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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ing n Seeing

[현대소설]표본실의 청개구리(1921)-염상섭-

by 휴리스틱31 2021.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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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본실의 청개구리(1921)

-염상섭- 

 

● 줄거리

 

무거운 기분의 침체와 한없이 늘어진 생의 권태는 나가지 않는 나의 발길을 남포까지 끌고 오며 나는 알코올과 니코틴에 탐닉하여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지낸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박물실험에서 수염 텁석부리 선생이 더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청개구리의 오장을 끌어내 대발견이나 한 것처럼 소리치던 일을 회상한다.

 

나는 8년이 지난 요즘 새파란 메쓰와 닭의 똥만한 심장과 폐, 바늘끝과 조그만 전율 등의 인상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며 남포에 가기 전날밤이 가장 심했다. 그 이튿날 H가 와서 평양을 방문하겠다면서 같이 가자고 권하자 나는 지긋지긋한 경성을 떠나서 또 다른 기분을 얻으려는 욕구로 기차에 올라타게 된다.

 

평양역에서 남포로 가려다가 나는 H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대동강 부벽루를 거닐다가 장발의 걸인을 보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 잠이 들었을 때 악몽을 꾼다. 남포에 도착했을 때는 두 시가 훨씬 넘었는데 거기서 친구 A 와 Y를 만나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술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기인(奇人)에 대한 이야기에 이른다. 삼원 오십전에 삼층집을 지은 자로 친구들을 그를 대철인이라고 추켜세웠다.

 

네 사람은 기인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고, 기인 김창억은 삼층집에서 농짝에 못질을 하고 있었다. 그를 보는 순간, 나는 전율감을 느끼며 이사람이 미쳤다고 해야할 지 모든 것을 대오(大悟)했다고 해야 할 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는 환상에 젖어 여러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았다. 가련한 동무와 이별하고 나오면서 나는 무심코 구두코만 바라보고 걸었다.

 

남포의 광인 김창억은 굴지의 객주였던 아버지가 주색잡기에 빠진 나머지 어머니의 한숨과 함께 자라났다. 어머니는 아들에 대한 교육열이 높아 경성의 사범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집안은 엉망이 되었고, 그 해 모친마저 돌아가고부터는 어떤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그 때 마침 소학교가 개설되어 창억은 교편을 잡게 되었으나 아내마저 죽자 술과 방랑으로 학교를 떠나 버렸다. 반 년이 지나 돌아온 그의 몸은 말이 아니었고, 새로 아내를 맞아 금실좋게 지냈지만, 불의의 사고로 철장신세를 지게 되고, 사 개월의 감옥살이 후에 집으로 돌아왔을 땐, 이미 아내는 가출하였고 그는 분노와 낙심과 비탄에 잠겨 차츰 정신이 이상해져 갔다. 그는 서까래만한 기둥 여섯 개와 널빤지 두 개를 얻어다가 네 귀에 기둥을 세우고 3층짜리 집을 짓는다. 그는 인생의 모든 행복이 일시에 모여듦을 느끼며 이 집을 근거로 해서 세계 평화를 위한 동서 친목회를 만들기로 작정하고 연일 강연을 하면서 분주히 지낸다.

 

평양으로 나온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는 이 개월쯤 지나 눈 내리는 북국에서 친구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에는 김창억의 위대한 삼층집이 불에 타 버렸다는 소식이었다. 김창억이 이제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마당에 그 집을 관리할 자가 없자 스스로 불을 질렀다고 했다. 그 신성한 집은 그 외에 맡을 자가 없으며, 신에게로 되돌려 준 것이라 하면서, 김창억의 정신에 대한 경외감을 술회하고 있었다. 편지를 받고 마음은 납덩이같이 무거웠다. 공연히 울고 싶었다. 그가 그 후에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몰랐다. 평양에는 없을 것이라 여겼지만 그는 후취의 본가가 있는 평양에 있었다. 보통문밖에 보금자리로 튼 짚더미 속에서 우물거리거나 돌아다니는 그를 동리 사람들도 알아보지 못했다.

