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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소설 줄거리/해설]꿈꾸는 인큐베이터(1993)-박완서-

by 휴리스틱31 2021. 1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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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인큐베이터(1993)

-박완서- 

 

● 줄거리

 

여자 고등학교 가정 선생인 동생은 오늘도 나에게 자기 자식의 유치원 재롱잔치에 가 달라고 떼를 썼다. 자신은 학기말 성적 처리 때문에 도저히 그 시간에 빠져나올 수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파출부를 고용할 때 면접하는 일로부터, 임금 협상, 장보기 등등 아예 동생의 가정 선생 노릇을 하고 있었다. 파출부에게 아무리 공을 들여 봤댔자 직업의식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종종 안 올 적이 있었고, 그럴 때면 동생과 동생의 남편은 짐 부리듯이 현관에다 어린것을 내려놓고 출근을 했다. 어떤 때는 울화가 치밀기도 하였지만 어린것이 안쓰러워 마음을 풀곤 하였다.

동생은 얌체라는 별명으로 통할 만큼 나한테 신세진 것에 대해 미안해하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옆 동에 이사온 후부터는 더욱 자주 불려 가거나 아이를 떠맡게 되어 비명을 올린 적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지금껏 견디고 있는 것은 동생이 때때로 내 생활을 훼방놓아 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유치원 문턱에 와서야 비디오 카메라를 안 가지고 온 것을 깨달았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아무리 찾아봐도 비디오 카메라는 온 데 간 데가 없었다. 조카인 슬기가 연극의 주연이라 했으므로 더욱 맘이 불안해졌다.

 

 

요새 와서 자주 무엇인가를 잃어 버리는 경우가 생겼다. 그럴 때마다 아주 고약한 느낌이 들고는 했다. 다행이 동생네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 내곤 파출부 아줌마와 한동안 집안을 들쑤셔 그놈의 카메라를 찾아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바로 다음 차례가 연극이었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연극 전의 포크댄스는 여자라 모자란 관계로 세운 남자 짝들의 난데없는 싸움으로 난장판이 되었고 뒤이어 일곱 마리와 새끼 염소와 늑대 이야기 연극이 시작되었다. 헌데 막상 카메라를 들이대니 작동법을 알 수가 없었다. 당황해서 이리저리 들여다보고 있는데, 한 남자가 도와주겠다며 나섰고 아예 자신이 찍어 준다며 카메라를 연극 무대에 돌렸다. 처음에는 의심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곧 아이들의 재롱을 공감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자 기분이 좋아졌다.

 

연극이 끝나자 그 남자는 "추워 보이시는군요, 어디 가서 차 한 잔 할까요?" 라고 했고 나는 못이기는 체하면서 그가 가는 대로 따라 갔다. 그는 잡지사에 다닌다고 했고 막내 염소가 자신의 딸이라고 하였다. 자신은 딸만 둘이라는 말을 했고 그 말에 나는 걷잡을 수 없게 병적인 수다를 시작하였다.

 

나는 아들을 두고 싶지 않느냐는 둥, 아들이 없으면 비참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고 사내는 둘이면 족하다고, 둘째가 아들이기를 내심 바랬지만 섭섭해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속으로 아들이 있고 없고 하고 인생의 행 · 불행하고를 연관지어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은 남자를 만난 게 대단히 곤혹스럽고 기분이 나빠서 그러한 거짓 행복은 깨부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게 되었다.

 

 

이어서 계속되는 나의 발언은 모두 아들을 가진 이의 장점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오히려 자신감 넘치게 말을 했다. 그리고는 손목 시계를 보고 나가려 하였다. 나는 그러한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 명함을 달라고 했다. 물론 비디오를 복사해 주겠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집에 돌아가 저녁을 먹고 나자 동생한테서 전화가 와서 비디오 테이프를 같이 보자고 한다. 비디오 찍는 기술이 늘었다며 슬기가 나오는 화면을 틀자 화면은 내가 낮에 본 어설픈 동극하고는 전혀 다른 것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고도 생동감이 넘쳤다. 그 삼십 분도 채 안 되는 아마추어의 필름이 나에게 걸작일 수 있는 것은, 우리끼리만 통한 귀여운 것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다.

