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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해설]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

by 휴리스틱31 2021.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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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평역(沙平驛)에서
                                                                                                        - 곽재구 -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 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릅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중앙일보>(1981) -

 

 

해                설

 

[개관 정리]

 성격 : 묘사적, 애상적, 감각적, 자기 성찰적, 반성적, 체념적, 비극적

 표현 : '찬 눈'과 '톱밥 난로'를 통해 냉온 감각을 대조함.

              외적 상황을 내적 성찰의 계기로 삼음.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일관함.

              침묵과 고요함이 녹아 있는 분위기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막차 → 쓸쓸하고 외로운 분위기의 소재

                  기다림의 대상

                  쓸쓸한 간이역의 풍경과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부각시키는 역할.

    * 톱밥 난로 → 춥고 쓸쓸하고 우울한 분위기에 다소 따뜻한 위안을 주는 소재

    * 그믐처럼 몇은 졸고 /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 힘겨운 삶에 지친 모습을 암시.

    * 그리웠던 순간 → 현재와는 다른, 아름답고 따뜻했던 과거의 시간

    * 내면 깊숙이 할 말 → 지금까지 살아온 내력에 대한 이야기

 

 

    *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 푸른 색과 붉은 색의 시각적 대조

    *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그들의 삶이 너무 힘들고 고달프기 때문이 아닐까?(체념적 태도)

    *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 삶에 대한 깨달음이 나타남.

          산다는 것은 지친 영혼이 안식처가 되는 고향에 가는 듯한 마음으로 침묵(현실의 고통을 감내)해야 함.

    *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 → 정성스럽게 준비한 것이나 그다지 자랑스러울 것은 없는 소재

    *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 음습한 대합실의 분위기와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

          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음울한 분위기와 애환의 정서로 이끌어 줌.(힘겹게 살아가고 있음을 암시)

    *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 눈 내리는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을 감각적으로 표현함.

    * 눈꽃의 화음 → 삶의 애환을 달래주는 자연의 소리

    *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 삶의 허무감에서 나온 깊은 좌절감의 표현. 고통과 슬픔으로 가득찬 세계인데

    *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 → 작고 초라한 이미지

    * 밤 열차 → 고단한 인생 역정

    * 한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 서글픈 인생에 대한 화자의 동류의식(동병상련)

    * 눈물 → 소외된 사람들을 향한 연민과 사랑

 

 

 제재 : 사평역(대합실)

   역은 문학 작품에서 많이 사용되는 공간이다. 왜냐하면, 그곳은 사람들이 어디로부터 오기도 하고 어디로 가기도 하기 때문이다. 즉, 인생 역정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시의 화자는 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삶의 고단함이 묻어 있는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화자는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본다. 결국 '사평역'은 우리의 고단한 삶의 역정(거쳐 온 길)을 침묵 속에서 응시할 수 있게 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주제 삶의 고통에서 오는 내적 갈등의 성찰

           삶의 고단함과 애환

 

[시상의 흐름(짜임)]

◆ 1행 ~ 4행 : 눈 내리는 밤의 대합실 정경(난로를 지펴 놓은 대합실에서 좀처럼 오지 않는 막차를 기다림)

◆ 5행 ~ 8행 :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화자의 태도(말없는 사람들 옆에서 추억을 회상함)

◆ 9행 ~ 16행 : 막차를 기다리며 침묵하는 사람들(삶의 고통을 가슴 속으로 삭이는 사람들)

◆ 17행~21행 : 눈꽃의 화음을 통해 얻는 위안

◆ 22행 ~ 27행 : 인생 역정에 대한 화자의 인식과 반응(삶에 대한 연민과 슬픔)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시는 눈 내리는 그믐날 밤 시골의 한 후미진 간이역 대합실에서 마지막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매우 섬세하고 사실적으로 장면을 묘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묘사에 담겨진 화자의 서정과 인식을 자세히 살펴볼 때, 장면묘사를 넘어 이 땅의 민중들의 삶의 애환과 암울한 역사의 어떤 의미까지를 함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자가 이 허름한 시골 간이역 대합실에서 막차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의 묘사를 통해 무엇을 노래하고자 했는가? 80년 5월에 경험한 정치적 소용돌이의 좌절과 비애감을 표현하고자 했는가, 아니면 더 나아가 암울하게 흘러왔으며, 앞으로도 암울하게 흘러 갈 것으로 보이는 우리 역사에 대한 절망적인 인식을 암시하고자 했는가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 될 것이다.

 

이 시에서 '삶이란 기차를 타고 설원을 달리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낯설고 고통스런 세상을 설원에, 그 속을 쓸쓸히 가는 기차는 힘겹고 고달픈 우리의 인생 역정을 비유한 것이다. 이러한 우리의 인생은 단풍잎처럼 작고 초라하며 쓸쓸하다. 삶을 지탱하며 살아가는 나약한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는 화자 역시 결국은 같은 존재이다. 이 시에서 인생은 누구에게나 고달픈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 감상을 위한 읽을거리

이 시는 삶의 애환을 비극적인 서정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시어들은 쓸쓸한 소멸과 정처 없는 떠돎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막차'가 주는 소멸감, '눈시린 유리창', '청색의 손 바닥'이 주는 차가운 이미지에 실려 삶의 행로가 단풍잎처럼 흩어져 가는 것으로 그려진다.

