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동어미화전가 -작자 미상-
◆ 전문
가세 가세 화전을 가세 꽃지기 전에 화전 가세.
이때가 어느 땐가 때마침 삼월이라.
동군이 포덕택하니 춘화일난 때가 맞고.
화신풍이 화공되어 만화방창 단청되네.
이런 때를 잃지 말고 화전 놀음 하여 보세.
불출문외 하다가서 소풍도 하려니와
우리 비록 여자라도 흥체 있게 놀아 보세.
어떤 부인은 마음이 커서 가루 한 말 퍼내놓고
어떤 부인은 마음이 적어 가루 반 되 떠내주고
그렁저렁 주어 모으니 가루가 닷말 가옷일래.
어떤 부인은 참기름 내고 어떤 부인은 들기름 내고
어떤 부인은 많이 내고 어떤 부인은 적게 내니
그렁저렁 주어 모으니 기름 반동이 실하구나.
놋소래가 두세 채라 짐군 없어 어이할고.
상단아 널랑 기름 여라 삼월이 불러 가루 여라.
취단일랑 가루 이고 향난이는 놋소래 여라.
열여섯 열열일곱 신부여는 갖은 단장 옳게 한다.
청홍사 감아들고 눈썹을 지워내니
세붓으로 그린 듯이 아미팔자 어여쁘다.
양색단 겹저고리 길상사 고장바지
잔줄누이 겹허리띠 맵시있게 잘끈 매고
광월사 치마에 분홍댕기 툭툭 털어 들쳐 입고
머리고개 곱게 빗어 잣기름 발라 손질하고
공단댕기 갑사댕기 수부귀 다남자 딱딱 박아
청준주 홍준주 곱게 붙여 착착 접어 곱게 매고
금죽절 은죽절 좋은 비녀 뒷머리에 살짝 꽂고
은장도 금장도 갖은 장도 녹고름에 단단이 차고
은조롱 금조롱 갖은 패물 겉고름에 빗겨 차고
일광단 월광단 머리보는 섬섬옥수 감아들고
잠승버선 수당혜를 날출자로 신었구나.
반만 웃고 썩 나서니 일행 중에 제일일세.
광한전 선녀가 강림했나 월궁항아가 하강했나.
있는 분은 그렇거니와 없는 분은 그대로 하지.
양대포 겹저고리 수품만 있게 지어 입고
칠승포에다 갈마물 들여 일곱폭 치마 떨쳐입고
칠승포 삼베 허리띠를 제모만 있게 둘러 띄고
굵은 무명 겹버선을 쑬쑬하게 빨아신고
돈 반짜리 짚세기라 그도 또한 탈속하다.
열일곱 살 청춘과녀 나도 같이 놀러가지.
나도 인물 좋건마는 단장할 마음 전혀 없어
때나 없이 세수하고 거친 머리 대강 만져
놋비녀를 슬쩍 꽂아 눈썹 지워 무엇하리.
광당목 반물치마 끝동 없는 흰 저고리
흰 고름을 달아 입고 전에 입던 고장바지
대강대강 수습하니 어련무던 관기차네.
건너 집의 덴동어미 엿 한고리 이고 가서
가지가지 가고말고 낸들 어찌 안가릿가.
늙은 부녀 젊은 부녀 늙은 과부 젊은 과부
앞서거니 뒷서거니 일자행차 장관이라.
순흥이라 비봉산은 이름 좋고 놀기 좋아
골골마다 꽃빛이요 등등마다 꽃이로세.
호산나부 병나부야 우리와 같이 화전하나
두 나래를 툭툭 치며 꽃송이마다 종구하네.
사람 간 곳에 나비 가고 나비 간 곳에 사람 가니
이리 가나 저리로 가나 간 곳마다 동행하네.
꽃아 꽃아 두견화꽃아 네가 진실로 참꽃이다.
산으로 일러 두견산은 귀촉도 귀촉도 관중이오
새로 일러 두견새는 불여귀 불여귀 산중이오
꽃으로 일러 두견화는 불긋불긋 만산이라
곱도곱다 참꽃이오 사랑하다 참꽃이오
탕탕하다 참꽃이오 색색하다 참꽃이라.
치마 앞에도 따다 모으며 바구니에도 따다 모으니
한줌 따고 두줌 따니 춘광이 건입채롱중을
그 중의 상놈이 뚝뚝 꺾어 양쪽 손에 갈라 쥐고
잡아 뜯을 맘이 전혀 없어 향기롭고 이상하다.
손으로 답삭 쥐어도 보고 몸에도 툭툭 털어보고
낯에다 살짝 문대보고 입으로 함박 물어보고
저기 저 새댁 이리 오게 고예 고예 꽃도 고예.
오리불실 고은 빛은 자네 얼굴 비슷하이.
방실방실 웃는 모양 자네 모양 방불하이.
앵고부장 속수염은 자네 눈썹 똑 같으네.
아무래도 딸 맘 없어 뒷머리 살짝 꽂아놓으니
앞으로 보아도 화용이오 뒤으로 보아도 꽃이로다.
상단이는 꽃 데치고 삼월이는 가루집 풀고
취단이는 불을 너라 향단이가 떡 굽는다.
청계반석 너른 곳에 노소를 갈라 좌 차리고
꽃떡을 일변 드리나마 노인부텀 먼저 드리어라.
엿과 떡과 함께 먹으니 향기의 감미가 더욱 좋다.
함포고복 실컷 먹고 서로 보고 하는 말이
일년 일차 화전 놀음 여자 놀음 제일일세.
노고지리 쉰 질 떠서 빌빌밸밸 피리 불고
오고가는 벅궁새는 벅궁벅궁 벅구치고
봄빛 자는 꾀꼬리는 좋은 노래로 벗부르고
호랑나비 범나비는 머리 위에 춤을 추고
말 잘하는 앵무새는 잘도 논다고 치하하고
천년화표 학두루미 요지연인가 의심하네.
어떤 부인은 글 용해서 내칙편을 외워 내고
어떤 부인은 흥이 나서 칠월편을 노래하고
어떤 부인은 목성 좋아 화전가를 잘도 보네.
그 중에도 덴동어미 멋나게도 잘도 놀아
춤도 추며 노래도 하네 웃음소리 낭자한데
그 중에도 청춘과녀 눈물 콧물 귀쥐하다.
한 부인이 이른 말이 좋은 풍경 좋은 놀음에
무슨 근심 대단해서 낙루한심 왠일이오?
나건으로 눈물닦고 내 사정을 들어 보소.
열네 살에 시집올 때 청실홍실 늘인 인정
원불상리 맹세하고 백년이나 사잿더니
겨우 삼년 동거하고 영결종천 이별하니
임은 겨우 십육이오 나는 겨우 십칠이라.
선풍도골 우리 낭군 어느 때나 다시 볼고
방정맞고 가련하지 애고애고 답답하다.
십육 세 요사 임뿐이오 십칠 세 과부 나뿐이지.
삼사 년을 지냈으나 마음에는 안 죽었네.
이웃사람 지나가도 서방님이 오시는가.
새소리만 귀에 오면 서방님이 말하는가.
그 얼굴이 눈에 삼삼 그 마소리 귀에 쟁쟁.
탐탐하면 우리 낭군 자나깨나 잊을손가.
잠이나 자로 오면 꿈에나 만나지만
잠이 와야 꿈을 꾸지 꿈을 꿔야 임을 보지.
간밤에야 꿈을 꾸니 정든님을 잠깐 만나
만단정담을 다하쟀더니 일장설화를 채 못하여
꾀꼬리 소리 깨달으니 임은 정녕 간 곳 없고
촛불만 경경 불멸하니 아까 울던 저놈의 새가
자네는 듣고 좋다 하되 날과 백년 원수로세.
어디 가서 못 울어서 구태여 내 단잠 깨우는고.
정정한 마음 둘 데 없어 이리저리 재든 차에
화전놀음이 좋다하기 심회를 조금 풀까 하고
자네를 따라 참예하니 촉처감창 뿐이로세.
보나니 족족 눈물이오 듣나니 족족 한심일세.
천하만물이 짝이 있건만 나는 어찌 짝이 없나?
새소리 들어도 회심하고 꽃 핀 걸 보아도 비창한데
애고답답 내 팔자야 어찌하여야 좋을거나.
가자하니 말 아니오 아니 가고는 어찌할고.
덴동어미 듣다가서 썩 나서며 하는 말이
가지마오 가지마오 제발 적선 가지 말게
팔자 한탄 없을까마는 가단 말이 왠말이오?
잘 만나도 내 팔자요 못 만나도 내 팔자지.
백년해로도 내 팔자요 십칠 세 청상도 내 팔자요.
팔자가 좋을 양이면 십칠 세에 청상될까?
신명 도망 못할지라 이내 말을 들어 보소.
나도 본래 순흥읍내 임이방의 딸일러니
우리 부모 사랑하사 어리장고리장 키우다가
열여섯에 시집가니 예천읍내 그 중 큰 집에
치행차려 들어가니 장이방의 집일러라.
