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 충담사 -
[ 현대어 풀이 ]
구름을 활짝 열어 젖히매 / 나타난 달이 / 흰구름을 쫓아 떠나니 어디인가 / 새파란 강물에 / 기파랑의 얼굴이 비쳐 있구나 / 여울내 물가에 / 임이 지니시던 / 마음의 끝을 좇고 싶구나 /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서 / 서리조차 모르실 화랑이시여.
[ 배경 설화 ]
신라 경덕왕 때의 일이다. 3월 삼짇날 왕이 귀정문 문루에 나와 좌우에 있는 사람더러 이르기를 "누가 길에 나서서 훌륭하게 차린 중 하나를 데려 올 수 있겠느냐?" 마침 상당한 지위에 있는 한 중이 점잖고 깨끗하게 차리고 술렁술렁 오는 것을 좌우에 있던 사람이 바라보고 곧 데려왔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훌륭하게 차렸다고 말한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그리하여 그만 돌려 보냈다.
또 한 중이 옷을 기워 입고 벚나무로 만든 통을 지고 남쪽으로부터 오고 있었다. 왕이 기쁘게 대하면서 문루 위로 맞아 들였다. 그 통 속을 들여다보니 차 달이는 제구가 들어 있을 뿐이다. 왕이 묻기를, "그대는 누구인가?" 중이 말하기를, "충담입니다." 또 묻기를, "어디서 오는 길인가?" 중이 말하기를, "소승이 매년 3월 삼짇날과 9월 9일은 차를 달이어 남산 삼화령에 계신 부처님께 올립니다. 지금도 차를 올리고 막 돌아오는 길입니다." 왕이 말하기를, "나도 그 차 한 잔을 얻어 마실 연분이 있겠는가?" 중이 차를 달이어 올렸는데, 차 맛이 희한 할뿐더러 차 속에서 이상한 향기가 무럭무럭 났다.
왕이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듣건대 대사의 기파랑을 찬양한 사뇌가는 그 뜻이 심히 높다고 하던데 과연 그런가?" 대답하기를, "네, 그렇습니다." 왕이 말하기를, "그러면 나를 위해서 백성을 편안히 살도록 다스리는 노래를 지으라." 중이 당장에 노래를 지어 바치었더니 왕이 잘 지었다고 칭찬하고 왕사를 봉하였다. 중은 두 번 절한 다음 그 벼슬을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 이해와 감상 ]
신라 경덕왕 때, 승려인 충담사가 기파랑을 추모하여 지은 10구체 향가로 사뇌가의 대표작이다. 물음과 그 물음에 대한 답사 그리고 결사의 3단 구성을 취하고 있으며, 낙구의 첫머리에 '아아'라는 감탄사가 있어 10구체 향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기파랑의 드높은 인격과 이상, 지조를 기리는 것에 있어 한 마디도 직접 언급함이 없이 '달'과의 문답체를 빌어와 낙구에서 자연스럽게 시상을 응축시켜 놓았다. 처음에는 기파랑의 외모를 그려나가다가 점차 그 정신의 숭고함을 드러내는 기교를 사용하고 있다.
이 시를 읽는 독자로 하여금 눈을 감으면 문득, 천 년 전 어느 달밤 냇가 흰 모래 위에 홀로 우뚝 서서 멀리 아득히 서쪽 하늘을 바라보며, 무한한 동경과 머나먼 이상을 그리던 기파랑의 고고한 자태와 인격이 눈 앞에 선연히 떠오르게 한다. 기파랑을 만나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도 이노래를 통해 기파랑의 고매한 인격에 반하게 되고, 이 노래의 작자와 마찬가지로 '기파랑'을 흠모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찬기파랑가> 평설이라는 글에서 "사뇌가 14수 중에서 누가 보더라도 최고의 걸작이라고 생각된다. 이 한 편의 지묘한 소식을 어찌 필설로 다하랴! 표현이 절절하다는 말은 이런 작품을 두고 이르는 것이다."라고 격찬할 정도로 이 작품은 서정성과 서경성이 어우러진 뛰어난 작품이다.
[ 핵심 정리 ]
■ 성격 : 10구체 향가, 서정시, 추모가.
■ 표현
* 문답법(달과의 문답을 통해 대상을 예찬함).
* 비유와 상징, 의인법
* 서경성과 서정성의 조화
■ 시적 화자의 태도 : 시적 대상을 예찬하고 추모하는 태도
■ 구성
* 1 ∼3행 : 화자가 달에게 질문
* 4 ∼8행 : 달의 대답
* 9∼10행 : 화자의 독백
■ 주제 : 화랑 기파랑의 인격을 기림.
