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ading n Seeing

[현대소설 줄거리/해설]줄(1966)-이청준-

by 휴리스틱31 2021. 11. 18.
728x90

(1966)

-이청준-

 

● 줄거리

 

소설가가 되려다 포기한 '나(남 기자)'는 자신이 하는 일에 의미를 느끼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무기력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승천한 줄광대'에 관한 기사를 쓰라는 부장의 명령으로 취재를 하기 위해 고향인 C읍으로 내려온다. '나'는 그 곳에서 '승천장의사'라는 곳을 발견하고는 들어가서 승천한 줄광대에 대해 몇 마디 물었고, 그 사람은 트럼펫 사내를 찾아가 보라고 말해 준다. 나는 여관에 한 창녀와 며칠을 묶으면서 줄광대 부자가 소속되어 있었던 서커스단의 트럼펫 사내를 만나 그로부터 허 부자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트럼펫 사내는 지금은 폐병에 걸려 냄새나고 구역질나는 어둑한 오두막에서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무에게도 이야기를 잘 하지 않던 트럼펫 사내는 뜻밖에 나에게는 가래 끓는 목소리로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었다.

 

승천했다는 소문이 떠도는 줄광대의 이름은 허 운이다. 그의 아버지 허 노인도 줄광대였는데, 그는 운이 겨우 두 살 나던 해에 아내가 서커스 단장과 부정한 관계임을 알고 그녀를 목졸라 죽이고는 단 하루가 지난 뒤부터 태연하게 줄을 계속 타게 된다. 허 노인은 줄 위에서 관객들을 가슴을 졸이는 묘기와 재주를 부리라는 단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줄 타는 일 하나에만 전념한다. 뿐만 아니라 허 노인은 운에게도 줄타기를 가르치는데, 줄타기 광대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 밟을 땅이 많지 않다고 하면서 아들 운에게 줄타기를 전수하게 된다. 열여섯 살이 된 운은 누가 보아도 허노인과 줄타기 솜씨에 있어서 뒤지지 않을 만큼의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허 노인은 아들을 사람들 앞에 내세우지 않았으며, 열 여덟 살이 되어서야 허 노인은 운에게 줄을 타게 하고는 이것저것을 테스트 해보게 된다.

 

 

드디어 기력이 다 한 허 노인은 아들을 사람들 앞에서 줄을 타게 하면서 자신도 함께 줄에 올라서게 된다. 두 사람이 마치 한 쌍의 학처럼 줄타기를 하다가 허노인은 그 위에서 떨어져 죽는다. 허 노인이 죽은 후 운은 허 노인과 마찬가지로 줄 위에서 재주를 부리지 않는 줄타기를 하게 되고, 단장은 줄의 높이를 점점 높여 관객의 수를 늘리려 한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운의 줄타기 공연이 끝나는 시간에 맞추어 한 여인이 운에게 꽃다발을 남기고 사라지곤 한다. 트럼펫 사내는 그 여인과 운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운은 그 여인을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운은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부터 줄 위에서 재주를 부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운은 줄 위에서 내려와 여인과 함께 살 결심을 하고는 여인에게 고백을 한다. 그러나 그 여인은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땅 위에서의 운이 아니라 줄 위에서의 운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날 밤, 운은 줄을 타다가 스스로 떨어져 죽는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는 며칠 동안 밤마다 자신의 여관 방에 들어온 창녀(줄광대 운의 딸로 짐작됨)가 트럼펫 사내를 지극히 사랑하고 있으며, 트럼펫 사내는 평생을 트럼펫 부는 일 하나에만 전념해 온 사람임을 알게 된다. '나'는 줄광대 부자의 일생과 창녀의 사랑, 트럼펫 사내의 일생을 알면 알수록 자신이 줄광대 부자의 일생을 기사로 쓸 만한 자격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C읍에 내려와서 보고 듣게 되는 경험들은 정신적 가치를 상실하고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며,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해 준다.

 

● 인물의 성격

 

◆ 허 노인 ⇒ 줄광대.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며, 줄타기의 철학이 분명한 장인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물

 허 운 ⇒ 허 노인의 아들. 허 노인과는 달리 절대 가치와 세속적 가치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인물이다. t사랑에 실패하자 죽음을 선택한다.

