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삐딴 리(1962)
-전광용-
● 줄거리
주인공 이인국은 개인 병원을 운영하면서도 종합 병원에 버금가는 명성과 수입을 올리고 있다. 그의 병원은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청결과 다른 병원에 비해 두 배나 되는 비싼 병원비를 특징으로 하여 성장한다. 그는 양면 진단(병의 증세보다 경제적 능력을 저울질하는 진단)을 통해 철저히 부(富)를 추구한다. 그리고 환자들을 선별해서 받아들인 까닭에 그의 병원을 이용하는 대상은 일제 때는 주로 일본인이었고 지금은 권력층이나 재벌에 속한 축들이 대부분이다.
수술실에서 나온 이인국은 응접실 소파에 파묻히듯이 깊숙이 기대어 앉았다. 두 시간 이십 분의 집도. 위장 속의 균종 적출 환자는 아직 혼수상태에 깨지 못하고 있다. 이인국은 수술을 끝내고 나오며 불길한 예감이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낀다. 그는 문득 미국에 유학을 떠나 있는 딸 나미의 편지를 생각한다. 그 편지에는 기필코 미국인과 결혼하겠다는 딸의 고집이 담겨 있다.
상대는 동양학을 전공하는 외국인 교수. 백인 사위에 흰둥이 손자라, 그는 입맛을 쩝쩝 다시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사실을 그는 후처인 혜숙에게 말한다. 그러나 혜숙은 자기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는 듯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는 다시 입맛을 다시며 미국 대사관의 브라운 씨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을 나선다. 그는 약속 장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애지중지하는 '18금 회중시계'를 꺼내 보고, 해방을 전후한 시기의 기억을 떠올린다.
일제 강점기에 그는 철저한 친일파로 행세하여 아이들을 일본인 소학교에 보내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하였고, 잠꼬대까지 일본어로 할 정도가 되어 '국어 상용의 집'이라는 액자까지 받았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일본인들에게 밉보일 것이 두려워 독립투사의 치료까지 거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방이 되자 3 · 8 이북인 그의 고향에 느닷없이 소련군이 진주해 들어왔다. 그로부터 며칠 후, 그는 친일 혐의로 치안대에 연행되어 온갖 욕설과 구타에 시달린다. 감방에 감금된 그는 감방 안에 전염병 이질이 만연하자 응급 처치실에서 일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소련 장교 스텐코프의 왼쪽 뺨에 붙은 혹이 들어온다. 그는 스텐코프의 혹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겠다고 자청하고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다.
그는 그 덕에 감옥에서 풀려나고, 스텐코프의 추천으로 하나뿐인 아들을 모스크바로 유학보낸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 해에 한국 전쟁이 터져 아들과는 연락이 끊기고 만다. 그는 1 · 4 후퇴 때 월남한 후에 또다시 변신하여 이번엔 영어를 부지런히 배우고 능란한 처세술을 발휘하여 병원의 고객을 권력층과 재벌과 같은 부유층으로 제한하면서 놀랄 만한 발전을 이룩한다. 미국인의 도움으로 딸까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자동차가 브라운의 관사에 닿는다. 브라운과 만나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는 동안 그는 브라운의 얼굴이 자꾸 스텐코프와 겹쳐지는 것을 느낀다. 그는 브라운으로부터 자신의 미국행에 대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뿌듯한 무엇이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솟아오르는 것을 느낀다. 그는 브라운의 관사를 나오면서 일제 강점기 아래에서, 그리고 소련군 점령하의 북한에서, 또한 월남을 결행한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공에 성공을 거듭했던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며, 미국에 가서도 반드시 그러하리라는 확신을 가진다.
● 인물의 성격
* 인물 제시 방법 → 설명에 의한 직접 제시와 심리 묘사 및 대화를 통한 간접적 제시를 동시에 사용
◆ 이인국 →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에게, 해방 직후에는 소련인에게, 월남한 이후에는 미국인에게 아부하면서 자기의 안녕과 영달만을 꾀하는 이기적이고 반민족적인 의사
◆ 혜숙 → 간호원 경력이 있는 이인국의 후처
◆ 나미 → 이인국의 딸로 미국에 유학 간 후 동양학 전공의 외국인 교수와 결혼하려 함.
