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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줄거리/해설]먼 그대(1983)-서영은-

by 휴리스틱31 2021. 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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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그대(1983)

-서영은-

 

● 줄거리

 

나이 사십이 다 되어 가는 문자는 아동도서를 간행하는 H출판사에서 교정 일을 보는, 10년 경력의 말단 사원이다. 노처녀인 그녀는 전혀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남루한 옷차림에 비참하고도 힘든 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생활 속에서는 타인이 발견하지 못하는 기쁨과 행복을 가꾸고 누리며 살아간다.

 

한수라는 사내를 알게 되면서 그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에겐 이미 처자식이 있음을 알게 되어 결혼을 하지 못하고 그냥 함께 살게 된다. 그녀는 한수의 아이까지 낳게 된다. 그러나 아이는 한수의 본처가 와서 빼앗아 갔다. 사실 한수의 처는 문자와 한수의 살림살이까지 부수어 놓을 작정이었다. 그러나 문자의 방에는 부술 경대도, 화장품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이만 빼앗아 갔다.

 

문자는 광산업에 실패한 한수가 자신을 묶어 놓으려고 한수와의 사이에서 낳은 옥조를 데려가도, 세 들어 사는 집 주인 여자가 억지를 써 가며 집세를 올려 받아도,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는 자기 맘 속의 어떤 그윽하고 힘찬 그 무엇으로써 생활해 나간다.

그러나 한수는 무직자가 된 이후로 문자를 찾아오면 소주나 마시고 거기다가 돈을 요구한다. 문자는 직장의 월급을 모두 털어 주고도 모자라면 빚까지 내어다 준다. 어느 날, 한수가 물주를 만나겠다고 거액의 돈을 요구해 왔을 때도 문자는 돈을 구하러 이모네 집을 찾아갔다.

 

 

이모는 문자에게 좋은 신랑감이 있으니 이번에는 꼭 결혼하기를 강요했다. 그러나 그녀는 묵묵부답이었다. 그녀의 승낙을 받지 못한 이모는 매우 못마땅한 표정으로 돈을 만들어 주었다. 그녀가 이모네에서 돈을 구해왔을 때 이미 한수는 술에 곯아 떨어진 뒤였다. 그러나 문자는 담담한 얼굴로 한수에게 돈을 내어 준다.

 

그녀는 혈육마저도 소유의 집념에서 초극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또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낙타'를 끌어내어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고 여기면서 살아간다. 한수가 끊임없이 요구해 오는 돈을 구해 주면서도 원하면 원하는 만큼 그 물질에 철저한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같은 문자의 말없는 묵묵함은 어떤 상황, 어떤 조건 아래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는 절대 긍정의 자신감에서 기인되는 것이다. 한수의 모질고 험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것을 그녀에게 한층 더 큰 시련을 주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멀어지는 신의 등불처럼 여긴다.

 

● 인물의 성격

 

◆ 문자 → 사십에 가까운 H출판사의 노처녀 교정원으로, 유부남 한수와의 사이에 딸 옥조가 있다. 사물에 대한 욕심이 없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고통을 담담히 받아들이려 하고, 오로지 한 남자 한수에게 헌신적 사랑을 보여준다.

◆ 한수 → 아내와 자식들이 있는 남자로, 광산업에 실패하고 문자에게 주는 것 없이 항상 많은 것을 요구한다. 문자와의 사이에 태어난 딸을 미끼로 문자를 놓아주지 않으면서 문자에게 돈을 요구하는 인물이다.

 

 

● 이해와 감상

 

 서영은의 단편 <먼 그대>는 1983년 제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서영은은 1968년 <교(橋)>의 입선 이후 <술레야 술레야>, <산행> 등 40여 편의 소설을 발표했다. 주로 자아의 갈등을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한, 상징적이고 우화적인 수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도 주인공 문자는 <산행>의 남편이나, <살과 뼈의 축제>의 한수진처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서슴없이, 그것도 아주 자연스럽게 맘껏 펼친다. 그럼으로써 이들과 같은 신화적 세계, 비일상적 세계의 주인공을 등장시켜서 신비하고 모호하게 감촉되어지는 작품 세계를 보이면서, 신화적 세계와 그를 향한 인간의 몸부림을 갈망적으로 표현했다.

따라서 서영은 작품의 특징은 인간 세계의 뼈저린 환멸과 조화로운 삶의 세계를 가로막는 억압의 현실에 대한 실존적 의미를 역설적으로 파헤치고 있는 데에 있다.

 

 우화(寓話)란 일반적으로 '교훈적 내용을 사물이나 동물 등에 빗대어 나타낸 이야기'를 뜻하는 말이다. 이는 '교훈'이라는 다소 추상적일 수 있는 관념을 사물이나 동물과 같은 구체적인 형상을 빌려 알기 쉽게 묘사한 이야기라는 뜻이다. 여기서 '구체적 형상'은 일반적으로 '인간을 제외한 다른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화를 좀더 포괄적으로 정의하면, '인간적 교훈을 인간이 아닌 다른 사물을 빌려 형상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두 가지 측면에서 '우화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는 인간의 실존 문제를 '사막의 낙타'에 빗대어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이는 '우화'의 기본적 정의에 부합한다. 또 다른 하나는 이 소설의 등장 인물이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특히 모든 문제에 희생과 인내로 대응하는 주인공 문자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인물이다. 이러한 비현실적 인물 설정은 문자를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신비화함으로써 이 작품을 '우화'로 인식하게 하는 것이다.

