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끼 전 - 미 상 -
줄거리
어느 겨울날 아들 아홉과 딸 열둘을 거느린 장끼와 까투리 부부가 먹이를 구하려 산기슭으로 갔다. 장끼 앞에 먹음직스런 콩알 하나가 있어 좋아라 한다. 그러나 옆에 있던 까투리가 수상쩍다고 한사코 먹기를 말린다. 장끼가 말을 듣지 않자 어젯밤 여러 가지 불길한 꿈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말린다. 그러나 경망스런 장끼는 여자의 말이라고 무시한다. 신중한 까투리가 옛날 현인들의 지혜까지 동원하여 말려도 장끼는 막무가내다.
장끼가 하는 말이 "콩 먹고 다 죽으랴. 옛글을 읽어보면 콩 태자 든 사람은 모두가 귀한 자라. 태고적 천황씨는 일만 팔천 살을 살았고, 태호 복희씨는 풍성히 승하여 십오 대를 전했으며, 한태조 당태종은 중원의 창업지주가 되었고, 강태공은 달팔십을 살았으며, 시중천자 이태백은 월궁 항아와 놀았으며, 북천의 태을성은 별 가운데 으뜸이니, 나도 콩알 달게 먹고 태을선관(太乙仙官) 되리라"라고 한다.
장끼가 끝끝내 고집을 버리지 아니하니 까투리가 포기한다. 장끼 좋아라 콩알 먹고 퍼득거리며 죽고 만다. 장끼는 죽어가면서 부디 개가하지 말고 정절부인이 되라고 까투리에게 유언을 한다. 덫의 임자가 와서 장끼를 빼어내 들고 가니, 까투리는 장끼의 깃털 하나를 주어다가 장례를 치른다. 장끼가 죽어 까투리의 초상집에 여러 잡새들이 조문을 와서 수작을 한다. 까투리의 과부 타령이 심금을 울린다. "상부(喪夫, 지아비를 여읨)도 자주 한다. 첫째 낭군 얻었다가 보라매에 채여 가고, 둘째 낭군 얻었다가 사냥개에 물려가고, 셋째 낭군 얻었다가 포수총에 맞아 죽고, 이번 낭군 얻어서는 콩알이 원수로다. 이내 팔자 험악하다."
결국 까투리는 조문 온 갈까마귀, 부엉이, 물오리 등이 청혼을 하나 모두 거절하고, 동류인 홀아비 장끼에게 개가하여 다음해 아들 딸 다 시집 장가 보내고 명산대천 구경하며 다니다가 큰 물에 들어가 치위합(稚爲蛤)이라는 조개가 되었다.
감상 및 해설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작품으로, 꿩을 의인화하여 쓴 우화로 일종의 풍자소설이다. 이야기는 세 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이야기는, 먹이를 찾아나선 장끼부부가, 인간이 꿩을 유인해 잡기 위해 놓은, 매우 먹음직한 <콩 먹이>를 먹을 것인가, 논란을 벌이는 장면이다. 장끼는 먹겠다고 하고 까투리는 먹지 말라고 말린다. 특히, 어젯밤 <꿈>에 대한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해석을 해가면서 벌이는 논쟁에서, 권위주의에 사로잡힌 가부장(家父長)을 풍자한다.
둘째 장면은 창애(꿩을 잡기 위해 사람들이 놓은 틀)에 치어 죽어가는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진다. 장끼는 죽어가면서도 가부장의 위선적 권위를 지키려 하며, "상부(喪夫, 남편을 잃음) 잦은 네 가문에 장가 간 게 내 실수다."라고 한다. 즉, 숨이 꼴깍 넘어가는 그 순간에도, 자신의 판단 착오로 죽는게 아니고 까투리의 운명 때문에 자신이 희생된다는 식이다. 이 장면은 비극적 장면인데도 읽는 이로 하여금 눈물보다는 웃음을 자아내도록 처리하고 있다. 이것은 판소리계 소설의 한 특징으로 볼 수 있으며, 관객을 즐겁게 해 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한다.
셋째 장면은 까투리의 개가(改嫁, 재혼) 이야기다. 장끼의 장례식에 문상 온 갈가마귀, 부엉이, 물오리가 차례로 까투리에게 구혼을 청하였지만 '수절'을 명분으로 물리친다. 그러나, 새로운 장끼가 출현하자 수절이고 뭐고 다 팽개치고,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개가하고 만다. "죽은 낭군 생각하면 개가하기 박절하나, 내 나이 꼽아 보면 불노불소(不老不少) 중늙은이라 숫맛 알고 살림할 나이로다. 오늘 그대 풍신 보아하니 수절할 맘 전혀 없고 음란지심 발동하네."라고 하면서 솔직한 심정을 대담하게 드러낸다. 특히, 이 장면은 여자가 남편을 고르는 이야기가 나오고, 여자 재혼하는 장면을 제시하여, 유교봉건사회의 일반적 관습을 송두리째 뒤집고 있다. 이것 역시, 문학이 기존 사회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내는 게 아니라, 기존 질서를 극복하면서 새 질서를 창조하는 속성이 강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결국 이 작품의 중심은 새로운 문화적 사상을 불러 일으킨 실학 사상과도 일맥상통하는 내용이다. 종래의 열녀는 두 남편을 섬길 수 없다든가 한번 여인이 시집을 가면 개가할 수 없다든가 또 삼종의 덕을 지켜야 한다느니 하는 여성적 사회관을 용감하게 타파하려는 내용이다. 따라서 남존여비의 해묵은 구각에서 벗어나 참다운 인간생활이 요구된다고 하는 시대적 사상을 대변한 작품이기도 하다.
요점정리
◆ 성격 : 고전소설, 국문소설, 판소리계 소설, 우화소설, 의인체 소설, 풍자소설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이명(異名) : 웅치전(雄稚傳), 화충전(華蟲傳)
◆ 표현
* 풍자적이고 해학적인 표현
* 동물을 의인화한 우화적 수법
* 교훈성이 매우 두드러짐.
* 주로 음성상징어를 통해 생동감 넘치는 표현을 함.
* 수많은 유사한 사례를 열거하여 장면의 극대화를 꾀함.
◆ 주제 : 조선조 가부장적 권위의식과 남존여비와 여성의 개가금지에 대한 비판과 풍자
◆ 구성
* 먹이를 찾아나선 장끼와 까투리 → 가난한 하층민의 실상, 권위주의적인 가부장 비판, 남존여비에 대한 비판
* 창애(덫)에 치어 죽어가는 장끼 → '지나친 욕심은 금물이다',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이라'는 교훈, 비극적 상황을 해학적으로 표현
* 장끼의 장례식과 까투리의 개가 이야기 → 여성의 개가 금지에 대한 비판, 여성의 권익과 기본권 신장
생각해 보기
◆ 교훈성 : 타인의 충고를 받아들여야 하며, 분에 넘치는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사회적으로는 영·정조 시대에 대두하기 시작한 평민의식과 시대 정신이 반영되어 양반 사회의 위선과 갖가지 민중에 대한 수탈 끝에 유랑민의 처지로 돌아선 백성들의 고달픈 생활을 폭로하고, 여성의 억눌린 권익을 신장하며, 인간의 기본권을 중시해야 함을 강조한 풍자성과 교훈성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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