서방님을 잠깐 보니 준수 비범 풍후하고
구고님께 현알하니 사랑한 맘 거룩하되
치행차려 들어가니 장이방의 집일러라
서방님을 잠깐 보니 준수비범 풍후하고
구고님께 현알하니 사랑한 맘 거룩하되
그 이듬해 처가 오니 때 마침 단오러라.
삼백장 높은 가지 추천을 뛰다가서
추천줄이 떨어지며 공중에 매박으니
그만에 박살이라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신정이 미흡한데 십칠 세에 과부됐네.
호천통곡 슬피 운들 죽은 낭군 살아올까.
한숨 모아 대풍되고 눈물 모아 강수된다.
주야 없이 하 슬피 우니 보는 이마다 눈물내네.
시부모님 하신 말씀 친정 가서 잘 있거라.
나는 아니 갈라하니 달래면서 개유하니
할 수 없어 허락하고 친정이라고 돌아오니
삼백장이나 높은 남기 날을 보고 느끼는 듯
떨어지던 곳 임의 넋이 날을 보고 우니는 듯.
너무 답답 못살겠네 밤낮으로 통곡하니
양 곳 부모 의논하고 상주 읍내 중매하니
이상찰의 며느리되어 이승발 후취로 들어가니
가세도 웅장하고 시부모님도 자록하고
낭군도 출중하고 인심도 거룩하되
매양 앉아 하는 말이 포가 많아 걱정하더니
해로삼년이 못 다 가서 성 쌓던 조등내 도임하고
엄혐 중에 수금하고 수만량 이포를 추어내니
남전북답 좋은 전지 추풍낙엽 떠나가고
안팎 줄행랑 큰 기와집도 하루 아침에 남의 집 되고
압다 지붕 맞음 켠 뒤주며 큰 황소 적대마 서산나귀
대양푼 소양푼 세수대야 큰 솥 적은 솥 단밤가마
놋주걱 술국이 놋쟁반에 옥식기 놋주발 실굽다리
개사다리 옷걸이며 대병풍 소병풍 산수병풍
자개함농 반닫이에 무쇠두멍 아르쇠 받쳐
쌍룡 그린 빈접고비 걸쇠등경 놋등경에
백동재판 청동화로 요강 타구 재떨이까지
용도머리 장목비 아울러 훨쩍 다 팔아도
수천량 돈이 모자라서 일가친척에 일족하니
삼백량 이백량 일백량에 하지하가 쉰량이라.
어느 친척이 좋다하며 어느 일가가 좋다하리.
사오만량을 출판하여 공채필납을 하고 나니
시아버님은 장독이 나서 일곱 달만에 상사나고
시어머님이 애병 나서 초종 후에 또 상사 나니
건 이십명 남녀노비 시실새실 다 나가고
시동생 형제 외입가고 다만 우리 내외만 있어
남의 건너방 빌어 있어 세간 하자 하니
콩이나 팥이나 양식 있나 질노구 바가지 그릇이 있나
누구가 날 보고 돈 줄손가 하는 두수 다시 없네.
하루 이틀 굶고 보니 생목숨 죽기가 어려워라.
이 집에 가 밥을 빌고 저 집에 가 장을 빌어
증한소혈도 없이 그리저리 지내가니
일가친척은 나을까하고 한번 가고 두 번 가고 세 번 가니
두 번째는 눈치가 다르고 세 번째는 말을 하네.
우리 덕에 살던 사람 그 친구를 찾아가니
그리 여러번 안 왔건만 안면박대 바로 하네.
무슨 신세를 많이 져서 그저께 오고 또 오는가.
우리 서방님 울적하여 이역스럼을 못이겨서
그 방안에 궁글면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네.
서방님아 서방님아 울지 말고 우리 둘이 가다보세.
이게 다 없는 탓이로다 어디로 가든지 벌어보세.
전전걸식 가노라니 경주읍내 당도하여
주인 불러 찾아드니 손군노의 집이로다.
둘러보니 큰 여각에 남래북거 분주하다.
부엌으로 들이달아 설거지를 걸신하니
모은 밥을 많이 준다 양주 앉아 실컷 먹고
아궁에나 자려하니 주인 마누라 후하기로
아궁에 어찌 자려는가 방에 들어와 자고 가게.
중노미 불러 당부하되 아까 그 사람 불러들여
봉놋방 재우라 당부하네 재삼 절하고 치사하니
주인 마누라 긍측하여 곁에 앉히고 하는 말이
그대 양주를 아무리 봐도 걸식할 사람 아니로세.
본디 어느 곳 살았으며 어찌하여 저리 됐나?
우리는 본디 살기는 청주읍내 살다가서
신명팔자 괴이하고 가화가 공참하여
다만 두 몸이 살아나서 이렇게 개걸하나이다.
사람을 보아도 순직하니 안팎 담살이 있어주면
밧사람은 일백오십량 주고 자네 사전은 백량 줌세.
내외 사전을 합하고 보면 이백쉰량 아니 되나.
신명은 조금 고되나마 의식이야 걱정인가.
내 맘대로 어찌 하오리까 가장과 의논하사이다.
이내 봉놋방 나가 서로 서방님을 불러내어
서방님 소매 부여잡고 정다이 일러 하는 말이
주인마누라 하는 말이 안팎담살이 있고보면
이백오십량 주려하니 허락하고 있사이다.
나는 부엌 에미되고 서방님은 중노미되어
다섯 해 작정만 하고보면 한 만금을 못 벌을까.
만량 돈만 벌었으면 그런 대로 고향 가서
이전만치는 못 살아도 남에게 천대는 안 받으리.
서방님은 허락하고 지성으로 버사이다.
서방님이 내 말 듣고 둘의 낯을 한 데 대고
눈물 뿌려 하는 말이 이 사람아 내 말 듣게.
임상찰의 따님이요 이상찰의 아들로서
돈도 돈도 좋지마는 내사 내사 못하겠네.
그런 대로 다니면서 빌어먹다가 죽고 말지.
아무리 신세가 곤궁하나 군노놈의 사환되어
한수만 까딱 잘못하면 무지한 욕을 어찌 볼고.
내 심사도 할 말 없고 자네 심사 어떠할고.
나도 울며 하는 말이 어찌 생전에 빌어 먹소.
사무라운 개가 무서워라 뉘가 밥을 좋아 주나.
밥은 빌어 먹으나마 옷은 뉘게 빌어 입소.
서방님아 그 말 말고 이전 일도 생각하게.
궁팔십 강태공도 광장삼천조 하다가서
주문왕을 만난 후에 달팔십하여 있고
표모기식 한신이도 도중소년 욕보다가
한고조를 만난 후에 한중대장 되었으니
우리도 이리 해서 벌어가지고 고향 가면
이방을 못하며 호장을 못하오 부러울 게 무엇이오.
우리 서방님 하신 말씀 나는 하자면 하지마는
자네는 여인이라 내 마침 모르겠네.
나는 조금도 염려말고 그리 작정하사이다.
주인 불러 하는 말이 우리 사환 할 것이니
이백량은 우선 주고 쉰량을랑 갈 제 주오.
주인이 웃으며 하는 말이 심바람만 잘하고 보면
칠월벌이 잘 된 후에 쉰량 돈을 더 주오리.
행주치마 털트리고 부엌으로 들이 달아
사발 대접 동지 접시 몇 죽 몇 개 세아려서
날마다 증구하며 솜씨있게 잘도 한다.
우리 서방님 거동 보소 돈 이백량 받아 놓고
일수 월수 체계 놓아 내 손으로 서기하여
낭주에다 간수하고 석자 수건 골 동이고
마죽 수기 소죽 쑤기 마당 쓸기 봉당 쓸기
상 들이기 상 내기와 오면가면 걷어친다.
평생에도 아니 하던 일 눈치 보아 잘도 하네.
삼년을 나고보니 만여금 돈 되었구나.
우리 내외 마음좋아 다섯해까지 갈 것 없이
돈추심을 알뜰이 하여 내년에는 돌아가서
병술년 괴질 닥쳤구나 안팎 소실 삼십여명이
함박 모두 병이 들어 사흘만에 깨어나 보니
삼십명 소슬 다 죽고서 살아난 이 몇 없다네.
이 세상 천지간에 이런 일이 또 있는가.
서방님 신체 틀어잡고 기절하여 엎드러져서
아조 죽을 줄 알았더니 게우 인사를 차리였네.
애고 애고 어일거나 가이 없고 불쌍하다.
서방님아 서방님아 아조 벌떡 일어나게.
천유여리 타관객지 다만 내외 왔다가서
날만 하나 이곳 두고 죽단 말이 왠말인가.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지.
이내 말만 명심하고 삼사 년 건사 헛일일세.
귀한 몸이 천인되어 만여금 돈을 벌었더니
일수 월수 장변 체계 돈 쓴 사람이 다 죽었네.
