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덕방(1937)
-이태준-
● 줄거리
서 참의가 주인으로 있는 복덕방에는 매일이다시피 안초시와 박희완 영감이 나와서 함께 지낸다.
서 참의는 구한말 군관 출신이며, 합병 후에는 놀면서 심심파적으로 얻은 가옥 중개업을 하면서, 사람들의 도시 진출로 호황을 누려 가회동에 수십 칸짜리 집을 세우고 얼마 후 땅도 장만하였지만, 지금은 그저 밥을 먹고 살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화려했던 과거를 그리워하며 현실에 비애를 느끼지만, 대범한 성격의 소유자로 중학 졸업반 아들의 학비를 걱정하여 돈을 많이 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박희완 영감은 훈련원 시절 서참위의 친구로,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를 빌미로 대서소를 차리겠다며 국어(일본어) 독본을 열심히 공부하는 노인이다.
안 초시 영감은 여러 차례에 걸친 사업 실패로 몰락하여 지금은 서 참의의 복덕방에서 신세를 지고 있다. 무용가로 유명한 딸 경화에게 겨우 용돈이나 얻어 쓰는 처지로, 궁색한 생활을 하면서 조그만 농담에도 잘 토라지는 성미를 지녀서 한번 토라지면 며칠씩 복덕방에도 나오지 않곤 한다. 그러나 안 초시는 실상 세상에 대한 야심이 들끓고 있는 자이다. 그러나 딸은 각지로 공연을 떠나 번 돈을 조금이나마 줄 만도 하지만 그럴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안 초시 영감은 돈 만 원이라도 붙들어 가지고 다시 한 번 세상에 재기를 꿈꾸고 있다.
그러던 중 안 초시 영감은 박희완 영감으로부터 황해 연안의 축항 용지에 대한 부동산 투자 정보를 듣고 딸에게 말한다. 딸은 관심을 보였고 정혼한 남자를 내세워 땅을 구입한다. 안 초시는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하지만, 일이 제대로 되면 그 중에 얼마는 떨어질 것이라고 기뻐한다. 그러나 1년을 지나도록 새로운 항구의 건설이라든가, 땅값이 오르는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박 영감에게 정보를 전해 준 사람이 자신의 땅을 처분하기 위해 꾸민 사기극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안 초시 영감은 딸에게 봉변을 당하고는 매우 실망한다. 단돈 오십 전을 얻기도 이제 어려워졌고, 때묻은 적삼 소매를 보고 슬픔에 빠진다. 안 초시 영감은 결국 복덕방에서 음독 자살을 하게 된다.
서 참의 영감은 안 초시의 죽음을 딸에게 알렸고, 딸은 자신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염려해서 경찰에 알리지 말기를 간청했다. 서 참의는 딸이 보험에 든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은 자에게 좋은 수의를 해 입히고 평생 소원이던 속 셔츠를 입혀 주라고 명령한다. 딸의 무용 연구소 앞에서 영결식이 성대하게 거행되고, 딸 때문에 많이 온 조문객들의 분향이 끝날 무렵 서 참의는 조사(弔辭)를 한다. 죽으니 이런 호사를 한다면서 안경 걱정도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한다. 박희완 영감도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영결식에 온 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둘은 묘지에 가지 않고 술집으로 내려오고 만다.
● 인물의 성격
◈ 서 참의 → 젊었을 때는 무인으로서의 기개가 넘친 인물이지만, 현재는 거간꾼 노릇을 하며 현재의 삶에 불만이 많은 인물임. 과거의 화려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현실에 비애를 느끼는 인물임.
◈ 안 초시 → 과거에 한 밑천 잡은 경력이 있지만, 지금은 딸에게 생활을 의존하고 있고 복덕방에서 소일하며 지내는 인물임. 궁색한 자신의 처지로 땟국이 질질 흐르는 옷소매를 바라보며 비애에 젖는 인물임.
◈ 박희완 → 복덕방에서 틈틈이 공부도 하는 인물로,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가 있어 대서업을 하겠다고 공부해 보지만 허가는 쉽사리 나오지 않고, 안초시와 땅투기로 낭패를 보는 인물임.
