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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줄거리/해설]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2004)-박민규

by 휴리스틱31 2021.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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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2004)-박민규

 

● 줄거리

 

원래 좀 노는 편이었던 '나'는 아버지의 일터를 보고 난 후 열악한 노동 환경과 터무니없는 보수를 참아 내며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여 돈을 모은다. 하지만 거울에서 아버지와 같은 '잿빛의 눈동자'를 발견하고 결국 아버지와 같은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던 중, 엄마가 과로로 쓰러지고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마저 어려워지자 아버지가 사라진다. '나'는 힘들지만 더욱 아르바이트에 열을 올리며 견뎌 낸다. 어느 날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하는 전철역 플랫폼에서 문득 아버지라는 느낌을 주는 양복을 입은 '기린'을 본다. '나'는 기린에게 집안의 근황을 전하며 돌아오라고 하지만 대답을 듣지 못한다. '나'는 아버지가 맞다는 말 한마디만이라도 해 달라고 호소하지만, 기린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고 대답할 뿐이다.

 

● 인물의 성격

 

◆ '나' →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상고를 다니는 학생이다. 좀 놀긴 했지만, 가난한 현실을 깨달으며 '나의 산수'에 따라 아르바이트에 힘쓴다. 답답하고 억울하지만 벗어날 방법이 없는 세상을 느껴 간다.

◆ 아버지 → 가난한 직장인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할 말이 없는 풀 죽은 현대인이다. 직장 상황이 어려워지고 아내가 쓰러지자 사라졌다가 '기린'이 되어 나타나지만 돌아오라는 '나'의 말을 거부한다.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하위 계층 출신인 한 상고생을 주인공으로 하여 2000년대 한국 사회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는 소설이다. 아버지의 일터를 본 후에 '아버지의 연산'이 곧 '나의 산수'가 될 수밖에 없음을 실감한 '나'는 더욱 아르바이트에 열을 올리며 삶을 지탱하려 힘쓰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비애감만 안겨줄 뿐이다. 어머니가 쓰러지고 아버지는 집을 나간다. 절박한 삶의 현장을 지키며 아버지를 기다리던 '나'는 푸시맨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에서 '기린'을 만난다. '기린'으로 변한, 그래서 자본주의의 산수 바깥으로 나가 버린 아버지와의 만남은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환상의 도입이지만, 그것은 '이름을 버린 아버지'와 '억압을 벗은 나'의 만남이다. '기린'인 아버지는 돌아오라는 '나'의 말에 자신은 '기린입니다.'라고 말하며 자본주의 현실로 돌아올 뜻이 없음을 밝힌다. 현실은 여전히 폐쇄적이고 냉정하며 산수를 강요하겠지만, '기린'인 아버지를 대면한 '나'는 이제 현실 속에서 이제까지와는 다른 길을 택하게 될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작품에 드러난 자본주의의 속성 → 이 작품에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가 여실히 드러난다. 물려받은 부가 있는 자는 계속 부유하게 살아가는 반면, 하층 계급 출신은 평생 애를 써도 자신의 계층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논리가 펼쳐지는 것이다. '아버지의 연산'과 '나의 산수'라는 개념은 두 사람이 '잿빛 눈동자'라는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비유되면서 인상적으로 부각된다.

 

아버지의 연산   잿빛 노동자   나의 산수
가난한 계층으로 살아온 기성세대   두 부자의 외모적 유사성   아버지와 같은 삶을 살 수밖에 없는 '나'
화해와 사랑의 분위기 형성

 

 

 작품의 상징적 의미 : 돌파구 없는 현대인들의 자화상

'나'는 자신에게 아르바이트를 곧잘 소개해 주는 코치 형의 소개로 지하철의 푸시맨 일을 시작하게 된다. 시급 3천 원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조건으로 푸시맨이 되면서부터 '나'는 생존을 위해 아침부터 어디론가 달려가는 이 시대 평균치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그들은 모두 열차가 들어와도 안전선 밖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그들에게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기 때문이다. 경제적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치러야만 하는 이들을 전철 안으로 밀어 넣은 경험은 '나'로 하여금 세상이 자신만의 산수를 하며 살아가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러한 현실은 그것이 인류였다고 말할 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비참하고 끔찍하다는 인식에 이르게 한다. 이는 곧 자본주의 사회를 절망적인 느낌으로 살아가는 평범한 현대인들의 자화상인 것이다.