◆ 트럼펫 사내 ⇒ 서커스단에서 트럼펫을 불었으나 지금은 폐인이 된 인물.  허운의 친구였기에 그들 부자의 내력을 잘 알고 있고,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다가 삶이 다해 감을 느꼈는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말 해 주는 인물.

◆ 여인(창녀) ⇒ 창녀로, 허 운의 딸일 가능성이 많으며, 지금은 트럼펫 사내를 부양하며 그의 운명을 지켜보는 인물

◆ 나(남 기자) ⇒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의미를 찾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취재 임무를 달갑게 여기지는 않지만, 줄광대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어떤 고통과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인물임.

 

 

● 구성 단계

 

 도입 : '나(남 기자)'가 승천한 광대를 찾아 전남 C읍으로 취재를 떠남.

 발단 : 나는 고향 전남 C읍에서 서커스단에서 트럼펫을 불던 노인을 만나 허운의 이야기를 듣게 됨.

 전개 : 서커스단에서 줄을 타던 허 노인은 줄을 타다 죽고, 그 아들 운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줄광대 노릇을 함.

 위기 :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던 운은 한 여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지만 결국 그녀와의 사랑에 실패하고 만다.

 절정 : 어머니를 죽이고도 다시 줄을 탔던 아버지 허 노인과 달리, 운은 사랑에 실패하고 그날밤 줄을 타다 죽음.

 결말 : 나에게 승천한 광대 운의 이야기를 힘들게 다 들려준 트럼펫 노인은 결국 죽고, 나는 그 이야기를 통해 장인 정신과 정신적 가치를 깨닫게 됨.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신문 기자인 '나'를 중심으로 한 외부 이야기와 2대에 걸친 줄광대 허 노인과 허운의 삶을 중심으로 한 내부 이야기로 구성된 액자 소설이다. 줄광대 부자는 오로지 줄타기에만 전념하는 철저한 장인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특히, 허 노인은 줄타기를 삶의 절대적인 가치로 인식하고 실천하는 인물이다. 허운은 이러한 허 노인의 가치관을 이어받으려고 노력하지만 단장의 상업적인 요구 때문에 갈등한다. 일생을 오직 줄타기에 바친 허 노인,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인의 경지에 이르지만 결국 운명 앞에 무너져 스스로 죽음을 태하는 아들 운, 그리고 이들의 삶을 취재하는 '나'의 냉소적인 태도는 바로 우리가 겪어 온 시대적, 일상적 자기 변모의 모습과 일치한다. 이 작품은 줄을 대하는 허 노인의 엄격성과 부장의 명령으로 취재를 나온 '나'의 대조적인 모습을 통해 주제를 부각시키고 있다. 결국 소설의 화두는 장인 정신이다. 부자(父子)는 줄을 탈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죽음을 택한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자기 자신에 대한 엄격함 때문이다. 이 엄격함은 곧 장인 정신에서 나온 것인데 이 작품은 바로 이런 정신의 부각에 중점을 두고 있다.

 

 

 허 노인과 '운'은 '나'가 잃어 버린 소중한 정신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이들 부자는 줄을 더 탈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죽음을 택하게 된다. 그들을 죽게 한 것은 자신들에 대한 엄격함 그 자체이자, 장인 정신의 승화라고 할 수 있다. 즉 떨어져 죽은 것이 아니라 승천하여 줄타기 광대로서의 자신의 삶을 완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엄격함 속에서 마을 사람들은 '운'의 명인다운 풍모를 읽게 되고, 그가 떨어져 죽은 것이 아니라 승천하여 자신의 삶을 완성한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산업 사회에서는 그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는 이들 광대의 비극적 아름다움을 통해, 작가 이청준은 자기 자신을 상실하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잃어 버린 삶의 가치를 회복하고자 하려는 것이다.

 

 이 소설에 나오는 '나'는 단순한 이야기의 전달자가 아니라 줄광대와는 대조적인 삶을 보여 주는 인물로 등장함으로써 내부의 이야기가 지닌 주제를 보다 선명하게 부각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오직 자기의 세계만을 고집하며 인생을 줄타기에 바친 허 노인(절대적인 가치관의 소유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인의 경지에 이르지만 결국 운명 앞에 무너져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아들 운(가치관의 갈등), 그리고 이에 반해서 자신의 일에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책임감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그저 타성적으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나'(가치관의 부재)를 통하여,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우리가 잃어 버린 소중한 정신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모색하고 있는 작품이다.

