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다리(1943)
-이태준-
● 줄거리
창섭은 어린 시절, 누이 창옥이 의사의 오진으로 억울하게 죽어가던 모습을 본 이후 아버지가 바라시던 고등 농림 학교를 버리고 의학 전문 학교에 입한한 사람으로 현재 서울에서 권위 있는 의사이다. 그는 병원이 좁아 큰 건물로 이전하기로 하고, 모자라는 돈은 시골의 농토를 팔아 해결하기로 계획하고 고향으로 내려온다.
창섭의 아버지는 근검하기로 소문이 난 인물이다. 부지런히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논과 밭을 가꾸는 데에 모든 정성을 들이고, 동네와 읍내 길까지 닦는 사람이다.
창섭이 마을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함께 장마에 떠내려간 돌다리를 고치고 있다. 창섭은 자신의 병원 확장 계획을 설명하며 땅을 팔고 서울로 모두 올라가자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창섭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고, 내친 김에 유언이라며 창섭의 증조할아버지 대부터 가꾸어 온 농토에 대한 마지막 부탁을 한다. 즉 논을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넘기는 것, 그들은 돈이 없으니 수 년에 걸쳐 땅값을 받으라는 것이다.
창섭은 자신의 세계와 아버지의 세계와의 결별을 체험하고 서울로 올라간다. 아버지는 다음날 새벽이 되자마자 고쳐 놓은 돌다리로 나가 양치와 세수를 하고, 돌다리를 늘 보살펴야 하는 것이 천리(天理)임을 되새긴다.
● 인물의 성격
◆ 창섭 → 여동생의 죽음에 자극받아 의사가 된 젊은이로, 현실주의자임.
◆ 창섭의 아버지 → 땅에 대해 종교적이라 할 만큼 애정을 지닌 인물
◆ 창섭의 어머니 → 손자들을 그리워하는 전형적인 할머니
● 구성 단계
◆ 발단 : 새로운 사업 계획을 세우고 고향에 오는 창섭
◆ 전개 : 돌다리를 고치고 있는 창섭의 아버지
◆ 위기 : 창섭의 제안과 아버지의 거절
◆ 결말 : 돌아가는 창섭과 천리(天理)를 강조하는 아버지
● 이해와 감상
◆ 근대 세계에 대한 작가의 비판적 시각을 잘 드러낸 작품으로, 의사인 아들이 병원의 확장 이전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땅을 모두 팔고 서울로 올라가자고 하자 아버지는 땅이 천지만물의 근거라는 자신의 당당한 논리로 아들의 제안을 거부하고, 땅을 돈으로만 여기는 세태를 질타한다. 토지의 본래적 가치보다 금전적 가치를 더 중시하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의 가치관을 비판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돈이 있다고 땅이 뭔지도 모르면서 욕심만 부려 문서쪽으로 사 모으기만 하는 사람들이나, 돈놀이처럼 변리만 생각할 뿐, 제 조상과 그 땅과 어떤 인연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생각지 않고 땅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아버지의 눈에는 괴이한 사람들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다.
◆ 고향의 땅을 팔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주장은 한편으론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으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버리고 도시로 가는 것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아버지는 땅을 그냥 지킨다는 생각이 아니라, 땅과 인간의 인연을 강조하고, 땅은 인간처럼 돌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땅에 대한 이러한 관점에서 돈을 위해 땅을 사고 파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이러한 관점은 여러 각도에서 확대 해석할 수 있다.