죽은 낭군이 돈 달라나 죽은 사람이 돈을 주나.
돈낼 놈도 없거니와 돈 받은들 무엇할고.
돈은 같이 벌었으나 서방님 없이 쓸 데 없네.
애고 애고 서방님아 살뜰이도 불쌍하다.
이럴 줄을 짐작하면 천집사를 아니하지.
오년 작정 하올 적에 잘 살자고 한 일이지.
울면서로 마달 적에 무슨 대수로 세워던고.
군노놈의 무지욕설 꿀과 같이 달게 듣고
수화중을 가리쟎코 일호라도 안 어겼네.
일정지심 먹은 마음 한번 살아 보쟀더니
조물이 시기하여 귀신도 야속하다.
전생에 무슨 죄로 이생에 이러한가.
금도 돈도 내사 싫어 서방님만 일어나게.
아무리 호천 통곡한들 사자는 불가부생이라.
아무래도 할 수 없어 그렁저렁 장사하고
죽으려고 애를 써도 성한 목숨 못 죽을레.
억지로 못 죽고서 또 다시 빌어 먹네.
이 집 가고 저 집 가나 임자 없는 사람이라.
울산읍내 황도령이 날더러 하는 말이
여보시오 저 마누라 어찌 저리 설워하오.
하도나 신세 곤궁키로 이내 마음 비창하오.
아무리 곤궁한들 날과 같이 곤궁할까.
우리 집이 자손 귀해 오대독신 우리 부친
오십이 넘도록 자식 없어 일생한탄 무궁타가
쉰다섯에 날 낳았네 육대 독자 나 하나라.
장중보옥 얻음같이 안고 지고 케우틔니
세살 먹어 모친 죽고 네살 먹어 부친 죽네.
강근지족 본래 없어 외조모 손에 키나더니
열 네살 먹어 외조모 죽고 열 다섯에 외조부 죽고
외사촌 형제 같이 있어 삼년초토를 지나더니
남의 빚에 못견뎌서 외사촌 형제 도망하고
의탁할 곳이 전혀 없어 남의 집에 머슴 들어
십여 년을 고생하니 장가 밑천이 될러니만
서울 장사 남는다고 사경돈 말짱 추심하여
참깨 열통 무역하여 대동선에 부쳐 실고
큰 북을 둥둥 울리면서 닻 감는 소리 신명난다.
도사공은 키만 들고 입사공은 춤을 추네.
망망대해로 떠나가니 신선놀음 이 아닌가.
해남관 머리 지나다가 바람소리 일어나며
왈칵 덜컥 파도 일어 천둥 끝에 벼락치듯
물결은 출렁 산덤 같고 하늘은 캄캄 안 보이네.
수천석 실은 그 큰 비가 회리바람에 가랑잎 뜨듯
뱅뱅 돌며 떠나가니 살 가망이 있을런가.
만경창파 큰 바다에 지망없이 떠가다가
한 곳에다 들이 붇쳐 수천석을 실은 배가
편편파쇄 부숴지고 수십명 적군들이
인홀불견 못 볼러라 나도 역시 물에 빠져
파도머리에 밀려가다 마침 눈을 떠서 보니
배쪽 하나 둥둥 떠서 내 앞으로 들어오니
두 손으로 더위잡아 가슴에다 부쳐노니
물을 무수이 토하면서 정신을 조금 수습하니
아직 살긴 살았다마는 아니 죽고 어찌 할고.
오르는 절덤이 손으로 헤고 내리는 절덤이 가만이 있으니
힘은 조금 덜 드나만 몇달 몇일 기한 있나.
기한 없는 이 바다에 몇달 몇일 살 수 있나.
밤인지 낮인지 정신없이 기한 없이 떠나간다.
풍랑소리 벽력되고 물사품이 운애되네.
물귀신의 울음소리 응얼응얼 기막힌다.
어느때나 되었던지 까마귀 소리 들리거늘
눈을 들어 살펴보니 백사장이 뵈는구나.
두발로 박차며 손으로 헤어 백사장 가에 닿는구나.
엉금엉금 기어나와 정신 없이 누웠다가
마음을 단단히 고쳐 먹고 다시 일어나 살펴보니
나무도 풀도 돌도 없고 다만 해당화 붉어 있다.
몇날 몇일 굶었으니 밴들 아니 고플손가.
엉금설설 기어가서 해당화 꽃을 따먹으니
정신이 점점 돌아나서 또 그 옆을 살펴보니
절로 죽은 고기 하나 커다란 게 게 있구나.
불이 있어 구울 수 있나 생으로 실컷 먹고나니
본 정신이 돌아와서 눈물 울음도 이제 나네.
무인절도 백사장에 혼자 앉아 우노라니
난데없는 어부들이 배를 타고 지나다가
우는 걸 보고 괴이 여겨 배를 대이고 나와서로
날을 흔들며 하는 말이 어찐 사람이 혼자 우나?
울음 그치고 말을 해라 그제야 자세돌아보니
육칠팔이 앉았는데 모두 다 어뷜러라.
그대들은 어디 살며 이 섬중은 어디잇가?
이 섬은 제주 한라섬이요 우리는 다 정의에 있노라.
고기 잡으러 지나다가 울음소리 따라왔다.
어느 곳의 사람으로 무슨 일로 예 와 우나?
나는 본디 울산 살더니 장사길로 서울 가다가
풍파 만나 파선하고 물결에 밀려 내쳐노니
죽었다가 깨난 사람 어느 곳인줄 아오리까?
제주도 우리 조선이라 가는 길을 인도하오.
한 사람이 일어 서며 손을 들어 가리키되
제주읍내는 저리 가고 대정 정의는 이리 가지.
제주읍내로 가오리까 대정 정의로 가오리까?
밥과 고기 많이 주며 자세히 일러 하는 말이
이 곳에서 제주읍 가자하면 사십리가 넉넉하다.
제주본관 찾아들어 본 사정을 발괄하면
우선 호구할 것이오 고향가기 쉬우리라.
신신이 당부하고 배를 타고 떠나간다.
가리키던 그 곳으로 제주본관 찾아가니
본관사또 들으시고 불쌍하게 생각하사
돈 오십량 처급하고 절령 한장 내주시며
네 이 곳에 있다가서 왕래선이 있거들랑
사공 불러 절령 주면 선가 없이 잘 가거라.
그렁저렁 삼삭만에 왕래선이 건너 와서
고향이라 돌아오니 돈 두 냥이 남았구나.
사기점에 찾아가서 두 냥어치 사기 지고
촌촌가가 도부하며 밥을랑은 빌어 먹고
삼사삭을 하고나니 돈 열닷냥 되었건만
삼십 넘은 노총각이 장가 밑천 가망 없네.
애고답답 내팔자야 언제 벌어 장가갈고?
머슴살아 사오백냥 창해일속 부쳐두고
두 냥 밑천 다시 번들 언제 벌어 장가갈까?
그런 날도 살았는데 설워마오 우지마오.
마누라도 설다하되 내 설움만 못하오리.
여보시오 말씀 듣소 우리 사정을 논지컨댄
삼십 넘은 노총각과 삼십 넘은 혼과부라.
총각의 신세도 가련하고 마누라 신세도 가련하니
가련한 사람 서로 만나 같이 늙으면 어떠하오?
가만이 솜솜 생각하니 먼저 얻은 두 낭군은
홍문 안의 사대부요 큰 부자의 세간살이
패가망신 하였으니 흥진비래 그러한가.
저 총각의 말 들으니 육대독자 내려오다가
죽을 목숨 살았으니 고진감래 할까보다.
마지 못해 허락하고 손 잡고서 이 내 말이
우리 서로 불쌍이 여겨 허물없이 살아보세.
영감은 사기 한 짐 지고 골목에서 크게 외고
나는 사기 광우리 이고 가가호호이 도부한다.
조석이면 밥을 빌어 한 그릇에 둘이 먹고
남촌 북촌에 다니면서 부지런히 도부하니
돈 백이나 될만하면 둘 중에 하나 병이 난다.
병구려 약시세 하다보면 남의 신세를 지고나고
다시 다니며 근사 모아 또 돈 백이 될만하면
또 하나이 탈이 나서 한푼 없이 다 쓰고 나네.
도부장사 한 십년 하니 장바구니에 털이 없고
모가지지 자라목 되고 발가락이 무지러렸네.
산 밑의 주막에 주인하고 궂은 비 실실 오는 날에
건너 동네 도부가서 한 집 건너 두 집 가니
천둥소리 볶아치며 소나기 비가 쏟아진다.
주막 뒷산이 무너지며 주막터를 빼가지고
동해수로 달아나니 살아날 이 뉘귈고넌.
건너다가 바라보니 망망대해 뿐이로다.
망측하고 기막힌다 이런 팔자 또 있는가.
남해수에 죽을 목숨 동해수에 죽는구나.
그 주막에나 있었더면 같이 따라가 죽을것을.
