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마을(1953)
-오영수-
● 줄거리
동해의 H라는 어촌은 여느 갯마을과 같으나 유독 과부가 많은 것이 다른 마을과 다르다. 해순은 뜨내기 고기잡이와 해녀(보자기) 사이에서 난 처녀이다. 그녀는 '어머니를 따라 바위 그늘과 모래밭에서 바닷바람에 그슬리고 조개 껍질을 만지작거리고 갯냄새에 절어서' 성장한 여인이다. 그녀는 열아홉에 성구에게 시집을 가고,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고향인 제주도로 가 버린다.
착실한 성구는 혼자 힘으로 홀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아내를 부양한다.
고등어철이 돌아오자 성구는 여덟사람이 한패가 되어 칠성이네 배로 원양 출어를 나간다. 갓 시집 온 해순은 돌담에서 전송을 한다. 그들이 바다로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폭풍이 몰아친다. 그들의 배는 돌아오지 않는다. 해순은 성구가 돌아올 것을 믿지만 세 식구가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물옷을 입고 바다로 나간다.
그녀는 갯마을의 아낙네들에 섞여 지낸다. 어느날 밤 해순은 종일 미역 바리를 하고 나무둥치같이 쓰러져 잠이 든다. 압박감에 눈을 뜬 그녀는 상고머리를 한 사내가 자기를 겁탈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다음날 미역바리를 나가서도 해순은 어젯밤의 일을 기억한다. 시어머니는 잘 때 문단속을 잘하라고 한다. 방바위 옆에서 한천을 펴고 있는 해순에게 상수가 나타나 고향에 가서 함께 살자고 한다. 해순은 어젯밤의 사내가 상수임을 알고 칼로 위협하나 실패한다. 아낙네들 사이에 소문이 파다해진다.
고등어철이 와도 배의 소식이 없자 시어머니는 해순이더러 제사나 지내고 개가하라고 한다. 아낙네들의 귀염둥이인 해순은 상수를 따라 간다. 그러나 상수가 징용으로 끌려가자 해순은 산골에서 견디지 못하고 바다를 그리워한다. 고등어 철이 오자 두 번째로 맞는 성구의 제사를 사흘 앞두고 해순이 삼십 리 산길을 단숨에 달려온다. 산골 생활에 진력이 나서 마구 바닷가로 뛰어가는 그녀를 두고 모두 미쳤다고 무당굿을 하는 틈을 타 마을을 빠져 도망쳐 온 것이다. 그녀는 다시는 갯마을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한다.
해순은 과부 중에서 가장 젊은 스물 셋의 청상이다. 초여름밤 멸치잡이를 알리는 꽹과리 소리가 울리자 해순은 후리막으로 나가 줄을 잡는다. 누군가가 해순의 손을 잡고 치마 밑을 더듬는다. 후리질이 끝나고 해순은 짓(수확물)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지 않는 성구와 징용으로 끌려간 상수를 생각하면서 해순은 괴로운 밤을 보낸다. 늦게 잠이 든 그녀의 방에 시어머니가 들어와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문을 걸고 자라고 한다. 해순은 얼굴이 달아올라 고개를 들지 못한다.
● 인물의 성격
◆ 해순 → 이름에서도 나타나듯 바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여인으로, 열아홉에 성구에게 시집을 가나 폭풍으로 돌아오지 않는 성구를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상수를 따라 나선다. 상수마저 징용을 끌려가는 바람에 혼자 남아 산골에서 살면서 바다를 그리워하며 갯마을로 돌아온다. 일종의 바다에 신들린 여인이다.
◆ 성구 → 해순이의 첫 남편으로, 착실한 어부로 혼자 힘으로 홀어머니와 동생 그리고 아내를 부양하며 살아간다. 고등어 철이 돌아오자 한 패를 만들어 칠성이네 배로 원양출어를 나가서 영영 돌아오지 않는 인물이다.
◆ 시어머니와 마을 아낙네들 그리고 노인들 → 전형적인 바닷사람들로 운명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정적인 인물들. 시어머니는 갯마을에서 과부로 살아온 사람으로, 자신처럼 혼자된 며느리를 안타까워하여, 며느리를 개가시켜줄 정도로 인정이 많음.
◆ 상수 → 해순이의 두 번째 남편. 밤중에 몰래 해순을 범하고는 해순의 시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해순을 데리고 고향인 산골로 갔으나 징용으로 끌려감.
● 구성 단계
◆ 발단 : 갯마을 여인들의 인정 어린 삶. 해순이가 성구와 사별을 함.
◆ 전개 : 해순이 상수와 재혼 후 산골로 들어간다. 상수가 징용에 끌려감.
◆ 절정 및 결말 : 해순이 다시 갯마을로 돌아옴.
● 이해와 감상
◆ 배경과 인물의 원시적 건강성 → <갯마을>은 해순(海順)이라는 젊고 예쁜 과부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회상과 대체물을 통해 표출된다. 해순은 그 이름이 암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광대무변한 바다의 일부이다. 그녀의 미래는 늙은 과부들의 현재의 모습을 통해 암시되고, 늙은 과부들의 과거는 해순이의 현재 모습을 통해 암시된다. 그녀를 통해 나타나는 인간의 모습은 원초적인 자연적 인간이다. 사회성이 제거된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과 자연과 동화된 인간의 모습 그리고 자연의 일부가 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바로 그녀의 모습이다.
◆ 이 소설에서 주된 스토리를 형성하는 남녀 간의 성 문제는 원시성의 측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해순이가 여러 남자를 거치는 것은, 그녀가 세속적이거나 반도덕적이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런 성정과 관련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남녀간의 애정은 누구나 가지는 것이며, 그 자연적 질서의 중심에 놓인 인물이 바로 해순이일 뿐이다. 원시공동체의 '공유하는 성'의 모습이 갯마을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겠다.