 

이 시의 화자와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이다. 밤늦게 막차를 기다리며 겨울 추위에 떨고 있는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에 지친 군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피곤에 지쳐 조는 모습, 감기에 걸려 쿨룩거리는 모습, 침묵하는 모습들에서 삶의 무게가 얼마나 무겁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가를 깊은 응시 속에서 통찰하게 된다.

 

'그리웠던 순간'과 현재는 상반된다. 그리웠던 때는 따뜻함이 있었던 시절이며, 현재는 외로움과 수고로움에 지친 차가운 계절이다. 과거의 따뜻함을 떠올리며 톱밥 한줌을 난로 속에 던져 주는 화자의 태도는 인간애(人間愛)에서 연유한다. 그러므로 화자가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것은 인간주의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현재의 삶에는 그러한 인간애, 달리 말하면 행복이 결핍되어 있는 것이다.

 

삶이란 그대로 술 취한 듯 맹목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굴비와 사과를 초라하게 들고 떠나는 고향, 고향으로 가는 마음이 기쁨에 들떠 있어야 하는데도 이 시에서의 고향은 지친 영혼의 쉼터로서 그려진다. 서글픈 삶의 여정에서 그나마 위안을 얻기 위해 말없이 떠나는 고향길,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고달픈 모습, 그들이 지나온 삶의 이력은 이처럼 고단한 것이다.

삶이란 기차를 타고 설원을 달리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낯설고 고통스런 세상이 설원이라면, 그 속을 쓸쓸히 달리는 기차는 우리의 인생 역정이다. 그 인생은 물론 단풍잎과 같이 작고 초라하며 쓸쓸하다. 그런 삶을 지탱하며 살아가는 나약한 군상들과 화자는 결국 같은 존재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슬픈 모습에 눈물짓는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서글프고 고단한 것이다.

- 송승환, 「한국 현대시 제대로 읽기」에서

 

 

[짧은 이야기로 정리하기]

간이역인 사평역에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고 있었다. 대합실 밖에는 눈이 내려 쌓이고, 역사 유리창에는 냉기가 흘러내린다. 대합실 안에는 톱밥난로가 지펴졌다.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모두 고단한 삶에 지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삶의 무게와 산다는 것의 힘겨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나의 그리운 순간들을 회상하면서 한 줌의 톱밥을 난로 속에 던져 넣었다.

가슴 깊숙이 숨겨 놓은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없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은 그저 주어진 대로 묵묵히 나아가는 것이다. 모두들 오래 앓았던 기침 소리며, 쓴 약 같은 담배 연기 같은 삶에 지친 채로 오지 않는 막차를 묵묵히 기다리며 눈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자정이 넘도록 기차는 오지 않았다. 나는 지난 시절의 슬픔과 고통을 안으로 삭이는 법을 배우기로 하고, 가슴 속의 슬픔과 눈물을 난로 불빛 속에 던져 버렸다.

 

[교과서 학습 활동]

1. 이 시에 드러나는 '시간'의 특성과 관련하여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시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톱밥난로에 불을 지피는 순간으로 모인다. 이 부분이 가장 잘 나타난 시구를 찾아보자.

→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는 나는 /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2) (1)에서 찾은 부분은 시 속의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는지 말해 보자.

  → 과거의 일들을 돌아보게 하고, 그 중에서도 그리운 것, 불꽃처럼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추억하게 만들어 줌

 

 

2. 막차를 기다리는 심정과 상황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쓰기를 시도해 보자.

 (1) 자신의 체험 속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중심으로 새로운 시쓰기를 시도해 보자.

→ 늦은 시각, 환승역인 신도림 역이다. 밖은 한밤중이어도 역은 대낮처럼 밝다. 켜 놓은 조명으로 언제나 대낮 같은 이곳에 막차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술을 한잔 걸쳤는지 두 뺨이 불그레한 중년의 아저씨, 야근을 했는지 피로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직장인, 여행을 갔다 오는지 커다란 배낭을 둘러맨 대학생쯤 되어 보이는 청년, 커다란 보퉁이를 손에 들고 계신 구부정한 모습의 할머니…….

이들은 각자의 짐을 들고 근심스러운 얼굴로 서 있다. 아마도 조금 있으면 전광판에 '열차가 전 역을 출발하였습니다.'라는 글씨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짐을 주섬주섬 챙겨들고 열차를 탈 채비를 하느라 역 안은 다소 술렁이게 될 것이다. 전철이 저만치서 오는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안내 방송이 나오며 전철이 들어서면 사람들의 눈은 한순간 반짝일 것이다. 이들은 오늘도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익숙한 일상의 기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2) '막차'의 의미를 강조하고, 그것을 기다리는 심정을 드러낼 만한 이미지나 단어를 구상한 후, 그와 관련된 구절을 써 보자.

 → 낮도 밤도 없이 / 햇빛도 흙도 없이 / 기다리는 역에서  //

    피곤에 지친 막차는 / 숨가쁘게 달려 온다. / "힘들었지? 집에 가자." //

   고된 하루를 보낸 사람들 / 어깨를 정겹게 토닥이며 / 자신의 문을 열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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