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맛 오렌지(1997)
-성석제-
● 줄거리
'비읍'은 편집부에 새로 들어온 신참이다. 그는 아는 것은 많지만 조금씩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그는 자신이 틀렸으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해서 회사 사람들을 불편하게 한다. 회사 사람들은 그의 틀린 지식을 별명으로 지어 줌으로써 그를 비꼬기 시작한다.
그는 '뇌쇄(惱殺)'를 '뇌살'로 잘못 말하고, 출신 학교도 아니면서 자신의 고향 학교 야구부를 응원하고, 유방과 항우의 고사를 엉뚱하게 유비와 조조의 적벽대전과 섞어서 이야기하고, '흥미진진(興味津津)'을 '흥미율율(興味律律)'이라고 말하는 등 실수투성이이다. 사람들은 그때마다 '살도', '율율'이라는 별명을 지어 주어 그의 부족한 소양을 꼬집지만, 그는 언제나 당당하다.
어느 날 '비읍'이 결혼을 하자 사람들은 그의 집으로 집들이를 가는데, 새댁은 회사 사람들이 선물로 사간 '오렌지 주스'를 대접하지 않고, '오렌지 맛 음료'를 내온다. 사람들은 정색을 하면서, '비읍'을 '오렌지 맛'이라고 부르고, 그의 부인을 '오렌지 부인'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한다.
● 인물의 성격
◆ 비읍 ⇒ 출판사 직원, 잘못된 지식의 소유자.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으나 그것들은 모두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근접한 정보와 근접한 지식에 만족하며 살고 있으며, 그의 '근접 의식'은 생활에서도 연장된다. 출신 학교가 아니더라도 고향의 학교라면 자기 일처럼 나서고, 오렌지 주스 대신 오렌지 맛 주스를 대접하며 항상 당당하고 스스럼이 없다.
◆ 아내 ⇒ 비읍과 같은 성격 및 성향을 지닌 인물. 집들이 선물로 직원들이 사온 오렌지 주스 대신에 오렌지 맛 주스를 내놓는다. 직원들에게 '오렌지 부인'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 사람들 ⇒ 비읍과 같은 출판사에 다니는 동료들. 비읍의 행태에 마음이 상하여 정확한 정보와 정확한 지식을 무기로 그를 비꼰다. 사전으로 대표되는 문헌에 의해 정보와 지식을 획득하며 그렇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 이해와 감상
◆ 이 작품은 소설집 <재미나는 인생(1997)>에 실린 소설로, 인생의 한 단면을 단순 구성으로 지미있게 그리고 있다.작가는 어느 출판사를 배경으로, 편집부에 새로 들어온 '비읍'이라는 인물의 우스꽝스러운 행각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통하여 삶의 활력소로서의 웃음을 제공하고 있다. '비읍'은 아는 것이 많은 듯하지만 그가 아는 것은 조금씩 다 틀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지식을 의심하기보다는 자신의 잘못된 지식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의심한다.
그렇기에 '비읍' 주변의 사람들은 그를 놀리며 재미있어 하고 독자들 또한 그 사람들과 한마음이 되어 웃게 된다. 이 때의 웃음은 조롱이나 냉소와 같은 차가운 웃음이 아니라, 가벼운 웃음이면서 근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이 담긴 따뜻한 웃음이다. 아마도 작가는 '비읍'을 통해 무언가 진지한 주제 의식을 전달하려는 의도보다는 생의 활력이 되는 웃음의 세계 그 자체를 느끼게 하려는 의도를 지닌 듯하다.
◆ 웃음의 해학성 ⇒ 작가가 '비읍'이라는 인물을 통해 구현하는 세계는 풍자의 세계가 아니라 해학의 세계이다. 해학이란 익살스러운 말이나 행동에서 비롯하는 웃음을 핵심 골격으로 한다. '비읍'은 누구를 웃기려는 의도는 없으나 그의 말이나 행동은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든다. 또한, 작품 속 인물들 간의 상호 공격도 존재하지 않는다.
출판사 동료들은 '비읍'을 재미있게 생각하고 놀리기도 하지만 그를 공격할 의도는 전혀 갖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점들로 미루어 보아, 이 작품은 풍자와는 다른 해학의 맛을 풍기고 있다.