 

 허 노인과 허운의 집념의 차이 : 아버지 허 노인은 장인 최고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기력이 다할 때까지 오로지 줄 위의 세상만을 생각하며 살다가 줄에서 죽은 전형적인 장인이다. 그에게 있어서 줄타기란 절대절명의 천직이요, 사명이다. 그는 줄에 대한 집념과 의지로써 현실 세계를 극복하고 줄 위에서의 자유로운 세상을 얻는다.  이에 반해 아들 허운은 아버지와 같은 정신의 줄광대로 생활하다가 일상적 세계의 한 여자를 사랑하다가 배반당함으로써 줄광대로서의 엄숙한 질서를 어기고 삶의 의미를 잃고는 요절하게 된다.

 

 

  미해결의 소설 : 이 작품은 2대에 걸친 줄광대의 삶과 '나(남 기자)'의 생활을 지성의 눈으로 조명함으로써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깊이 있게 모색하고 있다. 절대가치를 좇아 뜨겁게 살아갔던 줄광대 부자와 삶에 무기력한 나 중에 작가는 어느 쪽에도 무게를 실어주지 않는다. 과연 인생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작가는 독자에게 직접 주문하고 있다.

 

 장인 모티프 : 전통 사회에서 특정 분야의 일가를 이룬 전문인. 즉 장인의 일생을 다룬 소설들은 대부분 그 안에 장인 모티프를 갖고 있다. 창작의 동기가 되는 소재나 주제가 장인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흔히 예술가 소설에서 이런 유형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전통 사회에 대한 막연한 향수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경지에 대한 작가의 존중을 나타내는 것으로 특히 이청준 초기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줄>, <매잡이>, <서편제> 등이 모두 이러한 장인 모티프를 갖고 있다. 이들 소설들은 장인들이 지녔던 예술혼의 절대 경지를 좇아가면서 그것과 대비되는 현실을 다른 서술자를 통해 그려내고 있는데, 이러한 중층 구조는 주제를 보다 고양시키고 있기도 하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단편, 회상소설, 액자소설, 예술소설(예술지상주의 소설)

 배경 : 외부이야기 → 현대의 C읍

              내부이야기 → 1940년대 말의 C읍

 시점 : 외부이야기 → 1인칭 주인공 시점

              내부이야기 → 전지적 작가 시점

 

 

 표현상 특징

* 액자소설의 기법을 통해 인물들의 삶을 대조적으로 제시함.

* '절대 가치 → 가치에 대한 갈등 → 가치 상실'의 변화 과정을 '허 노인 → 운 → 나'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 담아냄으로써 현대인의 타성적인 삶과 가치 상실을 고발하고 있다.

 

 구성 : 액자식 구성

외부이야기 내부이야기
(트럼펫 사나이가 들려준 이야기)
외부이야기
    '나'의 깨달음

 

 주제  장인 정신의 상실에 대한 아쉬움과 현대인의 가치 상실 고발

 출전 : 「사상계」(1966)

 

 

● 생각해 볼 문제

 

1. 제목 '줄'에 담긴 의미는?

⇒ 허 노인은 줄타기를 인생의 전부이자 삶의 목적 그 자체로 알고 장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노력한 인물이다. 그의 아들 운 역시 줄광대로서의 길을 고수하기 위해 자살을 택할 정도로 '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줄은 참된 가치를 담고 있는 인간의 삶 그 자체라 할 수 있으며, 장인 정신이라는 글의 주제와 잘 연관되는 소재이기도 하다.

 

2. 문화 부장이 말한 '문학적 센스'라는 말은 하나의 복선의 구실을 한다. 이 말과 주제는 어떤 연관을 지니는지 말해 보자.

⇒ 문화부장이 말한 '문학적 센스'라는 말은 문학적 기교라는 의미로 쓴 말이다. 허 운 부자의 이야기를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질 정도로 윤색하여 써 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글쓰기가 진실의 전달이 아니라, 흥미의 제공이라는 수단적 의미로 보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중에 화자는 도저히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삶에 대한 진실을 드러낼 자격이 없다는 인식 때문이다. 따라서 '문학적 센스'는 글쓰기의 요체가 아님을 말하기 위한 복선이 되는 것이다.