 

● 인물의 성격

 

 김창억 →  어려서 신동으로 불리던 부잣집 아들이었으나, 그 이후로 겪게 되는 개인적인 불행으로 인해 결국 정신이상자가 되는 불행한 동적 인물

◆ 나 → 3.1운동의 실패 후에 빚어진 심한 좌절감과 절망 그리고 신경과민으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식민지 지식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염상섭이 1921년에 발표한 그의 처녀작이다. 3.1운동을 전후하여 시대적으로 가장 암울했던 식민지 시대의 어두운 현실과 지식인의 고뇌를 사실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 소설의 화자인 '나'와 친구들은 삶의 생명력과 생동감을 느끼기를 갈망하지만, 쉽게 충족되지 않는다. 개구리 해부 장면과 광인 김창억, 이 두 개의 모티프는 삶에의 열정을 잃은 등장인물의 모습과 그들이 갈망하는 삶의 내용을 각각 표현하는 것이다.

 

 작자는 우리 근대문학사상 최초로 자연주의를 의식하고 창작에 임한 사람이다. 그는 뛰어난 묘사의 사실성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자연주의의 실천과정에서 많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의식과 심리 혹은 관념의 세계를 다분히 감각적 표현으로 바꾸어 형상화하고 있음에도 주관성을 과다하게 노출하고 있는 점은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자연주의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플롯이 엉성한 점과 서술의 구체성을 상실하고 있는 점 그리고 생경한 어휘들이 남발되고 있는 점 등은 이 소설이 지닌 예술적 결함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당대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그린 점은 높이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식민지 초기 지식인의 정신적 고뇌와 방황의 모습을 매우 예리하게 그려내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의 고뇌와 번민이 왜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해결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한 상태로 남게 된다. 그래서 남는 것은 관념적인 사색과 고민 뿐이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자연주의(사실주의) 소설

◆ 배경

* 시간적 - 현재의 일과 과거의 일이 혼재된 일상적 시간.     3.1운동 전후

* 공간적 - 좌절감과 절망감이 팽배한 식민지 조선의 경성, 평양, 진남포

* 사상적 - 세기말 사상, 절망적인 페시미즘

◆ 시점 : " 1인칭 주인공 시점 " 에다가, 김창억을 내세워 그의 성격을 분석함과 동시에 인생의 어두운 면을 드러낼 때는 " 전지적 작가 시점 "으로 변화됨.

◆ 표현상 특징 : 만연체의 문장으로 산만하기는 하지만 사실적으로 표현함

◆ 주제  젊은 지식인의 이상과 절망적인 현실

◆ '제목'의 상징성 : 삶의 열정이나 지향을 갖지 못한 채 암담한 고민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등장인물을, 오장을 빼앗기고 버르적거리는 개구리의 모습으로 상징화함.( = 암담한 현실 속의 인물들 )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있는데, 두 이야기의 공통점은?

 

→ 바깥이야기는 식민지 지식인의 병적인 우울과 절망의 내면세계를 그리고 있으며, 속이야기는 광인(狂人)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광인이나 우울증 환자나 정신적으로 정상인이 아니라는 데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둘은 모두 정신적 고뇌와 방황을 겪는 인물임.

 

2. 화자가 김창억을 만나보고서 충격을 받은 이유는?

 

→ 광인이지만 그 정신적 높이에 있어서 절대 자유를 구현한 존재로 비칠 뿐만 아니라, 현대의 모든 병적인 것을 정신적 자유를 통해 극복한 인물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3. 이 작품은 심리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그런 성격이 잘 드러난 곳을 찾아보면?

 

→ 개구리 해부장면을 떠올리면서 메스와 면도칼이 함께 뒤섞여 정신적 고통을 받는 장면

 

4. 이 소설의 광인과 동시대 작가였던 김동인의 광인의 성격을 대비해 보자.

 

→ 이 소설의 광인은 시대와 연관되는 것으로, 환경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 것.

    김동인의 광인은 개인적 차원의 이상 성격이며, 시대와 관련되지 않은 예술혼으로서의 한 특성

 

 

● 더 읽을거리

 

◆ 사실주의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묘사, 제시하고자 했다면, 자연주의는 대상을 자연과학자 또는 박물학자와 같은 눈으로 분석, 관찰, 검토, 보고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자연주의 계열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주의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 이 작품에서는 작가가 메스를 들고 당대의 사회적 진상을 '분석'하려는 의도에서, 중학교 선생의 개구리 해부 장면을 설정하였다. 그러나 이 설정은 처음의 의도에서 벗어나 신경과민이 된 '나'를 설명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즉 무슨 인과법칙에 의한 사건의 진행이나 사회나 인생의 해부는 없고 다만 '관찰자로서 기록'하고 있을 뿐이어서, 초기에 자연주의 계열의 작품으로 평가받았던 것과는 달리 사실주의 소설로 간주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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