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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줄거리/해설]산골(1934)-김유정-

by 휴리스틱31 2021. 10.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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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1934)

-김유정-  

 

● 줄거리

 

산골 마을에 사는 청춘 남녀인 이뿐이와 도련님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조심스럽게 키워 나간다.

어느 날 이뿐이가 마님의 입맛을 돋울 나물을 캐러 산으로 가는데, 도련님은 이뿐이에게 딴청을 부리는 듯하면서 관심을 보이며 접근한다. 이뿐이도 그런 도련님이 싫지만은 않다.

이뿐이는 자신과 도련님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챈 마님과 엄마의 주의를 받는다. 어느 날, 이뿐이와 도련님은 또다시 서로 만나다가 마님에게 들켜 이뿐이는 모진 처벌을 당한다.

이뿐이를 향한 도련님의 구애는 계속되고, 도련님의 집요한 구애가 이뿐이는 싫지 않다. 급기야 도련님은 이뿐이에게 자신이 서울로 공부하러 떠날 계획을 알리고, 함께 도망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이뿐이가 확답을 하지 못한 채 도련님은 옷고름 한 조각을 믿음의 징표로 남긴 채 예정대로 서울로 떠나고 만다.

이뿐이는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마을 총각 석숭이에게, 도련님에게 보낼 편지를 써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고, 석숭이가 편지를 다 써 오자 도련님에게 편지를 전해 줄 우체부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린다.

 

● 인물의 성격

 

◆ 이뿐이 → 도련님 앞에서는 다소곳하고 고분고분하지만, 석숭이 앞에서는 쌀쌀맞고 당차게 대항하는 인물로, 신분의 장벽을 인식하면서도 신분 상승에 대한 욕구도 함께 지니고 있다.

◆ 도련님 → 자신의 감정 표현에 솔직하지만, 다소 현실에 대한 감각이 떨어지며 자신의 말과 행동에 제대로 책임을지지 못하는 무책임한 면모를 지닌다.

◆ 석숭이 → 일편단심 이뿐이만을 바라보는 순수한 인물로, 객관적인 상황 판단이나 상대방의 심리 판단에는 미숙한 어수룩한 인물이다. 작품 전체의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밝고 경쾌하게 변화시킨다.

◆ 이뿐이 엄마, 마님(도련님 어머니) → 전통적인 신분 장벽(차이)의 관습에 충실히 따르는 인물들이다.

 

 

● 구성 단계

 

◆ 발단 : 이뿐이와 도련님 등 인물 소개

◆ 전개 : 이뿐이와 도련님의 사랑이 시작됨.

◆ 위기 : 마님에게 들키는 바람에 이뿐이만 모진 처벌을 당함.

◆ 절정 : 도련님은 서울로 공부를 하러 떠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됨.

◆ 결말 : 석숭이에게 부탁을 해서 도련님에게 부칠 편지를 써서 우체부가 오기를 기다림.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서로 신분이 다른 두 청춘 남녀의 풋풋하면서도 애틋한 사랑과 이별을 형상화하고 있는 소설이다. 이뿐이와 도련님 사이에는 신분적 장벽이 가로막고 있어 둘의 애정은, 장애에 부딪히는데, 이러한 점은 고전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혼자 장애 모티프와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작품은 자연적 소재나 '산골'의 배경 묘사를 활용하여 이뿐이의 심리나 정서를 암시하고 있다는 점, 한자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대신에 고유어로 된 지역 방언을 적절히 사용함으로써 작품의 토속적인 분위기를 잘 살리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소설은 전체적으로 '산 → 마을 → 돌 → 물 → 길'의 소제목이 붙어 있어 형식의 새로움을 주고 있으며, 작품 후반부에 등장하는 '석숭이'와 '이뿐이'의 동상이몽의 관계 속에서 펼쳐지는 '편지 사건'은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애상적이고 애잔한 그것에 해학적인 느낌을 가미시켜 줌으로써 신선함을 더하고 있다.

 

 

 작품 속 소제목이 지닌 상징적 의미

* 산 → 도련님과 이뿐이만의 밀폐된 공간으로 과거의(추억의) 장소이자, 도련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현재의 장소

* 마을 → 신분의 장벽이 엄연히 존재하는 장소이자, 이뿐이와 도련님의 관계가 공개되는 장소이며, 이뿐이가 처벌을 받는 장소

* 돌 → 이뿐이가 석숭이에게 모질게 대할 것을 암시, 이뿐이의 처지가 매우 곤란해질 것을 암시

* 물 → 도련님과 과거의 사랑의 추억이 있는 장소와 관련되며, 둘 사이의 사랑과 관련된 두려움과 금기를 인식하는 곳

* 길 → 이뿐이의 간절한 마음이 뻗어나감을 암시, 도련님이 떠나간 곳이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곳, 이뿐이의 마지막 희망인 편지를 전달해 줄 우체부를 기다리는 장소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현대, 단편 소설

◆ 배경 : 시간 - 일제강점기(1920~30년대),  공간 - 산골 마을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상 특징

* 자연적 배경이나 소재를 활용하여 인물의 정서나 심리를 암시한다.

* 전지적 시점을 중심으로 하되, 부분적으로 등장인물의 시점을 활용하고 있다.

* 지역(강원도) 방언을 사용하여 내용의 사실성과 현장감 및 향토적 분위기를 부각시키고 있다.

◆ 주제  산골 남녀의 순수한 사랑, 이별의 정한과 그리움, 신분의 장벽으로 인한 비극적 사랑

 

 

● 생각해 볼 문제

 

1. 제목에 담긴 의미를 말해 보자.