 

3. 이 소설은 겹이야기 구성으로 되어 있다. 속이야기의 주제는?

⇒ 장인으로서의 치열한 삶의 정신

 

4. 이 작품에서 '창녀'와 '트럼펫 사내'는 결코 부수적 인물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의 삶의 모습이 허 운 부자의 그것과 상통하는 점은 무엇인가?

 ⇒ 허운 부자가 줄타기에 죽음을 불사한 정도의 열정을 불태웠듯이, 트럼펫 사내는 악사로서의 삶을 진지하게 살았던 인물이다. 트럼펫은 허운 부자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혼신의 정열을 다해 말한다. 그것은 지난날의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의 표현이다. 그만큼 자신이 주체가 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것은 트럼펫을 좋아하는 여자의 뜨거운 인간애 또한 진실을 바치는 아름답고 진중한 가치를 지닌다. 그런 반면 화자는 일에 임하는 태도에 있어서 진지한 성찰을 하지 않는다. 화자의 태도와 상반된 자리에 허운 부자와 트럼펫, 여자가 있는 있는 것이다.

 

5. 이 작품을 통해 작가가 말하려 하는 진정한 '소설 쓰기'란 어떤 것인지 간단히 말하라.

⇒ 화자는 진정한 소설 쓰기란 결국 삶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전제될 때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글쓰기는 삶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글쓰기가 하나의 재주와 같은 차원이라면 진정한 감동을 줄 수 없다는 것인데, 소설까인 화자는 그런 인식에 이르면서도 도저히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반성에 이른다.

 

 

● 더 읽을거리

 

 이청준과 액자소설

액자소설은 이야기 속에 이야기를 담는 소설의 구성 형식을 말한다. 이청준의 소설에는 유난히 액자 소설의 구조가 많은데, <눈길>, <병신과 머저리>, <서편제>, <선학동 나그네>, <소문의 벽> 등은 모두 액자 소설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안 이야기와 바깥 이야기의 역할은 각각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 안 이야기는 인생의 의미가 담긴 사건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면, 바깥 이야기에서는 다른 액자 소설과 마찬가지로, '나'가 등장하여 이 이야기의 의미를 반성하고 성찰하게 된다.

소설이 삶을 보여주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그 삶의 의미를 성찰하게 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는 점을 작가가 충분히 활용하여 이를 작품의 형식에 반영한 결과라고 하겠다.

 

 '허 노인'과 장인 정신

이 작품에서 허 노인은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루는 장인의 유형을 대표한다. 허 노인은 줄을 탈 때에는 오로지 줄타기에만 전념하여야 하며, 줄타기를 할 수 없을 때에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허 노인이 '줄을 탈 대에는 눈과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 것은 줄을 탈 때 혼신의 힘을 다 기울여야 한다는 줄타기의 자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청준의 소설에는 이러한 장인의 모티프가 많이 등장하는데, '줄'에는 줄타기의 경지에 이른 허 노인 부자가, '서편제'에는 판소리의 경지에 이르는 소리꾼 부녀가, '매잡이'에서는 산업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매잡이 곽돌이 나온다. 이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모두 현대인들에게는 과거의 유물쯤으로 여겨지는 자신의 직업에 대해 강한 장인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이청준이 산업화된 근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 이보다는 인간이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자들에 대한 작가의 존중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또한 장인 정신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 현대인의 무기력한 허무주의와 가치관의 상실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트럼펫 사내'의 역할

이 소설에서 트럼펫 불던 사내는 허 노인 부자와 같은 스커스단에 있었으며, 허운과 가까운 사람이었던 만큼 부자의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 양 혼신의 힘을 다해 말하고 있다. 이는 줄타기에 장인 정신을 가지고 죽음을 불사한 부자의 모습에서 명인다움을 느꼈으며, 그들의 삶의 태도를 존중하며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트럼펫 불던 사내는 허 노인과 허운의 삶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나'에게 줄광대 부자의 이야기를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자신의 일에 절실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나'의 모습과 대비되어 진지한 삶의 성찰을 유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728x9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