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역사학의 입장에서 본 생활사의 개념과 방향 >

< 새로운 역사학의 입장에서 본 생활사의 개념과 방향 >

 

 

○ 최근 10여 년간 한국사학계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

- 생활사 (history of everyday life)

- 뚜렷한 사학사적인 인식 아래서 이를 연구하고자 한 것은 최근의 일

-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점철된 1970～80년대 한국 현대사의 한 시대가 끝나고 그와는 성격이 다른 한 시대로 넘어가고 있는 징후

- ‘모더니티’ 중심에서 ‘포스트모던’의 시대로

 

○ 생활사에 대한 관심이 증대된 요인 (우인수)

- 기존의 정치사ㆍ경제사ㆍ사상사ㆍ사회사 등의 업적이 축적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사 쪽으로 연구 방향이 이동

- 아날학파나 독일 일상사 등 서양학계의 새로운 경향의 영향

- 문화인류학ㆍ민속학 등 인접학문의 자극

- 북한학계의 생활풍습 연구의 영향

- 과거의 생활상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고조

 

○ 기존의 민속학, 복식사, 제도사, 경제사, 사회사 등 학제와 전통 아래 해오던 방식에서 벗어나 있지는 못함

- 조선시대의 가정생활, 의식주생활, 사회생활, 신앙생활, 여가생활, 언어생활, 의료생활, 노동생활 등으로 구분하는 방식

- ‘생활사’라는 독립적인 분야로 볼 수 없음

- 생활사가 그저 무슨 무슨 생활에 관한 모든 주제를 포괄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그것은 기존의 정치사나 경제사 또는 사회사 속에서의 관련 부분을 모아놓은 데 지나지 않음

- 문제는 생활사가 어떤 개념 하에서 독립적인 분야가 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단지 하나의 분과에 머물지 않고 역사 전체를 아우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가능성까지도 존재하는가를 물어보는 데 있음

 

○ 현재 한국사학자들이 생각하는 생활사의 개념

- 생활사는 보통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면서, 동시에 반복되는 일상의 저변에 존재하는 구조나 패턴까지도 연구의 대상으로 삼는다.

- 국가적ㆍ공적 측면보다는 개인의 사적 측면에 초점을 둔다.

- 사례 연구를 지향한다.

- 사료의 범위를 종래의 관찬 자료나 규범적 성격의 자료를 넘어서서 일기, 문집, 잡기, 소설, 야사류 등 문학자료, 나아가서는 서화류까지도 망라하는 쪽으로 대폭 확대한다.

- 분석적인 서술 방식보다는 이야기체를 지향한다.

 

○ 최근 서양사학계에서 논의되는 ‘새로운 역사학’

- 일상사, 문화사, 미시사

- 일상사 : ‘일상’을 안정이 지배하는 정적인 영역으로 인식하는 개념이 아니라, 유동적이고 역동적인 세계로 인식. 일상이란 보통사람들이 문화적으로 형성된 삶의 실천방식과 실천전략을 통해 현실을 변화시키고 재구성하고자 하는 세계

- 문화사 : ‘문화’란 엘리트 계급이나 문명인이 향유한다고 생각하는 ‘고급한’ 의미의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계층이든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특유한 삶의 방식을 지칭. 나름대로의 삶을 위해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저항하면서 스스로의 생활방식을 유지하거나 변화시켜 나가는 삶의 세밀한 그물망 같은 것을 문화라 일컬음. 기어츠는 이러한 문화를 포착하는 방법으로 어떤 현상을 인과관계상에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촘촘한 묘사’를 통해 그 의미를 드러내는 편을 선호함.

- 미시사 : ‘미시’라는 말은 본질적으로 관찰 규모를 축소하고, 문헌자료를 현미경적으로 세밀히 분석하는 연구방식. 기존의 사례연구가 어떤 일반적 개념을 예증하는 일례로서 기능했던 것과는 다른 연구방식.

 

※ 미시사가들의 사례 연구 : 어떤 ‘잘 경계 지워진’ 개인이나 집단을 대상으로 그들의 제의나 행위들을 내적 네트워크의 시각에서 분석ㆍ기술함으로써 흔히 일반화의 과정에서 상실될 법한 그들만의 독특한 정체성을 발굴해내고, 이에 바탕하여 그들이 보다 거대한 외부의 조류에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리고 그 역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세세히 밝혀내고자 하는 것. (제주도역사 연구, 적합한 방식)