◆ 스텐코프 → 이인국이 자신의 왼쪽 뺨에 있는 혹을 제거해 준 이후, 이인국을 돕는 소련인 장교
◆ 브라운 → 미 대사관에 근무하며 이인국을 도와주는 인물
● 구성 단계
◆ 발단 : 의학 박사인 주인공 이인국이 미대사관 브라운 씨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약속 시간을 맞추려고 회중시계를 바라보다가 과거의 일들에 대한 회상에 잠김.
◆ 전개 : 일제 말에 이인국은 일본인에게 아부하여 부자로 살며 친일파로 득세함.
◆ 위기 : 해방 후 친일 행적이 탄로나자 이인국은 감옥에 갇혀 고생하지만 소련군인 스텐코프의 혹을 수술해 준 뒤 그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모면함.
◆ 절정 : 1 · 4 후퇴 대 맨몸으로 월남하지만 특유의 생명력으로 또다시 고난을 딛고 사회 지도층이 됨.
◆ 결말 : 이인국은 브라운 씨 집에 도착하여 고려청자를 선물로 주고 그 대가로 미국에 가기 위한 협조를 얻음. 곧이어 비자가 나오고 미국에 건너갈 꿈에 부푼다.
● 이해와 감상
◆ 주인공 이인국 박사의 인물 됨됨이가 주목의 대상이 된다. 그는 자신의 의술을 최대한 이용하여 일제시대, 해방 이후의 북한, 그리고 남하한 이후 계속해서 외국인들한데 빌붙어 먹으면서 부귀영화를 누린다. 이인국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초연한 채 일신상의 영달을 위해 한 시대 한 시대에 과잉으로 적응해 가는 적응주의자, 이기주의자, 출세주의자, 기회주의자로서 풍자의 대상이 되는 전형적 인물이다. 이러한 부정적 인물의 제시는 수난의 민족사에서 민족적 시대적 요구에는 아랑곳않고 변신을 거듭하며 사회의 지도층으로 군림하여 온 많은 인물들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가진다.
◆ 이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일제시대부터 6.25 전쟁 후까지이다. 여기에서 배경은 주인공의 부정적 인간상을 보여주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우선 일제시대에 이인국은 자식들을 일본인 학교에 보내어 일본어만 쓰게하여 철저한 친일 분자로 지내다가, 해방이 되어 북쪽을 소련군이 점령하자 러시아어와 자신의 의술로 소련군 장교에게 환심을 사고 아들을 소련으로 유학을 보낸다. 그리고 월남해서는 미국대사관에 아첨하고, 친미주의자가 되려고 한다. 이러한 시간적배경은 외세에 눌려 왔던 수난의 민족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 수난사를 기회주의적으로 살았던 인물을 부각시켜 주고 있다.
◆ 전체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십팔금 회중시계'는 소설 구성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치로써의 역할을 한다. 맨 처음 주인공이 시계를 보며 브라운과의 약속을 생각하는 장면과 브라운에게 선물을 주고 반도호텔로 가는 마지막 장면이 현재라면, 그 사이에 끼여 있는 부분이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복합적 구성, 또는 역전적 구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있는 회중시계인 것이다.
◆ 작가는 인물 제시 방법에 있어서 직접 제시 방법과 간접 제시 방법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는데, 주인공의 카멜레온 같은 태도를 그릴 때에는 심리묘사와 대화를 통해 생동가있게 주인공의 성격을 제시하고, 과거의 사건들에 대해 진술할 때는 요약을 통해 압축하여 사건을 전개한다. 특히 직접적 극적 방법에 의한 인물 제시에 있어서 풍자와 희화의 방법을 사용하여 주인공의 부정적 인물상을 폭로하고 있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풍자소설
◆ 성격 : 냉소적, 비판적, 풍자적
◆ 배경 : 일제시대에서 6 · 25 전쟁 후까지 격동의 현대 한국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구성
* 역순행적 구성과 타임 몽타주 기법을 취함.
* 신심리주의적 수법을 활용하여 인물의 내면 심리를 그림.