⇒ 이 소설의 제목 '산골'은 공간적 배경을 담고 있다. 이 제목을 통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성격 및 작품의 내용이나 주제 등이 뭔가 모를 순수하고 애틋할 것 같은 느낌과 암시를 준다. 외부와 고립된 위치에 있는 산골 마을은, 자신을 버리고 떠나간 도련님을 마냥 그리워하며 속앓이를 하면서 도련님에게 보낼 편지를 하루라도 빨리 보내고 싶은 생각에 매일같이 우체부 오기만을 기다리는 이뿐이의 처지를 드러내기에 적합한 공간으로 작용한다.

 

● 더 읽을거리

 

 김유정 소설의 민중적 성격

 

김유정의 소설은 주로 사상이나 내용의 무게보다 형식적인 면, 즉 기교나 구성에서 뛰어난 재능을 발휘한다고 평가된다. 기교 가운데는 특히 반어와 해학이 돋보이며, 구성은 반복적이고 회귀적인 특성을 지닌다고 한다. 또 전통 계승적 측면에 초점을 맞춘 연구에서도 김유정 소설의 문체와 구성 같은 작품의 형식적 측면이 중시되는 일이 많다. 실제로 이런 연구들은 그 자체로서 일정한 근거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상당한 설득력을 갖춘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접근 방법들은 다음과 같은 의문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김유정의 작품들은 문학의 기교나 형식만 거로난 가치가 있고 사상이나 이념 같은 것은 무시해도 좋은 것일까. 그의 작품들에는 사상과 유리된 기교나 형식미만 살아 있다는 것인가. 도대체 문학 작품이란 형식과 내용이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으며, 그런 식으로 접근해서 대상 작품의 정체가 과연 제대로 밝혀질 수 있는 것인가.

 

한편 수적으로 약세이긴 하지만 김유정 소설의 사상성, 특히 당시 농촌 현실에 대한 그의 인식을 주목한 경우도 없지 않다. 그 중에는 김유정 문학의 현실 인식을 높이 평가한 경우와 그 한계성을 주로 비판한 경우도 있긴 하다. 물론 여기서 우리는 그런 현실 인식에 대한 평가의 적절성 문제를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이런 논자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문제시하는 것은 앞에 지적한 바와 같이 양자가 모두 내용을 형식과의 관계 아래 보지 않는다는 점에 있다. 작품의 이념이나 사상을 기교나 구조와 같은 형식미와는 상관없이 다루고 있다는 데에 이런 글들이 가진 문제점이 지적된다는 말이다. 작가에게 현실 인식이나 세계관은 형식이나 미학과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들 역시 형식주의자와 마찬가지로 도외시하고 있다고 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김유정 자신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정작 어떤 입장으 보여 왔을까. 그동안 논자들의 관심과 견해의 대세를 중심으로 본다면 그는 의당 문학의 기교나 형식을 강조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병상의 생각>이라는 서간체 수필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예술의 생명을 잃은 그들(신심리주의 문학가)에게 가장 중요한 간판으로 되어 있는 것이 형식(形式), 즉 기교(技巧)입니다. …… 그들은 괴망히도 치밀한 묘사법으로 인간 심리를 내공(內攻)하야, 이내 산 사람으로 하여금 유령을 만들어 놓은 걸로 그들의 자랑을 삼습니다."

이것은 물론 심리주의 작가의 기교 위주의 태도를 비판한 말이지만, 김유정이 문학에서 기교나 묘사보다 이념이나 사상을 더 강조한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것은 그가 연애를 위한 연애나,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형식주의(기교주의) 예술 등을 부정하는 대신, 연애는 인류 상호 결합의 근본 윤리며, 사랑은 많은 대중(민중)을 한 끈에 꿸 수 있을 때 위대한 생명을 갖게 되며, 예술은 그런 사랑에 기초하여 인류 사회에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하다는 등의 진술로도 알 수 있다. 또 그런 견지에서 개인주의를 비롯하여 니체의 초인설(超人說)과 맬세스의 인구론보다는 "크로포트킨의 상호 부조론이나 맑스의 자본론이 훨씬 새로운 운명을 띠고 있는 것"이라고도 하였다.

 

물론 이와 같은 김유정의 진술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령, 남녀 간 애정의 사회적 역할을 과대평가한다든가, 그가 말하는 사랑의 개념이 어떤 맥락과 범주를 가지고 있는지가 모호하다든가, 크로프트킨과 맑스를 함께 수용하는 태도가 이념이나 세계관의 면에서 석연치 않다는 점들을 문제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문제들은 뒤에서 다시 검토하기로 하고, 여기서 우선 명백히 해 둘 것은 김유정의 핵심적인 문학 예술관이 민중에 대한 폭넓은 사랑에 기초하여 인류 사회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예술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그런 맥락에서 김유정 작품의 뛰어난 기교와 형식 문제도 생각할 여지가 있지 않나 싶다.

 

특히 그가 예술의 목적인 전달에 있는가, 표현에 있는가에 대하여, "표현이란 원래 전달을 전제로 하고야 비로소 그 생명이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런 진술은 문학에서 사상, 즉 메시지를 중시하는 그의 입장과 무관하다고 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작가의 시각과 주장은 그대로는 아니라 하더라도 상당 부분 작품에 반영되어 있으며, 또 그것은 적어도 거의 창작의 기본 방향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런 점들을 고려하여 김유정의 언어적 실천(작품)이 당대 현실과 어떤 연결성을 지니고 있는지를 밝혀 보고자 한다. 이를 테면 그의 작품의 서사나 문체가 당시의 현실, 즉 '정치사적 지평과 사회사적 지평 그리고 생산 양식사적 지평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를 고찰해 보려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사상 중시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표현' 그 자체가 아니라 '전달'을 전제한 '표현'에 강조를 두기도 한 김유정 소설의 본질 규명에 더욱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선영, <선청어문 23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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