 

◆ '낙타'의 상징적 의미

사막은 흔히 '죽음의 땅'으로 묘사된다. 뜨거운 태양과 모래,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물 등, 생물이 살아가기 위한 어느 하나 적합한 환경을 제공하지 못하는 곳이 바로 사막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막에서 꿋꿋하게 자신의 생명을 지켜가는 존재가 바로 '낙타'이다. 낙타는 제 등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그 뜨거운 사막을 건넌다. 그 고통을 견디기 위해 낙타는 등의 혹 속에서 물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낙타는 소설 속의 문자의 모습과 흡사하다. 사막과 같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그 현실의 고통을 온몸으로 견디며, 내적 만족을 이끌어 내는 문자의 모습은 사막을 건너는 낙타의 그것이다. 이는 작가가 추구하는 현대의 인간형의 모습이기도 하다.

 

 

● 핵심사항 정리

 

  : 단편소설, 실존주의 소설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주제  삶의 고통과 정신에 대한 실존적인 생활 의지

 

● 더 읽을거리

 

서영은은 「먼 그대」로 1983년 제7회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먼 그대」는 1983년 <한국문학> 5월호에 실렸다. 당시 문자 신드롬이 일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녀의 고통스런 삶에 함께 눈물을 닦은 독자들이 많았다. 「먼 그대」는 KBS의 TV 문학관으로 방영돼 화제를 모았다.

 

서영은은 지난 6월 20일 독일 튀빙겐에서 열린 '한국 문학의 밤' 행사에 참석하여 「먼 그대」를 공개 낭독한 뒤, "「먼 그대」에서 강한 인내심을 간직한 여자 주인공이 한국의 전통 여성상이냐?" 는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그녀를 통해 진지하게 삶을 살려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그리려고 했어요. '그녀가 상처받고도 쾌감을 느끼는 여성 마조히스트가 아니냐'고 말한다면 나는 그녀처럼 어이없이 빙긋 웃을 뿐입니다."

소설가 김채은은 친구 서영은을 이렇게 평했다.

 

"그녀(서영은)는 자기 스스로 가지고 싶은 게 그다지 많지 않으면서 남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잘 사 주었다. 누군가에게 코트감을 떠주겠다고 하여 어두워지는 동대문시장 거리를 함께 헤맨 적도 있다. '얘, 내가 남자라면 여자한테 뭔가 사주고 싶어서 기둥뿌리가 뽑아질 거야.' 이런 말을 하며 웃기도 했다. 그런데 늦도록 헤맨 뒤 찾은 그 코트감을 본인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자, 그녀는 너무도 선선히 그것을 자기가 해 입고 다시 새로운 것을 사드렸다."

 

 

「먼 그대」가 실린 작품집 『황금깃털(나남 刊)』은 1984년에 초판을 찍었다. 『황금깃털』이 출간된 뒤 그녀는 '내 마음이 가장 헐벗었던 시기 직후에 얻어지는 결실이어서, 그 어떤 책보다 감사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베를렌느가 몽스 감옥에서 쓴 시(詩)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지붕 위로 하늘은 너무 푸르고 조용하구나." '이 한 구절의 시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은 지난 2년 동안 갇혀 지낸 혹독한 어둠 때문'이라고 떠올렸다. 당시의 그 절절함이 문자를 만든 셈이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무엇이 그녀를 테네시 윌리엄스의 <뜨거운 양철지붕> 같게 만들고, 安部公房의 <모래의 집>, 카뮈의 <소금과 태양뿐인 마을> 같게 한 것일까.

 

"당시 내가 거둬야 할 가족은 어머니와 여덟살짜리 조카였다. 내게 수입이 거의 없었던 지난 2년 동안, 우리 세 식구는 먹는 것만 굶지 않았달 뿐 한겨울에도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한 채 냉방에서 지냈다. 아주 작은 수입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출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었다. ……<중략>…… 그러던 중 미국에 있는 오빠로부터 어머니와 자기의 딸을 데려가고 싶다는 편지가 왔다. 어머니가 다급하여 수속하러 다니셔도 나는 굳이 말리지 않았으나 두 사람이 떠나간 빈 자리를 어떻게 매울지 속으로는 심히 난감하기만 했다. 거기다 공개할 수 없는 사적인 일들 하나하나가 다 내가 선 자리를 뜨거운 양철지붕화했다. ……(『황금깃털』작가 서문 중에서)"

 

서영은의 문자는 서영은 자신의 낙타가 아니다. 묵묵히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낙타다. 낙타의 길이 목적지가 있는 것만은 아니다. 낙타의 발굽이 모든 길로 통할 뿐이다. 낙타는 그저 사막 속을 묵묵히 걸어갈 뿐이며 그 땀이 현실적인 가치로 환산되길 기대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원죄의 짐을 지기 마련이다. 서영은은 이렇게 말한다. '「먼 그대」의 문자의 가슴속에 살고 있는 낙타가 생의 중심에 이를 때까지 그의 족적을 뒤좇는 작업도 계속하겠다.'  문자는 자신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놓이더라도, 그 어려움을 따스한 '긍정(사랑)'으로 연금(鍊金)시킨다. 문자의 긍정은 우리 삶을 뒤돌아보게 한다. 부질없는 삶이라 해도 희망을 갖게 만든다. 희망은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마치 낙타가 갈증이 가장 심해질 때 등의 혹(굳기름 덩어리)을 물로 바꾸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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