◆ 주제 ⇒ 시대와 상황에 따라 능수능란하게 변신하는 기회주의자에 대한 풍자
출세 지향적 삶과 현대사의 아픔
◆ 작품이 독자에게 주는 효과
인식적 기능 | 주인공 이인국을 통해 민족사의 격동기에 외세에 빌붙어 사회의 지도층으로 군림해 온 인물들의 삶을 알게 해 줌. |
심미적 기능 | 이인국이라는 부정적 인물을 풍자적으로 드러냄. |
윤리적 기능 | 인간의 진정한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함. |
● 생각해 볼 문제
1. 주인공 이인국 박사의 인물 유형이 전형적 성격이라고 한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러한가?
⇒ 한 시대의 특정한 인물군을 대표하는 인물을 전형적 인물이라고 하는데, 이인국의 삶은 독자적인 성격에 의해서만 지배되고 있는 게 아니라, 사회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 민족 모두가 겪어야 했던 격랑의 현대사의 질곡에 묶여있는 인물의 하나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그 또한 하나의 시대적 전형성을 확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인국의 인간형 |
* 권력에 기생하여 이익을 취하는 데 집착하는 인물 *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해 가는 기회주의적 인물(카멜레온과 같은 인간형) * 민족이나 공동체 의식보다는 개인의 이익에만 관심을 보이는 인물 * 대의, 지조, 신념을 저버리고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인물 |
전형적 인물 |
반인간적이고 반민족적이며 이기적인 인간을 대변하는 인물 |
2. 이 소설에서 '현재 - 과거 - 현재'의 역전전 구성을 가능케 하는 매개체는 무엇인가 ?
⇒ 십팔금 회중 시계
3. 이인국의 행동을 주도하는 그의 정신적 본질은 무엇인가 ?
⇒ 출세 지향주의라고 하겠는데, 그것을 위해서는 실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엘리트 정신을 가지고 있고, 사태를 극복하는 투지와 함께 기회를 이용할 줄 아는 재능을 겸비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4. 이 소설을 통해 알 수 있는 우리 현대사의 흐름을 말해 보자.
⇒ 이 소설은 이인국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 현대사를 조명하고 있다. 일제의 억압과 해방, 해방공간에서의 소련군 진주, 전쟁, 남하, 미국의 영향력 등으로 이어지는 세태의 흐름이 이인국의 삶을 제어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인국의 삶은 많은 부분 이 시대의 격랑이 만든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5. 이인국이 의사로서 환자를 대하는 태도는 어떠한가 ?
⇒ 이인국은 실력있는 의사이고, 그 능력을 이용해 돈을 번다. 그리고 그의 의식이 출세지향적이기에 그의 출세와 치부에 도움이 되는 환자를 선택하고 그 환자를 잘 돌봄으로써 목표를 이루려 한다.
6. 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효과는 어떤 것인지 다음 사항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자.
* 문학의 인식적 기능 → 주인공 이인국을 통해 일제 시대, 해방 이후의 문학, 남하한 이후 계속해서 외국인들에게 빌붙어 사회의 지도층으로 군림하여 온 많은 인물들을 보여준다.
* 문학의 미적 기능 → 이인국이라는 부정적 인물을 풍자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격동의 현대사에서 변함 없이 살아남아 사회 지도층으로 대중 위에 군림하는 이인국의 처세술을 직접적 인물 제시와 간접적 제시를 통해 형상화하였다. 주인공이 시류에 따라 변신하는 상황에서는 심리 묘사를, 과거 사건들을 회상할 때에는 요약 및 압축적 제시를, 특히 극적으로 인물을 드러낼 때에는 풍자와 희화의 방법을 사용하여 부정적 인물의 전형성을 보여 준다.
* 문학의 윤리적 기능 → 부정적 인물을 풍자적으로 보여 줌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삶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기주의자요 기회주의자인 이인국의 모습과 대립되는 지점에서 인간의 진정한 삶의 모습을 찾아 보도록 한다.
7. 이 소설에서 작자가 이인국이라는 부정적 인물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삶의 가치는 무엇인지 토론해 보자.
