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도(1950)
-황순원-
● 줄거리
자작나무 숲이 들어선 구릉성의 산맥과 잇닿아 펼쳐진 무연한 초원에 수십 수백 마리씩 무리를 지어 다니는 이리떼 속에서 몽고 사람들은 소박하기 짝이 없는 목가적인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만수 외삼촌은 인심이 후한 몽고 땅 한 곳, 주막도 없는 곳에 저녁에 당도했다. 그가 하룻밤 묵게 된 민가에는 일본인 객이 한 사람 있었다. 밤이 늦도록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문 밖에서 개가 짖어대자 주인은 몽고인 특유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리떼가 나타난 것이라고 했다. 이리떼가 더 가까이 다가오자 개들이 더욱 극성스럽게 짖어댔다.
이때 마주앉았던 일본인 객이 권총을 손에 쥐고 벌떡 일어났다. 주인이 약간 놀라는 빛으로 손을 들어 만류하자 그는 이리떼를 쏘려고 했다. 주인은 들었던 손을 거두면서 정 쏘려거든 허공에다 한 방 쏘아서 쫓아 버리라고 한다. 일본인 객도 제 고집을 세우지 않고 밖으로 총만을 내밀고 무턱대고 한 방 쏘고는 제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짐승의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자 주인은 이리가 화약 냄새를 싫어하고 겁내지만 한 번 피를 본 뒤에는 미친 듯이 달려들기 때문에 총소리를 내서 쫓아 버리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국경선을 지키는 군인 셋이 이리떼를 만나 죽은 이야기를 해준다. 그들은 이리떼가 추근거리면 총을 한 방씩 쏘아가면서 인가를 찾아가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술에 취해서 이리떼를 향해 불을 놓다가 총알이 다 하여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주인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렀을 때, 이리라도 나타나듯 개들이 다시 몸을 피하면서 짖어대기 시작한다. 군에 있을 때 사격의 명수였다는 일본인 객은 살기와 흥분으로 인해 핏기가 걷힌 얼굴색을 한 채 자신의 명솜씨를 보여주겠다고 한다. 당황하여 이를 말리던 주인은 어떨 수 없어서 내버려 둔다.
총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주인과 만수 외삼촌은 불길한 예감에 문 밖으로 뛰어나간다. 총소리가 몇 방 계속되더니 이내 딱 그치고 그 지점에서 야릇한 비명 소리에 섞여 바람소리 같은 것만 들려온다. 만수 외삼촌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당하는 일이라 거짓말 같이 느껴졌으나, 선량한 주인은 눈물까지 흘리면서 슬퍼한다. 두 사람은 그가 살아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날이 밝기만을 기다린다.그러나 피로와 술기운 때문에 만수 외삼촌은 자기도 모르게 쓰러져 잠이 든다. 만수 외삼촌이 깨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주인은 그의 앞에 한 자루의 권총만을 내보이면서, 그곳에 머리칼 한 오라기 헝겊 한 조각조차 남겨져 있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일본인 객의 죽음을 실감한 만수 외삼촌은 이리를 향한 증오감과 분노를 느낀다. 주인은 권총에 묻은 말라붙은 검붉은 핏자국과 무수히 난 잔인하고 포악한 이리의 이빨 자국을 보여준다.
나는 이 이야기를 중학 이년에서 삼년에 걸친 한 일년 동안 같이 살다시피 한 만수집에서 만수 외삼촌으로부터 들었다. 만수의 아버지는 평양서도 손꼽히는 고무공장 사장이었으나 작은집을 얻어 딴 살림을 차리고, 젊어서 일찍 결혼하여 아들을 낳은 만수 어머니는 병으로 죽었다. 만수는 그후 자기 외삼촌을 따라 대륙방면으로 떠났다. 우리의 한 칸 방이 그렇게 넓은 세계로 통하게 해 준 사람은 다름아닌 만수의 외삼촌이었다. 나는 그의 방 안을 더듬는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들의 한 칸 방의 문이 좌우로 열려져 당시의 아련한 꿈과도 구별되는 보다 넓고 새로운 세계로 통하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자 한 것이다.
● 인물의 성격
◆ 나 → 중학시절 만수의 친구로 만수 외삼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는 인물이다.
◆ 만수 → 아버지의 배신으로 어머니와 단둘이 살다가 어머니가 죽자, 외삼촌을 따라 대륙으로 떠난 '나'의 친구이다. 마도로스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다.
◆ 만수 외삼촌 → 만수의 어머니를 닮아 까무잡잡한 살갗과 반짝이는 눈을 가진 인물이다. 유랑생활을 통해 체험한 이리들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와 만수에게 넓은 세계로 눈뜨게 했던 인물임.