◈ 안초시의 딸 → 아버지에 대해서까지도 타산적이고 차갑기 짝이 없는 냉정한 인간형.
※ 세 노인 → 각기 개성이 다르고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모두가 일선에서 밀려난 자들이라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현실적인 성공에의 꿈은 아직 남아 있지만, 이들은 이미 변화하는 시대에 뒤처진 사람들로서, 무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사회의 진동 때문에 그늘로 내몰린 소외된 자들로, 수동적이고 왜소한 비극적 존재들
● 구성 단계
◆ 발단 : 안 초시의 일상사 소개(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며 서 참의의 복덕방에서 기거함.)
◆ 전개 : 복덕방 주인 서 참의와 박희완 영감의 과거와 현재
◆ 위기 : 박희완 영감의 소개로 딸에게 부동산 투자를 권하는 안 초시
◆ 절정 : 사기를 당한안 초시와 그를 외면하는 딸
◆ 결말 : 안 초시의 자살과 영결식장 사람들의 위선적 태도
● 이해와 감상
◆ <복덕방>은 이태준의 대표작으로 그의 문학적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작품은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자들의 한을 서정적 터치로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노인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여기서도 이제 사회로부터 점점 이탈되어 가는 노인들의 애처러운 삶을 따뜻한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세 노인이 함께 지내면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온갖 굴곡을 보여 주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을 통해 한국적 인정의 세계를 부각하고 있으며, 이런 인정이 메말라 가는 현실에 대해 비감어린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의 소설이 짙은 애환을 주조로 하고 있다는 것만 보아도 사라져 가는 것, 버림받은 사람 등에 대한 애정을 얼마나 품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작자는 이런 주변인들의 애달픈 삶을 잔잔히 그려 내어 우리들로 하여금 삶의 진실을 일깨워준다.
◆ <복덕방>은 작가 이태준의 장기라 할 '인물 창조'라는 면에서 돋보이는 작품으로, 노령화 시대로 가는 요즘의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뿐만 아니라, 작가가 의도했건 아니했건 당대에 이미 부동산 투기가 문제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주는 작품이다. 분명 '복덕방'은 서 참의, 안 초시 그리고 박희완 영감이라는 세 노인의 꿈과 좌절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부동산 투기 문제는 물론, 이기적인 딸과 소심한 아버지를 통해 무너져가는 가족 관계를 폭로하고 있다.(일설에 의하면 이 소설의 '안 초시'와 그의 딸 '안 경화'는 생활무능력자라고 가족들로부터 외면당했던 '최준현'과 그의 딸이자 세계적인 무용가 '최승희'가 모델이라고도 한다.)
◆ <복덕방>에 나타나는 인물의 유형
이태준의 소설에서는 과거와 현재의 대립, 도시와 농촌의 대립이 기본 골격으로 자주 사용된다. 또한 개인사와 민족사가 동일한 시각에서 다루어지고 있음도 특징적이다.
이 작품에는 세 노인이 등장한다. 주인공 안 초시는 유명 무용가 딸을 둔 노인이지만, 경제적 능력에서 소외되어 있다. 서 참의는 구한말 군인으로 젊은 시절을 구가했던 사람이지만, 현재는 그 혈기와 진취적인 기상이 사라진 초라한 노인이다. 돈이 궁한 탓에 사소한 욕심을 부려 '쫌보'라는 별명까지 듣고 있다. 박희완 영감은 뒤늦게 일본어를 배워 대서업(代書業)을 해 보고자 하나 여의치 않다. 복덕방에 모이는 이 세 노인은 경제적으로 궁핍하며 외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더욱이 안 초시는 돈을 벌 욕심으로 딸의 돈을 끌어들였으나 사기 행각에 말려 더욱 곤란한 처지에 빠진다.