 

 '아버지의 연산' = '나의 산수'

어느 날 거울을 본 '나'는 '잿빛의 눈동자'를 발견하고 그것이 아버지와 색이 같은 두 개의 동심원이며, 자신은 결국 아버지의 연산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 '나'는 자신 역시 아버지처럼 평생 '나만의 산수'를 하며 삶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된다. '나'는 코치 형에게 '이런 곳에서 …… 왜 고작 이 따위로 사는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코치 형은 '열심히 사는 거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게 아닌가'라고 답한다. 이러한 대화는 '나'가 자신이 살아가는 현실의 모순과 압박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으나 어디에서도 답을 찾을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기린'으로 변한 아버지의 상징적 의미

'기린'으로 변해 버린 아버지의 환상은 매우 비현실적인 것으로 느껴진다. 아버지는 곧 미래의 '나'였다. 아버지의 잿빛 눈동자를 닮은 '나'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극악함을 벗어날 방법이 없으므로 아버지처럼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예정된 수순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느 순간, 산수를 계속하는 것을 멈추고 사라진다. 그러고는 햇볕 따스한 봄날 한 마리의 '기린'이 되어 '나'의 눈 앞에 나타난다. 아버지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모습이 된 것이다. 이제 아버지는 산수를 계속할 일도, 초라한 사무실에 앉아 도시락을 먹을 일도, 아침마다 아들의 손에떠밀려 전철을 타는 수모를 감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기린'이 된 아버지를 대면한 '나'는 이제 현실 속에서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그가 살아갈 현실은 여전히 냉정하고 산수를 강요를 하겠지만, 그 속에서 나이 들어갈 '나'는 새로운 삶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 소설, 단편 소설, 성장 소설,  -희극적, 사색적-

 배경 : 2000년대, 서울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주제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갈등 극복 가능성을 발견해 가는 한 인물의 성장 체험

 

 

● 생각해 볼 문제

 

1. '기린'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

⇒ '기린'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을 벗어난 곳,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있는 곳을 꿈꾸는 아버지와 아들의 열망을 은유한 것이다.

2. 이 소설에서 나타난 우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은?

⇒ 빈부의 격차, 부의 세습

3. '나의 산수'에서 '산수'의 의미는?

⇒ 경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관점 및 자신의 경제 수준 등.

 

● 더 읽을거리

 

박민규의 소설에는 지금까지 굳혀 왔던 소설 서사 방식과 상당히 다른 점들이 많다. 바로 박민규만의 소설 스타일이 생긴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적 소설 스타일은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과 세계 속에 서 있는 나에 대한 고찰이 들어가 있다. 김영하의 스타일은 주제에 대한 신비로움의 탐닉이다.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로 놀라게 하는 것이다. 박민규의 소설은 이러한 점들이 약간 섞여서 들어가 있는 듯해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의 소설 속에는 (아무리 짧은 소설일지라도) 뼈가 있다. 이상문학상 우수상 작품인 <낮잠>의 경우에서 그러한 점들은 잘 드러나 있다. 또한 문장의 형식에 자유를 줘서 정형화되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어떤 측면에서는 이해하기 쉽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는 기린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하지만 기린은 마지막 부분에 짧게 등장한다. 그것이 작중 화자인 '나'의 지친 육체의 꿈속에서 등장한 사라져 버린 아버지를 대표하는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꿈속의 기린은 아버지가 아니라고 한다. 화자는 아버지가 맞냐고 하지만 기린은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라고 말한다. 이 문장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기린은 아버지가 아니라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왜 하필 기린이라는 이미지를 작중 화자가 일하고 있는 철도에 등장시켰을까? 기린은 목이 긴 동물이다. 또한 뚱뚱한 기린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다. 기린은 그냥 기린인 것이다. 거기서 목이 말라 버릴  정도로 힘든 삶을 살다가 도망가 버린 아버지, 그리고 그 바통을 이어받아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화자를 대표하는 이미지인 건가? 아니면 절대로 등장할 수 없는 철도에서 기린이 등장함으로써 이 삶의 허무맹랑함을 비판하고자 하는 것일까? 나의 부족한 해석 능력으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다. 하루키의 작품을 읽을 때도 이렇게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많이 나왔었다. 양과의 대화라던가, 소리를 먹는 기술을 발견한 박사라던가 말이다. 그때도 해설을 보면서 차츰 이해를 했지만, 지금은 도통 감이 오지 않는다.

 

단순하게 아버지를 대표하는 것이 기린인 것인가, 아니면, 아니면.

기린과 아버지의 연관성은 뗄래야 뗄 수 없다. 아, 기린은 절대로 지하철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기린을 등장시킨 것일까. 작중 화자는 푸시맨이다. (지금은 기계에 밀려 사라져 버린 직업) 그런 화자는 매일 아침 아버지를 밀었다. 꽉찬 지하철에 푸쉬하는 것이다. 아버지를 미는 그, 그리고 상황이 열악해지면서 푸쉬맨 일을 하면서 편의점 등 다양한 일을 하면서 고생하는 작중 화자. 그들은 사회에 대한 원망을 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사회보다는 직접적인 돈, 시급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렇게 순응하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가 사업이 망한 이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주지 않는다. 이렇게 박민규는 간접적인 일침을 소설 속에 내재하여서 고통스러운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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