이와 유사한 미학 세계를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과 <봄봄>이다. 이들 작품 어디에도 특정 인물에 대한 작가의 비판 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따라서 인물 간의 갈등도 없고, 갈등이 없기에 인물 간의 공격도 존재하지 않는다. <동백꽃>의 '나'와 점순이 사이가 그렇고, <봄봄>의 '나'와 장인 사이가 그렇다. 단지 작가는 이들 인물들이 지닌 인간적 미덕에 무한한 애정과 동정의 시선을 보낼 뿐이다.
◆ 이 작품을 우화(寓話)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듯이 인간 이외의 대상에 인격을 부여하여 풍자적인 수법으로 표훈을 전달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이 비록 동물은 아니지만, 소설의 방식 자체가 특정한 한 개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닌 전반적인 인간의 왜곡된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화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화적 특징은 그들이 빚어 내는 유머 속에 교훈을 드러내고자 한다.
◆ 비읍에 대한 별명 붙이기
살도 | 흥미율율 | 오렌지 맛 |
뇌쇄와 쇄도를 구분하지 못하고 뇌살적, 살도라고 했기 때문 | 흥미 진진을 흥미 율율이라고 계속 우겨댔기 때문 | 진짜 오렌지 주스를 사들고 갔으나 정작 내놓은 것은 오렌지 맛 음료였기 때문 |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장편(掌篇)소설, 콩트, 해학·풍자문학
◆ 배경 : 현대, '비읍'의 출판사와 집
◆ 시점 : 1인칭 관찰자 시점
◆ 표현상 특징
* 특별한 구성이 없이, 수필처럼 무형식의 형식으로 사건을 전개함.
* 인물의 우스꽝스런 말과 행동을 관찰하여 해학적으로 표현함.
* 제목은 인물의 성격(정확하지 않은 지식을 자랑하는 인물)과 작품의 웃음 포인트를 정확하게 암시함.
◆ 주제 ⇒ '비읍'을 통한 따뜻한 웃음과 풍자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이 '바람직하지 못한 인물'을 드러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이 냉소적인 비판으로 나타나지 않고 따뜻한 시선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 일반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인물'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소적이고 비판적인데, 이 작품에서는 오히려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는 휴머니즘적인 태도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즉 인간의 잘잘못을 엄격하게 가려내어 비판하려는 것이 아닌, 결국 인간의 삶이란 실수투성이고, 이러한 측면이 삶에 있어서 또하나의 '재미'일 수 있다는 작가의 생각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2. 이 작품은 일인칭 관찰자 시점이기는 하지만, 서술자가 한 개인이라기보다는 편집부 사람들 전체인 우리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서술자를 설정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 주인공인 비읍의 행위와 성격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이는 작품에서 인물의 이름을 비읍, 리을 등으로 부르는 것과도 연관이 되는데 특정 개인에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다 해당될 수 있는 것을 보여준다.
3. 이 소설을 우화소설로 보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독자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우화소설은 일반적으로 인간 이외의 대상에 인격을 부여하여 풍자적인 수법으로 교훈을 전달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비록 동물은 아니지만, 소설의 방식 자체가 특정한 개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전체의 왜곡된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화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비읍이 실수를 하고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나, 현학적인 태도, 인색함 등은 모두 우리들 자신의 모습일 수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러한 비읍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통해 웃는 동시에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게 된다. 위선이나 가식, 이기적이고 인색한 마음 등을 반성하며 비읍처럼 살면 안되겠구가 하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더 읽을거리
◆ 장편(掌篇) 소설
장편 소설은 콩트(conte)로도 알려져 있는데, 삶의 한 순간 내지는 한 단면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짧은 소설이다. 기발한 발상과 압축적인 묘사 그리고 반전(反轉)이 기본적인 구성 요소이다. 일반적으로 단편은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단일한 인상과 주제를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장편은 사회역사적 환경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전체성을 재현하고자 한다. 이에 비해, 장편 소설은 단편보다 더 짧은 것, 말하자면 손 바닥에 쓸 수 있는 정도로 인생의 순간적 한 단면을 짧고 재치있게 표현한 것이다. 유머, 풍자, 기지가 넘치는 촌극으로 볼 수 있으며, 주로 프랑스에서 발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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