- 미시사는 역사의 거대 구조 속에 행위자를 묻어버리기보다는 그들 개개인의 이름을 추적하는 실명적ㆍ집단전기학적 역사, 판박이 사례를 수집하는 계량적 분석보다는 독특한 한 사례에 담긴 삶의 細切을 드러내는 질적 분석, 엘리트적 사료관에 근거한 종래의 실증 방식을 지양하고 사료 역시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인식 아래 보다 폭넓은 입증의 방식을 인정하는 가능성의 역사, 역사가 자신의 완결된 해석을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제시하기보다는 사료를 분석해 가는 과정 자체를 글쓰기에 반영함으로써 해석에 이르는 다양한 경로들을 독자와 공유하고자 하는 多聲的 목소리를 가진 이야기체의 역사

 

- 일상ㆍ문화ㆍ미시의 세 키워드는 위인ㆍ남성ㆍ엘리트 위주의 정치적 사건사를 거부한다는 측면에서 모두가 일상사이며, 행위자로서의 인간을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사회적 범주가 아니라 시공간적으로 끊임없이 변하는 역사적 존재로 본다는 점에서 모두가 문화사이며, 장기지속적 구조와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 망각되어 온 개인과 소집단들을 역사의 무대 위에 불러내어 그들의 삶과 그 의미를 조명한다는 입장에서 모두가 미시사임.

 

(연구 사례) 뤼트케 : 반정부적 편향의 사회민주주의 운동권에 속한 노동자 대부분이 1914년 전쟁을 지지했다거나, 1933년의 노동자들이 나치지지 일변도였다는 사실을 편지와 같은 사적 자료의 분석이나 심층 면담의 방법을 이용하여 새로이 해석. 즉, 군인이 된 노동자들이 노동계급으로서의 사회적 범주에 따라 움직이기보다는 전장에서 자신들이 처한 현실에 적응하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변모시켰다는 점을 밝혀냄으로써, 일상이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모범적 예를 보여줌 (※ 4ㆍ3 연구에도 적용될 수 있음)

- Alf Ludtke, "The Appeal of Exterminating 'Others' : German Worker and the Limits of resistance." Journal of Modern History 64 (1992), pp. 46～67.

→ 제주대 도서관 전자저널로 검색이 됨. 출력할 것

 

-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역사, 사람의 흔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역사, 어떤 계층의 사람도 잊혀지지 않는 역사

- 역사 속에는 정치적 사건과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범주라는 통로로는 파악하기 어려운 복잡다단한 리알리티가 존재하며, 이는 일상사ㆍ문화사ㆍ미시사의 새로운 역사학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

 

○ ‘새로운 역사학’이 한국생활상의 개념과 방향에 던져주는 시사점

개념ㆍ방법ㆍ이론이라는 측면에서 자기 성찰을 심화해 나가야 함

- ‘～의 역사’ : 물질(물건)의 역사가 생활사로 인정받으려면 이야기의 주체가 물건이 아닌 그것을 소비한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설탕의 역사’ - 한국에 설탕이 언제 들어왔으며, 얼마나 생산되었는지, 그 가격은 어떠했는지 등과 같은 물질적 조건만을 따진다면, 그것은 브로델 류의 구조적 일상생활사에 머물고 말 것. 우리는 이를 넘어서서 설탕이 들어옴으로써 이 땅의 사람들의 입맛이 어떻게 바뀌어갔는지,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 편입되면서 습관화되어 갔는지를 물어야 할 필요가 있음. 이 과정의 ‘이야기’가 다양한 형태로 제시되면 금상첨화.

- 일상사로서의 생활사는 결코 반복되는 정적 구조만을 다루어서는 미흡. 일상 속의 미시적 생존전략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새로운 역사학이 종종 일견 특이하게 보이는 ‘사건’을 연구주제로 삼는 것. 그것을 창으로 하여 바라보는 일상성의 의미를 찾는 데 있음.

- 주제를 종래의 정치ㆍ경제ㆍ사회의 범주에서 선택하기보다는 모든 행위가 문화적 텍스트라는 관점에서 의례ㆍ민속ㆍ의료ㆍ주술ㆍ기생ㆍ빈민ㆍ노비ㆍ집단심리 등 지금까지 주변적으로 간주되었던 대상들로 연구 대상을 확장할 필요 있음. 여성의 경우, 피임ㆍ달거리ㆍ임신ㆍ성병 등 의료적 주제를 의식적으로 고를 필요 있음.

- 사료의 범위를 대폭 늘려야 할 필요 있음. 일기ㆍ문집ㆍ잡기ㆍ야사ㆍ서화 등. 현대사의 경우 구술자료가 결정적 역할.

- ‘일제하에서 과연 보통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어떤 삶을 영위해 갔는가’와 같은 한국사에서는 매우 민감한 주제를 우선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음

※ 4ㆍ3 당시 보통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는가?

- 남로당ㆍ유격대 지도부의 입장이나 국가ㆍ토벌대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주민ㆍ보통사람의 입장에서 4ㆍ3을 분석

 

 

 

곽차섭, 󰡔역사와 경계󰡕 45집, 2002, 161～173쪽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