 

나는 비디오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남자와 눈을 맞추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비디오 테이프를 복사해서 나오며 다시금 아들이 없이도 불행하기는커녕 쓸쓸하지도 허전하지도 않은 인간이 이 한국 땅에 있다는 것이 참을 수 없이 께름칙했으며 그 께름칙함을 떨쳐 버리지 않고서는 생전 아무 재미도 못 느끼고 살아야 할 것 같은 예감마저 들었다. 그 남자의 생각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만 알면 되었다. 나는 그 남자에게 전화를 걸어 비디오테이프를 전해 주고 싶다고 하였고, 그 남자도 흔쾌히 약속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나는 그 남자를 만나러 가기 위해 공들여 화장을 하고 거울 앞에서 많은 옷을 입어 보았다. 세차까지 하고 호텔의 커피숍으로 향했다. 남자는 먼저 와 있었다.

 

실망스럽게도 야근을 했다며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앉아 있었다. 나른한 분위기의 오후를 창 밖으로 잠시 내다 보다고 있자 남자가 갑자기 "쓸쓸해 보이십니다."라고 했다. 나는 핸드백에서 테이프를 꺼내 건네고는 또다시 병적으로 수다를 떨기 시작하였다.

 

 

물론 저번 대화 내용의 연장이었다. 사내는 또 그 이야기냐는 표정으로 열정적으로 남자와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문득 자유를 외치던 운동권의 거친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설득하는 것보다 약을 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가 남녀 불평등 구조가 성비율의 균형을 깨뜨리고 있고, 자신은 공포감을 느낀다고 이야기하자 나는 내 비밀을 누구한테 들킨 것처럼 뜨끔해졌다. 또 그는 자신이 잡지사에서 산부인과 병원을 찾아가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이들의 고민을 해결해 주는 의사를 취재했을 때 여아 살해를 전제로 한 방법에 대해서 듣고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취재를 그만두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는 남편도 하나같이 호흡이 잘 맞는 공범자라는 이야기를 하고는 바쁘다며 먼저 가 버렸다.

 

나는 공범자라는 말이 벌떼처럼 잉잉대었다. 아랫배에서 양수를 빼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누워 있던 침대머리에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지키고 있는 모습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들은 지극 정성이었으나 나는 그들이 확인 사살을 위해 지키고 있는 사람들처럼 무서웠다. 그들은 양쪽에서 내 손을 잡고 뭐라고 위로의 말을 했으나 내가 그들을 미워하기로 작정한 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나는 호텔을 빠져 나와 교외로 차를 몰았다. 정신이 혼미해지며 일차선에서 무작정 직각으로 차를 꺾었고 이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하였다. 운전대에 이마를 대고 엎드렸다. 과연 남편이 공범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남편은 아들놈하고 티격태격하면서 야구 구경 가는 친구가 제일 부럽다는 이야기밖에 한 적이 없었다.

 

나는 그 소리에 깊은 상처를 받고 결국 남편에게 야구 구경을 같이 갈 아들을 낳아 주기 위해 딸을 죽이기까지 한 것이다. 갑자기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을 것 같은 노여움이 치받쳤다. 나는 그 일을 성공적으로 저지른 후 공손한 며느리, 착한 올케에서 쌀쌀하고 무도한 여자로 변했다.

 

그들과의 불화는 나의 삶의 유일한 활력소가 되었다. 너 아들 낳더니 눈에 보이는 게 없냐? 라고 맞대 놓고 비아냥거릴 적도 있었으나 나는 겁날 것 하나도 없었다. 나는 장손을 낳아준 맏며느리였고 나는 아들을 낳음으로써 내가 남자가 된 것처럼 당당해졌다.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생전 아버지를 어려워만 하며 살았던 어머니, 내가 첫딸을 낳았을 때 친정어머니는 남편이 기저귀를 가는 것을 보고 야단을 치셨다. 계집애 아랫도리를 남편한테 어떻게 풀어 놓느냐고, 고추 달린 아랫도리나 남편 앞에 풀어놓는 것이라고, 그것이 어머니의 도덕 관념이었다. 나는 나를 위해 달라져야 했다. 남편도 나도 그렇게 간악한 짓을 저지르고도 죄책감을 못 느끼는 그 께름칙함을 떨쳐 버리지 않은 이상 생전 아무 것도 느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차도로 나와 도시를 뒤로 하고 달렸다. 도시와 더불어 내 집 또한 뒤로 뒤로 멀어져 가는 기분이 상쾌했다.

 

 

● 인물의 성격

 

◆ '나' →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의 생명을 빼앗은 것에 대한 죄의식을 마음 깊은 곳에 숨기고 있으면서도 이를 들키고 싶어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 자신의 죄의식과 마주하기를 피하며 자기 합리화로 평온한 삶을 유지해 왔다.

◆ '그' → 남녀평등 사상을 지닌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인물이다. '나'에게 죄의식을 각성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시어머니, 시누이 → 남아 선호 사상과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는 인물들로 '나'에게 딸을 낙태할 것을 강요한다.

