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 n Seeing

[현대수필 해설] 동해(東海) -백석-

by 휴리스틱31 2022. 4. 5.
728x90

 동  해(東海)                       -백 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기행수필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대상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작자의 심리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나감으로써 시처럼 개인적 정감이 넘쳐흐른다. 작자는 동해 바다의 추억을 회상하면서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사람들을 정겹게 떠올리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 이면에는 왠지 쓸쓸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것은 작자만이 느끼는 삶의 상실감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삶의 순간을 영원히 지속하고 싶은 낭만적 동경의 표출일 수도 있다. 작자는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반복적 문장을 통해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작품은 담담한 어조와 함께 물 흐르듯 미려(美麗)한 문체를 창조해 내고 있다.

 

 

요점 정리

 

 성격 : 회고적, 감상적, 향토적, 묘사적, 기행적 수필

 표현

    * 동해를 청자로 의인화하여 1인칭 화자가 말을 건네는 형식을 취함.

    * 상상 속의 동해에 대한 감흥을 회상하면서 독백조로 이야기를 진술함.

    * 문장의 반복을 통해 작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되풀이 서술함으로써 미려한 문체를 표현함.

    * 향토적 풍물과 관련된 어휘를 통해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키며, 그런 가운데 화자의 외로움을 드러냄으로써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냄.

 주제 : 동해에 대한 추억과 감회

 출전 : <동아일보>(1938. 6. 7)

 

생각해 보기

 

1. 이 작품을 읽을 때의 감흥과 문체의 특징을 중심으로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이 작품에서 아름답게 표현되었다고 느낀 구절을 찾아 적어 보고, 그것이 작품에서 어떤 미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지 정리해 보자.

 →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라는 구절은 매 문단의 서두에서 반복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어서 작자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첨가되고 있는데, 이는 기행수필의 성격을 지닌 글이면서도 시처럼 개인적인 정감을 느끼게 한다. 작자는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체험과 관련하여 동해를 기억하고 아름답게 표현해 내고 있다.

'동해여', '하기야 또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겝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一味)이고 식혜에 들어 절미(絶味)지. 하기야 또 버들개 봉구이가 좀 좋은가.' 등에서는 대화체이면서도 독백적인 어조, 향토적 풍물과 관련된 어휘를 느낄 수 있다.

 

(2) 이 작품에 나타난 화자의 입장이 되어 글을 읽을 때 특별한 감흥을 주는 대목이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면 어디이며, 그 이유는 무엇인지 말해 보자.

 → 이 글의 마지막 문단은 화자가 동해 바다와 관련한 추억을 회상하다가 자기 삶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떠올리고 있는 대목이라서 특별한 감흥을 준다.

 

 

2. 정철의 가사 작품 <관동별곡>에서 동해 바다의 장관을 그린 마지막 대목을 읽어 보고, 다음 활동을 해  보자.

(1) 두 작품에서 '동해'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방식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점을 말해 보자.

→ 두 작품 모두 여행을 통한 체험과 경치, 그에 대한 자신의 감회 등을 내용으로 한다. 하지만 두 작품은 상당히 다른 성격을 가지는데, 우선 하나는 가사, 다른 하나는 기행수필이라는 갈래상의 차이가 그렇다. 또한 두 작품은 '동해'라는 동일한 대상을 놓고 그것을 묘사하는 방식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관동별곡>에서는 '동해'를 대단히 과장되고 스케일이 큰 상상력을 보여준다. 그가 바라본 동해의 모습은 요동하는 고래의 그것과 같이 역동적인 모습이다. <동해>에서 표현되는 '동해'는 작자의 경험과 삶의 배경으로서의 동해이다. 동해 자체가 존재하거나 움직이는 모습보다는, 동해와 관련된 작자의 체험이나 기억을 통해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2) 두 작품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작자의 관점과 입장은 어떻게 다른지 친구들과 이야기해 보자.

 → <관동별곡>에서 동해는 작자의 심적 갈등의 표상으로 묘사된다. 그의 내면에서 갈등이 강렬하게 파도치고 있었기 때문에 동해 바다는 파도치는 바다로 표현되고 있다. 반면 <동해>의 동해 바다는 작자의 추억이 담겨 있는 대상으로 묘사된다.

<관동별곡>의 작자가 가지는 심적 갈등은 사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자아와 개인적 자아 간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중세적인 것이다. 따라서 그에게 비친 바다의 모습은 일종의 이념적인 표상이다. 즉 자유와 격정의 표상인 것이다. 이에 비해 <동해>의 작자가 가지는 동해에 대한 추억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것이다. 이 때문에 <동해>에서 동해를 표현하는 어휘들은 구체적이고, 동원되는 사물이나 상황들은 향토적이며 토속적이다. 이는 작자가 구체적인 체험, 즉 개인의 체험과 관련하여 동해를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품 읽기

 