먼저 괴질에 죽었더면 이런 일을 아니 볼걸.
고대 죽을걸 모르고서 천년만년 살자하고
도부가 다 무엇인고 도부 광우리 무여박고
해얌없이 앉았으니 억장이 무너져 기막힌다.
죽었으면 졸너구만 생한 목숨이 못죽을레라.
아니 먹고 굶어 죽으랴하니 그 집 댁네가 강권하니
죽지말고 밥을 먹게 죽은들사 시원할까.
죽으면 쓸 데 있나 살기만은 못하니라.
저승을 뉘가 가 봤는가 이승만은 못하리라.
고생이라도 살고보지 죽어지면 말이 없네.
훌쩍이며 하는 말이 내 팔자를 세 번 고쳐
이런 액운이 또 닥쳐서 신체도 한 번 못 만지고
동해수에 영결종천하였으니 애고애고 어찌어찌 살아볼고.
주인댁이 하는 말이 팔자 한 번 또 고치게.
세 번 고쳐 곤한 팔자 네 번 고쳐 잘 살런지.
세상일은 모르나니 그런대로 살아보게.
다른 말 할 것 없이 저 꽃나무 두고보지.
이삼월의 춘풍 불면 꽃봉오리 고운 빛을
벌이는 앵앵 노래하며 나비는 펄펄 춤을 추고
유객은 왕왕 노다가고 산조는 영영 흥락이라.
오뉴월 더운 날에 꽃은 지고 잎만 남아
녹음이 만지하여 좋은 경이별로 없다.
팔구월에 추풍 불어 잎사귀조차 떨어진다.
동지 섣달 설한풍에 찬 기운을 못 견디다가
다시 춘풍 들이불면 부귀춘화 우후홍을
자네 신세 생각하면 설한풍을 만남이라.
흥진비래 하온 후에 고진감래 할 것이니
팔자 한 번 다시 고쳐 좋은 바람을 기다리게.
꽃나무같이 춘풍만나 가지가지 만발할 제
향기나고 빛이 난다 꽃 떨어지자 열매 열어
그 열매가 종자되어 천만 년을 전하나니
귀동자 하나 나아시면 수부귀 다자손 하오리다.
여보시오 그 말 마오 이십 삼십에 못 둔 자식
사십 오십에 아들 낳아 뒤본단 말 못들었네.
아들의 뒤를 볼터이면 이십 삼십에 아들 낳아
사십 오십에 뒤 보지만 내 팔자는 그 뿐이요.
이 사람아 그 말 말고 이 내 말을 자세 듣게.
설한풍에도 꽃 피던가 춘풍이 불어야 꽃이 피지.
때 아닌 전에 꽃 피던가 때를 만나야 꽃이 피네.
꽃 필 때라야 꽃이 피지 꽃 아니 필 때 꽃 피던가.
봄바람만 들이 불면 뉘가 시켜서 꽃 피던가.
제가 절로 꽃이 필 때 뉘가 막아서 못필런가.
고운 꽃이 피고보면 귀한 열매 또 여나니
이 뒷집의 조서방이 다만 내외 있다가서
먼젓달에 상처하고 지금 혼자 살림하니
저 먹기는 태평이나 그도 또한 가련하되
자네 팔자 또 고쳐서 내 말대로 살아보게.
이왕사를 생각하고 갈까말까 망상이다
마지 못해 허락하니 그 집으로 인도하네.
그집으로 들이달아 우선 영감을 자세 보니
나은 비록 많으나마 기상이 든든 순후하다.
영감 생애 무엇이오? 내 생애는 엿장사라.
마누라는 어찌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나?
내 팔자가 무상하여 만고풍상 다 겪었소.
그날부터 양주 되어 영감할미 살림한다.
나는 집에서 살림하고 영감은 다니며 엿장사라.
호두약엿 잣박산에 참깨박산 콩박산에
산사 과질 빈사과를 갖초갖초 하여주면
상자고리에 담아지고 장마다 다니며 매매한다.
의성장 안동장 풍산장과 노루골 내성장 풍기장에
한달 육장 매장 보니 엿장사 조첨지 별호되네.
한달 두달 이태 삼년 사노라니 어찌하다가 태기 있어
열 달 배술러 해복하니 참말로 일개 옥동자라.
영감도 오십에 첫아들 보고 나도 오십에 첫아이라.
영감할미 마음 좋아 어리장고리장 사랑한다.
젊어서 어찌 아니 나고 늙어서 어찌 생겼는고.
흥진비래 겪은 나도 고진감래 하려는가.
희한하고 이상하다 둥기둥둥 일이로다.
둥기둥기 둥기야 아가둥기 둥둥기야.
금자동아 옥자동아 섬마둥기 둥둥기야.
부자동아 귀자동아 놀아라 둥기 둥둥기야.
앉아라 둥기 둥둥기야 서거라 둥기 둥둥기야.
궁둥이 툭툭 쳐도보고 입도 쪽쪽 맞춰보고
그 자식이 잘도 났네 인제야 한 번 살아보지.
한창 이리 놀리다가 어떤 친구 오더니만
수동별신 큰 별신을 아무날부터 시작하니
밑천이 적거들랑 뒷돈은 내 대줌세.
호두약엿 많이 고고 갖은 박산 많이 하게.
이번에는 수가 나리 영감님이 옳게 듣고
찹쌀 사고 밤도 사고 칠팔십량 밑천이라.
닷동이 들이 큰 솥에다 삼사일을 꼿노라니
한밤중에 바람이 자 굴뚝으로 불이 났네.
온 집안에 불 붙어서 화광이 충천하니
인사불성 정신없어 그 엿물을 다 퍼얹고
안방으로 들이달아 아들 안고 나오다가
불더미에 엎더져서 구불면서 나와보니
영감은 간 곳 없고 불만 자꾸 타는구나.
이웃 사람 하는 말이 아 살리러 들어가더니
상가꺼지 안 나오니 이제 하마 죽었구나.
한 마룻대 떨어지며 기둥조차 다 탔구나.
일촌 사람 달려들어 부혓치고 찾아보니
포수놈의 불고기하듯 아주 함박 구웠구나.
요런 망할 일 또 있는가 나도 같이 죽으려고
불더미로 달려드니 동네 사람이 붙들어서
아무리 몸부림하나 아주 죽지도 못하고서
온 몸이 콩과질 되였구나 요런 년의 팔자 있나.
깜짝 사이에 영감 죽어 삼혼구백이 불꽃되어
불티와 같이 동행하여 아주 펄펄 날아가고
귀한 아들도 불에 듸서 죽는다고 소리치네.
엉아엉아 우는 소리 이내 창자가 끊어진다.
세상사가 귀차여 이웃집에 가 누웠으니
덴동이를 안고와서 가슴을 헤치고 젖 물리며
지성으로 하는 말이 어린 아해 젖 먹이게.
이 사람아 정신차려 어린 아기 젖 먹이게.
우는 거동 못보겠네 일어나서 젖 먹이게.
나도 아주 죽을라네 그 어린 것이 살겠는가.
그 거동을 어찌 보나 아주 죽어 모를라네.
듼다군들 다 죽는가 불에 덴 이 허다하지.
그 어미라야 살려내지 다른 이는 못살리네.
자네 한 번 죽어지면 살기라도 아니 죽나.
자네 죽고 아 죽으면 조첨지는 아주 죽네.
살아날 것이 죽고보면 그도 또한 할일인가?
조첨지를 생각거든 일어나서 아 살리게.
어린 것만 살고보면 조첨지 사못 안죽었네.
그댁네 말을 옳게 듣고 마지 못해 일어 앉아
약시세하며 젖먹이니 삼사삭만에 나았으나
살았다고 할 것 없네 갖은 병신이 되었고나.
한짝 손은 오그라져서 조막손이 되어있고
한짝 다리 뻐드러져서 장채다리 되었으니
성한 이도 어렵거든 갖은 병신 어찌 살고?
수족 없는 아들 하나 병신 뒤를 볼 수 있나.
듼 자식을 젖 물리고 가르더안고 생각하니
지난 일도 기막히고 이 앞 일도 가련하다.
건널수록 물도 깊고 넘을수록 산도 높다.
어쩐 년의 고생팔자 일평생을 고생인고.
이내 나이 육십이라 늙어지니 더욱 슬의.
자식이나 성했으면 저나 믿고 사지마난
나은 점점 많아가니 몸은 점점 늙어가네.
이렇게도 할 수 없고 저렇게도 할 수 없다.
덴동이를 뒷더업고 본 고향을 돌아오니
이전 강산은 의구하나 인정 물정 다 변했네.
우리 집은 터만 남아 쑥대밭이 되였고나.
아는 이는 하나 없고 모르는 이 뿐이로다.
그늘맺진 은행나무 불개청음대아귀라.
난데 없는 두견새가 머리 위에 둥둥 떠서
불여귀 불여귀 슬피 우니 서방님 죽은 넋이로다.
