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궁(1985)
-서정인-
● 줄거리
<달궁>은 인실이란 여인의 삶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소설의 내용 중 일부분이고, 그보다 더 많은 분량은 여러 인물들의 삶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작가는 인실이의 삶에 관련된 많은 등장 인물들의 삶을 인실이의 삶에 종속시키지 않고 각각 독립시켜, 그리고 거의 동등한 비중으로 펼쳐 보인다. 따라서, <달궁>의 줄거리 요약은 불가능하다. 줄거리가 없기 때문이 아니라 줄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례로, 소설의 서두에 '네거리'란 제목 아래 한 여자의 죽음이 나온다. 그러나 곧 이어 '모래밭'이란 제목으로 두 처녀를 태워주는 운전사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등장가'에서는 어느 여자의 넋두리가 나온다. 차에 탔던 두 처녀의 이야기가 '만리포'란 제목 속에, '다시 네거리'란 제목 아래 교통 사고를 처리하는 순경과 이 길을 지나가다 호기심을 보이는 운전사의 대화가 나온다.
독자들은 한참 후에야, 운전사는 지방 검사이고, 그 검사는 두 처녀가 타기 전에 또 다른 여인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워 주었으며, 그 여인은 횟집 여자이며, 여인이 죽기 전날 밤에 검사가 그 횟집에 들렀고, 검사는 교통 사고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갔는데 죽은 여자가 자신이 태워다 준 여인임을 확인한다. 그렇다고 운전사, 즉 검사를 비롯한 두 처녀가 인실의 생애에 종속적으로 얽히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들의 삶은 에피소드가 계속 될수록 뚜렷하게 드러나면서 독립된 줄거리를 형성한다.
● 인물의 성격
<달궁>에는 주인공이 따로 없다. 비록 인실이라는 여인의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다 하더라도 결코 그녀가 주인공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약 30여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이들이 모두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여러 인물들의 삶이 독립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그렇다고 30여 명에 이르는 등장 인물들이 각각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독자들 앞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익명성이 강한, 우리 시대의 평범한 장삼이사일 뿐이다.
● 구성 단계
<달궁>은 전통적인 소설 구성 방식과는 다르다. 비록 '인실'이라는 한 여인의 삶과 직 · 간접으로 닿아 있기는 하지만, 86개의 에피소드들은 30여 명에 이르는 인물들의 독립된 삶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 이해와 감상
◆ 서정인의 <달궁>은 1985년 9월 「한국문학」에 그 첫 번째 묶음이 발표된 이후 「세계의 문학」,「문학사상」, 「소설문학」등 여러 문예지와 종합지를 통해 1989년 12월까지 발표되었으며, 그 첫 권 <달궁>이 1987년에, <달궁 둘>이 1987년에 「민음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된 연작소설이다. 어찌 보면 아직도 끝나지 않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연작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형식이 특이하다. 이 작품은 소제목이 붙은 수많은 부분들의 집합인데, 각 부분은 200자 원고지 10매에서 15매 정도이다. 처음 간행된 단행본 <달궁>의 경우 86개의 에피소드들의 집합이다. 따라서, <달궁>은 선적이고 인과적인 줄거리가 없다. 여러 개의 독자적인 줄거리를 조각 내고, 또 몇 겹으로 겹쳐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뿐만 아니라, 줄거리 자체를 약화시킨다. 즉, 그 역할을 최소화하여 독자들이 겨우 윤곽만 감지하도록 한다. 1980년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독특한 형식미를 지닌 소설로서, 86개에 이르는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므로 각각 소제목이 붙은 에피소드들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되는가를 살피면서 읽을 필요가 있다.
◆ '달궁'은 지리산 속의 지명이다. 소설 <달궁>은 그 달궁에서의 삶의 터전을 빼앗긴 인실이란 여자가 세상으로 내려와 헤매는 이야기가 많은 삽화들과 뒤얽혀 있다. 그 무식한 중년 여자의 삶은 쫓겨난 자의 삶이지만, 세상의 부조리, 우스꽝스러움, 뒤틀림과 맞서 있는 힘센 모습이다. 교육이나 제도에 의해서 훼손되지 않은 그 무식한 여자의 '싱싱한'시각을 통해서 당연한 것으로 행세하는 많은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음이 드러난다.
◆ 이 글의 복합적인 형식은, 삶의 잠재적 가능성의 혼돈으로 나타나는 수많은 우발적이고 필연적이지 않은 사건들이 중층적으로 뒤엉켜 있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려는 의도를 지닌다. 합리적인 세계는 짜임새 있는 구조로 형상화할 수 있지만, 부조리한 현실은 전통적인 구조로는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이 구조의 틀에 얽매여 있는 한, 주인공과 직접적인 인과적 관련성이 없는 삶의 부분들은 생략디게 마련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 소설은 선적이고 인과적인 구성을 거부하고 여러 개의 독자적인 줄거리를 조각내고 또 몇 겹으로 겹쳐서 보여주는 것이다.
◆ 이 소설의 공식적인 주인공은 인실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인공의 역할을 하지 않고 다만 소설의 중심이 되어 줄 뿐이다. 주인공을 '주제를 반영하는 인물'이라 정의한다면, <달궁>의 주인공은 등장 인물 모두이다. 그들 대부분이 익명적 성격을 띠며, 게다가 인실의 삶과 필연적 상관성을 갖는 것도 아니다. 그들의 삶이 인실의 삶을 보조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독립적으로 그려진다. 이와 관련해서 돋보이는 것이 시점의 자유로운 변화와 요설적인 문체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소설이 매우 자유롭게 '열린 형식'임을 실감케 한다.
◆ 작품마다 객관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달궁>이라는 전체적 서사 구조 속에는 우리 사회의 변화의 추이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삶 의식이 용해되어 있다. 사건들이 하나의 서술 고리에 의해 연쇄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은 독립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피카레스크식 구성). 이런 점에서 이 <달궁>은 60~70년대의 리얼리즘 문학과는 다른 독특한 형식으로, 현실을 투시하여 이를 노출시키는 80년대 리얼리즘 문학의 한 성과로 지적될 수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장편소설, 연작소설
◆ 배경 : 현대(1960년대 말 ~ 1970년대 초), 서울과 전라북도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특징
* 시점의 자유로운 이동
* 사실주의적 경향
* 간결체와 만연체의 혼합
* 지문과 대화의 무시, 요설적 문체 등 혼합적인 문체
◆ 주제 ⇒ 여러 인물들의 삶의 궤적을 통한 인생의 참모습
사회 현실의 격랑 속에서 겪은 개인적 삶의 존재 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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