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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산문,가전체문학 해설]국순전(麴醇傳) -임 춘-

by 휴리스틱31 2021.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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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순전(麴醇傳)  -임 춘-  

 

줄거리

 

국순이란 ‘누룩술’이란 뜻이다. 그의 조상은 모(牟)로서 보리를 뜻한다. 곧 보리의 후손이 누룩술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어느 날, 임금은 모에게 자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그가 사는 고을 근처에다 명을 내려 그의 집에 예물을 후하게 보내도록 하였다. 또한 신하에게 명하여 친히 그의 집에 가서 교분을 맺으며 세속사람과 사귀게 했다. 모의 자손은 상대방을 감화하고 가까워지게 하는 지혜와 덕이 있어 임금은 그에게 정문(旌門)을 내렸고 표창했다.

 

위나라 초, 국순의 아비 주(酎)의 이름이 세상에 나기 시작했다. 주는 실상 소주이다. 진나라 세상이 되자 주는 장차 세상이 어지러워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주는 도량이 넓고 커서 마치 만경(萬頃)의 바다 물결과 같았다. 그가 풍기는 기운은 한 세상을 뒤엎을 듯했으며, 그 기운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사람들으 그를 국처사라 부르기도 했다. 사람들이 여럿이 모였다가도 만일 국처사가 오지 않으면 모두가 쓸쓸한 표정이었다.

 

진의 후주(候主) 때다. 임금과 신하가 회의를 할 때면 반드시 순(醇)을 시켜 술잔을 채우게 했다. 이에 순은 특권을 얻어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게 되었다. 순은 또 임금의 입에 술로 재갈을 물리듯 해서 아무런 말도 못하게 했다.

그러나 순의 입에서는 늘 냄새가 났다. 임금이 그것을 싫어해서 순은 별수없이 관(冠)을 벗고 사죄했다.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온 순은 갑자기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순에게는 아들이 없었다. 그러나 족제(族弟)로 청(淸)이 있었는데, 그가 당나라에서 벼슬하여 내공봉까지 지냈다. 이로부터 그의 자손이 온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이해 및 감상

 

국순전은 고려 고종 때의 문인인 임춘이 지은 가전체 작품으로서 술을 의인화한 작품이다. 가전(假傳)은 세상을 비판하고 풍자하면서 계세징인(戒世懲人)하고자, 사물을 의인화하여 실전(實傳)과 같은 기술 방법으로 써 나가는 국문학의 한 갈래이다. <국순전>은 술을 의인화하여 술과 인간의 관계를 말한 것으로, 술의 내력과 국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흥망을 풍자한 것으로 현존하는 가전체의 효시가 된다.

 

<국순전>에 나타난 술의 행적은 도량이 넓고 기운을 붇돋우는 재간이 있어 모두의 흠모를 받기는 하지만, 벼슬길에 요행히 올라서는 향락만을 일삼고 왕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였다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즉, 술은 흥을 돋우어 주는 것이지만, 너무 마시면 나라마저도 망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술을 좋아하게 된 것과 때로는 술 때문에 타락하고 망신하는 형편을 풍자하고 있다. 그 당시 술에 빠져 향락만을 일삼던 벼슬아치들을 꾸짖고, 교활한 방법으로 임금을 혼란에 빠지게 하여 정사를 그르치게 하는 무리들을 지탄하는, 다분히 풍자적이면서 작가의 창작의도가 또렷하게 나타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당시 국정의 문란과 병폐, 특히 벼슬아치들의 발호와 타락상을 고발하면서 소인배들의 득세로 뛰어난 인물이 소외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임춘이 이와 같은 가전체 형식을 가지고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당대에 몰락하게 된 자신의 처지에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다. 집안이 몰락하고 자신의 목숨만 겨우 부지한 처지는 한스러운 세상에 대한 비판의식을 강하게 갖게 했던 것이다. 즉 무신란에서 피해를 입은 구 귀족의 잔존 세력에 속하는 그는, 관념적인 사고의 틀을 깨고 구체적인 사물과의 일상적인 관계를 생각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가전의 형식을 통해서 나타낸 것이다.

 

 

요점 정리

 

 연대 : 고려 중엽

 갈래 : 가전체(假傳體)

 성격 : 풍자적, 비판과 경계의 문학

 표현 : 의인법

 구성 : 일대기를 중심으로 한 순차적 구성

* 도입 → 국순의 가계 소개

* 전개 → 국순의 성품과 정계 진출, 임금의 총애와 국순의 전횡, 국순의 은퇴와 죽음

* 비평 → 국순의 생애에 대한 사관의 평가

 제재 : 술(누룩)

 주제

* 임금께 아부하는 간사한 벼슬아치의 풍자

* 술의 내력과 술에 의한 조정의 흥쇠(興衰) 풍자

 출전 :<서하선생집>, <동문선>

 의의

① 현전하는 가전체 문학의 효시

② 술을 의인화한 이규보의 <국선생전>에 영향을 미침.