새야 새야 두견새야 내가 어찌 알고올줄
여기 와서 슬피 울어 내 서럼을 불러내나.
반가와서 울었던가 서러워서 울었던가.
서방님의 넋이거든 내 앞으로 날아오고
임의 넋이 아니거든 아주 멀리 날아가게.
두견새가 펄쩍 날아 내 어깨에 앉아 우네.
임의 넋이 분명하다 애고탐탐 반가워라.
나는 살아 육신이 왔네 넋이라도 반가워라.
근 오십년 이곳 있어 날 오기를 기다렸나.
어이 할고 어이 할고 후회막급 어이할고야.
새야 새야 우지 마라 새 보기도 부끄러워.
내 팔자를 셔겨더면 새 보기도 부끄럽쟎지.
첨에 당초에 친정 와서 서방님과 함께 죽어
저 새와 같이 자웅되어 천만 년이나 살아볼걸.
내 팔자를 내가 속아 기어이 한번 살아볼라고
첫째 낭군은 추천에 죽고 둘째 낭군은 괴질에 죽고
셋째 낭군은 물에 죽고 넷째 낭군은 불에 죽어
이 내 한 번 못잘살고 내 신명이 그만일세.
첫째 낭군 죽을 때에 나도 한가지 죽었거나
살더래도 수절하고 다시 가지나 말았다면
산을 보아도 부끄럽쟎고 저 새 보아도 무렴챦지.
살아 생전에 못 된 사람 죽어서 귀신도 악귀로다.
나도 수절만 하였다면 열녀각은 못 세워도
남이라도 칭찬하고 불쌍하게나 생각할걸.
남이라도 욕할게요 친정일가들 반가할까.
잔디밭에 물게 앉아 한바탕 실컷 우다가니
모르는 안노인 나오면서 어쩐 사람이 슬이 우나?
울음 그치고 말을 하게 사정이나 들어보세.
내 설음을 못 이겨서 이 곳에 와서 우나니다.
무슨 설음인지 모르거니와 어찌 그리 설워하나?
노인을랑 들어가오 내 설음 알아 쓸 데 없소.
일분 인사를 못차리고 땅을 허비며 자꾸 우니
그 노인이 민망하여 곁에 앉아 하는 말이
간 곳마다 그러한가 이 곳 와서 더 설운가?
간 곳마다 그러릿가 이 곳에 오니 더 서럽소.
저 터에 살던 임상찰이 지금에 어찌 사나잇가?
그 집이 벌써 결단나고 지금 아무도 없나니라.
더군다나 통곡하니 그 집을 어찌 알았던가?
저 집에 살던 임상찰이 우리 집과 오촌이라.
자세히 본들 알 수 있나 아무 형님이 아니신가?
달려들어 두손 잡고 통곡하며 설워하니
그 노인도 알지 못해 형님이란 말이 왠 말인고?
그러나 저러나 들어가세 손목 잡고 들어가니
청삽살이 웡웡 짖어 난 모른다고 소리치고
큰 대문 안의 계우 한 쌍 게욱게욱 달라드네.
안방으로 들어가니 늙으나 젊으나 알 수 있나.
부끄러워 앉았다가 그 노인과 한 데 자며
이전 이야기 대강하고 신명타령 다 못할레.
엉송이 밤송이 다 쪄보고 세상의 별고생 다해봤네.
살기도 억지로 못하겠고 재물도 억지로 못하겠데.
고약한 신명도 못 고치고 고생할 팔자는 못 고칠레.
고약한 신명은 고약하고 고생할 팔자는 고생하지.
고생대로 할 지경엔 그른 사람이나 되지말지.
그른 사람 될 지경에는 옳은 사람이나 되지그려.
옳은 사람 되어 있어 남에게나 칭찬 듣지.
청춘과부 갈라하면 양식 싸고 말릴라네.
고생팔자 타고나면 열 번 가도 고생일레.
이팔청춘 청상들아 내 말 듣고 가지 말게.
아무 동네 화령댁은 스물 하나에 혼자 되어
단양으로 갔다더니 겨우 다섯달 살다가서
제가 먼저 죽었으니 그건 오히려 낫지마는
아무 동네 장임댁은 갓 스물에 청상되어
제가 춘광 못 이겨서 영춘으로 가더니만
몹쓸 병이 달려들어 앉은뱅이 되었다데.
아무 마을의 안동댁도 열 아홉에 상부하고
제가 공연히 발광나서 내성으로 간다더니
서방놈에게 매를 맞아 골병이 들어서 죽었다데.
아무 집의 월동댁도 스물 둘에 과부되어
제 집 소실을 모함하고 예천으로 가더니만
전처 자식을 몹시하다가 서방에게 쫓겨나고
아무 곳에 단양이네 갓 스물에 가장 죽고
남의 첩으로 가더니만 큰 어미가 사무라워
삼시 사시 싸우다가 비상을 먹고 죽었다데.
이 사람네 이리 된 줄 온 세상이 아는 바라.
그 사람네 개가할 제 잘 되자고 갔지마는
팔자는 고쳤으나 고생은 못 고치데.
고생을 못 고칠 제 그 사람도 후회 나리.
후회 난들 어찌할고 죽을 고생 많이 하네.
큰 고생을 안할 사람 상부버텀 아니하지.
상부버텀 하는 사람 큰 고생을 하나니라.
내 고생을 남 못 주고 남의 고생 안 하나니
제 고생을 제가 하지 내 고생을 뉘를 줄고.
역역가지 생각하되 개가해서 잘 되는 이는
몇에 하나 아니 되네 부디 부디 가지말게.
개가가서 고생보다 수절고생 호강이니
수절고생 하는 사람 남이라도 귀히 보고
개가고생 하는 사람 남이라도 그르다네.
고생팔자 고생이리 수지장단 상관없지.
죽을 고생 하는 사람 칠팔십도 살아있고
부귀호강 하는 사람 이팔청춘 요사하니
고생 사람 덜 사쟎코 호강 사람 더 사쟎네.
고생이라도 한이 있고 호강이라도 한이 있어
호강살이 제 팔자요 고생살이 제 팔자라.
남의 고생 꿔다 하나 한탄한들 무엇할고.
내 팔자가 사는 대로 내 고생이 닫는 대로
좋은 일도 그뿐이요 그른 일도 그뿐이라
춘삼월 호시절에 화전놀음 와서들랑
꽃빛일랑 곱게 보고 새소리는 좋게 듣고
밝은 달은 예사 보며 맑은 바람 시원하다
좋은 동무 좋은 놀음에 서로 웃고 놀아 보소
사람 눈이 이상하여 제대로 보면 관계찮고
고운 꽃도 새겨 보면 눈이 캄캄 안 보이고
귀도 또한 별일이지 그대로 들으면 괜찮은걸
새소리도 고쳐 듣고 슬픈 마음 절로 나네
마음 심 자가 제일이라 단단하게 맘 잡으면
꽃은 절로 피는 거요 새는 예사 우는 거요
달은 매양 밝은 거요 바람은 일상 부는 거라
마음만 예사 태평하면 예사로 보고 예사로 듣지
보고 듣고 예사하면 고생될 일 별로 없소
앉아 울던 청춘과부 황연대각 깨달아서
덴동어미 말 들으니 말씀마다 개개 옳아
이내 수심 풀어내어 이리저리 부쳐 보세
이팔청춘 이내 마음 봄 춘 자로 부쳐 보고
화용월태 이내 얼굴 꽃 화 자로 부쳐 두고
술술 나는 긴 한숨은 세류춘풍 부쳐 두고
밤이나 낮이나 숱한 수심 우는 새나 가져가게
일촌간장 쌓인 근심 도화유수로 씻어 볼가
천만 첩이나 쌓인 설움 웃음 끝에 하나 없네
구곡간장 깊은 설움 그 말끝에 슬슬 풀려
삼동설한 쌓인 눈이 봄 춘 자 만나 슬슬 녹네
자네 말은 봄 춘자요 내 생각은 꽃 화자라.
봄 춘자 만난 꽃 화자요 꽃 화자 만난 봄 춘자라.
얼시고나 좋을시고 좋을시고 봄 춘자
화전놀음 봄 춘자 봄 춘자 노래 들어보소.
가련하다 이팔청춘 내게 당한 봄 춘자.
노년에 갱환 고원춘 덴동어미 봄 춘자.
장생화발 만년춘 우리 부모님 봄 춘자.
계지난엽 일가춘 우리 자손의 봄 춘자.
금지옥엽 구운춘 우리 금주님 봄 춘자.
팔선대혜 구운춘 이자선의 봄 춘자.
봉구황곡 각래춘 정경파의 봄 춘자.
연작비래 보회춘 이소화의 봄 춘자.
삼오성희 정재춘 진채봉의 봄 춘자.
위귀위선 보보춘 가춘운의 봄 춘자.
금대문장 자유춘 계섬월의 봄 춘자.