즉 오늘날 사람들이 아버지와 같은 관점을 갖지 못함으로 해서 잘못을 범하고 있거나 귀중한 것을 잃어 버리고 있는 점들을 비판하는 주요한 시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하눌 밑에 사는 날까진 하로라도 천리에 방심을 해선 안 되는 거다…….'는 아버지의 독백은, 땅이 천지만물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나 사람이란 하루라도 천리에 방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나 모두가 다 그 근원은 같다는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아들 쪽이 아니라 아버지 쪽이다. 또한 이 작품이 식민지 시대에 발표된 것을 감안하면 '아버지'는 꺼져가는 민족혼의 발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 '돌다리'에 나타난 시대상 : 이 작품이 창작된 1943년은 일제강점기의 막바지에 해당된다. 이 시기는 일제의 수탈로 우리 민족이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때이다. 그리고 서구의 문물과 서구적인 가치관이 일본을 통하여 대량으로 수입되던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기에 <문장>이라는 잡지를 창간하여 작품 활동을 한 이태준은 일제의 경제적 수탈보다는 주로 일제의 우리 문화 말살 정책에 위기감을 드러내었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에는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거나 우리의 전통적인 가치관을 옹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많다. <패강랭>, <복덕방>, <돌다리> 등이 이런 내용을 담은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 배경
* 시간적 → 1940년대 어느 날
* 공간적 → '샘말'이라는 농촌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회고적이고 자연친화적이고 사실적이고 교훈적인 성격
* 인물 간의 대화와 서술자의 요약적 제시를 통해 주제의식을 형상화함.
* 제목의 의미 → '가족사'의 일부
◆ 주제
* 아버지와 아들, 두 대조적인 인물의 갈등을 통한 땅(농토)의 진정한 의미
* 땅의 가치에 대한 인식과 서구적인 물질주의 가치관에 대한 비판
● 생각해 볼 문제 |
1. 창섭이 아버지께서 '돌다리'에 애착을 가지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 불과 수십 보 이내면 난간까지 달린 나무다리가 있지만 창섭의 아버지는 동네 사람들과 이렇게 큰 돌을 끌어올리고 있다. 창섭이 그 다리에서 고기를 잡았고, 서울로 공부하러 갈 때 그 다리를 건너갔으며, 할아버지 산소에 상돌을 그 다리로 건네다 모셨고, 창섭의 어머니가 시집을 올 때에도 그 다리로 가마를 타고 왔고, 창섭의 아버지도 죽어 그 다리를 건너 묻힐 것으로 생각한다. 즉 창섭의 아버지에게 돌다리는 가족의 일부이다. 즉 돌다리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 주는 매개체의 의미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으며, 아버지가 돌다리를 보수하는 행위는 과거부터 전해지던 문화가 후대에가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의 표현이기도 하다. 2. 부자 간의 갈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자. ⇒ 이 작품에서 땅이 국가 형성의 근본 조건이라는 창섭 아버지의 국가관은 소박하기 그지없는 것이지만, 나라를 빼앗긴 상황을 고려한다면 가장 절실한 체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그는 한 농부의 신분으로 일제침략의 부당성과 거기에 맥없이 놀아난 일부 한국인을 "땅이 뭔지도 모르구 욕심만 내 문서쪽으로 사 모기만 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통해 질타하고 있다. 평생을 땅에의 종교적 믿음으로 일관해 온 그에게 땅을 금전적 가치로만 이해하는 사람들은 애당초 이해할 수 없는데 자기 아들마저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기에 부친은 분노를 폭발시키는 것이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급박하게 변모하는 시대 현실에서 묵묵히 땅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부친이 반근대주의적으로 보이고 자신은 정당한 투자로 몇 배의 이윤을 추구하는 근대적 교육을 받은 근대적 삶을 지향하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 이런 과정에서 본다면 부자의 대립은 근대와 전근대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작가는 근대적 사고를 추구하는 아들과 전통적 가치를 존중하는 부친의 의식을 날카롭게 서로 상반되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 3. 돌다리에 나타난 인식의 아이러니에 대하여 살펴보자. ⇒ 아들 창섭은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의사이고, 아버지는 전형적인 심성을 가진 구시대의 인물이다. 병원을 확장하기 위해 땅을 팔자는 아들의 제안에 아버지는 땅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논리정연하게 펼쳐 놓는다. 아들은 아버지가 펼치는 신념의 논리에 압도당하고 자신의 계획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이 아버지의 신념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는 아버지의 세계를 그것 자체로서 훌륭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다. 즉 그가 느끼는 것은 '아버지와 자기와의 세계가 격리되는 일종의 결별의 심사'인 것이다. 창섭은 아버지의 세계를 인정하고 어느 정도까지는 경외하고 동경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서도 아버지와 똑같은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되는 모순적 심리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이를 '인식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이 아이러니는 작중 인물과 작가의 위상이 대등하거나 오히려 인물이 작가(서술자)보다 우월한 곳에 존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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