 

 

참고사항

 

◆ 지은이 : 임춘(林椿 1147-1197) 고려 중기의 문인. 호는 서하(西河). 정중부의 무신란 때에 일가가 피해를 입고, 겨우 목숨을 보전하였다. 문명(文名)은 크게 떨쳤으나 과거에 번번이 낙방하였다. 불우한 일생을 보내면서도, 이인로 등과 죽림고회(竹林高會)를 이루어 시주(詩酒)로 생활하며 많은 시문을 남겼다. 사후에 그의 좋은 글벗이었던 이인로에 의해 <서하선생집> 6권이 간행되었고, 가전 작품으로 '국순전'과 '공방전'이 있다.

 

◆ '가전(假傳)'에 대하여

 

가전은 고려 중기 이후 일부 문인들에 의해 이따금씩 창작된 특수한 한 갈래로서, 가전체 혹은 의인전기체(擬人傳奇體)라고도 불린다. 이 부류의 작품들은 어떤 사물을 역사적 인물처럼 의인화시켜서 그 가계(家系)와 생애 및 개인적 성품, 공과(功過)를 기록하는 전기(傳記)의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실전(實傳)에 상대되는 가전(假傳) 또는 의인전기체라고 하는 것이다.

 

고려 후기에 가전이 발달하게 된 까닭은 그 창작 계층인 사대부들의 사상적 특질 때문이라는 설명이 정설화되어 있다. 즉, 이 시기의 사대부들은 종래의 구귀족과는 달리 세계와 인간 생활을 구성하는 실제적 사물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 하였던 바, 이에 따라 사물과 관념을 긴밀하게 통합하여 파악하는 양식인 가전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전해지는 가전체 작품은 대체로 계세징인(戒世懲人)을 목적으로 지어진 이야기로, 교훈적이며 우의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창의성이 상당히 가미된 허구적 작품이라는 점에서 소설문학에 한 단계 접근한 문학양식으로, 설화와 소설의 교량적 구실을 한 점에서 국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

 

가전의 대표작에는, 임춘-국순전(술 의인화). 공방전(돈 의인화). 이규보-국선생전(술 의인화).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거북이 의인화). 이곡-죽부인전(竹夫人傳 대나무 의인화). 이첨-저생전(楮生傳 종이 의인화). 석식영암-정시자전(丁侍者傳 지팡이 의인화) 등이 있다.

 

 

◆ '가전(假傳)'의 문학사적 위치

흔히, 가전을 설화와 소설의 교량적 위치에 두어 '설화 → 가전 → 고전소설'의 변천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지나친 단순 논리이다. 먼저, 얼마나 많은 전대의 설화들이 수용되었는가라는 관점에서, 고려 시대 가전 작품들을 살펴보면, 설화가 가전에 미친 영향이 지극히 미미함을 알 수 있다. 설총의 <화왕계>가 우리나라 가전의 선구적 작품이라 할 때, 그것은 단순히 의인체라는 점에서 그런 것이지 본질적인 면에서 가전은 중국에서 유입되어 변용된 양식이라고 해야 옳다.

 

가전과 설화의 이상과 같은 관계는 설화와 고전소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전은 소설처럼 일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전후의 내용이 유기적인 연결 관계에 놓여 있지 못하다. 사실을 중심으로 하는 내용 단락들의 독립성이 우세하다는 면에서 소설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따라서, 가전은 소설의 독서 과정에서 맛볼 수 있는 긴장감을 느낄 수가 없는 문학이다.

 

물론 조선시대의 한문 소설 중, <화사>나 <수성지> 같은 작품들은 가전의 형식을 본뜨면서, 사건 중심으로 허술한 비전기체라는 점 때문에 '가전 → 고전소설'의 영향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고전 소설 전반에 걸친 현상은 아니다. 다만, 대부분의 가전과의 막연한 유사성을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모든 문학이 허구성을 바탕으로 창조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두 문학 양식의 본질적 영향 관계로 설정하기에는 너무도 추상적인 요소이다.

 

◆ '국순(술)'의 양면성

 

<국순전>에 나타난 술의 행적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국순의 도량이 크며 남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재간이 있어 위로는 높은 벼슬아치에서부터 아래로는 머슴 · 목동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흠모했다는 긍정적인 면이고, 다른 하나는 순이 벼슬길에 오르면서 왕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고 돈을 거두어 들이는 등의 비리를 저질러 여론의 지탄을 받다가 하루 저녁에 죽는다는 부정적인 면이다. 이 양면성은 술의 속성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속성이기도 하다. 술은 사람의 흥을 돋구어 주는 것이지만 너무 마시면 방탕으로 흘러 스스로를 망칠 수 있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신하된 사람은 왕의 신임을 얻어 국가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될 수도 있지만, 자기 분수를 지키지 못하여 비난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것은 왕위에 있는 사람도 관리를 잘못 등용하여 정사를 그르치는 과오를 저지르면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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