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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해설/분석]쉽게 쓰여진 시 - 윤동주 -

by 휴리스틱31 2021.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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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쓰여진 시
                                                                              -  윤동주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봉투를 받아  

 

대학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 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은 최초의 악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회고적, 고백적, 자기성찰적, 의지적, 반성적, 미래지향적

◆ 표현 : 상징적 표현,  수미쌍관적 구성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밤비가 속살거려 → 시적 화자의 쓸쓸한 심정을 더욱 고조시키는 배경.

                                    화자로 하여금 자신을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됨.

 

    * 육첩방은 남의 나라 → 화자가 처한 현실적 상황이 단적으로 드러난 표현(일본유학시절임)

                                        육첩방(다다미가 여섯 장 깔린 일본식 방)은 '나'를 구속하는 한계상황으로,

                                                   구속과 부자연스러운 삶의 공간을 상징함.

 

    * 시인이란 슬픈 천명이다

        → 시인은 현실에 직접 참여해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 현실 문제에 직접

                참여하지 못하고 '시'로서밖에 말하지 못하는 소극적인 삶에 대한 괴로움이 나타남.

                   ('남의 나라'라는 현실적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인식하는 데서 오는 고통)

 

 

    * 늙은 교수의 강의 → 현실과는 동떨어진 학문(영문학)

                                     화자의 고민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무기력한 학문

                                     학문 세계에 대한 회의적 생각이 반영됨.

 

    * 3, 4연 → 현실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무기력한 자아의 모습.

 

    * 나는 무얼 바라 /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바란다'는 것은 상승의 이미지이나, '침전한다'는 하강의 이미지이다. 이러한 이미지의 모습을 통해

         시적 자아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아의 내면으로 자꾸 몰입하는 자신의 시작(詩作) 행위에 대한 성찰을  보여 준다.

 

역설적 표현

 

    *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희망도 없이 무의미한 생활을 해나가는 데 대한 자책감과 부끄러움.

 

    * 시가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 삶의 어려움과 엄숙함에 대해 자신의 시가 정직하지도 진실하지도 않은 것은 아닌가에 대한

               반성적 자기 질문에 대한 결론은 결국 부끄러움이라는 것이다.

             (시를 쓰는 행위에 대한 반성과 시가 쉽게 쓰여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노래함)

 

 

    * 등불을 밝혀 → 화자를 실의에 빠지게 했던 모든 요소들을 부정하려는 엄숙한 결의

                                  (등불 : 암담한 현실을 헤쳐나가는 정신적 지표, 새 시대를 향한 노력)

 

    * 시대처럼 올 아침 → '아침'은 '어둠'과 대립되는 이미지임.

                                     새로운 시대 혹은 조국의 광복

                                     정직한 영혼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괴로워할 수밖에 없게 하는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때(개인적 번민으로부터 해방되는 시기)

 

    * 최후의 나 → 굳은 의지를 가진 화자를 가리킴.

 

    * 나는 나에게 → 나(우울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아가는 자아)는 나(삶을 반성하고 극복하는 자아)

 

    *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내면적 자아와의 화합을 이루어 보여주는 의지적 결단의 자세

                                                                       (분열된 두 자아의 화해)

 

 

 주제  자아성찰을 통한 암울한 현실의 극복 의지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화자가 처한 상황 제시

◆ 2연∼4연 : 현재의 삶에 대한 무기력함과 회의.

◆ 5연∼7연 : 부끄러움에 대한 각성(반성적 자아성찰)

◆ 8연∼10연 :현실 극복의 의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42년에 씌어졌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구절에서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그가 익숙하지 않은 일본식의 생활 공간인 동시에 다다미 여섯 장의 넓이로 그의 세계를 한정하는 구속, 부자유의 은유이다. 그는 이러한 공간 안에 갇혀 있으면서 시를 쓴다. 이 때 `시인이란 슬픈 천명'이라고 그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시인이 현실을 직접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데 대한 괴로움에 연유하는 듯하다.

 

 

제3연부터 제6연까지는 바로 이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성찰의 내용이다. 그는 부모님이 보내 주신 학비를 받아 낯선 세계에서 대학을 다니며 생활한다. `늙은 교수'라는 말이 암시적으로 풍기는 것처럼 그가 듣는 강의는 번민하는 한 젊은이의 절실한 문제들과는 거리가 먼 회색빛 메마른 지식으로 가득 차 있다. 거기에는 들끓어 오르는 정열도 힘찬 생명의 약동도 없는 듯하다.

 

이처럼 현실에서 뿐 아니라 그가 동경하던 학문의 세계에서조차 회의적인 생각을 맛보면서 그가 현재의 자신을 우울하게 되새겨 보게 됨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소중한 것들을 모두 잃어버리고 이 답답하고 음울한 세계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면서 그는 자신이 삶의 밑바닥으로 끝없이 가라앉아 간다고 느낀다.

 

여기에서 다시 윤동주 시의 중요 내용의 하나인 `부끄러움'이 등장한다. 그것은 삶의 어려움과 엄숙함에 대해 자신의 시가 정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적으로 묻는 성실성의 소산이다.

이처럼 괴로운 반성과 연민의 시간에도 비는 내린다. 그리고 육첩방은 그 좁음과 낯설음으로 그의 영혼을 압박한다. 세상에는 어둠이 가득 차 있고, 그의 가슴 속에는 번민이 숨쉰다.

 

그러나 「별 헤는 밤」의 경우와 비슷하게 윤동주는 이 음울한 상황에 체념하지 않고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온 세상에 가득한 어둠을 한 번에 없앨 수는 없지만 자신의 마음 속에 등불을 밝혀 그것을 조금 내몰 수는 있다. 그는 이렇게 어둠과 절망을 견디면서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린다. 이 때의 아침이란 좁게는 개인적 번민으로부터의 해방일 터이고, 더 넓게는 정직한 영혼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괴로워할 수밖에 없게 하는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때를 의미한다. 마지막 연에 보이듯이 그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그러나 결코 체념하지 않고 자신의 손을 잡는다. 이 때 두 사람의 `나'는 곧 현실 속에서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자아와 그것을 반성적으로 바라보는 또 하나의 자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시는 '부끄러움'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형상화 하고 있다. 그 부끄러움은 학문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乖離感), 시를 쓰는 자신과 시 사이의 거리감(距離感) 등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는 소외 의식과 내적 갈등을 일으킨다. 그러나 그는 부끄러워하지만 결코 절망하지는 않는다.

 

[생각해 볼 문제]

1. 이 시에 드러나 있는 시적 상황과 분위기를 말해 보자.

→ 비 내리는 밤, 남의 나라이자 침략국인 일본의 하숙방에 앉아 시를 쓰고 있는 자신에 대해 느끼는 실의와 우수 그리고 부끄럼이 주된 시적 상황과 분위기를 이루고 있다.

2. 제3연과 4연에 드러나는 시적 자아의 심정을 말해 보자.

→ 부모로부터 학비를 받아, 희망과 위안을 주지 못하는 늙은 교수의 강의를 들어야 하는 시적 자아 자신에 대한 실망과 부끄럼으로 가득 차 있다.

3. 이 시에서 운명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정이 드러나 있는 연을 지적하고 그 이유에 대해 말해 보자.

→ 제10연으로, 이 부분에서는 화해의 상징인 악수를 통해 본질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 사이의 갈등이 해소되고 있으며, 이것은 곧 시적 화자가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있다는 자신에 대한 연민의 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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