절색천명 하북춘 적경홍의 봄 춘자.
옥문관외 의회춘 심조연의 봄 춘자.
청수답의 음곡춘 백능파의 봄 춘자.
삼십육궁 도시춘은 제일 좋은 봄 춘자.
도중에 송모춘은 마상객의 봄 춘자.
춘래에 불사춘은 왕소군의 봄 춘자.
송군겸송춘은 이별하는 봄 춘자.
낙일만가춘은 천리원객 봄 춘자.
등루만리 고원춘 강상객의 봄 춘자.
부지오류춘은 도연명의 봄 춘자.
황사백초 본무춘은 관산만리 봄 춘자.
화광은 불감옥양춘 고국을 생각한 봄 춘자.
낭음비과 동정춘 여동빈의 봄 춘자.
오호편주 만재춘 월서시의 봄 춘자.
회두일소 육궁춘 양귀비의 봄 춘자.
용안일선 사해춘 태평천하 봄 춘자.
주사도명 삼십춘 이청영의 봄 춘자.
어주축수 애산춘 불변선원 봄 춘자.
양자강두 양류춘 문양객의 봄 춘자.
동원도리 편시춘 창가소부 봄 춘자.
천하의 태평춘은 강구연월 봄 춘자.
풍동하화 수전춘은 고소대 하 봄 춘자.
화기혼여 백화춘 양과천봉 봄 춘자.
만리강산 무한춘 유산객의 봄 춘자.
산중산하 홍자춘 홍정골댁 봄 춘자.
일천명월 몽화춘 골내댁네 봄 춘자.
명사십리 해당춘 새내댁네 봄 춘자.
작작도화 만점춘 도화동댁 봄 춘자.
목동이요지 행화춘 행정댁네 봄 춘자.
홍도화발 가가춘 도지미댁네 봄 춘자.
이화만발 백동춘 희여골댁네 봄 춘자.
수양동구 만사춘 오양골댁 봄 춘자.
홍교우제 갱화춘 흠다리댁 봄 춘자.
융융화기 영가춘 안동댁네 봄 춘자.
제조영영 성곡춘 소리실댁 봄 춘자.
채련가출 옥계춘 놋점댁네 봄 춘자.
제월교편 금성춘 청다리댁 봄 춘자.
강지남천 채련춘 남동댁네 봄 춘자.
영산홍어 화영춘 영출댁네 봄 춘자.
만화방창 단산춘 질막댁네 봄 춘자.
강천막막 세우춘 우수골댁 봄 춘자.
십리장님 화려춘 단양댁네 봄 춘자.
말금 바람 솰솰 불어 청풍댁네 봄 춘자.
우로 덕에 꽃이 핀다 덕고개댁네 봄 춘자.
바람 끝에 봄이 온다 풍기댁네 봄 춘자.
비봉산의 봄 춘자 화전놀음 흥이 나네.
봄 춘자로 노래하니 좋을시고 봄 춘자.
봄 춘자가 못가게로 실버들로 꼭 잠매게.
춘여과객 지나간다 앵무새야 만류해라.
바람아 부덜마라 반경도화 떨어진다.
어여쁠사 소낭자가 의복단장 옳게하고
방끗 웃고 썩 나서며 좋다좋다 시고 좋다.
잘도 하네 잘도 하네 봄 춘자 노래 잘도 하네.
봄 춘자 노래 다 했는가 꽃 화자 타령 내가 함세.
화수동류 흐른 물에 만면수심 세수하고
꽃 화자 얼굴 단장하고 반만 웃고 돌아서니
해당시레 웃는 모양 해당화와 한 가지요
오리볼실 앵도볼은 홍도화가 빛이 곱다.
앞으로 보나 뒤으로 보나 온 전신이 꽃 화자라.
꽃 화자 같은 이 사람이 꽃 화자타령 하여보세.
좋을시고 좋을시고 꽃 화자가 좋을시고.
화신풍이 다시 불어 만화방창 꽃 화자라.
당상천년 장생화는 우리 부모님 꽃 화자요
슬하만세 무궁화는 우리 자손의 꽃 화자요
요지연의 벽도화는 서왕모의 꽃 화자요
천년일개 철수화는 광한전의 꽃 화자요
극락전의 선비화는 석가여래 꽃 화자요
천태산의 노고화는 마고선녀 꽃 화자요
춘당대의 선리화는 우리 금주님 꽃 화자요
부귀춘화 우후홍은 우리 집의 꽃 화자요
욕망난망 상사화 는 우리 낭군 꽃 화자요
천리타향 일수화는 소인적객 꽃 화자요
월중월중 단계화는 월궁항아 꽃 화자요
황금옥의 금은화는 석가랑의 꽃 화자요
향일하는 촉규화는 등장군의 꽃 화자요
귀촉도 귀촉도 두견화는 초회왕의 꽃 화자요
명사십리 해당화는 해상선인 꽃 화자요
석교다리 봉선화는 이자선의 꽃 화자요
숭화산의 이백화는 이적선의 꽃 화자요
용산낙모 황국화는 도연명의 꽃 화자요
백룡퇴의 청총화는 왕소군의 꽃 화자요
마외역의 귀비화는 당명왕의 꽃 화자요
만첩산중 철쭉화는 팔십 노승의 꽃 화자요
울긋불긋 질여화는 조카딸네 꽃 화자요
동원도리 편시화는 창가소부 꽃 화자요
목동이요지 살구꽃은 차문주가 꽃 화자요
강지남의 홍련화는 전당지상의 꽃 화자요
화중왕의 목단화는 꽃 중에도 어른이요
기창지전 옥매화는 꽃 화자 중의 미인이요
화계 상의 함박꽃은 꽃 화자 중에 흠선하다.
허다 많은 꽃 화자가 좋고 좋은 꽃 화자나
화전하는 꽃 화자는 참꽃 화자 제일이라.
다른 꽃 화자 그만두고 참꽃 화자 화전하세.
쌍저협래 향만구하니 일연 꽃 화자 복중전을
향기로운 꽃 화자전을 우리만 먹어 되겠는가.
꽃 화자 전을 많이 부쳐 꽃가지 꺾어 많이 싸다가
장생화 같은 우리 부모 꽃 화자로 봉친하세.
꽃다울사 우리 아들 꽃 화자로 먹여보세.
꽃과 같은 우리 아기 꽃 화자로 달래보세.
꽃화자타령 잘도 하네 노래 속에 향기난다.
나비 펄펄 날아들어 꽃 화자를 찾아오고
꽃화자타령 들으랴고 난봉공작이 날아오고
벅궁새 꾀꼬리 날아와서 꽃화자노래 화답하고
꽃바람은 실실 불어 쇄옥성을 가져가고
청산유수 물소리는 꽃노래를 어우르고
붉은 나오리 일어나며 꽃노래를 어리여고
오색운이 일어나며 머리 우에 둥둥 뜨니
천상선관이 내려와서 꽃노래를 듣는가베.
여러 부인이 칭찬하니 꽃노래도 잘도 하네.
덴동어미 노래하니 우리 마음 더욱 좋의.
화전놀음 이 좌석에 꽃노래가 좋을시고.
꽃노래도 하 하니 우리 다시 할 길 없네.
궂은 맘이 없어지고 착한 맘이 돌아오고
걱정근심 없어지고 흥체있게 놀았으니
신선놀음 뉘가 봤나 신선놀음 한 듯하네.
신선놀음 다를손가 신선놀음 이와 같지.
화전흥이 미진하여 해가 하마 석양일제
사월 해가 지다더니 오늘 해는 져르도다.
하나님이 감동하사 사흘 해만 겸해 주소.
사흘 해를 겸하여도 하루 해는 맛창이지.
해도 해도 길고보면 실컷 놀고 가지마는
해도 해도 자를시고 이내 그만 해가 가니
산그늘은 물 건너고 까막까치 자러 드네.
각기 귀가하리로다 언제 다시 놀아볼고
꽃 없이는 재미없어 명년 삼월 놀아보세.
[주요 어구 풀이]
* 좋은 일도 그뿐이요 그른 일도 그뿐이라.
→ 달관적 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말라는 의미. 덴동어미의 삶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구절임.
* 사람 눈 → 성숙한 인간이 가진 안목을 의미함.
* 보고 듣고 예사하면 고생될 일 별로 없소 →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
* 황연대각 → 환하게 모두 깨달음
* 개개 → 낱낱이
* 부쳐 보세 → 화전을 부치는 행위에 시름을 담아 풀어냄.
* 화용월태 →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과 맵시를 이르는 말
* 세류춘풍 → 봄바람에 흔들리는 가는 버들
* 일촌간장 → 한 토막의 간과 창자라는 뜻으로, 애달프거나 애가 타는 마음을 이르는 말
* 도화유수 → 동양화에서 물가에 있는 복숭아꽃을 그린 것
* 구곡간장 → 굽이굽이 서린 창자라는 뜻으로, 깊은 마음속 또는 시름이 쌓인 마음속
[감상 및 해설]
이 작품은 조선 후기 부녀자들의 세시 풍속인 화전놀이를 소재로 한 장편가사이다. '화전가'는 보통 봄에 부녀자들이 산에 올라가 화전을 만들어 먹는 놀이를 노래한 것으로 이 작품 역시 그러한 형식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덴동어미'의 기구한 삶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화전가와 구별된다.