■ 중요 시어 및 구절
* 달, 나리, 조약, 잣가지 → 시적 대상(기파랑)의 인품을 암시하는 말
달 - 숭고하고 원만하며 숭앙의 대상이 되는 기파랑의 인품
나리 - 깨끗하고, 영원을 표상
조약 - 원만한 인격 표상
잣가지 - 역경에 굴하지 않는 높은 지조 표상
* 흰 구름 → 시적 대상이 따르는 대상으로, 숭고한 이념이나 이상세계
* 서리 → 속세의 시련이나 유혹의 상징
* 마음의 끝을 좇누아져 → 기파랑에 대한 흠모가 가장 잘 나타난 부분
■ 의의 : 향가 중 고도의 상징성을 표현한 최고의 백미
■ 이 작품이 지닌 상징성 → 달은 흔히 광명과 염원을 상징한다. 여기서의 광명은 사람을 이끌어 가는 광명이며, 염원은 이상을 지향하고자 하는 그리움 같은 것이다. 여기서의 달은 이 노래의 서정적 자아가 바라보는 광명의 달이며, 그를 통하여 기파랑의 고결한 자태를 그려 볼 수 있는, 그리움이 어려 있는 달이다. 잣나무는 상록 교목이므로 고결한 인품을 상징하며, 곧게 뻗은 가지는 강직한 성품을 나타낸다. 눈이 잣나무에 닥치는 시련이나 역경 혹은 유혹을 비유하는 것이라면, 이 잣가지와 눈은 기파랑의 사람됨을, 역경에 굴하지 않는 굳고 곧은 인격자로 표현해 주는 중심적 소재이다.
[ 교과서 학습활동 풀이 ]
1. 이 노래의 내용과 표현 방법을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노래를 의미 단위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누고, 각각의 내용을 정리해 보자.
→ 10구체 향가는 4/4/2의 3단 구성으로 시상이 전개된다. 따라서 이 노래를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4행에서는 시적 화자가 기파랑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고, 5~8행에서는 기파랑의 뜻을 따르고자 함을 나타내고 있다. 마지막 9~10행에서는 기파랑의 고매하고 높은 인격을 추모하고 있다.
(2) 이 노래의 대상이 되는 '기파랑'은 어떤 존재인지 설명해 보자.
→ 기파랑은 신라의 이상적인 남성인 화랑으로서 고매하고 높은 인격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이는 9행에서 '잣나무 가지 높아'로 형상화되고 있는데, 어떠한 시련(눈)으로도 그 높은 인격을 가릴 수 없음을 10행에서 강조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 '기파랑'을 효과적으로 예찬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지 말해 보자.
→ 이 시에서 기파랑의 인격은 관념적으로 설명되고 있지 않다. 이 시에서는 눈조차 범하지 못하는 높은 잣나무 가지로 기파랑의 인격이 형상화되는데, 이는 이미지로써 기파랑의 인격을 제시한 것이다. 이렇게 이 시는 기파랑의 인격을 시각 이미지로 제시함으로써 관념적인 설명을 뛰어넘는 감동을 주고 있다.
2. 다음 양주동의 해독을 김완진의 해독과 비교하면서 아래 제시된 활동을 해 보자.
(구름을) 열어 젖히니 나타난 달이 흰구름 좇아 (서쪽으로) 떠가는 것이 아닌가? 새파란 냇물에 기파랑의 모습이 있어라(어리도다). 이로부터 그 맑은 냇물 속 조약돌(하나하나)에 기파랑이 지니시던 마음 끝을 따르고자. 아아, 잣나무 가지 높아 서리 모르실 화랑의 우두머리시여. |
(1) 노래에 담긴 뜻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보자.
⇒ 김완진 해독본에서 달은 이미 흰 구름을 따라 떠나갔으므로 시적 화자가 직접 볼 수 없으며 단지 상상을 통해 접근할 수 있을 뿐이다. 한편 양주동 해독본에서 달은 흰구름을 좇아 현재 움직이고 있으므로 시적 화자는 달을 직접 볼 수 있다. 그리고 김완진 해독본에서 '물'은 시적 화자가 존재하는 공간인데 비해 양주동 해독본의 '새파란 물'은 푸르고 맑은 정신 세계를 비추는 대상이다. 마지막으로 김완진 해독본에서 '돌'은 화자가 있는 공간인 '자갈벌'로 의미화되는데 양주동 해독본에서는 '조약돌'로 의미화되었다.
(2) 해독의 차이가 발생하게 된 원인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
⇒ 이와 같이 해독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향가는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국어의 어순에 따라 표기한 차자 문학인데, 오늘날의 우리가 이를 통하여 신라 때의 우리말을 재구하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 즉, 학자에 따라 향가에 대한 다른 해독을 하는 이유는 신라 시대의 언어 실태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 더 알아보기 ]
■ 이두(吏讀)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빌려서 우리말의 특정한 어휘를 포함하여 주로 우리말 문장의 형태부를 표기하는 방법을 뜻한다. '身'으로 '몸'을, '事'로 '일'을 표기한 것이 특정한 어휘를 표기한 예이다. '여'로 읽히는 '逆'이 주격 조사로, '아해'로 읽히는 '良中'이 처격 조사로 쓰이거나, '-거늘'로 읽히는 '去乙'이 연결 어미로 쓰인 것이 문장의 형태부를 표기한 예이다.