● 구성 단계
◆ 현재(도입 액자) : 중학 시절 회상 - 1인칭 주인공 시점
◆ 과거(전개 액자) : 만수와 놀던 이야기 - 1인칭 주인공 시점
◆ 대과거(중심 이야기) : 만수 외삼촌의 경험담 - 3인칭 관찰자 시점
● 이해와 감상
◆ 이 소설은 액자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얼마간 떨어진 이야기이고, 그것이 남의 말을 통해 간접화되면서 현실과는 더욱 멀어져서는, 소설이 설화화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설화적인 성격으로 인해 어떤 이야기를 강한 인상으로 전해주려고만 하기 때문에, 세세한 묘사와 시간의 흐름을 과감히 생략하고 상징적으로 들려주게 된다. 또한 주인공은 실제로 사람이라기보다는 이리이다. 생명의 원초적 세계를 다루는 것이 관심인 작가에게는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 생명 본연의 욕구는 본능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심지어 동물이기 때문에 그러한 원초적 본능은 더욱 강렬하고 더 인상적이며, 생명에 대한 애착이 심한 것이기도 하다.
◆ 중심 이야기에는 인물이 한국인, 몽고인, 일본인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것은 곧 당시의 역사적, 지정학적인 삼국의 대립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작가의 의도적 배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권총만으로 이리 떼를 물리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리떼를 향하여 공격한 살상용 권총은 한반도와 대륙을 강제 침략한 일제의 침략 근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리떼를 섬멸하겠다던 무모하고 강압적인 일본인은 이리 떼의 공격으로 죽음을 당하는데, 이때 권총에 새겨진 이빨 자국은 침략자에 대한 피압박 민족의 끊임없는 저항의 상징이며, 동시에 그것은 일제의 침략 행위를 엄중히 고발하고 경고하는 의미를 지닌다. 이리떼는 한민족의 강렬한 생존의지를 보여주는 대상이며, 몽고라는 땅의 상징성은 일본의 침략 행위가 내뻗치던 극점이다.
◆ ⑴ 일본인의 태도 → 뽐내기를 좋아하고 공격적이고,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신의 야만적 충동 때문에 총을 들고 나서며, 일본 신민으로서의 허황된 자부심에 들떠 있다. 이 인물을 통해 당대 일본의 무자비한 침탈의 반도덕성이 부각되고 있다.
⑵ 몽골인의 태도 → 나라를 초월한 인간적 연민을 지닌 따뜻한 사람이다. 무모한 일본인의 태도를 비난함녀서도 보편적 인류에 때문에 눈물을 보이는 착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⑶ 한국인의 태도 → 일본인이 아무리 밉다 해도 생명을 소중한 것이며, 생명의 위협이 도사린 현장으로 간 일본인을 걱정하는 착한 마음이 보인다.
◆ 생명에 대한 존중은 절대적 가치이다. 만수 외삼촌은 주인이 일본인의 권총만을 수습해 가지고 왔을 때 심한 전율을 느끼며, 짐승을 향한 증오감과 분노를 금하지 못한다. 그만큼 만수 외삼촌은 생명 존중 의식이 강한 자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의식은 변한다. 생명이란 사람에게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목숨을 지닌 모든 동물들에게도 소중한 것이다. 이리가 만약 광포성으로 사람에게 덤벼들었다면 그 목표는 사람이지 권총은 아닐 것이다. 권총에 이빨 자국이 선연했다는 것은, 권총질로 이리의 삶을 위협해 오자 생명에 대한 본능은 그 무서운 총질을 향해 원초적인 저항을 보였다는 증거이다. 만수 외삼촌의 마지막 독백에서 '이리가 그럴지언정 사람에게서야 말할 것도 없다'는 것이다. 일본의 무력적 위협 앞에 다른 약소국들이라고 하여 그냥 그 포악한 침략을 그저 받아들이겠느냐는 의미를 담고 있는 구절이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액자소설
◆ 배경
* 시간적 → 일제 강점기
* 공간적 → 만수의 한칸방, 몽고의 어느 촌락
* 사상적 → 실존의식
◆ 시점
* 도입부 : 1인칭 주인공 시점
* 중심 이야기 : 3인칭 관찰자 시점
◆ 특징
* 설명적 진술, 설화적 말하기
(장면 제시보다는 말하기에 의존한 진술임. - 대화를 구별하여 적지 아니함.)
* 서술 시점에 변화를 줌.
◆ 주제 ⇒ 현실 세계의 잔혹성과 끈질긴 생명력
◆ 출전 : <백민>(1950)에 발표됨.
● 생각해 볼 문제
1. 겉 액자와 속 이야기는 어떤 관련을 맺고 있는지 주제면에서 살펴보자.
⇒ 겉 이야기는 어릴 때 무한한 동경의 세계를 열어 주던 이야기가 이리 떼 이야기였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로 되어 있다. 따라서 속이야기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인데, 그것은 독립에의 꿈보다 더한 희망이 없다는 면에서 보면, 이 속이야기의 주제가 선명해진다.
2. 맨 마지막 문장, '이리도, 이리까지도?'의 중의적 의미에 대해 말해 보자.
⇒ '이리'를 '이렇게'와 '이리(동물)'의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이렇게까지'로 해석될 때는, 짐짓 이리의 포악성을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이리마저도'로 읽으면 일본인의 무모한 폭력에 사람 아닌 이리마저도 징계를 한다는 의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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