⇒ 이 소설에서 주인공 이인국은 풍자의 대상이다. 그는 자신의 의술을 최대한 이용하여 일제시대, 해방 이후의 북한, 남하한 이후 계속 외국인들에게 빌붙어 부귀영화를 누린다. 이인국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무관심한 채 일신의 영달을 위해 한 시대 한 시대에 과잉으로 적응해 가는 적응주의자, 이기주의자, 출세주의자, 기회주의자로서 풍자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부정적 인물의 제시는 수난의 민족사에서 민족적, 시대적 요구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변신을 거듭하며 사회의 지도층으로 군림하여 온 많은 인물들에 대한 비판의 의미를 가진다.
그렇다면 작자가 이러한 인물을 부정적으로 보여줌으로써 부각시키고자 했던 삶의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주인공 이인국이 보여 준 삶의 모습과 대립되는 지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즉 사회와 역사의 흐름을 보는 안목을 갖추되 그것을 일신의 영달을 위해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삶의 정도를 걷기 위해 이용하는 것, 그리고 권력과 부를 잃더라도 올바름을 추구할 수 있는 자세, 또 사세의 변화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지킬 줄 아는 태도 등을 강조하는 것이다. 과도한 시대 적응력을 보여주는 이인국의 모습을 통해 절개를 중시한 조선의 선비들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 더 읽을거리
◆ 이 소설이 지닌 풍자성
→ 역사적 전환기마다 카멜레온처럼 살아온 기회주의적 인간(이인국)에 대한 풍자와 더불어, 정신의 뿌리를 잃고 흔들렸던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 대한 풍자를 동시에 하고 있다. 이러한 풍자를 통해 한국 현대사가 비극으로 흐른 정신적 원인을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작가의 말
→ '꺼삐딴 리'의 소재는 일제 강점기, 해방 전후 그리고 6 · 25 동란의 역사적인 고비를 겪는 사이 내 주변에서 체득된 단편들을 집약해 본 것이다. 나는 이 작품 속에서 외침에 의한 수난의 역사만 거듭해 온 우리 민족의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해 보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동인문학상 수상 대상작으로 결정될 때 심사 위원 가운데 한 분도 지적한 바 있지만 긍정적인 면보다 약간 부정적인 인간상으로 되고 만 것 같은 점에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앞으로는 긍정적인 면에서의 인간상을 그려 보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전광용, '작가의 말', "동아일보", 1978년 8월 16일 자 기사
◆ 전광용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 전광용은 폭넓은 계층과 다양한 인물을 소설 속에 담아낸 작가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어부, 광부, 트럭 운전 기사, 조수, 약사, 의사, 청소부, 술집 작부, 밴드 마스터, 샌드위치맨, 상이군인, 교수, 화가, 기자 등 일일이 늘어놓기 어려운 만큼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나온다. 또 한 가지 특징은 그들이 대부분 현실에서 소외된 인간형이거나 그늘진 곳에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광용의 대표작이자 그에게 1962년 제7회 동인문학상을 안겨 준 '꺼삐딴 리'에는 이채로운 인간형이 주인공으로 나와 눈길을 끈다. 이 작품에서 그는 현실의 변화에 매우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인물을 실감나게 그려 낸다. 인물의 능동성과 적극성이 지나친 나머지 때로는 실감을 넘어 희화화된 느낌까지 주는데, 볕드는 곳만 좇으며 살아온 기회주의자의 행동거지는 독자에게 쓴웃음을 짓게 한다.
- 장석주,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시공사, 2007
◆ 전광용의 작품 세계
→ 전광용의 초기 작품 세계는 소설 '꺼삐딴 리'를 통해 집약되고 있다. 이 작품은 1962년도 동인문학상의 수상작으로 더욱 유명해졌는데, 전광용의 소설적 관심이 이 작품 이후 폭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소설 '꺼삐딴 리'의 주인공 이인국은 일제 강점기 제국대학 의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한 외과 의사이다. 일본 관리들을 주로 상대하면서 철저한 친일파로 성공한 그는 일본인 행세에 앞장선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북쪽에 소련군이 진주하게 되자, 민족과 조국을 배반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총살의 위협을 받게 된다. 위기의 상황에 잘 적응하는 이인국은 입을 다문 채, 누군가가 감방 안에 버리고 간 러시아 어 회화 책을 공부한다. 때마침 감방 안에 전염병이 돌자 의사인 이인국은 감방에서 풀려나와 환자를 돌보게 되며, 그 사이에 소련군 장교와도 안면을 익히게 된다.