동해(東海)여(의인법과 돈호법을 통해 무생물을 의인화하여 말을 건네는 형식임), 오늘밤은 이렇게 무더워 나는 맥고모자(밀짚으로 결어서 만든 여름 모자)를 쓰고 삐루(맥주)를 마시고 거리를 거닙네.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거리를 거닐면 어데서 닉닉한(메스꺼운) 비릿한 짠물 내음새 풍겨 오는데, 동해여 아마 이것은 그대의 바윗등에 모래장변에 날미역이 한불 널린 탓인가 본데 미역 널린 곳엔 방게가 어성기는가, 도요가 씨양씨양 우는가, 안마을 처녀가 누구를 기다리고 섰는가, 또 나와 같이 이 밤이 무더워서 소주에 취한 사람이 기웃들이(비스듬히) 누웠는가. 분명히 이것은 날미역의 내음새인데 오늘 낮 물기가 쳐서 물가에 미역이 많이 떠들어 온 것이겠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날미역 내음새 맡으면 동해여, 나는 그대의 조개가 되고 싶읍네. 어려서는 꽃조개가, 자라서는 명주조개가, 늙어서는 강에지조개가. 기운이 나면 혀를 빼어 물고 물 속 십 리를 단숨에 날고 싶읍네. 달이 밝은 밤엔 해정한 모래장변에서 달바라기를 하고 싶읍네. 궂은 비 부슬거리는 저녁엔 물 위에 떠서 애원성(哀怨聲, 당시 유행했던 조선후기 잡가의 한 곡조)이나 부르고, 그리고 햇살이 간지럽게 따뜻한 아침엔 이남박(함지박의 한 가지. 쌀 따위의 곡물을 씻거나 일 때에 씀. 안쪽에 여러 줄의 골이 나 있음) 같은 물바닥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놀고 싶읍네. 그리고, 그리고 내가 정말 조개가 되고 싶은 것은 잔잔한 물밑 보드라운 세모래 속에 누워서 나를 쑤시러 오는 어여쁜 처녀들이 발뒤꿈치나 쓰다듬고 손길이나 붙자고 놀고 싶은 탓입네.

동해여!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조개가 되고 싶어하는 심사를 알 친구란 꼭 하나 있는데, 이는 밤이면 그대의 작은 섬 ― 사람 없는 섬이나 또 어느 외진 바위판에 떼로 몰려 올라서는 눕고 앉았고 모두들 세상 이야기를 하고 지껄이고 잠이 들고 하는 물개들입네. 물에 살아도 숨은 물 밖에 대고 쉬는 양반이고 죽을 때엔 물 밑에 가라앉아 바윗돌을 붙들고 절개 있게 죽는 선비이고 또 때로는 갈매기를 따르며 노는 활량(한량, 특별히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며 생활하는 사람)인데 나는 이 친구가 좋아서 칠월이 오기 바쁘게 그대한테로 가야 하겠습네.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친구를 생각하기는 그대의 언제나 자랑하는 털게에 청포채를 무친 맛나는 안주 탓인데, 나는 정말이지 그대도 잘 아는 함경도 함흥 만세교 다리 밑에 님이 오는 털게 맛에 해가우손이(해가리개, 햇빛을 가리는 차양)를 치고 사는 사람입네. 하기야 또 내가 친하기로야 가재미가 빠질겝네. 회국수에 들어 일미(一味)이고 식혜에 들어 절미(絶味)지. 하기야 또 버들개(버들치, 잉어과에 속하는 민물고기, 비늘이 비교적 크며 물빛은 등쪽이 암갈색이고 배쪽이 희끄무레함) 봉구이(붕어 구이)가 좀 좋은가. 횃대 생선 된장지짐이는 어떻고. 명태골국, 해삼탕, 도미회, 은어젓이 다 그대 자랑감이지. 그리고 한 가지 그대나 나밖에 모를 것이지만 공미리는 아랫주둥이가 길고 꽁치는 윗주둥이가 길지. 이것은 크게 할 말 아니지만 산뜻한 청삿자리 위에서 전복회를 놓고 함소주(상자째 갖다 놓고 마시는 소주) 잔을 거듭하는 맛은 신선 아니면 모를 일이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전복에 해삼을 생각하면 또 생각나는 것이 있습네. 칠팔월이면 으레 오는 노랑 바탕에 까만 등을 단 제주(濟州) 배 말입네. 제주 배만 오면 그대네 물가엔 말이 많아지지. 제주 배 아즈맹이(아주머니) 몸집이 절구통 같다는 둥, 제주 배 아뱅인 조밥에 소금만 먹는다는 둥, 제주 배 아즈맹이 언제 어느 모롱고지(모롱이. 산모퉁이의 휘어 둘린 곳) 이슥한 바위 뒤에서 혼자 해삼을 따다가 무슨 일이 있었다는 둥 ……, 참 말이 많지. 제주 배 들면 그대네 마을이 반갑고 제주 배 나면 서운하지. 아이들은 제주 배를 물가를 돌아 따르고 나귀는  산등성에서 눈을 들어 따르지. 이번 칠월 그대한테로 가선 제주 배에 올라 제주 색시하고 살렵네.

내가 이렇게 맥고모자를 쓰고 삐루를 마시고 제주 색시를 생각해도 미역 내음새 내 마음이 가는 곳이 있습네. 조개껍질이 나이금을 먹는 물살에 낱낱이 키가 자라는(한 해 두 해 지나면서 몰라보게 성장하는) 처녀 하나가 나를 무척 생각하는 일과, 그대 가까이 송진 내음새 나는 집에 아내를 잃고 슬피 사는 사람 하나가 있는 것과, 그리고 그 영어를 잘하는 총명한 4년생 금(琴)이가 그대네 홍원군 홍원면 동상리에서 난 것도 생각하는 것입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