 

●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아들을 낳기 위해 임신 중절 수술을 하여 딸의 생명을 빼앗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여성이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며 스스로 달라질 것을 결심하는 과정을 통해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억압되고 차별받는 여성의 현실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 작품의 주인공인 '나'는 겉으로는 평온한 생활을 유지해 나가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임신 중절 수술이라는 죄를 저질렀는데도 불구하고 아무 일 없는 듯 살아가는 것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은 '나'에게 도덕적 불안감과 갈등을 유발하고, 남녀평등을 실천하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죄의식을 직시하게 됨으로써 자기를 다시 인식하고 불안을 극복하게 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 과거에 저지른 일로 인한 죄의식이 계속 인물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나, 시어머니와 시누이에게 낙태의 책임을 전가시켜 이들을 증오하는 것으로 죄의식을 해소하는 등 주인공의 심리에 관심을 둘 만한 요소를 많이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반어적 기법을 통한 저항 의식의 표현

반어는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반대로 드러냄으로써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는 표현 기법이다. 이 작품에서는 '나'와 '그'의 대화에서 반어적 기법이 사용되고 있다. '나'는 남아 선호 사상을 비판하는 '그'를 '딸만 있는 주제에 행복한 체한다'고 생각하고 딸로 만족하는 것은 허세일 뿐이라며 공격한다. 그러나 '나'가 '그'에게 남아 선호 사상을 인정하도록 하고자 하는 것은 아들을 낳기 위해 딸을 죽인 자신의 행동이 남아 선호 사상을 통해 합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나'가 하는 말들은 남성 중심 사회, 남아 선호 사상에 대한 저항 의식을 드러내는 반어적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결말의 한계성

이 작품의 결말에서 '나'는 자신을 위해 달라져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 돌아가야 할 도시와 집을 뒤로 하고 달려간다. 이것은 주인공이 스스로 변화할 것을 다짐하며 그동안의 자신에서 벗어나는 모습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딘가에 유턴 지점이 있겠지.'라는 부분은 주인공이 남성 중심의 사고방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남성 중심의 사회인 일상으로 복귀하고자 하는 의식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여성주의 시각에서는 한계로 지적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턴 지점을 열심히 찾지 않으면서 도시와 집에서 멀어져 가는 것을 상쾌하게 느끼는 모습에서 주체적 여성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남편에 대한 나의 감정

이 작품에서 주인공의 남편은 전면에 드러나지 않는다. 출장으로 인해 집을 떠난 상태인 것이다. 이들 부부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하지만 남편이 출장을 가면 '나'가 보는 '장미의 전쟁'(두 자녀와 정상적인 결혼 생활을 하던 부부가 점차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가자 의견 충돌이 잦아지고, 결국 이혼을 하면서 생사를 건 싸움을 하는 과정을 담은 영화이다.)이라는 영화를 통해 '나'가 남편에 대해 증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와의 대화를 통해 '나'는 그 증오의 원인이 딸의 생명을 빼앗은 행위를 묵인하고 그 과정을 철저히 모른 척한 남편의 행동 때문임을 인식하게 된다.

 

 

 1993년 제 38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오늘날의 여성 문제를 현실적으로 축약시킨 작품으로서 남성 우위의 유교적 전통 속에서 여성이 겪는 상황과 모순을 드러내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주인공은 동생의 부탁으로 어린 조카의 재롱잔치에 참석한다. 조카의 모습을 찍기 위해 비디오 카메라를 가져가지만 작동법을 제대로 몰라 난감해하다가 낯선 남자의 도움을 받는다. 주인공은 남자에게 차를 대접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면서 남아선호에 대한 자신의 어긋난 생각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미묘한 집착으로 인해 그 남자를 다시 만나 아들의 필요성을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그에게 설득당한다. 아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이 남자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주인공은 자신의 지난날(중절수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녀는 아들을 낳기 위해 시어머니와 시누이의 부추김 아래 양수 검사를 받고 딸을 지워 버린 과거가 있다. 이후 아이에 대한 죄의식이 일어나 그때마다 분노가 살아난다. 이 작품은 우리 시대의 아픔을 쓰다듬어가는 과정으로서, 주제의식을 탁월하게 형상화해 낸 작가의 노력이 돋보인다.

 

● 핵심사항 정리

 

 갈래 : 현대 소설, 단편 소설, 세태 소설

 배경 : 1990년대, 서울

 시점 : 1인칭 주인공 시점

 표현상 특징

* 현실 비판적 성격

 주제  남아 선호 사상과 가부장적 사회에서 도구화된 여성의 처지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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