그리고 소련군 장교의 얼굴에 붙은 혹을 수술해 줌으로써 궁지에서 벗어난다. '꺼삐딴 리'라는 명칭은 소련군 장교에게 얻은 것이다. 그 후 전쟁이 터지고, 이인국은 1 · 4 후퇴 대 가방 하나만 챙겨 들고 월남하여, 서울 수복 후에는 어엿한 종합 병원장 행세까지 하게 된다. 피난 때 죽은 아내 대신 젊은 간호사와 재혼한 이인국은 전처 소생의 딸을 미국으로 유학 보낸다. 그런데 그 딸이 미국인과 결혼하겠다고 통보하자 이인국은 고심 끝에 미국행을 결심한다. 그는 "그 사마귀 같은 일본 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았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라고 위로하면서 미국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근간으로 하고 있는 '꺼삐딴 리'는 두 가지 측면에서 그 소설적 의미를 규정해 볼 수 있다. 첫째, 이 작품의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는 이인국이라는 인물의 성격화의 특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 전광용은 이인국이라는 인물의 성격화의 특성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작가 전광용은 이인국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기 위해 그의 행위만을 뒤쫓고 있지만, 인물 자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덧붙이면서 그 자신의 내적 체험을 나타내 보이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므로 독자들은 행위 자체의 의미보다는 그 모든 행위가 주인공의 내적 자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주시해야 한다. 이인국이 보여 주는 능란한 처세술과 함께 그 내면세계의 움직임을 동시에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인국의 행위와 의식의 추이는 모두 살아남기 위한 타협으로 시종된다. 교활한 가회주의로 나타나기도 하고, 비굴한 권력 지향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성격은 그의 여러 가지 행위를 통해 구체화되지만, 그것이 한 개인의 내면세계로서의 의미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속성으로 전형화되고 있다. 이인국의 존재가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둘째, 소설 '꺼삐딴 리'에서 주목되는 것은 작품의 서술 구조와 연관되는 문제이다. 이 소설은 행위의 인과적 연결이나 경험적 시간의 계기성을 별로 중시하지 않고 있다. 주인공 이인국의 기억의 단편이나 생각들이 얽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교차된다.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행위의 논리적 일관성을 유도하지 않고, 오히려 인물의 성격을 특징짓는 삽화들을 덧붙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 작품에서는 플롯의 단계를 구분하기 어렵고, 갈등의 고조 상태나 그 파국 등을 찾아볼 수 없다. 현실의 행위 속에 과거의 기억들이 끼어들고 있어서 사건이 시간적 순서를 잃고 있다. 이것은 행위의 연결보다는 인물의 성격화에 주력하기 위해 고안된 구성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조적 완결성을 목표로 하는 단편 형식의 이완을 피할 수 없게 하고 있다. 결국 이 소설은 구성의 요건을 희생시키면서 인간성의 내면과 그 변모 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특이한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 권영민, "꺼삐딴 리' 中 '해설', 을유문화사, 2009
◆ 열등감의 극복과 윤리 의식
→ 열등감과 사회적으로 배제된 개인이나 집단의 정체성과 관련된다. 집단에서 배제되어 있다는 '훼손된 정체성', 혹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신뢰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주인공의 삶은 왜곡된다. 지금과는 다른 우월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폭력에 사로잡히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내면에서 찾지 못한 채 사회의 규칙과 질서에 전면적으로 의존함으로써 인간적인 타락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꺼삐딴 리'는 왜곡된 인간 심리가 민족적, 역사적 차원과 성공적으로 결합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주인공 이인국 박사는 서울에서 개인 병원을 운영하면서 종합 병원에 버금가는 명성과 수입을 올린다. 그가 이토록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먼지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청결과 다른 병원에 비해 두 배나 비싼 병원비 덕택이었다. 그는 일제 강점기 동안 '국어 상용의 집'이라는 액자를 받기 위해 아이들을 일본인 소학교에 보내 일본어만 쓰도록 강요하고, 마침내 잠꼬대까지 일본어로 할 정도로 철저한 친일파로 변신한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 밉보일 것이 두려워 형무소에서 풀려난 사상범ㅇㄹ 외면한다.