◆ 원시공동체로서의 이상향의 이미지인 '바다' → 이 작품의 가장 중심에 놓인 것은 '바다'이다. 해순이의 애정문제는 바다라는 자연의 한 요소에 불과하지 결코 해순이의 살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아니다. 해순이에게 바다는 생활의 터전이라는 부수적 공간이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인 것이다. 바다가 없이는 한 순가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바다는 그녀에게 이미 종교와 같은 세계이다. 바다는 자연의 원시성이 살아있는 이상향인 것이다. 작가가 추구하는 이상세계는, 갈등이 없는 화합의 세계, 문명적 요소가 없는 원시적 세계, 건강한 생명의 약동이 있는 세계이다.
◆ 작가의 문체는 간단 명료하며 서정적 흥취와 소시민적 정감이 특색이다. 각박하고 생기 없는 현실에 따스한 숨결로 애환의 인생을 그려내는 것이 이 작가의 문학적 지론인데, 이러한 특징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 <갯마을>이다. 이 작품의 '갯마을'은 사회 현실과 두절된 공간으로 삶의 원형이 이루어지는 배경으로서의 장소이다. 두 번째 남편마저 징용으로 끌려간 뒤 다시 갯마을로 돌아온 해순이가 반가움과 안도감을 느끼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다. '징용'이라는 사건이 없다면 시대조차 짐작하기 어려운 초시간적 공간이 '갯마을'이기 때문이다.
고등어 철이 돌아오는 계절의 순환과 해순이의 바다에 복귀는 자연과 인간의 삶을 동일시하는 작가의 이상세계를 형상화하는 장치이다. 작품 <갯마을>은 폐쇄적 시대상황을 우리 단편소설들과 동일 맥락에 놓은 작품이다. 이러한 성향이 작가의 후기 작품에서는 현대사회의 인간 상실이라는 병리 현상과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오염된 도시 문명과 대비하는 건강한 원시적 자연과 농촌 공동체의 유풍에 대한 찬미로 지속된다.
● 핵심사항 정리
◆ 갈래 : 단편소설
◆ 배경
* 시간적 → 일제 말기(상수의 징용을 통해 짐작됨)
* 공간적 → 바닷사람들의 삶의 애환이 깃든 동해안 갯마을
* 사상적 → 자연친화사상과 애로티시즘
◆ 시점 : 전지적 작가 시점
◆ 표현상 특징
* 역순행적 구성(현재→과거→현재)
* 간결한 서정적인 문체와 감각적인 서술
* 사실주의적 경향
◆◈ 출전 : <문예>(1953)에 발표됨.
◆ 주제 ⇒ 갯마을 사람들의 삶의 애환과 그들의 운명
바다(자연)에 대한 한 여인의 애착
● 생각해 볼 문제
1.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성(性)'의 문제는 우리의 기존 인식과 어떤 차이가 있으며, 여기서 짐작할 수 있는 작가의 세계관은 무엇인가?
⇒ 여기서의 성(性)은 자칫 반도덕적인 것으로 그려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배경이 되고 있는 갯마을의 원시성 짙은 자연, 사람들의 원시 공동체적 삶의 모습에서 보면, 그 성은 자연적 삶의 일부분에 그치는 문제라고 하겠다. 작가는 원시성의 풋풋하고 건강한 삶을 보여 주는 것이 목적이고, 성은 그 세계의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다고 보는 것이다.
2. 해순이가 갯마을로 되돌아온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가?
⇒ 바다에의 원초적이고 주술적인 이끌림 때문에
3. 해순의 어머니가 해녀였다는 것과 해순의 운명은 어떤 관련이 있는가?
⇒ 해순의 어머니는 해녀였기 때문에 바다가 없으면 견디지 못했다. 어머니는 해순이 때문에 이 마을에 어쩔 수 없이 눌러 살았지만, 해순이가 시집을 가자 자신의 바다를 향해 떠나 버린다. 그녀에게는 바다가 주술적 힘을 가졌던 것이다. 해순이의 바다는 이 갯마을이다. 해순이 또한 바다에의 원초적 이끌림을 타고난 것이다.
4. 이 작품에서 '갯마을'이라는 공간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
⇒ 주인공이 영원히 그리워하는 공간으로서 몽환적인 환상의 공간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주인공 해순의 그리움과 한의 공간이자 떠날 수 없는 삶의 터전이다.
● 더 읽을거리
■ 오영수(1914∼1979)
호는 월주. 경남 울산 출생. 어려서 한학을 수학했다. 1932년에 오사카 나니와 중학 속성과를 수료, 1939년에는 도쿄 국민예술원을 졸업하였다. 8 · 15광복 후에 귀국, 시와 소설을 「백민」과「신천지」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1950년 「서울 신문」에 단편 '머루'가 입선되면서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 1954년 첫 창작집 '머루', 1956년 '갯마을', 1958년 '명암', 1960년 '메아리', 1965년 '수련' 등 잇달아 창작집을 간행하였다.
성품이 소박하고 낚시와 그림을 좋아했던 그는 만년에는 고향 근처로 낙향하여 요양과 창작에 정진하였으나 「문학 사상」지에 발표한 단편 '특질고'로 인해 뜻하지 않은 파문을 일으켜 정신적인 타격을 받기도 하였다. 90편 가량의 단편을 모아 『오영수 전집』전 5권을 그의 생전에 출간했다. 1955년 한국문학가협회상, 1959년 아시아자유문학상, 1977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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