화전놀이에 온 한 청춘과부가 신세를 한탄하면서 개가할 뜻을 바치자 덴동어미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 주며 개가하지 말고 주어진 운명대로 살라고 설득한다. 덴동어미의 첫 번째 남편은 그네 타다가 죽고, 두 번째 남편은 괴질로 죽고, 세 번째 남편은 산사태로 죽는다. 마지막 엿장수인 조첨지를 만나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지만, 엿을 고다가 불이 나서 남편은 아들을 구하려다 죽고 아들은 큰 화상을 입어 불구자가 되고 만다. '덴동어미'는 '(불에) 덴 아이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이러한 고난을 겪고도 덴동어미는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처절한 인생 역정으로 삶을 달관한 덴동어미는 누구보다 더 놀이를 즐기며 신명을 낸다. 덴동어미의 말을 들은 청춘과부는 깨달음을 얻게 되고 화전놀이를 즐기게 된다. 다른 부녀자들도 위로를 받고 함께 어울려 즐기다가 내년을 기약하며 집에 돌아간다. 덴동어미의 이야기 속에는 조선 말엽의 가혹한 징세와 지배층의 수탈상, 경제적 몰락으로 인한 유랑 생활과 서민들의 궁핍한 생활상, 서민들의 자유로운 개가 풍습 등이 잘 드러나 있다. 따라서 문학사적으로 뿐 아니라, 조선후기의 사회상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자료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다.
덴동어미는 임이방의 딸로서 16세에 예천읍내의 장이방 집으로 시집갔으나 남편이 단오날에 그네를 뛰다가 떨어져 17세에 과부가 되었고, 다시 상주 이승발의 후처로 개가했으나 과중한 징포로 인하여 도산하고, 경주 군뇌집에 안팎 담살이를 하면서 수만금의 돈을 모아 월수를 놓았으나 괴질로 인하여 남편도 죽고 월수돈을 꾸어간 사람들도 모두 죽었기 때문에 빈털터리 과부가 되어 유랑하게 되었다. 다시 울산에서 옹기 장사하는 노총각 황도령을 만나 결혼했으나 산사태로 남편을 잃고 말았다. 주위의 권유로 또다시 엿장수 홀아비 조서방과 결혼하여 만득애자를 얻었는데 별신굿에 팔 엿을 고다가 불이 나서 남편은 타죽고 아이는 불에 데어서 병신이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덴동이를 업고 60이 다 된 나이로 고향 순흥으로 돌아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4번이나 결혼을 해도 다시 과부 신세를 면할 수 없었던 구체적인 경험을 통하여 청상과부에게 운명과 상황에 순응해야 한다는 교훈을 제시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운명론적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으나, 내면적으로는 자신의 회고담을 통하여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강인한 의지와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덴동어미의 일생담에는 조선조 말엽의 가혹한 징세와 지배층의 수탈상 경제적 몰락으로 인한 유랑생활과 서민들의 궁핍한 생활상 서민들의 개가의 자유스러움 등이 잘 드러나 있다.
[핵심 정리]
◆ 갈래 및 형식 : 장편가사, 조서후기 가사, 부녀가사, 서민가사
◆ 특성
* 임과 이별한 어느 여인의 신세 타령과 이를 듣고 위로와 더불어 자신의 기구한 삶을 털어놓는 덴동어미의 답변이 이어지는 형식으로 이루어짐.
* 점층적 구조로 이루어짐. → 첫째, 화전가는 과정과 놀이가 나타나 일반적인 화전가의 분위기가 나타난다. 둘째, 청춘 과부의 개가해야 하는 심정과 덴동어미의 인생 역정이 드러난다. 셋째, 서술자가 화전놀이의 의미를 새기며 내년을 기약한다. 즉, 둘째 부분의 내용은 여타의 화전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으로 일종의 액자형식을 취하고 있어 설득력과 실감을 풍부히 하는 효과를 가지고 오는 구성상의 특징을 보여준다.
◆ 주제 : 덴동어미의 기구한 인생 역전과 긍정적인 삶의 자세
◆ 출전 : 소백산대관록
[생각해 보기]
1. 덴동어미는 왜 거듭 개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가?
→ 중세의 가부장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남성이 없는 여성은 현실적으로 삶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수절도 최소한의 경제적 여건이 충족되어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의 수절 이데올로기는 양반 계층에게나 통용될 수 있는 것이었다. 덴동어미의 첫 번째 개가는 친정과 시집이 중인 계층이었기에 구태여 수절을 요구하지 않은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덴동어미의 두 번째, 세 번째 개가는 하층 빈민 여성의 처지에서는 수절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데 따른 자연스런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2. 덴동어미가 만약 수절을 했다면 불행을 면할 수 있었을까?
→ 덴동어미는 노년에 고향에 돌아와 과거를 회고하면서 차라리 수절을 했다면 그런 엄청난 고생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하고 있다. 이것은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근거없는 회한에 불과하다. 박지원의 '열녀함양박씨전'이나 풍양 조씨 부인의 '자긔록'을 보면 수절하는 여성의 삶 또한 고통스럽고 불행한 것임이 잘 드러나고 있다.
3. 덴동어미가 화전놀이의 현장에서 청춘과부에게 수절을 권유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 덴동어미는 자신의 쓰라린 체험에 입각하여, 당대 사회에서는 여성이 개가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기는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개가하여 행복을 누릴 수 없다면 차라리 수절하여 남들의 칭송이라도 듣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것이 덴동어미의 생각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덴동어미도 당대의 수절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인식의 한계성이 있다. 하지만 덴동어미의 말을 음미해보면 중세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개가해도 고생이요, 수절해도 고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목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인간은 자신의 의도대로 살 수 있는 것일까? 살 수 없다면 왜 그런 것일까?
→ 덴동어미는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갖은 고초를 마다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불행을 면치 못했다. 불가해한 세계의 횡포에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삶에의 의지와 희망을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인생이다.
[참고하기]
◆ 덴동어미의 인생 유전
덴동어미는 네 번 결혼했지만 네 번 모두 남편을 잃었다. 애초 덴동어미는 경상도 순흥의 아전인 임이방의 딸로 태어났다. 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나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경상도 예천 장이방의 아들에게 시집을 갔다. 시집 또한 아전 집안으로 경제적으로 부유하였고 남편은 준수하였으며 시부모도 그녀를 사랑하였다. 덴동어미에게는 행복한 미래가 약속되어 있는 듯했다. 하지만 불행은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 불쑥 찾아왔다. 결혼한 이듬해 단옷날, 부부가 친정에 와서 함께 그네를 타다가 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남편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첫 남편의 우연한 죽음으로 말미암아 덴동어미의 파란만장한 삶은 시작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남편을 잃는다는 것은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수절을 하든 개가를 하든, 여성 앞에는 순탄치 않은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인 까닭이다. 남편을 잃고 주야로 슬피우는 덴동어미를 보다 못한 시집에서는 그녀를 친정으로 보냈고, 양가가 의논하여 그녀를 개가시켰다. 두 집안 모두 중인 계층이었기에 구태여 수절을 권장할 이유가 없었고, 그녀 또한 어린 나이라 별다른 저항없이 집안어른들의 뜻을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덴동어미가 두 번째로 시집간 곳은 경상도 상주에서 아전 노릇을 했덩 이이방네 집안이었다. 그녀는 이이방의 아들 이승발의 후취로 들어갔다. 시집은 부자였고, 남편과 금슬도 좋았으나 시집간 지 삼 년만에 이포로 집안이 결딴나고 만다. 이포를 갚기 위해 집과 전답을 다 처분하고 친척들에게 돈을 꾸기까지 하였지만, 결국 시아버지는 매를 맞아 후유증으로 죽고 시어머니는 홧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런 경제적 몰락으로 덴동어미는 부유한 중인 계층의 인물에서 하층 빈민의 처지로 전락하였다.
덴동어미 내외는 고향을 떠나 유리걸식하며 거지 노릇을 하다가, 경주의 한 주막집에서 사환으로 일하게 된다. 온갖 고생과 천한 일을 도맡아 하면서 내외는 억척스레 돈을 모았다. 돈이 생기는 족족 사람들에게 빚을 주어 이자를 불려나갔다. 이리하여 삼 년만에 거금을 모았고, 고향에 돌아가 다시 예전의 신분을 회복하고자 하는 꿈이 목전에 실현되려는 찰나에 있었다. 그런데 역병이 돌아 남편은 물론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모두 죽고 말았다. 기막힌 현실 앞에 덴동어미는 기절했다가 깨어나서 남편의 시체를 붙들고 통곡을 한다. 그러나 죽으려고 애를 써도 산 목숨은 어찌할 수 없었고, 덴동어미는 다시 홀로 떠돌아다니며 걸식을 한다.