이인국 박사의 이런 행동의 밑바탕에는 식민지인이라는 열등감을 벗어던지기 위한 심리적 방어 기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 있어서 일본어를 사용하고 일본인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일본인과의 교제에서 열등감을 벗어던지고 '떳떳한 구실'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인국 박사가 '내선일체의 혼인론'을 통해서 심리적인 우월감을 얻었다는 것은 그것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광복이 되고 소련군이 진주하자 이인국은 친일파라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감방에 갇히게 된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스텐코프 소좌의 혹 수술을 성공리에 끝냄으로써 '꺼삐딴 리 스바씨보'라는 찬사와 함께 그의 아들을 소련에 유학 보내게 된다. 이러한 왜곡된 이인국 박사의 면모는 월남한 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병원의 고객을 권력층과 재벌과 같은 부유층으로 제한하고, 영어를 부지런히 배우는 것이다. 이처럼 '꺼삐딴 리'를 통해서 우리는 일제 강점기, 해방, 한국 전쟁이라는 역사적 격동기를 겪으면서 민족사적 비극과 역경을 이겨낸 정신적 승리자가 아니라 자기 일신만을 위한 처세술로써 민족적 위기를 외면했던 정신적 패배자를 만나게 된다. 일본어와 러시아 어, 그리고 영어의 습득으로 이어지는 그의 삶은 외세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이라는 점에서 반민족적인 성격을 벗을 수 없다.
-김종욱, '전광용의 소설에 나타난 삶의 윤리', "개신어문연구" 제27집, 개신어문학회, 2008
◆ '꺼삐딴 리'의 장르적 한계성
→ 전광용의 작품 세계는 소재 영역의 확대와 주제 의식의 심화를 꾀하며 '꺼삐딴 리'에까지 이르고 있다. 그러나 단편 소설이 지니고 있는 장르적 한계성으로 인하여 삶의 다양한 모습을 총체적으로 형상화하는 데에까지 그의 작가적 역량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는 인간 존재의 조건을 헤아리며 의식의 내면을 더듬기도 하였고, 토속적 공간에서 비정의 현실로 비판적 시선을 돌리기도 하였으나, 작가적 열정을 마음껏 발휘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꺼삐딴 리'는 이 작가의 관심이 단편 소설의 장르적 한계성에 직면하고 있음을 암시해 주는 작품인데, 그 근거는 이 작품의 서사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소설 '꺼삐딴 리'에는 삶의 단면성이 아닌 역사성의 의미가 스며들어 있다. 그리고 인간성의 한 측면을 제시한다기보다는 내면 의식과 시대 상황이 충돌하는 가운데 빚어진 전형적 성격을 표출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성과 성격의 전형화는 단편 소설의 형식이 좀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과제에 해당된다.
전광용이 자신의 소설적 관심을 확대하기 위해 삶의 총체적 인식을 포괄할 수 있는 장편 소설에 착안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인식과 직결되는 것이다. '꺼삐딴 리' 이후 전광용은 '태백산맥', '나신', '젊은 소용돌이', '창과 벽' 등의 장편을 발표한다. 이 작품들은 모두 당대적 삶의 역사성과 등장인물의 전형화의 방법을 포괄하는 방향으로 그 성격이 확립되고 있다.
- 권영민, "꺼삐딴 리" 中 '해설', 을유문화사, 2009
◆ '꺼삐딴 리'의 현재와 과거
→ '꺼삐딴 리'의 맨 앞부분은 주인공 이인국이 미국 대사관 직원 브라운과 약속이 20분밖에 남지 않은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끝부분은 이인국이 브라운을 만나 선물을 주고 나와서 반도 호텔로 가는 것으로 처리되어 있다. 그럼 이 작품의 중간 부분은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가.
