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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 Seeing

[현대수필 해설]설해목(雪害木) -법정-

by 휴리스틱31 2022.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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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雪害木)                                        -법정-

 

이해와 감

 

이 작품은 더벅머리 학생의 이야기와 자연 속에서 생겨나는 여러 가지 예를 제시하여, 약해 보이기만 하는 부드러운 것이 오히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또,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여 부드러운 것과 딱딱한 것의 대립 구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작자는 부드러운 것이 억센 것보다 강하다는 진리를 전해 주어, 돈이나 권력 같은 힘만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이 글은 작자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삶의 깊은 통찰이 드러난다는 점에서 독자의 정신적인 성장을 돕고 있다.

 

 

요점 정리

 

◆ 성격 : 교훈적, 사색적, 철학적, 종교적 경수필

◆ 특성

* 여러 가지 사례를 제시함.

* 대립적인 소재를 설정함.

◆ 주제  부드러운 것의 강함

◆ 출전 : <무소유>(1976)

 

생각해 보기

 

◆ 법정의 수필 세계 ―― 불교적 지성과 현대적 사랑

법정은 하나의 사물 혹은 사건을 바라보고 그 의미를 추구하는 데 있어 불교라든지 기독교라든지 하는, 어떤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다. 그는 자유롭게 생각하고 명쾌하게 해부한다.

사실 그의 작품들은 불교 자체를 주제로 한 것이 많으며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불교적 어휘가 빈번히 사용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의 사상이 서구 정신으로 상당히 물들어 있으며 '자비'보다 '사랑'을 더 아름답게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탁상시계 이야기')고 자기 반성 내지 확인을 부단히 재촉한다거나, "읽는다는 것은 …… 다른 목소리를 통해 나 자신의 근원적인 음성을 듣는 일이 아닐까"('그 여름에 읽은 책")라며 내적 대화를 강조하는 것은 불교의 득도관을 현대 언어로 표현한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전통 신앙으로부터 거의 절연된 현대의 사상 시장에 새로 옷 입힌 불교의 정신을 내놓은 포교사이다. 그의 수필이 대부분 짤막하며 일상의 단상 내지 세속잡사에 대한 것이지만 우리에게 소중한 것은 이 편린들을 통해 새로이 발견하는 불교의 현대적 모습이다. 그를 통해 나타나는 불교는 체념과 도피, 초속과 허무의 그것이 아니라 경이롭게 바라보고 자기 삶의 확대로 체득하려는 적극적인 자세이다.

 

 

작품 읽기

 

해가 저문 어느 날, 오막살이 토굴에 사는(시간적, 공간적 배경) 노승(老僧) 앞에 더벅머리 학생이 하나 찾아왔다. 아버지가 써 준 편지를 꺼내면서 그는 자못(생각보다 매우) 불안한 표정이었다.(낯선 환경에 대한 어색함과 노승의 한바탕 훈계가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불안해 하고 있다.)

사연인 즉, 이 망나니를 학교에서고 집에서고 더 이상 손댈 수 없으니, 스님이 알아서 사람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노승과 그의 아버지는 친분이 있는 사이였다.

편지를 보고 난 노승은 아무런 말도 없이 몸소 후원에 나가 늦은 저녁을 지어 왔다. 저녁을 먹인 뒤 발을 씻으라고 대야에 가득 더운 물을 떠다 주는 것이었다. 이 때 더벅머리의 눈에서는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렸다.(진저리나는 훈계 대신에 다사로운 손길로 시중을 들어 주는 데 감동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아까부터 훈계가 있으리라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지만, 스님은 한 마디 말도 없이 시중만을 들어 주는 데에 크게 감동한 것이다. 훈계라면 진저리가 났을 것이다. 그에게는 백천 마디 좋은 말보다는 다사로운 손길이 그리웠던 것이다.

* 노승의 다사로운 손길에 감동한 더벅머리 학생

이제는 가 버리고 안 계신 노사(老師)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내게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노사의 상(像)이다. 산에서 살아 보면 누구나 다 아는 일이지만, 겨울철이면 나무들이 많이 꺾이고 만다. 모진 비바람에도 끄떡 않던(백절불굴)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이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놀랍고도 신비한 대자연의 이치)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억세고 꿋꿋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눈에 꺾이고 넘어지는 것이 놀랍고 그속에서 삶의 예지를 발견하였기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작자는 부드러움, 너그러움, 사랑 등이 강함, 억셈, 딱딱함, 강제적인 힘 등을 이겨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진리를 통해, 딱딱하게 굳어 버린 자기 생각에만 사로잡혀 잘못을 저지르는 어리석은 사람들과 돈이나 권력 같은 힘만이 최고라고 믿는 현실에 대해 따끔한 채찍을 가하고 있는 것이다.산은 한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설해를 입어 꺾인 나무들이 많은 산의 모습을 비유함)

*부드러운 눈에 꺾이고 마는 아름드리 나무

사이밧티이의 온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던 살인귀(殺人鬼) 앙굴리마알라를 귀의(歸依)시킨 것은 부처님의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아니었다. 위엄도 권위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자비(慈悲)였다. 아무리 흉악무도한 살인귀라 할지라도 차별없는 훈훈한 사랑 앞에서는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사랑은 인간을 변화시킨다.)

* 자비와 사랑에 돌아온 살인귀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 부드러운 물결이 만든 둥근 조약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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