떠돌다 도착한 울산 읍내에서 덴동어미는 황도령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서러움에 젖어 있는 덴동어미를 위로하기 위해 황도령은 자신의 기구한 개인사를 들려주었다. 조실부모한 그는 10여 년 간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여 장가 밑천을 마련하였다. 그 돈으로 서울에 참깨 무역을 하러 나섰는데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표류하다가 겨우 목숨만 건진 채 빈털터리로 고향에 돌아왔다. 그러고는 행상을 하며 연명하고 있는 참이었다. 황도령과 덴동어미는 서로의 처지에 연민을 느끼고 함께 부부가 되어 살아간다.
덴동어미의 세 번째 결혼생활 역시 순찬치 못했다. 내외는 밥을 빌어먹으면서 사기짐을 이고 도부를 다녔지만, 돈이 좀 모일 만하면 둘 중의 하나가 아프고 하여 늘 가난을 면키 어려웠다. 사기그릇을 담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다니느라, 목은 자라목이 되고 발가락은 무지러질 정도가 되었지만 가난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주막집에서 산사태로 다시 남편을 잃고 만다. 덴동어미는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혀 굶어죽으려고 하였으나, 주막집 주인 아낙네의 만류로 다시 목숨을 부지한다.
덴동어미는 주인 아낙네의 인도로 엿장사 조서방과 살림을 시작한다. 덴동어미는 집에서 살림을 하고 조서방은 경상도 여러 장을 떠돌며 엿을 팔러 다녔다. 그러던 중 몇 년만에 태기가 있어 사내아이를 얻었다. 덴동어미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아들에게 지극 정성 사랑을 쏟았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불행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별신굿에 한 밑천 벌어보겠다고 엿을 고다가, 한밤중에 그만 집에 불이 난 것이다. 덴동어미는 안방으로 쫓아들어가 불더미에 엎어져 뒹굴면서 아이를 안고 나왔지만, 아들을 살린다고 들어간 남편이 그만 불길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덴동어미는 자기도 같이 죽겠다고 불 속으로 달려들지만 동네사람의 제지로 몸부림친다. '덴동어미'라는 호칭도 바로 이 사고에서 유래했는데, 그것은 '불에 덴 아이의 엄마'라는 뜻이다. 덴동어미는 세상사가 귀찮기만 하고 살 뜻이 없었다. 하지만 이웃의 위로에 힘입어 다시 일어난다. 그러나 이미 늙었고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막다른 상황에서 덴동어미는 병신이 된 어린 아들을 업고 40여 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이후 덴동어미는 고향에 정착하여 여생을 보내게 된다. 노년의 덴동어미는 화전놀이에 엿 한 고리 이고 가서 멋나게 잘도 놀며 놀이를 주도하는 인물이 된다. 평생의 한을 풀어 버리고 신명나게 놀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한 청춘 과부가 화전놀이의 현장에서 자기 신세를 슬퍼하자 그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것이다.
◆ 인간적 연대의 가치
덴동어미가 고통과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감내할 수 있었던 것은 일차적으로는 덴동어미가 지닌 본연의 생명력에 기인한 바 크다고 하겠으나 그에 못지 않게 그녀가 인생 유전의 과정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위로 및 그들과의 공감과 연대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덴동어미화전가'에는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연대의 모습이 주목된다. 여성적 연대의 인상적인 장면들은 덴동어미의 인생에서, 그리고 화전놀이의 현장에서 두루 발견된다.
세 번째 남편 황도령이 죽었을 때는 주막집 아낙네가, 네 번째 남편 조서방을 잃었을 때는 이웃집 여인이, 절망에 빠진 덴동어미를 지성으로 위로하고 달랜다. 주막집 아낙네는 고생뿐인 삶이라 할지라도 삶은 그 자체로 귀중하다는 것, 사람의 인생에는 성쇠(盛衰)가 있어 행복하기만 한 인생이나 불행하기만 한 인생은 없는 법이며, 슬픔과 기쁨, 고통과 행복이 엇갈리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이웃집 여인은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한 사람이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 어머니가 있어야만 아이가 살 수 있다는 것, 어머니가 죽어 버리고 나면 아이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우쳐 준다. 이들은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의 고통에 깊이 공감하고 그 처지에 연민을 느끼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 위로하고 삶에의 희망을 함께 모색하고 있다.
이들에게서 온갖 고난을 버텨내는 강인함과 고난 속에서도 결코 훼손되는 법이 없는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가난과 고통의 삶을 사는 하층 여성 상호간에 자연스레 형성되는 인간적 연대의 귀한 면모 또한 발견할 수 있다.
한편, 덴동어미가 고향에 돌아와 막막한 심정으로 울고 있을 때, 한 여자노인이 그 우는 사연을 물으며 그녀를 달랜다. 슬픔에 빠진 사람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 사정에 귀기울이고 이해하며 그를 위로하는 따뜻한 인간미를 노인은 보여주고 있다. 이 노인은 덴동어미를 집으로 데려가 함께 잠을 자며 그 살아온 내력과 신세타령을 다 들어주었다. 이처럼 덴동어미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번번이 다른 여성들의 위로와 격려에 힘입어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에서 인간적 연대는 비롯된다. 덴동어미와 다른 여성 사이에 형성된 공감과 연대는 덴동어미를 통해 또 다른 여성들과의 공감과 연대로 마치 그물처럼 이어져 나가게 된다.
화전놀이에 모인 여성들 앞에서 덴동어미가 자신의 개인사를 이야기한 것은 자신이 위로 받으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게 아니라, 청춘 과부를 위로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 덴동어미가 평생에 겪은 고난과 슬픔은 조선시대 여성이 겪을 수 있는 고난과 슬픔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만큼 덴동어미의 고난과 슬픔은 전형성을 갖는다.
덴동어미는 자신의 경험을 미루어 다른 이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덴동어미의 일생담을 듣는 청춘 과부와 여타의 여성들은 덴동어미가 겪은 인생의 고비고비를 심정적으로 함께 하면서 덴동어미가 슬플 때 함께 슬퍼하고, 고통스러울 때 함께 고통스러워하며, 희망을 추스를 때 함께 희망을 추슬렀을 것이다. 화전놀이에는 2, 30여 명 이상의 동네 여성이 참여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가난한 여성, 부유한 여성도 있고, 젊은 여성과 나이 든 여성도 있으며, 남편이 있는 여성과 남편이 없는 여성, 글을 잘 아는 여성과 글을 잘 모르는 여성도 있었다. 이처럼 각자 처지가 다르고 상호간에 차이가 있었지만 그들 사이에는 여성이라는 공통의 존재 조건에 기인한 공감과 연대가 존재했다. 그리고 마침내 덴동어미가 무애자재한 달관의 메시지를 전할 때는 더불어 감정적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다. 덴동어미의 이야기에 감동한 청춘과부는 근심과 슬픔을 모두 털어 버리고 「봄춘자 노래」를 신명나게 부른다.
「봄춘자 노래」에서는 화전놀이의 현장에 참석한 여성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언급되며 그들 모두가 저마다의 봄을 가진 존재들로 표현되고 있다. 또한 화전놀이에 참여한 여성들 뿐 아니라 위로는 임금님으로부터 아래로는 자손들까지, 현재의 사람들만이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까지, 이 지상에 존재했었고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봄을 구가하는 존재들로 표현되고 있다. 청춘과부가 느끼는 봄의 흥취는 무한히 발산되며 좌중까지 신명나게 한다.
화전놀이에 참여한 여성들은 각자 자신이 호명되고 그에 합당한 봄 풍경이 노래되는 걸 듣고 장단을 맞추며 함께 신명에 빠진다. 이들은 슬픔과 고통의 경험에 공감하고, 신나게 노래하는 과정에 동참하면서, 여성으로서의 억눌린 경험을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다른 낭자가 「꽃화자 노래」로 화전놀이의 분위기를 이어간다. 여성들 사이의 공감과 연대가 최고조에 달하면서 화전놀이의 신명도 최고조에 달한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온갖 나비와 새들도 노래를 들으려고 날아든다. 화전놀이에 참석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온갖 미물들마저 함께 봄의 생명력을 마음껏 발산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진 한바탕의 봄을 '덴동어미화전가'는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봄 풍경 안에는 근심 걱정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억압이나 관습도 끼어들 틈새가 없다. 제도와 관습에 의해 억압되지 않은 여성 그 자체의 고유한 생명력을 '덴동어미화전가'는 노래하고 있다. 그러한 생명력은 여성들의 공감과 연대 위에서 발견되고 마음껏 발현될 수 있는 것이었다. 덴동어미의 일생담이 구연된 화전놀이의 현장은 여성들의 생명력이 발현되는 집단적 신명의 한판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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