맨 앞부분과 뒷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중간 부분에서 독자들은 일제 강점기 때부터 해방기를 거쳐 50년대에 이르기까지 이인국이 과잉 적응주의, 에고이즘, 출세 이상주의의 방식으로 살아온 과정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이인국이 딸 나미가 미국인과 국제 결혼한다는 사실에 가벼운 분노를 느끼면서 또 자신의 경력에 윤기를 더할 셈으로 도미할 계획을 세우는 것을 '현재'로 본다면, '꺼삐딴 리'에서의 '현재'는 더럽고도 탐욕스럽게 살아온 '과거'에 붙어 있는 꼬리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를 보면 이인국 박사의 '현재' 이후의 삶의 방식은 불문가지다. '꺼삐딴 리'의 경우, '현재'는 '과거' 확인 행위에 지나지 않는 동시에 추인하는 것에 불과하다.
- 조남현, "한국현대작가연구", 민음사, 1989
◆ 전광용의 구성 방법상 특징
→ 전광용의 단편들 중에서 작중 인물의 '과거'보다는 '현재'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며 또 보다 큰 관심을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는 '흑산도', '진개권', '경동맥', '퇴색된 훈장', '벽력' 등을 추릴 수 있다. 이와 반대로 '꺼삐딴 리', '사수', '크라운 장' 등의 작품은 작중 인물의 현재나 현재 이후보다는 과거가 훨씬 더 큰 관심을 모으는 경우로 볼 수 있다.
전광용이 그의 소설들의 서두를 열어 가는 과정에서 작중 인물의 현재를 제시하고 나서는 거의 예외 없이 막바로 과거로 소급해 가는 방법을 취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물리적인 시간의 측면에서 역차적인 진행 방법을 즐겨 택하였다는 것은 그가 소설의 플롯을 남달리 크게 의식하였다는 판단을 낳게 한다. 소설 이론가들 중 특히 형식주의자들은 소설에 있어서 스토리와 플롯, 주제와 이야기의 차이점을 밝히는 데 힘을 썼거니와, 전광용의 경우 '구성 방법'을 남달리 크게 의식하였다는 점은 소설에 있어서 이야기의 재미보다는 형식미에 더 치중하였다는 뜻으로 풀이되기 쉽다. 그는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을 그때부터 본격적인 소설 이론가와 연구자의 입상을 갖추었다. 바로 이런 특수한 입장이 전광용을 형식미에 보다 치중하는 작가로 몰아간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작중 인물의 현재 못지않게 또 때로는 현재보다도 과거에 더 큰 관심을 가졌다는 것은 그가 한 인물이나 사건 또는 정황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고자 하는 의욕을 지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왜?'라든가 '어째서?'와 같은 질문을 자주 던지는 작가가 자연스럽게 도달한 결과일 수도 있다. 전광용은 '지층'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이 사람은 어떻게 해서 광부가 되었으며, '벽력'에서처럼 이 인물은 어째서 시대와 상황을 초월해서 항상 영광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되었는가 등등과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는 것이다.
-권영민, "한국현대작가연구", 문학사상사, 1991
◆ '꺼삐딴 리' 서평
→ 해방이라 부르든 광복이라 불리든 8 · 15를 맞을 때마다 우리는 유독 세대 감각에 관심을 갖게 된다. 만약 해방을 체험으로 살아온 세대와 이를 한갓 학습으로 배워 온 해방 후의 세대와의 역사 인식의 차이를 해소하여 역사 감각의 연속성을 회복한 사회가 바람직하다면 그러한 몫을 담당한 장치 중의 하나에 문학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망에서 해방과 관련된 작품인 전광용 작 '꺼삐딴 리'를 음미해 보기로 한다. 1962년에 발표되고 그 후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 작품은 그 표제부터가 매우 인상적이다. '꺼삐딴'은 영어 '캡틴(captain)'에 해당되는 러시아어이다. 8 · 15 해방 직후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자 '꺼삐딴'이란 말은 우두머리나 최고라는 뜻으로 많이 쓰였는데 그 발음이 와전돼서 통용되기도 하여 이 작품이 표제에까지 오르게 된 것이다.
이 작품 자체는 단편 소설의 정석에 의거한 것으로서, 소설이 감당해야 될 기본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면서 또한 전에 없던 새로운 작품의 인간형을 창조해 놓았다. 여기서 새로운 성격 혹은 인간형이라 했지만 이 말에는 많은 설명이 요구될 것이다. 물론 이 자리에서는 먼저 이 작품의 내용 소개가 필요할 것 같다.
