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잔 먹세 그려 ~ - 정 철 -
[현대어 풀이]
- 한 잔 먹어 보세, 또 한 잔 먹어 보세. 꽃 꺾어 셈을 하면서 한없이 먹어 보세 그려. (마음껏 음주할 것을 권유함.)
- 이 몸이 죽은 후면 지게 위에 거적을 덮어 꽁꽁 졸라 매어져서 가거나 호화로운 상여에 만인이 울면서 따라가거나, 억새풀과 속새와 떡갈나무와 백양나무 숲에 가기만 곧 가면, 누런 해, 흰 달, 가는 비, 함박눈, 음산한 바람이 불 때 누가 한 잔 먹자고 할 것 같은가. (죽은 후의 무상감을 가정함.)
- 하물며 무덤 위에 잿빛 원숭이가 휘파람을 불 때, 뉘우친들 무엇하리. (죽은 후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음을 밝힘.)
[이해 및 감상]
'장진주사'라는 사설시조로 멋진 권주가에 해당되는 시조이다. 사람이 한번 죽고 나면, 거적을 덮어 지게에 짊어지고 가거나, 유소보장 호화로운 상여에 만인이 울면서 따라가거나, 일단 북망산천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외롭고 쓸쓸하고 을씨년스럽기는 매한가지가 아니냐. 부귀와 영화도 살았을 적의 일이지 한번 죽어지면 모든 것이 다 일장춘몽이다. 공수래 공수거하는 인생, 그러니까 살아 생전에 후회없이 즐겁게 지내 보자는 것이다.
초반부의 꽃을 꺾어서 술잔 수를 셈하면서 즐기는 낭만적이고 풍류가 넘치는 정경과, 후반부에 그려진 무덤 주변의 삭막하고 음산한 분위기는 대조적이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인생 무상을 느끼게 한다. 현실에 대한 무기력감과 퇴폐적인 정조로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북망산천의 묘사는 영상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걸작이다.
표현면에서 당나라 시인 이백과 두보의 술을 노래한 시와 시상이 비슷하고 더러는 그 구절을 인용한 것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구사된 걸작이다.
* 산(算) 놓고 : 꽃나무 가지를 꺾어, 하나 둘 셈을 하면서 한 잔 먹고 가지 하나 꺾고, 두 잔 먹고 가지 하나 꺾어면서 …….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모습
* 무진무진 : 한없이, 끝없이, 무궁무진
* 줄이어매여 : 꽁꽁 졸라매어져서
* 유소보장(流蘇寶張) : 호화롭게 꾸민 상여를 말한다. '유소'는 깃발 따위의 가장자리에 붙이는 오색실이나 노로 만든 술, '보장'은 고급 휘장(장막). 여기서는 그것을 두른 상여를 말함.
* 울어 예나 : 울면서(곡을 하면서) 따라가거나
* 어욱새 : 억새풀
* 백양 : 사시나무
* 누른해 : 누런 해. 묘지에서 쳐다보는 기분 나쁜 뿌연 해를 가리키는 말인 듯하다.
* 흰달 : 밝은 달이 아니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달이다.
* 가는비 : 가랑비. 시원스럽게 내리는 비가 아니라 구질구질하게 내리는 음산한 비
* 굵은눈 : 함박눈
* 소소리바람 : 음산한 바람.
* 잿납이 : 잿빛(회색) 납이. 납은 원숭이의 옛말
* 파람 : 원숭이의 구슬픈 울음 소리를 말함.
* 뉘우친들 어떠리 : 술을 즐기는 태도의 합리화
[정리]
◆ 성격 : 사설시조, 권주가(勸酒歌), 장진주사
◆ 표현
① 중장의 산문화, 대조적 분위기 연출
② 반복법, 대조법, 열거법 등을 통해 화자의 심리를 진솔하게 드러냄.
◆ 주제 : 술로써 인생의 무상함을 해소함.(음주 취락)
◆ 의의 : 이백의 <장진주>를 연상케 하는 권주가로, 최초의 사설시조로 알려져 있음.
◆ 참고 : 『장진주사』는 최초의 사설시조인가?
'장진주사'는 사설시조의 효시라는 인식이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일반화되어 있는 바, 이런 인식은 사설시조의 발생을 조선 후기의 사회적 변동과 관련짓게 된다. 그러나 정철에 앞서 중종 때의 고응척(1531~1605)을 사설시조의 작가로 보고 사설시조의 발생을 15세기 또는 고려 말까지 소급하려는 시도도 있다. 사설시조는 평시조의 파격에서 생성된 것이 아니라, 고려 말 이래로 사대부들이 연유(宴遊)를 즐기는 자리에서 평시조와 병행하여 불려져 온 창곡이라는 것이다. 즉, 사설시조는 고려 속요의 형태를 계승하면서 고려 말에 발생하여, 조선 초기에 소강 상태를 보이다가 '장진주사'와 같이 정제된 작품이 등장하였고, 18세기 이후 민중 의식의 발달에 힘입어 민중 문학으로서의 자리를 확고하게 잡았다고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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