차자(借字) 표기법으로서 이두는 향찰 및 구결(口訣)과 비교된다. 향찰이 우리말 문장을 전면적으로 표기하였다면 이두는 부분적으로 표기한 것이며, 구결은 한문 문장에 토를 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서로 구별된다. 따라서 이두는 향찰에 비해 한자성어가 많이 들어간 문장을 이룬다.
이두라는 말 외에도 이서(吏書), 이도(吏道), 이토(吏吐), 이문(吏文) 등이 쓰였다. 어떤 이는 이문에 토를 단 것을 이두라 하기도 한다. 이문은 관청 등에서 썼던 실용적인 글로서 한자를 우리말 어순에 따라 배열한 것을 지칭하다가 후대에 이두에 혼용되기도 하였다. 이 용어들은 주로 조선 초기 이후에 나타나지만, 이두식 표기는 이미 신라 시대의 금석문(金石文)이나 명문(銘文)에서 쓰였음이 확인된다.
이들 용어에 '이(吏)'가 공통적으로 들어간 것을 통해 이 표기법이 주로 관청의 서리들이 문서를 작성할 때 사용하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말기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이두는 서리층 전용의 특수 문어로서의 기능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 향찰(鄕札)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서 우리말을 전면적으로 표기하는 문자 체계 혹은 표기법이다. 향찰을 이두라는 용어가 나타나지 않는 고려 이전의 차자 표기법으로 보아 향찰과 이두를 동일시하는 견해도 있지만, 향찰이 우리말을 전면적으로 표기하였다는 점에서 이두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향찰이라는 용어는 <균여전(1075)>의 '제팔 역가현덕분자(第八譯歌現德分者)'에 나오는데, 당문(唐文), 즉 한문(漢文)과 대비하여 우리말 표기법을 지칭하는 뜻으로 쓰였다. 향찰은 주로 '향가'를 표기하는 데 사용되었다. <삼국유사>와 <균여전> 소재 25수 향가 작품들은 모두 향찰로 표기되었고, 고려 예종이 지은 '도이장가'도 향찰로 표기되었다. 따라서 향찰은 향가를 표기하는 수단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다 우리말을 표기하는 기본 방식은 '의자 말음 첨기법(義字末音添記法)' 또는 '훈주음종(訓主音從)'으로 생각된다. '心音 = 마음', '慕理 = 그리-'의 예에서 보듯이, 뜻글자(義字)', 곧 훈독자(心, 慕)를 앞에 놓고, 음독자(音, 理)를 뒤에 놓는 방식으로 우리말을 표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향가 작품에 쓰인 우리말 가운데는 한자의 음이나 훈만으로 표기된 것도 있기 때문에, 이것은 절대적인 표기 방식이라기보다 주된 표기 방식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 김완진 해독에 대한 감상
흐느끼며 바라보매 이슬 밝힌 달이 흰 구름 따라 떠간 언저리에 모래 가른 물가에 기랑의 모습이올시 수풀이여. 일오내 자갈벌에서 낭이 지니시던 마음의 갓을 좇고 있노라. 아아, 잣나무 가지가 높아 눈이라도 덮지 못할 고깔이여. |
'찬기파랑가'는 기파랑이라는 화랑의 고결한 인품과 숭고한 이상을 예찬한 향가이다. 기파랑의 인품을 열거하거나 모습을 직접 묘사하는 대신 비유와 상징으로 세련되게 표현하여, 향가의 문학성이 매우 높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시적 화자는 이슬 밝힌 달이 흰 구름을 따라 떠간 언저리를 흐느끼며 바라본다. 또 모래 언덕 깊숙이 냇물이 갈라 들어간 강변에서 그는 기파랑의 모습을 본다. 그러나 기파랑의 모습이라고 생각한 것은 착각이었고, 실은 어슴푸레한 저녁 강변의 수풀이었다. 기파랑은 가지가 하늘을 향해 높이 솟은 잣나무 같은 존재로, 눈이라도 감히 덮지 못할 만큼 고결한 존재이다. 시적 화자가 처한 상황은 이처럼 신성한 가치는 사라져 가고, 현실은 수풀만 우거지고 자갈만 가득한 비속한 상황이다. 그런 까닭에 시적 화자는 시름에 잠겨 있었던 것이며, 자갈 벌에서 기파랑이 지녔던 숭고한 마음을 좇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로 시작되는 낙구에서 시상을 고양시켜 기파랑에 대한 흠모의 정을 절실히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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