가하고 있다. 사람의 상투를 짐승의 꼬리와 동일시함으로써 인간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고 나서 범은 의사, 무당, 선비를 먹이의 대상에서 제외시킴으로써, 그들의 존재 가치를 부정한다. 의사나 무당이나 선비는 모두 혹세무민(惑世誣民)을 일삼는 자들이기 때문에 맛이 없다는 것이다.

제2부에서는 위선적 인간의 모습이 어두운 밤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존경받는 북곽선생과 열녀로 칭송되는 동리자는 조선 사회가 숭상해 오던 인간상들이다. 그러나 북곽 선생은 과부의 집을 드나드는 바람둥이이고, 동리자는 성이 다른 아들을 다섯이나 둔 부정한 여인이다. 여기에서 조선 사회의 이중성, 허위성이 여지없이 폭로된 것이다. 특히, 북곽 선생이 똥구덩이에 빠진 것은 선비의 실상을 가장 적나라하게 해학적으로 형상화한 부분이다. 북곽선생이 똥과 동일시됨으로써, 그의 추한 모습이 분명하게 제시된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대중들은 이들의 명성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동리자의 다섯 아들은 어머니의 방 안에 있는 남자가 북곽 선생일 가능성을 생각하지도 앟는다. 여우가 둔갑하여 동리자를 유혹하고 있는 것으로 믿는다. 이 작품은 북곽 선생과 동리자의 위선에 대한 풍자에 그치지 않고, 동리자의 다섯 아들을 포함한 고을 사람 전체의 어리석음에 대해서도 비판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

제3부에서는 제1부에 등장했던 범이 북곽 선생과 만난다. 여기에서는 똥과 동일시된 선비의 위선이 범의 입을 통해 직접 표현된다. 그런데, 범은 자신들의 자연스럽고 정직한 세계와 대비시켜 가면서, 선비의 위선과 허위를 지나 인간의 비정, 부도덕까지 비판의 범위를 넓혀 나간다. 그러나 새벽에 북곽 선생을 만난 농부는 눈앞에 나타난 이중적 선비의 모습을 간파하지 못한다. 선량하되 타자나 세계의 진실에 눈뜨지 못한 어리석은 대중들의 모습이다. 그래서 북곽 선생은 밤의 모습에서 다시 근엄한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범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달라진 것이 없다. 마치 허생의 신랄한 비판에도 불고하고 개혁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위정자들의 모습과 같이 평면적 인물들이다.

 

 

■ 범이 먹이감을 물색하면서 의원, 무당, 선비를 뭉뚱그려 맛이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당대의 신분 질서, 그리고 작품 전개 방향으로 보아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가?

조선시대 신분 질서에서는 사(士) 계층이 가장 상류에 위치한다. 그러므로 의원이나 무당은 선비들이 천시하는 계층이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세 계층이 먹이로서의 가치도 없는 인간으로 동일시되었다. 이것은 이 작품에서 가장 신랄한 비판의 대상이 선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음에 이어지는 북곽 선생의 위선을 폭로하고 조롱하는 이야기로써 확인이 된다. 그러므로 범이 먹이감으로서 의, 무, 사를 같은 차원에서 논의한 것은 선비의 위선과 가면을 중점적으로 비판하기 위한 의도이며, 또 북곽 선생의 이야기를 이끌어 내기 위한 도입부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 연암의 문학관과 소설

연암은 당시 사대부들이 숭상하던, 당송 팔대가의 문장을 본뜬 고문의 문체를 거부하였다. 그는 '고문이란 옛적에 있어서의 일상적 언어를 기록한 것으로서, 참다운 문학의 길은 이미 화석화되어 버린 옛말과 경험을 답습하는 데 있지 않고, 그 진정한 의미를 음미하면서 자신의 시대와 경험을 살리는 데 있다.'고 하였다. 그는 시대적 변화를 전제로 현실을 중시하는 문학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당대의 현실에서 소재를 택하여, 실생활과 거리가 먼 현실을 비판하고 풍자하였다. 아울러 그는 문학에서 중국적 형식과 내용을 추종하는 인습을 비판하고 우리의 풍토와 역사, 문화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 우리의 현실 속에서 문제점을 찾아 우회적으로 혹은 반어적으로 조명하는 소설에 가치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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