작자는 일제의 경제적 침탈로 말미암아 조선의 경제 현실이 점차 빈궁해져 가는 모습을 이들 노인들의 삶을 통해 보여 주고 있다. 이들 노인들의 불행과 곤경의 뒷면에는 일제의 경제적 침탈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는 것이다. 노인들은 각자 땅 투기도 해 보고, 일본어 독본을 배워 보기도 하는 등 나름대로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들이 꿈을 실현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요약적으로 말해, 이들 노인들의 절망은 식민지 조선 민중의 절망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이태준은 '상고(尙古) 취향'을 가진 작가로 알려져 있다. 옛 것을 숭상하는 그의 태도는 과거의 전통 문화에 대한 예찬, 농촌에 대한 친연적인 애정과 동경으로 표현된다. 그의 작품은 과거의 농촌을 가족적이고 인간적인 공동체로 그리는 반면, 도시는 속악한 자본주의에 의해 오염된 악의 공간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고 취향은 작자에게 소박한 형태의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킨다. 곧 우리 민족과 문화의 우수성을 제시하는 이태준의 소설은 간접적이고 우회적으로나마 새 것, 즉 일제의 지배에 대한 저항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이 작품 속에서 세련된 도시인의 전형으로 등장하는 안경화(안 초시의 딸) 및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은 모두 타산적이고 인색한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안경화는 당시 유력한 신극 단체인 토월회에 가담할 정도의 인텔리 여성이다. 물론 그녀가 그만큼 유력 인사로 성장하는 데에는 부모의 희생이 컸을 것임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부모의 희생을 외면하고 자신의 체면 지키기에 골몰한다. 또한 아버지에게 드리는 용돈에는 인색하면서도, 자기를 위해 아버지의 사망 보험을 들 정도의 타산적인 여성이다.
우리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부모에 대한 효성을 강조하는 우리의 전통적인 윤리가 점차 허물어지는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그녀는 무용가로서의 자기의 출세와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여성이며, 부모에 대한 효성이 결여된 여성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안경화를 자신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형으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아버지의 죽음에 직면하여 자신의 사회적 체면을 먼저 생각하는 식의 행동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으나, 일방적으로 그녀를 매도하기는 힘들다.
작자 또한 안경화라는 젊은 여성의 타산적이고 이기적인 태도를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쓴 것 같지는 않다. 작자는 안경화라는 여성을 이렇게 만든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을 노인의 시각에서 언급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작자는 일제에 의해 급속하게 도시화가 진척되면서 경제적인 욕망에 들떠가고, 옛날의 훈훈한 인간관계가 사라지는 세태에 대한 안타까움 정도를 피력하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 김윤식, 「김윤식 교수의 소설 특강」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현대소설, 단편소설, 세태소설
◆ 배경 : 1930년대 서울 어느 복덕방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궁핍한 시대인 구세대의 현실을 고발함.
* 인간의 허황된 욕망과 그로 인한 파탄을 보여줌.
* 신세대에 대한 비판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음.
* 복덕방이라는 공간이 지니는 의미(과거에 대한 회한을 품고 살면서도 언젠가는 큰 성공을 하리라는 꿈을 버리지 못하는 인물들의 욕망과 그 좌절이 이루어지는 공간임. 소외된 사람들의 정신적 · 경제적 몰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임.)
◆ 주제
*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소외되어 가는 구세대들의 삶의 비애
* 은퇴한 노인들의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꿈과 좌절
● 생각해 볼 문제
1.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패배주의자가 아니라는 근거를 말해 보자.
⇒ 세사람은 모두 은퇴하여 쓸쓸한 삶을 살고 있지만, 재기할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
2. 이 작품과 <패강랭>은 그 소재면에서 이질적이다. 그러면서도 밑바탕에 깔린 작가의식의 동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자.
⇒ 두 작품 모두 현실에서 밀려나는 일들에 대해 안타까움과 서러움을 느끼는 화자의 정서가 반영되어 있다.
작가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한 향수에 젖어 있다고 하겠다.
3. 안초시의 딸에게 서참의가 장례를 후하게 치르라고 명하는 것에서 읽을 수 있는 심정을 추리해 보자.
⇒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을 몰고 온 원인의 하나가 딸이라고 생각하는 서참의는 그 딸에게 살아서 못다 한 호사를 해 드리라고 명한다. 안초시의 쓸쓸했던 삶에 대한 연민이 그 딸에게 투사되어 심하게 나무라는 것이다.
4. 작가가 궁극적으로 드러내고자 한 주제의식은 ?
⇒ 소외된 자들의 애처러운 삶을 그려내어 그들에게 다사로운 사랑을 보내야 함을 일깨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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