꺼삐딴 리란 누구인가라고 물을 때 먼저 '그는 한국인이다.'라는 대답에서 이 작품을 풀어 보기로 한다. 제국대학 의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여 금시계를 탄 이인국은 일제 강점기에는 가장 철저한 친일파로 성공한 외과 의사였다. 그는 의학적 실력 못지 않게 환자의 경제력을 판단하는 고도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일본인 관리를 주로 상대해서 출세한 그는 훈도시와 유카타를 걸치며 집안에서도 일본어만 씀으로써 '국어 상용의 집'이라는 표창까지 받는다. 잠꼬대까지 일본말로 하는 판국에 해방이 닥쳤다. 독립투사 치료를 거부한 이 철저한 친일파가 무사할 리가 없다. 소련군 점령하에 감옥에 갇힌다. '민족과 조국을 팔아 먹은 이 개돼지 같은 놈아, 너는 총살이야 총살' 그러나 의사 이인국은 총살은커녕 소련군에 뺏긴 자기 생애의 마스코트격인 금시계를 도로 찾고, 소련 장교의 비호 아래 석방까지 된다.
이 놀라운 수완, 그 독특한 처세술이란 무엇인가. 간단한 원리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가장 합리적인 방도를 모색한다는 것, 체념하지 않는다는 것,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상황에 대처하는 고전적 양식이다. 가령 감방에서도 밀정이 있을 수 있기에 함구함으로써 위기를 면하는 일, 누가 버리고 간 노어 회화 책을 재빨리 공부하는 일 등이 이에 속한다.
드디어 기회가 온다. 감방에 전염병이 만연한다. 의사로서의 그의 존재가 필요하다. 사령관 '스텐코프'의 혹을 수술하기에 이른다. 실패할 경우 총살을 각오하고 사령관 혹을 수술한다. 이를 성공시켰을 때 사령관은 '꺼삐딴 리, 스바씨보'라 외친다. 1 · 4 후퇴 때 청진기가 든 손가방 하나만 들고 의사 이인국은 월남한다. 그러나 수복 후 어느 틈에 자기 소유의 종합 병원장으로 된다. 일제 강점기 '나미코'라 이름 지은 딸은 '나미'라 고쳐 미국 유학을 보내 곧 미국인과 일재 잡종의 단계에 접어든다. 피난 때 죽은 아내 대신 젊은 간호사와 재혼한다. 그리고 의사 이인국은 상감진사 고려청자로 매수한 미국 대사관 직원 '브라운'의 절대적 비호로 국무성 초청 여행 준비를 하는 것이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 소련군 점령하의 감옥 생활, 6 · 25, 38선, 미군 부대 등등 아슬아슬한 죽음의 고비를 의사 이인국은 용케도 넘기고 살아왔다. 이 속에서도 오직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인국의 상황에 대처하는 처세술이다. 작품상에서 그 상징은 '금시계'로 되어 있다. 성조기 아래에서도, 적기 아래에서도 이인국의 '금시계'는 재깍재깍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장기 아래서 획득한 것이었다. 작가는 이인국의 입을 빌려 이렇게 쓰고 있다. "그럼 어쩐단 말이야. 식민지 백성이 별 수 있었어. 날구 뛴들 소용이 있었느냐 말이야. 어느 놈은 일본 놈한테 아첨을 안 했어. 주는 떡을 안 먹은 놈이 바보지. 흥, 다 그놈이 그 놈이었지."
이상이 이 작품의 대강의 줄거리이거니와 앞에서 우리는 새로운 성격이라 했고 또 '꺼삐딴 리'는 한국인이다라는 투의 말을 했었다. 오해가 생길까 봐 토를 다는 것이지만 새로운 성격이란 작품상에서의 문제일 따름이다. 발표 당시 이 작중 인물에 대한 모델 실재설이 분분한 바 있었다 한다. 현실과 무관하지 않지만 현실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근대 소설이 그 고유의 방식에서 예술성을 인정받는 것은 대부분 성격 창조의 제시에 있다. '꺼삐딴 리'는 위와 같은 의미에서 격변기의 한국의 한 인간형이다.
-김윤식, '소설 속의 한국인', "동아일보", 1978년 8월 16일 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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